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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83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21화

장천운은 추소철이 왜 그 말을 하는지 알기에 담담히 웃으며 답했다.

“그 일은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아마 추 대주님이라 해도 똑같이 했을 겁니다.”

“아니, 나는 못해. 솔직히 내가 네 입장이었다면 나 살기도 바빴을 거다. 너만큼 배짱도 없고, 다른 사람 돌볼 만큼 좋은 놈도 아니거든.”

“이거 쑥스러운데요?”

“홍구로의 귀호가 그 정도 말에 쑥스러워하긴.”

장천운은 소리 없이 미소를 짓고는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했다.

“그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어쩌면 그럴 때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한과 한명후는 서남쪽에 있는 절검당(絶劍堂)에, 저두심은 풍혼단에서 멀지 않은 거경당(巨鯨堂)에 있었다.

저두심을 먼저 만난 장천운은 함께 이한과 한명후를 만나러 갔다.

장천운을 본 그들은 뛸 듯이 기뻐하며 달려 나왔다.

이제 세 사람 모두 젖살이 빠지고 완전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삼 년에 걸친 수련과 이 년 간의 무사생활을 거치면서 제법 무사다운 틀이 잡혀 있었다.

한때 무창 홍구로의 흑도건달이었던 그들이 천하제일세인 대 구천성의 무사로 변신한 것이다.

그들 세 사람 역시 추소철과 마찬가지로 장천운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었다.

“천운, 이제 네가 우리 대장이다.”

“이 기회에 흑월회를 다시 부활시켜 봐?”

“크크크,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천운이 대장하면 되겠네.”

천운은 정말 오랜만에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고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려면 형들이 더 강해져야 돼. 이곳은 말단무사들이 설칠 곳이 아니거든.”

이한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더 강해져야지. 더 강해져서 최대한 빨리 조장이 될 거다.”

한명후도 자신 있게 말했다.

“무공을 늦게 배워서 공력이 부족한 거 빼고는 밀릴 거 없어. 공력도 죽어라고 수련에 매달리면 금방 따라잡을 거야.”

“좋아. 그런 마음이면 나도 형들이 더 빨리 무공이 늘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게.”

“정말?”

되묻는 한명후는 물론 이한과 저두심도 반색을 했다.

장천운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내가 누구야?”

셋이 동시에 대답했다.

“한다면 하는 홍구로의 귀호.”

 

***

 

열 평 정도에 별 다른 장식도 없는 어두침침한 방안.

네 사람이 탁자를 가운데 두고 엄숙함 태도로 앉아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퇴색된 목상처럼 굳어 있었고, 나직한 목소리는 고저가 없어서 분위기를 더욱 음산하게 식혔다.

말은 북쪽에 앉아 있는 초로인이 주로 했다.

“더는 시간을 끌 수 없을 것 같네. 우문각이 점점 다가오고 있어.”

그 말에 서쪽에 앉아 있던 자가 답했다.

“그렇다면 더 미룰 것 없이 일을 진행시키는 게 어떻겠습니까?”

“언제쯤이 좋을 것 같은가?”

“본격적인 무더위가 오기 전이 어떨까 합니다만.”

“그것도 괜찮지.”

나직이 대답하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 북쪽의 초로인이 좌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준비 상태는?”

동쪽에 앉아 있던 사십대 후반의 중년인이 칼날 같은 눈빛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언제든 명령만 내리십시오.”

“일이 시작되면 최대한 빠르게 정리해야 하네. 틈을 보이면 역습을 받을지도 모르니까.”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실패하면 죽겠다는 각오로 결행할 겁니다.”

“자네가 시작하면 우리도 움직이지. 서로의 행동이 어긋나면 치명적인 상황에 처하게 될 거야. 절대 실수해선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하게.”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럼 시간이 정해지면 그때 보세. 어쩌면 그때가 마지막 모임이 될 것 같군.”

 

***

 

추소철 등을 만나고 온 장천운은 보다 즐겁게 호위무사 임무를 수행했다.

소성주 사마경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는 머릿속을 뒤적여서 강련곡 무서동에서 읽은 무서를 기억해내기에 바빴다. 추소철 등에게 전해주기 위함이었다.

‘일류고수만 되어도 좋은데…….’

“이봐, 장천운.”

장천운이 열심히 기억창고를 뒤적이고 있을 때 관철양이 불렀다.

“예, 조장님.”

“잠깐 안으로 들어와라. 소성주께서 부르신다.”

소성주 사마경의 직접적인 호출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

장천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마경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사마경 외에 소연추와 연송하가 있었다.

본래는 연송하 대신 이능능이 있어야 하지만, 그녀는 오늘 나오지 않았다.

여자들에게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그날’인 것이다. 홍구로의 기녀들이 ‘꽃피는 날’이라고 부르는 그날 말이다.

홍구로를 안마당처럼 돌아다닌 장천운도 그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이능능보다는 연송하와 함께 임무를 맡는 게 훨씬 나았으니까.

이 기회에 두 사람의 임무 시간이 바뀌었으면, 할 만큼.

“부르셨습니까, 소성주님.”

장천운은 무심한 표정으로 절도 있게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물어볼 것이 있어서 불렀어.”

물어볼 것?

장천운은 의아했지만 표를 내지는 않았다.

“말씀하십시오.”

“스스로 생각할 때, 자신이 동겸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장천운이 슬쩍 눈을 들어서 사마경을 살펴보았다.

단순한 호기심인지 맑은 눈을 초롱초롱 뜨고서 바라보고 있었다.

약하다고 하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강하다고 하자니 자신의 실력이 알려질까 봐 걱정되었다.

고수는 자신의 능력을 모두 드러내지 않는 법이라고 했는데 말이지.

