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5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6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58화
‘끈 떨어진 신세인 놈이 대령주를 믿고 제멋대로군.’
‘죽일 놈, 감히 우리를 일각이나 기다리게 하다니.’
‘네놈의 목은 반드시 이 백리호가 잘라주마!’
싸늘하게 가라앉은 대전 안을 가로지른 우문각이 이 장 거리를 두고 멈춰선 후에야 공손백의 입이 열렸다.
“흠 왔구먼. 안 올지 몰라서 사람을 다시 보낼까 했거늘.”
“대령주께서 부르시는데 어찌 안 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 비령각에서 여기까지 십 리쯤 되나 보군.”
“제가 어찌 대령주께서 부르시는데 게으름을 피울 수 있겠습니까? 단지 뜻밖의 보고가 들어와서 일 각 정도 시간을 허비했는데, 급한 일이었으면 그냥 올 걸 그랬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대령주.”
“뜻밖의 보고?”
우문각은 고개를 들고 공손백을 바라보았다.
“예, 대령주.”
“무슨 일인데 일각이나 시간을 지체했단 말인가?”
“그게…….”
우문각이 주위를 둘러보며 망설이자, 공손백의 눈빛이 찰나간 번뜩였다.
“모두 믿을 만한 사람들이네. 말해보게.”
“알겠습니다. 그럼 말씀드리지요. 은창현 장로가 화금당을 통해서 은자 십만 냥을 인출했다고 들었습니다.”
“은 장로가?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쓰려고……?”
“요즘 개인적으로 작은 문파 하나를 키우나 봅니다.”
“문파?”
“은 공자의 혼처라고 합니다.”
비령각이 암암리에 모은 정보 중 하나인 만큼 사실에 근거한 말이었다.
공손백을 움직일 만한 정보 중에서 내줘도 크게 아까울 것 없는 정보.
우문각은 차를 마시면서 수많은 정보 중 그 정보를 선택했고, 오면서 완벽하게 다듬었다.
“은홍석의 혼처면 혼처지, 왜 그 많은 돈을 쓴단 말이오?”
백리호가 의혹의 눈길로 쳐다보며 물었다.
우문각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무사들이 필요한 모양이오. 그것도 소수의 정예로 말이오.”
“은 장로가 외부에서 소수 정예의 무사를 몰래 키운다?”
“그렇소, 백리 전주.”
조용히 듣고만 있던 공손백의 얼굴에서 콧날 옆이 살짝 씰룩거렸다.
장로가 무사를 키우는 거야 문제될 것 없다. 문제는 남몰래 거금을 끌어다 쓴다는 것과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은창현이 마제 나극의 사람이라는 점이다.
구천대령주 공손백의 잠재적인 호적수.
공손백이 굳어진 표정으로 물었다.
“좋아, 사실이라 치세. 무슨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지금 조사 중입니다. 아무 것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긴 합니다만, 만에 하나 다른 목적이 있다면 미리 막는 것이 대령주의 성주 즉위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입니다.”
우문각을 호랑이의 눈으로 빤히 노려보던 공손백의 표정이 서서히 풀어졌다.
“그래, 그러겠지. 될 수 있는 한 완벽한 게 좋으니까.”
그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은창현에 대한 정보 때문이 아니다. 우문각이 그 사실을 자신에게 말해주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동안 소성주파와 장로원주 나극, 그리고 자신 사이에서 미적거리던 우문각이 마침내 자신 쪽으로 기운 듯 느껴진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의 표정을 살피던 우문각이 그쯤에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저는 무슨 이유로 부르셨습니까?”
“아! 깜박했군. 자네가 맡아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은 장로 일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군. 어떤가, 구천성을 위해서 그 일을 해주었으면 싶은데.”
“말씀해보시지요. 구천성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제가 아무리 대령주와 거리를 두고 있다 해도 못할 것 없지요.”
“좋아, 그럼 한 사람을 조사해주게. 그의 마음이 진실인가만 알아내면 되네.”
“누굽니까?”
