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53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5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53화
어스름이 밀려드는 시각.
장천운은 사마경과 함께 검게 물들어가는 곽산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장천운은 표를 내지 않았을 뿐 부상이 가볍지 않았다. 사마경 역시 상처가 심했는데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고집이라면 두 사람도 만만치 않았다.
“괜찮습니까?”
“나는 견딜 만해. 천운은 어때?”
“이 정도도 못 견디면 어떻게 소성주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힘들면 잠깐 쉬었다 가.”
“에…… 그럴까요? 그럼 저 협곡 안으로 들어가서 쉬죠.”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난 협곡은 무척 험하고 깊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이백여 장을 들어가자 초지와 어우러진 제법 큰 소(沼)가 나왔다.
휴식을 취하기에는 적당한 장소.
장천운과 사마경은 근처를 뒤져서 하룻밤 쉴만한 공간을 찾아냈다.
거대한 바위 밑에 이슬을 피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있었다. 깊이도 제법 깊어서 늦가을 찬바람을 피하기에도 적당했다.
“일단 상처부터 손봐야겠습니다.”
“내 상처는 내가 손볼 테니까, 천운은 자기 상처나 어서 치료해.”
사마경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친 곳 중에는 장천운에게 보일 수 없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장천운은 물러서지 않았다.
“엉덩이야 소성주가 알아서 치료한다 치고, 등 뒤는 어떻게 하실 건데요?”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
사마경이 샐쭉한 표정으로 장천운을 째려보았다. 그래봐야 장천운은 끄떡도 하지 않았지만.
“약을 뿌리고 천으로 싸매주기만 할 거니까, 저에게 맡기십시오.”
“그럼…… 천운은 등 뒤만 치료해.”
사마경이 웃옷의 어깨를 젖히고 등을 내보였다. 우윳빛 하얀 등이 검붉은 피로 얼룩져 있고, 핏자국 사이로 두 치 길이 상처가 보였다.
“음, 일단 피를 닦아낼 테니 아파도 참으십시오.”
“아, 알았어.”
장천운은 자신의 옷 밑단을 찢어서 피를 닦았다.
사마경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아파서 떨리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사마경만이 알 일이었다.
상처의 피를 닦아낸 장천운은 금창약 가루를 뿌렸다.
“으으음.”
사마경이 나직한 신음을 흘렸다. 금창약 가루가 상처 사이로 스며들자 무척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얼굴 쪽을 안 다친 게 다행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얼굴의 아름다움이 뭐가 중요해? 강호에서 살다 보면 상처 날 수도 있지.”
사마경은 장천운이 자신의 얼굴을 염려해주자 기분이 좋으면서도 짐짓 아닌 척했다.
그런데 장천운과 그녀가 생각하는 얼굴의 중요도가 약간 달랐다.
“다른 곳이야 상관없지만, 눈이라도 다쳤어 봐요. 앞이 안 보이면 큰일이잖습니까.”
장천운을 슬쩍 째려본 그녀의 가슴 속에서 반발심이 툭 튀어나왔다.
“눈만 중요한가 뭐?”
여자에게는 얼굴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일이 목숨을 지키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그걸 우습게 알다니. 자신이 그 동안 얼굴의 아름다움을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해도 그렇지.
‘쳇, 홍구로의 귀호도 여자의 마음은 모르네.’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이 등의 치료가 끝났다.
이제 엉덩이 쪽 치료만 남은 상황. 장천운은 금창약과 천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 집채만 한 바위 뒤로 돌아갔다.
사마경이 혼자서 낑낑대며 엉덩이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장천운도 바위 뒤에서 부상 부위를 치료하고 운공조식을 하며 내상을 다스렸다.
겉으로 표를 내진 않았지만 장천운의 부상은 외상보다 내상이 더 문제였다.
‘제길, 역시 공력이 문제야.’
그의 공력은 사마경이 준 대보신단 덕분에 비약의 발전을 이루었다. 게다가 초식의 뛰어남은 같은 경지의 고수들에 비해서 월등히 앞섰다.
모자라는 공력을 초식으로 대신할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진짜 고수를 만나면 초식의 우월성도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몸속의 기운을 모두 공력으로 승화시킬 수만 있어도…….’
치료를 하는 사이 칠흑 같은 어둠이 곽산을 집어삼켰다.