그래서 장천운은 일단 답을 미루고 반문을 던졌다.

“소성주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차갑고 성깔 깨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마경이다.

더구나 그녀는 높디높은 소성주. 호위무사 주제에 그녀 앞에서 장천운처럼 되묻는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사마경은 신기한 동물을 처음 보는 소녀와 같은 눈빛으로 장천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동겸은 흑도 출신의 실력도 없는 소년이 우연히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사람들은 다 우연이라고 생각했지요.”

“나도 들었어. 그래서 더 궁금해. 어떻게 해서 동겸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정말 동겸보다 강한지.”

장천운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 추켜올리고는 말했다.

“저를 얕본 것이 동겸의 실수였습니다. 저는 그 점을 최대한 이용해서 처음부터 급소를 노렸지요. 그리고 홍구로의 흑도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만, 제 주먹이 나이나 체구에 비해서 제법 셉니다. 어지간한 어른들도 한방 맞으면 나가 떨어졌지요.”

“정식으로 대결했다면? 그래도 이길 수 있었을까?”

사마경이 끈질기게 묻자, 장천운도 별 수 없이 대충이나마 사실대로 말했다.

“동겸은 영원히 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 자신만만한 것 아냐?”

“그런 자에게 질 거라면 구천성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다행이네. 나는 내 호위무사가 동겸 같은 자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기 싫거든.”

“걱정 마십시오, 소성주. 그가 저를 건드리면 아마 크게 후회할 겁니다. 이가 더 빠지면 고기는커녕 채소도 씹기 힘들어질 테니까요.”

언뜻 사마경의 눈이 좁아지고, 눈가장자리에 주름이 그어졌다.

하지만 그도 잠시뿐, 곧바로 웃음을 지우고 손을 흔들었다.

“그만 가봐. 다음에 물어볼 것이 있으면 또 부를 테니까.”

 

***

 

사마중천은 뒷짐을 지고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봄이 다 간 듯 대기의 기운에서 열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가슴 속에선 가을이 지나가고 눈보라 몰아치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올해는 유난히 혹독한 시기가 될 것 같군.’

스물아홉에 성주가 되어서 십오 년이 지났다.

처음 몇 년은 검을 치켜들고 미친 듯이 동분서주했다.

사부였던 구천무종(九天武宗)이 이루어놓은 구천성을 더욱 더 크게 키우기 위해서.

사형을 제치고 성주로 임명된 것에 불만을 품고 있던 자들에게 자신이 결코 운이 좋아서 성주로 선택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

야망에 가득 차 있던 시절.

검을 높이 쳐든 그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질 때마다 강호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에게 천궁마신이라 별호가 붙은 것도 그때였다.

그런데 어느 날, 고개를 돌려보니 부인이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다.

딸이 원망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자신에게 천하보다 더 값진 것이 옆에 있었다는 걸.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걸.

‘그걸 알았을 때 그 사람은 이미 내 곁을 떠난 뒤였지. 조금만, 조금만 일찍 깨달았어도 그렇게 쓸쓸히 보내지는 않았을 텐데…….’

눈꺼풀을 잘게 떤 사마중천은 고개를 미미하게 흔들어서 착잡한 마음을 털어냈다.

그는 수많은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대 구천성의 성주. 회한에 젖어 있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너무 없었다.

더구나 아직 그에게는 지켜야할 사람이 있지 않은가.

“철무.”

사마중천이 이름 하나를 부르자, 천장에서 나직한 답이 들렸다.

“예, 주군.”

“알아봐야할 것이 하나 있다.”

 

 

10장: 여름이 다가오던 날의 재회(再回)

 

 

“왜 하필 오늘 비가 오냐?”

장천운은 하늘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 추소철 등을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전에 전해준 무공을 얼마나 익혔는지도 알아볼 겸.

그런데 아무래도 미뤄야할 듯했다. 비 내리는 날 비 맞은 생쥐처럼 돌아다닐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말이다.

“호오, 비 내리는 걸 감상하다니. 생각보다 감정이 풍부한데?”

뒤에서 장난기 가득한 말투가 들렸다.

장천운은 돌아보지 않고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삼조원 중 말 많기로 따지면 최고 고수인 염우의 목소리였으니까.

‘누가 지금 멋 내려고 창밖을 보는 줄 아나?’

장천운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겉으로는 제법 분위기를 잡고 말했다.

“빗소리가 좋지 않습니까?”

“나는 싫네.”

“왜요?”

“그날도 비가 내렸거든. 정수겸과 하중안이 죽은 그 날도.”

정수겸과 하중안은 자신이 오기 전 의문의 죽음을 당한 과거의 삼조원이다.

“친했나 보죠?”

“친했지. 십년 가까이 함께 생활했으니까. 그 정도면 밉던 놈도 정이 들 정도의 세월이지.”

염우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표정만 봐도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을 듯했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 그분들을 죽였을까요?”

“그걸 모르겠네.”

“수혼대에서는 자체적으로 조사해보지 않았습니까?”

“그러려고 했는데 반대가 심했네. 적어도 일개 조가 나서야 하는데, 아무래도 소성주의 호위가 약해지니까 말이야.”

“그럼 짐작 가는 바도 없습니까?”

염우가 대답을 머뭇거렸다.

장천운이 속삭이듯이 나직하게 물었다.

“뭐 아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아는 것은 아니고…….”

“말씀해 보세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범인 찾아내는 일에는 도삽니다.”

“그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게.”

“약속하죠. 염 형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염우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서 뒤쪽을 둘러보았다.

마침 두 사람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쟁반만큼이나 넓적한 얼굴을 장천운에게 바짝 붙인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 범인이 본 성의 사람 같네.”

“왜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물론 이유야 있지. 두 사람의 시신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이 누군지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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