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49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7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49화
굳은 표정,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빛.
그 모습만 보고도 긴장감을 느낀 사마경이 나직이 물었다.
“왜 그래?”
장천운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갈대숲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휘이이잉, 쏴아아아아아!
세찬 바람에 마른 갈대들이 춤을 추면서 음산한 소리가 파도처럼 흘렀다.
특별한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가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개미가 등을 타고 기어가는 느낌.
지금까지 그가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은 두어 번에 불과했었다.
극도의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
“쥐새끼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법 사나운 놈들 같습니다.”
장천운의 말에 세 사람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적이야?”
“소성주가 놀러 다니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모양입니다.”
장천운은 가벼운 어조로 말하며 사마경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썰렁한 반응. 사마경의 긴장한 눈빛은 조금도 풀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그녀도 느끼고 있었다. 강렬한 기운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가시죠. 두심 형이 뒤를 맡아.”
장천운이 먼저 갈대숲으로 뛰어들었다.
사마경과 소연추이 뒤따라가고 저두심이 후미를 맡았다.
스스스스스-.
바람은 여전히 거셌다. 춤추는 갈대에서 나는 소리도 조금 전이나 다름없이 음산하기만 했다.
갈대숲속을 달리는 장천운의 가슴도 스산하게 메말라갔다.
생사를 건 싸움에서 정은 필요 없다.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
그것만이 진실일 뿐.
‘아무래도 이번에는 밑천을 다 드러내야할지 모르겠군.’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우거진 갈대 사이로 청의인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장천운은 그들을 보고 이마를 찌푸렸다.
‘종리성학과 함께 있던 자들이군.’
강련곡의 책자에도 나와 있지 않은 자들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해.’
단순히 강한 것만이 아니다. 바람을 따라 흐르듯이 유유하게 접근하는 그들에게서 절제된 살기가 느껴진다.
솜털이 올올이 곤두서는 느낌.
‘옛날 흑월회 때도 가끔 저런 느낌을 주는 놈들을 만나곤 했지.’
그놈들은 특별히 익힌 무공도 없으면서 독기만 강했다. 그런데 그 독기로 자신들보다 강한 자들을 죽이곤 했다.
‘나는 그놈들과 부딪치고도 살아남았어. 그것도 몇 번이나.’
스르릉.
다가오던 두 청의인이 도검을 뽑았다.
장천운은 그 모습만 보고도 그들의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죽일 작정으로 따라왔군.’
그도 현월을 뽑았다.
현월을 사선으로 늘어뜨린 그는 전면의 청의인 둘을 향해 쇄도했다.
청의인들도 마주 달렸다. 하나는 석 자 길이의 장검을, 하나는 완만하게 휘어진 유엽도를 들고 있었다.
거리가 일 장으로 줄어든 순간, 먼저 청의인들이 검을 뻗고 도를 휘둘렀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공격!
도검에서 넘실거리는 기운이 단숨에 장천운의 몸을 꿰뚫고 갈라버릴 듯했다.
그때 장천운의 몸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렸다.
그의 몸이 둘, 넷으로 나뉘며 허공에 환영이 생겨났다.
그 바람에 두 청의인의 동시공격은 장천운 대신 허공을 뚫고, 갈랐다.
흠칫한 그들이 눈을 부릅뜨고 장천운의 실체를 찾으려 할 때였다.
번쩍!
흐릿한 그림자만 남아 있던 환영 속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천뢰일사(天雷日射).
천뢰구검 중 세 번째 초식이 펼쳐지고, 한 줄기 섬전이 검을 쥔 청의인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기겁한 청의인은 다급히 몸을 틀었다.
그러나 현월에서 뻗친 검기는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멀리까지 영향을 미쳤다.
서걱!
“크억!”
검기가 가슴을 훑고 지나가자 비명에 가까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도를 든 청의인은 동료가 일격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자 전력을 다해서 팔도를 휘둘렀다.
도풍이 휘몰아치며 장천운의 환영을 휘감았다.
허공에 떠있던 장천운의 환영이 조각조각 갈라지며 흩어졌다.
그러나 역시 허공만 갈랐을 뿐.
도를 든 청의인은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급히 뒤로 돌아서며 도를 열십자로 휘둘렀다.
눈 깜짝할 새에 뒤로 돌아가 있던 장천운은 다시 천뢰검을 펼쳤다.
또 한 번 섬광이 번쩍였다.