“태상호법 여철숭이네.”
25장: 한번으로 끝내주마
세월의 힘이란 참으로 무서웠다.
독물 실험대상으로 전락한 지 석 달째. 이제 장천운은 독을 복용하면서도 눈썹 한 올 끄덕하지 않았다.
“오늘은 이겁니까? 무슨 독이죠?”
그렇게 나름대로 여유도 부렸고.
심지어 처음에만 해도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사마경조차 이제는 무릎에 턱을 괴고 앉아서 남사명과 함께 장천운의 변화를 구경했다.
“독왕 할아버지, 왜 천운의 얼굴이 저렇게 빨개지죠?”
그런 질문도 던지면서.
그럼 독왕이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혈시독에 중독되면 원래 피부가 빨갛게 변한 후 칠공에서 썩은 피를 쏟아낸다.”
“정말이에요?”
“전에 시험해 봤지.”
장천운이 칠공에서 피를 쏟아내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
하지만 사마경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 동안 그런 말을 한두 번 들었나? 저번에는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말도 했었는데 뭐.
“해독약을 주지 않으면 천운도 그렇게 될까요?”
“저놈은 해독약을 먹지 않아도 하루는 견딜 거다.”
“와아, 그럼 만독불침까지는 아니어도 어지간한 독은 천운을 곤란하게 하지 못하겠군요.”
사마경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호위무사가 독에 강하다는 건 그만큼 주인을 위험에서 구해줄 기회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장천운도 어지간해선 독으로 인해 죽는 일은 없을 것이고.
“아무래도 내가 괴물을 만들어낸 것 같다.”
독왕이 이마를 찡그리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해독제를 주지 말고 죽게 놔둘까?’ 그런 표정.
그럼에도 사마경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일각이 다 된 것 같은데요?”
독왕이 두 말 없이 해독제를 내밀었다. 자신의 최종목적을 위해선 장천운이 죽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장천운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해독제를 받아서 곧바로 입안에 털어 넣었다.
해독제를 침과 함께 꿀꺽 삼킨 그가 태연히 말했다.
“꽤 지독하군요.”
“속은 괜찮으냐?”
혈시독을 복용한 후 온몸이 벌겋게 변하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강력한 독성에 위장이 녹으면서 열기가 온몸으로 퍼지기 때문이다.
“조금 느글거리긴 한데 위장이 녹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
“다음 독은 뭡니까?”
“흑명지독(黑冥之毒)이다. 지금 만들고 있지. 그런데 생각보다 숙성되는 시일이 너무 오래 걸려서 복용하려면 보름 정도 걸릴 것 같다.”
“해독약까지 만들려면 더 걸리겠군요.”
“한 달은 잡아야지.”
“그 사이에 다른 독을 복용해야 합니까?”
“아니. 흑명지독을 복용하려면 위장이 완벽해야 한다. 사소한 것 때문에 흑명지독의 실험을 늦출 순 없다.”
“그럼 한 달 후에 복용하는 것으로 알아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자.”
독왕은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사실 흑명지독은 거의 다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만든 흑명지독으로는 장천운에게 별 효과를 보지 못할 듯했다.
그래서 좀 더 연구한 후 흑명지독의 독성을 강화시킬 생각이었다.
‘초아를 살리려면 지금 만들어진 흑명지독보다 독성이 세 배는 더 강해야 된다. 앞으로 시험할 기회는 세 번뿐. 그 안에 반드시 만들어내야 해.’
개는커녕 쥐새끼도 돌아다니지 않는 이 절독곡으로 돌아온 것도 바로 그 독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독왕의 사연을 모르는 사마경은 장천운이 한 달 동안 독을 복용하지 않는다고 하자 표정이 환해졌다.
“천운, 그럼 오늘 밤부터 그 신법을 배워볼까?”
“안 된다니까요.”
“난 괜찮다니까? 캄캄한 밤에 나 혼자 펼치면 되잖아. 설마 훔쳐보려는 건 아니지?”
