무적호위 27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80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7화
“넌 반사 신경이 남다르게 빨라.”
유고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는 나름대로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그건…… 음, 어릴 때부터 빨리 피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가 봐. 싸울 때 빨리 피하기라도 해야 덜 맞거든.”
“오늘도 아마 다른 사람과 같은 반응 속도였다면 갈비뼈까지 모조리 잘렸을 거다.”
유고원의 반응은 장천운조차 놀랄 정도로 빨랐다. 그 덕에 실낱같은 차이로 중상을 면한 것이다.
“천운, 그 장점을 살리면 무공이 더 강해질 수 있을까?”
“물론이지. 내가 봤을 때, 너는 지금 익히고 있는 화려한 칠성유혼검보다 쾌검을 익히는 게 좋겠어. 그리고 신법에 조금 더 신경을 써봐.”
유고원은 성격 상 사람을 죽이기 위한 무공보다 멋진 무공을 선호했다. 그러다보니 무서동에서 얻은 무공도 변화가 장점인 칠성유혼검법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생각을 달리해야 할 듯했다.
“알았어, 생각해 볼게.”
“강호에서 오래 살고 싶으면 내 말대로 해.”
장천운은 유고원의 어깨를 툭 치고 사명학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명학의 치료를 도와준 장천운은 삼조원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어깨가 시뻘겋게 물든 관철양이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고마웠다.”
“별 말씀을 다하시네요. 어깨는 어때요?”
“살이 약간 뜯겼을 뿐이야. 덕분에 몸이 조금 가벼워졌지.”
“조장님이 그런 농담을 하니 안 어울립니다.”
“나도 원래는 농담 잘했어. 그 새끼들이 죽은 이후로 웃을 수가 없었을 뿐이지.”
정수겸과 하중안. 그들을 말하는 듯했다.
“누구 말로는 본 성 사람 중에 범인이 있는 것 같다고 하던데요.”
장천운은 슬쩍 찔러보았다. 그런데 관철양이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나도 알아. 아직은 참아야만 하니까 참는 것뿐이지. 언젠가 밝혀지면 놈의 목은 내가 딸 거다.”
그때 마차 쪽에서 육선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천운, 이리 와봐라!”
장천운이 소연추조차 막지 못한 괴 복면인을 막은 사실은 육선기와 남조연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동겸의 이를 우수수 빼낸 놈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로 강할 줄은 생각도 못한 것이다.
남조연이 장천운을 칭찬했다.
“이번에 네가 큰 공을 세웠다. 돌아가면 상을 내릴 것이니, 앞으로도 전력을 다해서 임무에 충실하도록 해라.”
주는 상을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너무 튀고 싶지도 않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선자께서 놈에게 충격을 주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요.”
남조연 역시 장천운이 본인의 순수한 힘만으로 적을 막아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그가 적을 막아내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몰랐다.
“지금 수혼대원은 말할 것 없고 조장들마저 부상을 입은 상태다. 네가 냉 대주를 많이 도와주도록 해라.”
“예, 장로.”
장천운이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이는데 소연추가 물었다.
“네가 펼친 검법, 섬전검이 맞느냐?”
“맞습니다.”
“섬전검이 그런 위력을 보일 줄은 생각도 못했군.”
“마음에 들어서 나름대로 몇 년 간 갈고 닦았죠.”
“하긴 삼재검법도 극에 이르면 절기가 된다고들 하지. 좌우간 너에게 신세를 졌다. 잊지 않으마.”
장천운은 그 말도 마음에 들었다.
소연추에게 받을 것이 있다는 사실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그 말, 잊지 마쇼.’
죽은 사람은 아홉 명. 수혼대원의 숫자는 삼 할이 줄어든 상태였다. 거기다 산 사람도 부상자가 반이 넘었다.
그러나 돌아갈 수도 없는 일. 마차는 계획한 대로 대운사를 향해 달렸다.
***
구천성에 소성주 일행의 습격소식이 전해진 것은 그날 유시(酉時:오후5시~7시) 초였다.
구천성이 발칵 뒤집혔다.
구천성 내의 모든 간부들이 구천대전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을 앞에 두고 불같이 노한 사마중천이 명령을 내렸다.
“어떤 놈들인지 지상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밝혀내라!”
반 시진 후, 구천성의 거대한 정문이 활짝 열렸다.
장로 가유덕과 무혼단주 진강이 이끄는 이백스물두 명의 정예무사단이 구천성을 나섰다.
그로부터 이각쯤 지났을 때, 구천성의 깊숙한 곳에서 당황한 목소리들이 오갔다.
“누가 사마경을 공격한 거지?”
“우리 쪽은 아닐 거요. 큰일을 앞둔 지금 그런 짓을 저지를 멍청한 자가 어디 있단 말이오?”
“그럼 도대체 누가 소성주를 공격했단 말인가?”
“지금 숨을 죽이고만 있을 뿐, 본 성을 노리고 있는 자들은 많소. 심지어 무림맹도 언제든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지 않소?”
“왜 하필이면 지금 이런 일이 터진 건지 모르겠군.”
“그러게 말이오.”
공손백은 전후사정을 전해 듣고 허공을 응시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백리호가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는 넌지시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제야 공손백이 눈을 내렸다.
“계획을 취소시킬 순 없다. 아니, 취소시키기에는 이미 늦었어. 모두들 정해진 대로 움직이라고 해.”
“예, 사형.”