도를 든 청의인이 눈을 홉뜨며 비틀거렸다.
반쯤 벌어진 입. 그의 턱밑에서 핏줄기가 뿜어졌다.
장천운은 단숨에 청의인 둘을 제거하고도 안심하지 않았다.
환귀자의 무영무종에 바탕을 둔 귀운신법 덕에 이기긴 했지만, 정면으로 싸웠다면 이렇게 빨리 승부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종리성학과 같이 온 자들이 열 명이었지?’
그렇다면 아직 여덟 명이 더 남았다.
“제법이군.”
냉랭한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갈대숲 사이로 흘렀다.
‘종리성학?’
“소성주, 그대는 구천성에서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다시 말이 이어지며 갈대숲 속에서 종리성학이 나타났다. 그의 좌우에는 단혼객 넷이 늘어서 있었다.
장천운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대령주께서 소성주를 죽이라고 하던가?”
“아니. 그분께선 소성주를 살려서 데려오라 하셨지. 하지만 나는 그분의 명을 거역할 작정이다.”
“왜지?”
“그게 깨끗하니까.”
종리성학이 나직이 대답하고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들은 단혼객이다. 알지 모르겠지만 철저히 싸움에 특화된 사람들이야. 무공을 익혔다기보다 사람 죽이는 기술을 익혔지. 빠져나가는 걸 포기하는 게 마음으로도 편할 거야.”
“글쎄, 네 마음대로 되진 않을 걸?”
피식 웃은 종리성학이 뒤를 향해 고갯짓했다.
“저놈부터 치워라. 보통 놈이 아니니 손을 쓸 때 철저히 써야 할 거다.”
순간, 좌우로 늘어서 있던 단혼객 넷이 앞으로 튀어나가며 장천운을 향해 쇄도했다.
둘은 좌우로 돌아가고, 둘은 정면으로 짓쳐들었다.
장천운의 입가로 가느다란 웃음이 번졌다.
냉소. 얼음장처럼 차가운 미소가.
그때 섬광 한 줄기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쉬익!
장천운이 슬쩍 어깨를 틀자 한 줄기 검기가 옷자락을 가르며 지나갔다.
동시에 사선으로 늘어져 있던 검이 벼락처럼 솟구쳤다.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쾌검.
천뢰구검의 쾌결이 실린 일검은 단혼객이 몸을 틀 시간도 주지 않고 가슴과 목과 얼굴을 찰나에 갈라버렸다.
“컥!”
하지만 선공을 시작한 단혼객은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간발의 차이로 두 번째 공격이 장천운을 덮쳤다.
순간, 장천운의 모습이 안개처럼 흩어지며 사라졌다.
단혼객은 자신의 칼이 허공을 갈랐다는 걸 알고도 멈칫거림이 없이 옆으로 미끄러지며 혹시 모를 반격에 대비했다.
그 사이 장천운은, 우측으로 선회해서 다가오는 자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위다! 조심해!”
종리성학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그가 소리침과 동시, 장천운의 검이 단혼객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벼락처럼 떨어지는 아홉 개의 검영.
구전관천이 펼쳐진 것이다.
피할 곳이 없다고 판단한 단혼객은 동귀어진이라도 하겠다는 듯 정면으로 맞섰다.
쩌저정!
현월이 단혼객의 검을 튕겨내고 목을 반쯤 갈라버렸다.
장천운 역시 단혼객의 검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뒤로 몸을 튕겼다.
“가요!”
장천운이 소리치자, 사마경과 소연추, 저두심이 즉시 구멍이 뚫린 우측으로 몸을 날렸다.
“흥! 어림없다! 막아!”
종리성학이 코웃음 치며 명을 내리듯 외쳤다.
그때 장천운과 사마경 등이 가려는 갈대숲 속에서 단혼객 둘이 나타났다.
쉬익!
저두심이 전력을 다해서 표도 두 자루를 날렸다.
표도가 괴이하게 흔들리면서 날아갔다.
단혼객은 기이한 비도술에 눈살을 찌푸리며 다급히 검으로 허공을 그어댔다.
검기에 전면이 그물처럼 갈라지고.
땅!
표도 한 자루가 허공으로 튕겨나갔다. 그러나 나머지 한 자루가 검기의 그물 사이를 뚫고 단혼객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소연추도 검신일체가 되어서 단혼객을 공격했다.
