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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59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42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59화

절독곡에 들어온 후, 특히 독을 복용한 이후로 그의 몸에 작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독을 복용하고 해독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뭔가 기이한 느낌이 들긴 했다.

그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저 독을 복용하고 해독하는 걸 반복하다 보니 이상한 느낌이 드나보다 했을 뿐.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공력이 늘었다는 걸.

그것도 제법 많이!

최소한 한 단계 위의 무공을 펼칠 수 있는 정도로.

그 동안은 소주천만 했을 뿐 제대로 대주천을 하지 않아서 몸속 깊은 곳에 그도 모르는 기운이 잠자고 있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이거 독왕 영감에게 고마워해야 되나?”

그때였다.

입구 쪽 어둠 속에서 칼칼한 목소리가 들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 부탁을 들어준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라. 나도 그렇게 앞뒤 꽉 막힌 영감태기는 아니니라.”

툭 쏘듯 몇 마디 내던진 독왕이 석실로 들어왔다.

독물을 잡고 독초를 채취하다 보면 영물과 영초도 얻을 때가 있다. 해독제의 효능을 높이기 위해서, 장천운이 무사히 버티길 바라면서 그 영초과 영물을 적절히 섞었다.

말을 하지 않았을 뿐, 그가 준 해독제에 영약의 기운도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의원이 들으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영약이.

“하지만 이제부터 복용할 독은 지금까지 복용한 것과 다르다. 해독제만으로는 독을 중화시키는데 한계가 있으니까. 독을 이겨내면 적지 않은 걸 얻을 수 있겠지만, 이겨내지 못하면…… 한줌 핏물로 녹아서 죽을 거다.”

장천운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살이 떨릴 정도의 으스스한 말인데도 묘하게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죽지만 않으면 득이 있단 말이지?’

설령 죽진 않아도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만큼 고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숱한 고생을 했는데, 까짓 거 한 번 더 고생한다고 해서 별 것 있겠어?

고생 뒤에 낙이 온다고 하잖아? 혹시 알아? 기연이라도 얻을지.

장천운은 독왕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거 재미있겠군요.”

“미친놈.”

 

***

 

장천운은 다가올 실험을 잊기 위해서 혼신을 다해 무공만 파고들었다. 덕분에 발전이 더디기만 하던 구륜심법을 팔성 경지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게다가 천뢰구검 중 형(形)만 겨우 떠올렸던 뒤쪽 사초식에도 숨을 불어넣고 그럴 듯한 이름을 붙였다.

삼전비격(三電飛擊), 전륜폭(電輪爆), 천뢰만파(天雷萬破), 천뢰파천(天雷破天).

그 중 삼전비격과 전륜폭은 그럭저럭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천뢰만파와 천뢰파천은 아직 요원했지만.

그뿐이 아니었다.

몽중무 중 하나인 뇌정무극수와 유진생에게 배운 혼천수라권 역시 익숙하게 숙달시켰다.

아마 유진생이라 해도 이제는 그보다 멋지게 혼천수라권을 펼칠 수 없을 듯했다.

그리고 환귀자의 술법을 사마경 몰래 연구했는데, 어설프긴 해도 실제 상황에서 응용할 정도까지는 되었다.

그 사이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새로운 흑명지독이 완성되었다.

 

독왕이 가을하늘처럼 파란 옥잔을 내밀었다.

옥잔 안에는 한 숟갈 정도의 검은 액체가 고여 있었다.

흑명지독. 천하의 독왕이 한 달간 고생해서 만든 독액이었다.

“이걸 복용하고 스물을 센 다음 해독제를 복용해라.”

전에는 일각 후 해독제를 복용했다. 스물을 세고 복용하라는 말인 즉 그만큼 독하다는 뜻.

옥잔을 받아든 장천운은 심호흡을 한 후 흑명지독을 조심스럽게 목구멍 안으로 부었다.

“하나, 둘, 셋, 넷…….”

사마경이 초조한 표정으로 숫자를 세었다.

금방 열이 넘어갔다.