“사실 옷 벗는 거 말고도 문제가 또 있어요.”
“무슨 문제?”
사마경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장천운이 손을 들어서 사마경의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가리켰다.
“큰 문제는 아닌데, 그 머리카락도 다 잘라야할지 몰라요. 대운사의 승려처럼 말이죠.”
결국 사마경은 환술무공, 아니 ‘기가 막힌 신법’을 배우는 걸 포기했다.
장천운은 안도하면서도 사마경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이상하네. 옷은 벗겠다면서 머리카락은 안 자르려고 하다니.’
여자들만이 지닌 특별한 감정을 모르는 그로선 당연히 의문일 수밖에 없었다.
***
강호무림의 대 세력들은 구천성의 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지난 가을에 사라진 소성주가 봄이 다가오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구천대령주 공손백의 위세는 더욱 강해졌고, 소성주를 따르던 자들조차 하나둘 공손백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구천성이 구천대령주 공손백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상황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아니나 다를까, 공손백이 구천대평의회를 소집하더니, 구천성을 대표하는 구천대령주의 지위로 공표했다.
[구천대평의회에서 소성주 사안에 대해 결론을 내렸도다!
소성주께서 돌아오지 않을 경우 성을 이끌어갈 성주의 자리를 한 없이 공석으로 둘 수 없다. 소성주께서 이십 세가 되는 내년 원단(元旦)이 되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구천대평의회는 새로운 성주를 추대할 것이다! 구천성의 형제 문파들은 그 점을 잊지 말고 현업에 충실하라!]
구천대평의회는 성주 유고시 장로와 호법, 최고위 간부, 십이지부장 등이 모여 구천성의 중요사안을 의결하는 기구다.
평의회에서 결론이 그리 내려졌다면 누구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공손백은 그 정도에 만족하지 못한 듯 구천성 무사들을 대대적으로 움직였다.
“소성주가 없는 틈을 타서 구천성을 농락하는 자들은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일갈을 터트린 그는 구천성의 주력 무사대를 출동시켜서 구천성에 대항하는 문파들을 압박했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단순히 구천성의 적을 섬멸하는 것에만 있지 않았다.
성주의 자리에 오르기 전, 자신의 위치를 더욱 확고히 해서 누구도 반발할 수 없도록 만들 속셈이었다.
또한 나극이 헛된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간접적인 압박을 가하기 위함이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소성주를 지지하던 십이지부 중 여섯 지부의 책임자들은 그의 속셈을 알고도 이를 악문 채 묵묵히 때를 기다렸다.
나극 역시 공손백의 음흉한 마음을 알면서도 움직임을 최대한 자제했다.
태상호법 여철숭이 공손백을 지지하기로 결정한 이상 그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공손백의 명을 받은 구천성 무사대는 구천성에 반기를 든 문파들을 힘으로 굴복시켰다.
굴복하지 않는 자들은 피로써 다스렸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혈풍이 그 해의 봄을 피냄새로 뒤덮었다.
그러나 누르는 힘이 강해지면 반발도 강해지는 법이다.
구천성이 패도를 내세우며 광폭한 행보를 보이자, 구대문파와 팔대세가를 비롯한 강호무림의 주요 인사들이 암중에서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사마중천이 다스릴 때를 그리워하는 자들도 있었고, 패도적인 구천성 자체가 싫어서 멸망하길 바라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가진 생각이 조금씩 다름에도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힘을 규합했다.
그리고 봄이 무르익은 어느 날, 비밀결사의 새로운 임시단체를 만들었다.
“앞으로 우리 모임의 이름을 파천회(破天會)라 부를 것이오. 구천성을 멸하는 그날까지, 전심전력을 다해서 도와주시길 바라겠소.”
***
한 달의 여유가 생긴 장천운은 그 동안 소홀히 했던, 아니 독 복용과 해독 때문에 제대로 익히지 못했던 무공수련에 전념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두 번에 걸친 대주천을 연속적으로 하고 난 그는 자신이 미처 몰랐던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