우우우우! 아우우우!
어디선가 맹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휘이이잉! 쉬이이이이잉.
바람소리도 들리고, 밤새가 짜증을 내듯 울어대는 소리도 들렸다.
새 우는 소리를 노래 부른다고 하는 놈들의 주둥이를 때려주고 싶을 만큼 듣기 싫은 소리를 내는 새였다.
끄아악! 끄아아악!
도대체 무슨 새가 저렇게 우는 거야?
세 번 연속 소주천을 마치고 눈을 뜬 장천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사마경이 불렀다.
“천운, 다 됐어.”
장천운은 바위 뒤에서 나와 사마경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치료를 마친 그녀는 등을 벽에 기대고 앉아 있었다.
그가 한쪽에 앉자, 사마경이 넋두리처럼 말했다.
“우리가 정말로 백부의 손을 피해서 무사히 달아날 수 있을까?”
“돌아가고 싶으세요?”
“아니. 그건 아냐. 아무 것도 없는 산속이지만, 마음은 지금이 훨씬 더 편한걸?”
“저 새만 잠들면 더 좋을 텐데요.”
“큭큭큭, 솔직히 나도 듣기 싫어. 무슨 새소리가 저래?”
“언제 새 전문가를 만나면 자세히 물어봐야겠습니다.”
“천운.”
사마경이 다시 장천운을 불렀다. 조금 전 웃을 때와는 다른 목소리였다.
가슴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
“예, 소성주.”
“나는 어릴 때 아버지를 정말 원망 많이 했어.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게 아버지 탓이라고 생각했거든.”
장천운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오죽했으면 오랫동안 아버지와 대화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사실 아버지도 잘못을 많이 했어. 안 그래?”
“예, 제가 봐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근데 말이야…… 그래도 나는 아버지를 이해해드렸어야 했던 것 같아. 하나밖에 없는 딸이고, 아버지잖아.”
낮게 깔린 사마경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어둠 덕분에 용기를 내서 말하는 듯했다.
“그러셨다면 무척 좋아하셨을 겁니다.”
“정말 그랬을까?”
“예. 알고 보면 아버지들은 무척 단순하거든요. 자식이 웃으면 같이 웃고, 울면 같이 울고, 맞고 돌아오면 자신이 맞은 것보다 더 화내고…….”
“천운의 아버지도 그랬어?”
“가끔은 너무 심하다 할 때도 있었죠. 한번은 제가 맞고 들어갔더니, 아버지가 복수를 한다며 씩씩거리고 나가셨죠. 이제 열한 살짜리 아이를 때려준다면서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
“한 시진 동안 설교만 하고 오셨습니다. 알고 보니까 만두도 사주셨더군요. 나를 때린 그 형의 집안이 무척 가난해서 이틀째 물만 먹고 굶었대요.”
“아무리 가난해도 그렇지, 어떻게 이틀 동안 굶어? 다른 집에 가서 먹을 것을 좀 얻을 수도 있잖아?”
“세상에는 남의 삶에 신경 쓰며 사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재수 없다고 발로 차서 쫓아내지 않으면 다행이죠.”
“사람들이 왜 그래?”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밑바닥 사람들은 그렇게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거든요.”
“부자한테 가서 먹을 걸 달라고 하면 되잖아?”
“대부분의 부자는 더 독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부자가 된 건지도 모르죠.”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부자가 된 거다?”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그들 역시 거지들에게 순순히 먹을 것을 주지는 않습니다.”
사마경은 이마를 찡그렸다.
장천운은 그녀가 말이 없자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은 소성주가 생각하는 것처럼 즐거운 일만 있는 곳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23장: 수상한 계곡(溪谷)
다음 날 아침, 장천운과 사마경은 계곡 안쪽으로 들어갔다.
“후훗.”
사마경이 엉덩이를 묘하게 씰룩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고 장천운이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고개를 반쯤 돌리고 째려본 사마경이 앙칼진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뭐가 그렇게 웃겨?”
“그럼 웃어야지, 웁니까?”
“누가 울라고 했어? 왜 웃느냐고 했지.”
“그냥 제 모습이 한심해서요.”