숫자 세는 속도가 조금은 빠르게 느껴졌지만, 독왕은 말리지 않고 장천운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움찔한 장천운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 핏줄이 툭툭 튀어나오고,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열여덟, 열아홉, 스물! 해독제 먹어!”

사마경은 스물을 세자마자 장천운을 재촉했다.

장천운은 즉시 엄지손톱만 한 단환을 입안에 털어 넣고 두어 번 씹은 후 삼켰다.

그 동안에도 그의 몸은 팔색조처럼 변화를 보였다.

그의 전신 모공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몸이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에 빠진 듯했다. 극렬한 고통에 비명이라도 지르려 하면, 이번에는 온몸이 얼어붙어서 쪼개지는 듯했다.

극과 극을 오가는 지독한 고통에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그 동안 겪었던 고통은 고통도 아니었다.

팔열지옥과 팔한지옥을 오가며 겪는 고통이 이럴까 싶었다.

“끄으으읍!”

덜덜 떨리는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비명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사마경은 두 손을 꽉 움켜쥔 채 독왕과 장천운을 번갈아보았다.

“괜찮겠죠?”

“현재까지는 잘 참고 있다. 앞으로가 문제야.”

독왕도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가 그런 표정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그때 장천운의 목에 검붉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반점은 목에서 얼굴로 점점 번졌다. 옷에 가려져 보이진 않지만 몸에도 여기저기 반점이 생긴 상태였다.

“왜 저러죠?”

사마경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독왕은 아무 대답도 않고 장천운만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흑명지독의 독성이 온몸으로 번지고 있었다. 해독제로 인해 급격한 변화는 보이지 않지만, 일각만 더 지나면 온몸이 반점으로 뒤덮일 듯했다.

‘해독제가 너무 약했나?’

아니, 어쩌면 해독제가 약한 게 아니라 독성이 너무 강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 달의 기간 동안 그가 만든 흑명지독은 이전의 흑명지독과 많이 달랐다.

이름이 같고 성분도 비슷했지만 함량에서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그는 딱 한 가지 성분을 더 첨가했다.

얼마 전 밖에 나갔다가 잎이 마른 풀의 열매와 뿌리를 채취했는데, 그도 처음 보는 독초였다.

그가 그 풀을 독초라고 생각한 것은 주위의 광경 때문이었다.

그 풀과 열매를 먹은 노루와 멧돼지가 풀 옆에 죽어 있었고, 노루와 멧돼지를 뜯어먹은 것처럼 보이는 늑대 네 마리도 시커먼 게거품을 쏟아낸 채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독초를 조심스럽게 채취해서 흑명지독을 만들 때 첨가했다.

‘그 독초를 너무 얕본 건지도 모르겠군.’

자신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기존의 해독제로는 완전히 해독시킬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해독제의 약효를 보강하는 수밖에……’

나름대로 방법을 떠올린 독왕은 품속에서 세 치 크기의 옥병을 꺼냈다.

옥병의 뚜껑을 연 그는 단환을 두 알 꺼냈다.

“입을 벌려라!”

그가 냉랭히 소리치자, 장천운이 제비새끼처럼 반사적으로 입을 벌렸다.

독왕이 단환을 튕겨서 장천운의 입안에 집어넣었다.

장천운은 단환을 씹어서 삼키려고 했다. 그런데 안간힘을 써도 단환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제기랄!”

장천운의 상태를 짐작한 독왕이 한소리 내뱉으며 손을 뻗었다.

이미 장천운의 몸은 절반이 반점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

그는 망설이지 않고 목 근처의 혈도를 짚어서 단환을 강제로 삼키게 했다.

그러고는 독기의 확산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서 열두 곳의 혈도를 짚었다.

“어, 어떡하죠?”

사마경은 그 광경을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가서 물을 떠와라. 어서!”

독왕이 소리쳤다.

사마경은 바가지를 하나 들고 샘을 향해서 달음박질쳤다. 지금까지 그녀가 펼친 경공 중 가장 빠른 속도였다.

그 사이 독왕은 장천운을 뒤로 눕히고는 시시각각 변화를 주시했다.

반점의 확산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닌 듯 느리게나마 하나 둘 새로운 반점이 형성되고 있었다.