“설령 계획이 조금 바뀐다 해도 최종 목표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모두에게 그렇게 알려라.”
***
우문각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쳐들었다.
‘사흘, 그 안에 놈들을 밝혀내야 한다. 늦으면 승산이 너무 낮아져.’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정유.”
“예, 각주.”
“너는 그들이 모습을 드러낼 거라고 보느냐?”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겠지. 하지만 정작 중심인물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거다.”
“한겨울에도 마른 넝쿨을 조심스럽게 따라가면 서여(薯蕷:마)를 찾을 수 있습니다. 쉽진 않겠지만 방법이야 찾으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네 말도 맞긴 한데, 시간이 많지 않아.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꼬리가 밟혔다는 걸 알게 되면 단숨에 승부를 결정지으려 할 거다.”
“최선을 다해서 그 전에 찾아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반드시 그래야 한다. 만약 눈에 들어오는 자가 있으면 계획대로 행하라고 해라.”
“예, 각주.”
***
다행히 대운사의 코앞에 도착할 때까지 더 이상의 습격은 없었다.
소성주의 어머니를 위해 불공을 드리러 왔는데 피 묻은 옷을 입고 사찰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일. 수혼대원들은 사찰 근처 마을인 용경에 도착해서 피 묻은 옷을 갈아입었다.
부상이 심한 사람들은 용경에 머물게 하고 나머지만 사찰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여자 중에는 이능능이 땅에 처박힐 때 어깨뼈가 부서져서 남아야 했다.
모두 합해봐야 열서너 명 남짓. 그나마도 반은 외상이 없는 대신 내상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그들이 용경에 머무는 동안 삼풍문의 문주인 대웅검(大雄劍) 기걸상이 무사 백여 명을 이끌고 달려왔다.
비록 그들의 무위가 뛰어나진 않다 해도 경비임무 정도는 충분히 수행할 수 있지 않겠는가.
구천성에서 무사들이 도착할 때까지만 버텨주면 되었다.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해.”
“무슨 느낌?”
“좀 더러운 느낌.”
장천운은 짧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오관과 진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만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장천운의 느낌이 점쟁이보다 잘 맞는다는 걸 강련곡에서 겪은 몇 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무사가 안 되었다 해도 굶어죽지는 않을 듯했다.
“이번 습격에 수상한 점이라도 있단 말이야?”
오관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장천운이 이마를 찡그리며 대답했다.
“자세한 건 모르겠어.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것뿐이야.”
구천성에서 권력다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이번 일도 그 와중에 벌어진 일일지 몰랐다.
누군가가 현 성주의 후계구도를 잘라버리기 위해서.
아마 말만 하지 않고 있을 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장천운은 왠지 모르게 끈적끈적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소성주를 해치기 위해서 저지른 일이 아닐지도 몰라.’
복면인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눈에 밟혔다.
보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정체를 숨겼다고만 보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문제는 찜찜한 느낌이 드는 이유가 이번 공격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지?’
빌어먹을 예감.
너무 감각이 예민해도 골치가 아팠다.
“이봐, 장천운!”
뒤에서 누군가가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냉원상이 다가오고 있었다.
“예, 대주.”
“대운사에 들어가게 되면 네가 소성주 곁에 바짝 붙어서 다녀라.”
“제가요?”
“단봉선자가 요청했다. 소성주께서도 허락했고.”
***
밤이 깊어갈 무렵, 사마경 일행이 대운사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구천성에 전해졌다.
우문각이 직접 사마중천을 찾아가서 보고했다.
“소성주께서 무사히 대운사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후우, 다행이군.”
하루 종일 굳어 있던 사마중천의 표정이 그제야 풀어졌다.
“성에서 보낸 무사들이 대운사 반경 오 리 이내를 철통같이 감시하고 있으니 이제 마음을 놓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성주.”
사마중천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문각을 지그시 응시했다.
“총사는 누가 그 아이를 공격했을 것이라고 보는가?”
“그만한 배짱을 가진 곳은 모두 네 곳이 있습니다. 호북의 천은방(天銀幇), 강서의 장강팔련(長江八聯), 낙양의 백검문(百劍門), 제녕의 검왕문(劍王門). 그들 모두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림맹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추측만으로는 안 되네. 확실하게 알아내게. 증거가 확실하게 드러나면 그들에게 알려줄 거네. 내가 왜 천궁마신이라고 불리게 되었는지.”
“최대한 빨리 알아내도록 하겠습니다.”
사마중천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우문각을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대장로 쪽에서 나섰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대장로께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의심받을 대상이 본인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대장로가 손을 썼다면 수혼대의 힘만으로는 벗어날 수 없었을 겁니다.”
“하긴 그라면 어정쩡하게 처리하지 않았겠지.”
“그래도 일단 의심을 지우지는 않고 지켜볼 생각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역으로 이용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사마중천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문각의 두 눈을 직시했다.
“총사, 이점만큼은 분명히 알아두게. 누구든, 경아에게 칼을 겨눈 자는 용서치 않을 거네. 그게 누구라 해도.”
그의 말뜻을 우문각이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는 한 점 흔들림도 없었다.
“제가 어찌 성주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안다니 다행이군.”
“성주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이번 일의 배후를 밝히기 위해서 본 성의 간부 몇 명을 조사해볼 생각입니다.”
“허락하겠네.”
사마중천은 우문각이 방을 나간 후로도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윽!’
사마중천이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