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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5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4,01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25화

사람들은 자식이 없는 성주의 후계자로 대제자인 자신이 지명될 거라 생각했다.

구천성이 그만큼 크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으니까.

그런데 성주는 둘째 제자인 사마중천을 후계자로 택했다. 서른 살도 안 된 사제를.

‘젊음을 다 바쳐서 구천성을 키웠거늘, 당신은 내가 공손한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외면했지. 그래선 안 되는 거였어. 그럴 거면 차라리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어.’

당시 엄청난 충격을 받은 그는 머릿속이 텅 빈 기분이었다.

사부에게 외면당한 제자. 사제에게 밀려버린 사형.

너무나 창피했다. 사람들이 마치 자신을 향해 조소를 짓는 것 같았다.

지독한 모멸감. 절망감. 자존심의 붕괴.

그는 한 동안 폐인처럼 지내다가 삼 년이 흐른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사마중천은 구천성의 힘을 더욱 키워서 강호제일인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

그는 모든 지위를 내려놓고 쉰 살도 안 된 이른 나이에 장로전으로 들어가 칩거했다.

많은 사람들이 등을 보인 그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개중에는 혀를 차며 조소를 짓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그날의 일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얼굴이 창백하게 굳은 채 사제의 후계자 결정을 듣던 그날의 일을.

한때 구천성 제일의 기재라던 구천대공자 공손백은 그날 이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날의 내 마음이 어땠는지, 아마 너는 상상도 못할 거다, 중천.’

그는 가슴 속 깊이 잠겨 있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서 예리하게 갈고는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말했다.

“호. 그 아이, 우진이라고 했던가?”

“예, 사형.”

“마음에 들더군. 적당히 교활하고, 적당히 독해서 사람들을 잘 이끌겠어.”

“앞으로 사형의 손발처럼 사용하십시오.”

“나도 그럴 생각이야.”

 

***

 

유월의 날씨는 무척 무더웠다.

수혼대원들은 대나무로 엮은 챙이 넓은 모자를 써서 따가운 햇살로부터 얼굴을 가리고 마차를 따라 이동했다.

첫 날은 지루함이 느껴질 만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백이십 리를 달린 후 연평이라는 마을에서 하루를 보낸 일행은 다음 날 아침을 먹자마자 대운사로 향했다.

이제 남은 길은 백여 리, 오후에는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오십여 리를 가자 회하(淮河)에서 가지를 뻗은 제법 깊은 강이 나왔다.

강가에는 강하(江下)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소성주 일행은 그곳 객잔에서 휴식을 취한 후 도선을 이용해서 강을 건너기로 했다.

휴식을 취한 지 일각쯤 지났을 때, 객잔의 마당으로 나온 사마경이 산책을 하듯이 천천히 걸으며 장천운의 곁으로 다가왔다.

장천운은 슬쩍 고개를 돌려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기다렸다는 듯 사마경이 물었다.

“어릴 때 귀호라고 불렸다고 했지? 왜 귀호라고 부른 거야?”

“제가 말이죠, 남보다 감각이 조금 예민한 편입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는데, 가끔은 저 자신도 놀랄 때가 있곤 했죠.”

“감각이 예민하다니? 어떤 식으로?”

“거 왜 있잖습니까, 육감 같은 거 말이죠. 쉽게 말해서 남보다 눈치가 좀 빠르다고나 할까요?”

“아, 그런 감각?”

사마경은 그에 대해서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런 눈치 정도로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가끔은 제 이름처럼 운이 따를 때도 있었죠. 하늘도 어린 제가 힘들 게 살아가는 걸 불쌍하게 생각했나 봅니다.”

그 말에 사마경의 눈빛이 흔들렸다.

면사로 가려져서 얼굴 표정이 잘 보이진 않지만 씁쓸한 표정인 듯 느껴졌다.

“천운, 나는 하늘을 믿지 않아. 왜 그런 줄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하늘은 나에게서 너무나 중요한 것을 앗아갔거든. 그래서 나는 그날부터 하늘을 믿지 않기로 했어.”