반점이 온몸을 뒤덮으면 살이 썩기 시작할 것이다.

그 전에 확산을 막지 못하면 장천운의 목숨은 대라신선이 나타난다 해도 살릴 수 없으리라.

‘이만 한 놈을 또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너무 늦으면 단 하나 있는 손녀의 목숨도 구할 길이 사라진다.

‘그건 안 돼!’

독왕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고개를 쳐들고 천장을 잠시 바라본 그는 머리를 흔들더니 품속에서 작은 함을 꺼냈다.

함의 뚜껑을 열자 호두알보다 큰 황금빛 노란 덩어리가 나타났다.

그는 노란 덩어리를 반쯤 떼어냈다.

“빌어먹을 놈. 끝내 금령(金靈)을 쓰게 만드는군. 초아를 위해서 어렵게 구한 건데…….”

금령은 금령천화라는 신비한 꽃의 뿌리에서 흘러나온 진액이 땅속에서 굳어지며 만들어진다고 했다.

콩알만 한 크기로 굳으려면 백 년이 걸린다 했으니, 독왕이 가진 금령의 크기라면 족히 천 년 이상 굳은 것이라고 봐야 했다.

독왕은 그 금령을 촉산 오지 깊숙한 계곡에서 어렵게, 어렵게 구했다. 아마 손녀를 살리겠다는 일념이 아니었다면 그곳까지 들어갈 수도 없었을 것이고, 금령천화를 발견하는 천운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금령이 아무리 귀한 영약이라 한들 손녀를 살리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초아를 살리려면 장천운이 살아야 해.’

그래야 실험을 마치고 자신이 원하는 천하제일독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살아 있는 사람의 피. 그것도 극독에 적응되어서 만독에 면역이 생긴 피가 들어가야만 그 천하제일독을 중화시킬 수 있는 해독제가 만들어진다.

“떠왔어요!”

사마경이 물이 든 바가지를 들고 뛰어 들어왔다.

독왕은 바가지를 건네받아서 작은 종지에 따른 후 금령을 풀었다.

맑은 물이 순식간에 노랗고 끈적거리는 액체로 변했다.

독왕은 금령액이 든 종지를 장천운의 입에 부어넣었다.

“흘리지 말고 삼켜라! 한 방울도 아까우니까!”

장천운은 극렬한 고통 속에서도 그의 말을 알아들은 듯 입안으로 들어온 금령액을 삼켰다.

 

금령액을 복용한 지 반각쯤 지나자 검은 반점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됐어요! 반점이 사라지고 있어요, 독왕 할아버지!”

사마경이 아이처럼 팔짝팔짝 뛰며 소리쳤다.

독왕의 무표정한 얼굴은 변화가 없었지만, 내심으로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네놈은 반드시 살아야 한다. 네놈이 살아야 우리 초아도 살 수 있어!’

 

우웩! 웩!

장천운은 시커먼 피를 토해냈다.

뱃속에서 토해낸 피가 한 바가지는 될 듯했다.

배가 홀쭉할 때까지 피를 토한 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을 뒤덮었던 반점은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었다.

힘겹게 고개를 쳐든 그는 독왕과 사마경을 바라보았다.

“제가 살아있긴 살아있는 거죠?”

“그래, 살았어, 천운.”

“보기보다 멍청한 놈이군. 살아있으니까 나를 쳐다보는 거 아니냐?”

“오늘 복용시킨 독이 정말 전에 말한 흑명지독입니까?”

“당연히 흑명지독이지.”

최소한 이름은 같으니까. 내용이야 조금 달랐지만, 굳이 그것까지 말해줄 이유는 없었다.

“그럼 앞으로 그것보다 더 독한 것도 복용해야 합니까?”

장천운이 창백한 얼굴로 물었다. 입술도 파리했는데, 겁에 질린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진짜로 겁이 났다. 살아오면서 오늘처럼 겁이 났던 적이 있나 싶었다.

그만큼 흑명지독으로 인한 고통은 끔찍했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악몽.

그런데 악몽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두 번만 더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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