“한심한 걸로 따지면 내가 몇 배 더할걸? 소성주라는 사람이 짐승들이나 노는 깊은 산중에서 이런 말이나 하고 있다니, 말이 돼?”
“그게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사람이 어떻게 먼저 알 수 있겠습니까?”
“사람 사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한 가지만은 분명해.”
“뭐가 말입니까?”
“천운이 사람을 잘 놀린다는 거!”
장천운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신은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홍구로의 사람들은 절대 소성주의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사람을 잘 놀리지 않거든요.”
“쳇, 그 사람들도 귀호의 성격이 변했다는 걸 알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거야.”
장천운이 피식 웃고는 앞으로 나서며 말을 돌렸다.
“소성주, 선자와 두심 형 걱정만 아니면 음식 싸들고 놀러 와도 될 만큼 정말 멋진 경치네요.”
사마경이 일대를 휘휘 둘러보았다.
암벽과 청송과 아침안개가 어우러진 풍경은 그 어떤 화가가 그린 수묵화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러게. 정말 멋지네.”
그때 뭔가가 생각난 듯 장천운이 말했다.
“면구도 오래 쓰고 있으니까 거부감이 별로 없죠?”
“응?”
사마경은 그 말을 듣고서야 얼굴에서 가려움이 느껴졌다.
“진즉 말하지! 보는 사람도 없으니 어제 벗어도 됐잖아?”
“저는 또 면구 쓰고 있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죠.”
“쳇.”
혓소리를 낸 사마경이 장천운을 흘겨보고는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근데 이걸 어떻게 벗지? 그냥 벗으면 되?”
“일단 저 앞의 연못으로 가시죠. 물이 있어야하거든요.”
장천운과 사마경은 연못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면구를 벗었다.
먼저 장천운이 품속에서 작은 대나무통을 꺼내더니 마개를 열고 노란 가루를 손바닥에 따랐다. 그러고는 물을 떠서 손바닥의 노란 가루를 녹였다.
“이걸 얼굴 골고루 바르십시오. 특히 경계 부분을 잘 바르셔야합니다.”
“천운이 발라줘.”
“예?”
“경계부분을 나는 볼 수가 없잖아?”
“그냥 세수하듯 바르면 됩니다.
“잘못 바르면 안 떨어질 거 아냐? 그럼 아플 거고.”
“그러니까 골고루 바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천운이 발라줘.”
장천운은 사마경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왜 갑자기 애처럼 그러십니까?”
“알잖아, 나 이제 열여덟 살이라는 거.”
“그 나이면 다 큰 겁니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그런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었어. 난 아직 아버지의 사랑이 필요한 딸이었을 뿐이야.”
사마경의 눈꺼풀이 떨렸다. 그 눈꺼풀 안에 물기가 그렁그렁했다.
“알았습니다. 제가 발라드리죠.”
사마경은 눈을 감았다. 밖으로 나온 기다란 속눈썹에 이슬이 맺혔다.
사실 그녀도 장천운에게 발라달라는 게 부끄러웠다. 하지만 용기를 냈다. 지금이 아니면 자신의 마음을 말할 수 없을 듯했다.
장천운은 유약을 사마경의 얼굴에 골고루 바르고 면구를 떼어냈다. 사마경의 주근깨 가득한 평범한 얼굴이 다시 드러났다.
그런데 주근깨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피부가 지저분했다.
장천운은 그저 면구를 쓸 때 바른 유약 때문일 거라 생각하고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 됐습니다. 얼굴을 연못에 씻으세요.”
사마경이 눈을 뜨고 연못의 물을 바라보았다. 지저분한 얼굴이 보였다.
잠시 연못을 바라보던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더니 품속에서 작은 옥병을 꺼냈다.
그러고는 장천운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든 말든 마개를 따고 옥병을 기울여서 자신의 손바닥에 부었다.
맑은 백색 액체가 손바닥에 고였다.
그녀는 그 백색액체를 두 손으로 비비듯 문지른 후 얼굴에 발랐다.
얼굴에서 하얀 거품이 일었다.
그녀는 하얀 거품으로 가득한 얼굴을 연못에 씻었다.
티끌 하나까지 닦아내려는 듯 꼼꼼하게 얼굴을 씻은 그녀는 소매로 물기를 닦아내고 머리를 쓸어 올렸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서 그녀를 바라본 장천운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