성주부인은 사마경이 어릴 때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병에 걸렸는데, 성주의 부인이나 되는 그녀가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았다고 했다. 성주는 세력 확장에만 정신이 팔려서 부인이 죽을병에 걸린 것도 몰랐고.

장천운이 아는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그래도 소성주는 나아. 나는 어머니 얼굴도 보지 못했거든.’

아버지는 아홉 살 때 영원히 곁을 떠났고.

그리고 지금까지 혼자 살았다.

아니, 잠깐 무 노인과 함께 산 적도 있긴 했지만.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 몸은 괜찮은지…….’

그날 이후 아무 말도 없는 걸 보면 아직 잡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때 냉원상이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소성주, 도선이 도착했습니다. 곧 출발할 것이니 떠날 준비를 하십시오.”

“알았어요.”

사마경은 평소처럼 싸늘한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몸을 돌렸다.

장천운은 그녀가 방으로 향하는 걸 잠시 쳐다본 후 고개를 돌렸다.

수혼대원들이 반쯤은 부러운 눈으로, 반쯤은 시기가 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특히 이조 조장인 왕조산은 장천운이 평 대원 주제에 소성주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게 무척 못마땅한 듯 냉랭히 다그쳤다.

“장천운, 한눈팔지 말고 임무에나 충실해.”

‘내가 뭘 어쨌다고?’

장천운은 못들은 척했다.

입술이 얇고 눈매가 가느다란 왕조산은 관철양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삼조원에게 유난히 까탈을 부리곤 했다.

순전히 대주 자리를 노리는 그의 욕심 때문이었는데, 어떤 때는 상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직속 수하인 이조 조원들조차 빡세게 굴렸다.

특히 장천운은 열흘 전의 사건 때문에 그를 더 싫어했다.

‘그날따라 고원이 속이 좋지 않아서 뒷간을 자주 들락거렸다고 했지.’

하필 그가 없을 때 장로 주인걸이 중요한 손님을 데려왔다.

아무 일만 없었다면 문제될 것도 없었다. 그런데 때마침 짝을 이루고 있었던 조원이 잠깐 한눈을 팔고 딴 짓을 했다.

그 일로 인해서 주인걸이 왕조산을 심하게 다그쳤다.

왕조산은 한눈 판 조원은 놔둔 채 자리를 비운 유고원을 화풀이대상으로 삼았다.

알고 보니 그 조원은 왕조산에게 아부 잘하는 자로, 쉬는 날이면 밖에서 술도 자주 사주는 모양이었다.

그날 유고원은 얼굴이 멍들고 입술이 찢어졌다.

‘나쁜 새끼. 저는 뒷간도 안 가나?’

속 좁고 욕심만 많은 데다 수하들을 함부로 하는 자.

그게 왕조산에 대한 장천운의 평가였다.

“소성주께서 배를 타실 거다. 수혼대원들은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선 안 되니 매사에 조심하도록!”

냉원상이 수혼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사마경과 소연추가 방에서 나왔다.

 

도선은 말과 마차를 한 대씩 실어 날랐다.

먼저 수혼대 일조원과 남조연, 육선기가 마차와 함께 강을 건넜다.

뒤이어 사마경이 탄 마차와 이조원이 도선에 올랐다.

후미를 경계하고 있던 삼조원은 맨 마지막에 강을 건너기로 했다.

그런데 도선이 삼조원을 태우기 위해서 돌아오고 있을 때였다. 강 건너편 저 멀리 숲속에서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오십여 명 정도 되는 그들은 곧장 소성주 일행이 있는 강가로 날듯이 달려갔다.

마차에 꽂힌 구천성의 깃발을 봤을 텐데도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웬 놈들이냐!”

이철궁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복면인들은 대답 대신 무기를 뽑았다.

“적이다! 소성주를 보호해라!”

냉원상이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수혼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사마경이 탄 마차를 에워쌌다.

단봉선자 소연추가 밖으로 나와서 싸늘한 눈빛을 번뜩이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다른 마차에 타고 있던 남조연과 육선기도 밖으로 나온 상태였다.

“네놈들은 누군데 감히 구천성의 소성주를 공격하는 것이냐!”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구나! 멈추지 못할까!”

남조연과 육선기가 습격자들을 향해 분노를 터트렸다.