단봉선자는 여무사 중 절정에 이른 흔치 않은 고수. 단혼객이 아무리 절정고수를 상대하기 위해 키워진 자들이라 해도 단신으로 그녀를 막기는 쉽지 않았다.
따다당!
소연추의 검을 맞받은 단혼객이 미끄러지듯 뒤로 밀려났다.
그때 표도에 맞은 단혼객이 분노한 표정으로 저두심을 공격했다.
다시 표도 두 개를 빼든 저두심은 이를 악물었다.
표도를 던지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깝다. 물러서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자신이 물러서면 소성주가 노출 될 테니까.
‘지미, 저 새끼하고 함께 죽지 뭐!’
이를 악문 그는 그 자리에 서서 두 손을 흔들었다.
그의 통통한 손가락 사이에 끼어져 있던 표도 두 자루가 사라졌다.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는 대신 섬전처럼 빨랐다.
땅!
단혼객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표도를 감각만으로 쳐냈다.
그러나 이번에 역시 한 자루밖에 쳐내지 못했고, 한 자루는 옆구리에 박혔다.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었던 그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저두심을 향해 검을 뻗었다.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다는 듯.
“물러서!”
외마디 비명처럼 소리친 사마경이 앞으로 튀어나가며 단혼객을 향해 쌍수를 뻗었다.
그녀는 대 구천성의 차기 성주가 될 소성주다.
내공 면에서는 이미 절정에 이른 고수.
특히 그녀가 봉황신무검법과 함께 익힌 봉황장은 무림 십대장공 중 하나로, 바위를 가루로 만들 수 있는 위력적인 장법이었다.
화르르.
봉황이 날개를 펼치는가 싶더니 봉황의 발이 단혼객의 가슴에 내리꽂혔다.
쾅! 소리와 함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 단혼객이 대여섯 걸음 물러서더니 중심을 잃고 나뒹굴었다.
“어서 가.”
사마경이 저두심을 재촉했다.
“예, 소성주!”
저두심이 힘차게 소리치고 뚱뚱한 몸을 제비처럼 날렸다.
소연추도 상대하던 단혼객을 전력을 다해서 몰아붙이고는 사마경의 뒤를 따라서 신형을 날렸다.
전면을 두 사람에게 맡기고 후미로 처져 있던 장천운은 사마경의 장력에 부상을 당한 단혼객의 숨통을 마저 끊어버렸다.
그러고는 소연추와 싸웠던 자를 향해 검을 떨쳤다.
현월의 검첨에서 뻗어나간 검기가 허공에 십여 개의 검화를 그려냈다.
이미 장천운의 무서움을 목도한 단혼객은 감히 맞받을 생각을 못하고 뒤로 주르륵 물러섰다.
장천운은 단혼객이 멀찌감치 물러서자 종리성학 쪽을 향해 돌아섰다.
“죽고 싶으면 얼마든지 덤벼 봐!”
냉랭히 소리친 그가 현월을 가슴 높이로 들었다.
거무스름한 현월의 검신에서 검은 안개 같은 검기가 휘돌았다.
종리성학과 단혼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상대는 단혼객 넷을 혼자서 죽인 고수다.
귀신이 곡할 정도로 표홀한 신법, 벼락이 치듯 빠르고 강한 검을 지닌 놈.
무작정 공격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상대였다.
‘저놈만 죽이면 사마경은 손안에 들어온 거나 다름없다. 힘을 합해서라도 저놈을…….’
종리성학이 잠시 망설일 때였다.
장천운이 돌아선 상태에서 땅을 박차고 뒤로 훌훌 날아갔다. 마치 처음부터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이었던 것처럼.
그런데 뒤로 돌아선 채로 날아가는 데도 다른 사람이 정식으로 경공을 펼치는 속도와 별 반 차이가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종리성학은 어이가 없었다.
잠깐 망설인 사이, 사마경과의 거리가 더 벌어졌다.
갈대숲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던 그녀의 모습이 그나마도 곧 사라졌다.
뒤이어 장천운도 갈대숲 속으로 빠르게 사라져갔다.
“너는 천주검문 무사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봐라! 그리고 나머지는 나와 함께 놈들을 쫓는다.”
종리성학이 단혼객에게 다급히 명을 내렸다.
단혼객 하나가 천주검문 무사들을 찾아서 사라지자, 종리성학이 이를 갈며 갈대숲 속으로 신형을 날렸다.
‘젠장! 모두 저놈에게 속았어! 저놈이 장로보다 강하다니.’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쫓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