그러나 좌우로 넓게 퍼진 복면인들은 일체의 머뭇거림도 없이,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공격을 개시했다.

폭풍우를 품은 먹구름이 소리 없이 밀려들듯이!

 

한편, 강을 건너지 못한 삼조원들은 습격을 보고 마음이 급해졌다.

강폭이 삼십 장에 달했다. 깊은 곳은 깊이가 일 장도 넘을 듯했고.

물 위를 땅처럼 밟고 날아갈 수 있는 등평도수(登萍渡水)나 일위도강(一葦渡江)의 경공술을 지닌 자가 아니라면 헤엄을 쳐서 건너야 했다.

“각자 최선을 다해서 강을 건너라!”

관철양이 소리치고는 강을 향해서 몸을 날렸다.

칠팔 장을 날아간 그는 물 위로 떨어졌다.

“차앗!”

일성 기합을 내지른 그는 공력을 발밑으로 뿜어내며 물을 박찼다.

무릎까지 물속에 빠진 그의 몸이 재차 위로 솟구쳐서 삼 장 가까이 더 날아갔다. 강물이 폭발하듯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배까지 남은 거리는 오장 여, 관철양의 능력으로는 두 번 연속해서 물을 박차고 날아갈 수 없었다.

허리까지 물에 빠진 그는 양손을 펼치고는 공력을 쏟아내며 물을 세차게 내려쳤다.

팡!

강물이 비명을 지르며 튀어 올랐다.

동시에 그의 몸이 다시 위로 솟구쳐서 가까스로 도선에 도착했다.

남은 거리는 십여 장. 그는 징검다리로 사용하기 위해서 배 갑판의 나무판을 뜯어냈다.

그 순간, 사공이 그의 등 뒤에서 노를 휘둘렀다.

섬뜩한 느낌이 든 관철양은 급히 몸을 옆으로 눕히면서 도를 뽑아 휘둘렀다.

서걱!

노의 중동이 잘렸다.

사공은 잘린 노를 재차 휘둘렀다.

쉬아악!

기다란 노가 잘리면서 갑자기 빨라진 속도. 거기다 날카롭게 잘린 노 끝은 칼날이나 다름없었다.

엉거주춤한 상태가 되었던 관철양은 급히 몸을 굴렸다.

찰나간의 차이로 사공이 휘두른 노가 관철양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날카롭게 잘린 노 끝이 옷자락을 찢으면서 살점까지 뜯어냈다.

머리끝이 쭈뼛 서는 통증.

“크읍!”

관철양은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나며 도를 열십자로 휘둘렀다.

사공은 관철양의 거센 반격에 더 이상 강하게 몰아붙이지 못하고 멈칫했다.

그 사이 성질 급한 수혼대원 서넛이 각자의 방법을 써서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육칠 장을 날아간 뒤 물에 빠졌다.

그나마 뛰어난 경공술을 지닌 자들이 물을 박차고 삼사 장 가량 더 나아간 후 배가 있는 곳까지 헤엄쳤다.

장천운도 신형을 날렸다.

“강 형, 손바닥을 펴서 머리 위로 뻗으쇼!”

그가 소리치자 강초가 엉겁결에 손을 머리 위로 뻗었다.

장천운은 그 손을 박차고 곧장 배까지 날아갔다.

오관과 진구도 그가 사용한 방법을 흉내 내서 뒤따라갔다.

헤엄을 치고 있던 무사들은 동료들의 훌륭한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

장천운은 배에 내려서자마자 현월을 뽑아들고 사공을 공격했다.

흠칫한 사공이 몸을 튼 순간, 섬전처럼 뻗어나간 검이 사공의 가슴을 꿰뚫었다.

뒤이어 장천운의 좌수가 막강한 장력을 뿜어냈다.

퍽!

장천운은 사공을 강물로 날려버리고 관철양을 바라보았다.

“괜찮습니까, 조장?”

“나는 괜찮다. 어서 강을 건너라!”

장천운도 무엇이 먼저인지 모르지 않았다.

“상처부터 싸매쇼.”

관철양에게 한마디 남긴 그는 배를 박차고 건너편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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