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4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70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48화
처음에는 두어 명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점점 숫자가 늘어났다.
복장을 보니 천주검문의 무사들인 듯했다. 숫자는 이십여 명.
그들은 곧장 언덕을 넘어서 장천운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장천운 일행으로서는 숨을 시간도 없었다.
“침착하게 행동하십시오. 수상하게 보이면 꼬투리를 잡힐지 모릅니다.”
나직이 말한 장천운의 눈빛이 심해처럼 가라앉았다.
언덕을 넘어온 무사들은 이십 대에서 사십 대까지 나이대가 고루 섞여 있었다. 개중에는 고수의 기세가 느껴지는 자도 대여섯 명이나 되었다.
그들이 빠르게 언덕을 내려오면서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장천운 일행은 짐짓 겁이 난 표정을 지으며 길 한쪽으로 물러섰다.
누가 봐도 몰려오는 무사들에게 놀라서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이는 행동이었다.
무사들도 그런 장천운 일행을 비웃으며 지나갔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한 사람이 장천운을 보며 아는 척만 하지 않았어도.
“어? 자네 혹시……?”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아는 척하며 장천운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장천운도 기억의 창고에서 그 자의 얼굴을 끄집어냈다.
‘빌어먹을!’
이름은 모르지만 강련곡에서 본 적이 있는 자였다. 무진조에 속했던 수련생.
“자네, 장천운이 맞지? 나는 하위명이라고 하네. 아마 강련곡에서 본 적이 있을 거야.”
청년, 하위명은 반가움과 의혹이 깃든 눈빛으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본래 강련곡의 수련생이라면 구천성의 정예무사가 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십이지부에서 추천한 기재 중 일부는 수련 후 자파로 돌아가곤 했다. 대부분 십이지부 주인들과 가족관계이거나 사승으로 얽혀 있는 자들이 그랬다.
하위명도 천주검문의 문주인 천주일섬(天柱一閃) 하중산의 셋째 아들로, 수련이 끝나자 자파로 돌아간 사람 중 하나였다.
“사람을 잘못 보신 모양입니다, 공자. 제 이름은 이한이라고 합니다.”
장천운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딱 잡아뗐다.
“그래?”
하위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록 스치듯 몇 번 본 사이에 불과했지만, 장천운이라는 수련생은 인상이 깊게 남아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데 앞에 있는 자는 그가 아는 장천운과 너무나 닮은 모습이었다.
“뭐하는가, 삼공자? 갈 길이 바쁘네.”
뒤에서 누군가가 하위명을 불렀다.
하위명은 의혹이 가시지 않은 눈길로 장천운을 다시 한 번 슬쩍 바라본 후 몸을 돌렸다.
“이상하군. 내가 잘못 봤나?”
‘휴우우.’
장천운은 소리 나지 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돌아섰다.
[태연하게 가십시오.]
사마경과 소연추에게 전음을 보낸 그도 걸음을 옮겼다.
그때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거기 서봐라!”
짐짓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린 장천운의 눈에 잔뜩 굳은 하위명의 얼굴이 보였다.
장천운은 그 표정만으로도 상황을 짐작했다.
‘제길, 눈치 챘나?’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기억력 하나는 매우 뛰어나지. 아무리 생각해도 너는 장천운이 틀림없어.”
“저는 장천운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이한입니다.”
“흥! 나를 바보로 아는군. 장천운, 소성주는 어디에 있지?”
하위명의 입에서 ‘소성주’라는 말이 나오자, 짜증난 표정으로 그를 기다리던 천주검문 무사들의 표정이 돌변했다.
천주검문의 삼대고수 중 하나인 폭풍철검(暴風鐵劍) 오황문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삼 공자?”
“오 장로님, 이 자가 장천운이라면 소성주의 위치를 알 겁니다. 장천운은 소성주의 호위무사조인 흑월조 조장이니까요.”
“뭐야?”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천주검문 무사들이 장천운 일행 쪽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더 이상 부정해봐야 통하지도 않을 것 같은 상황.
장천운이 사마경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먼저 가세요!]
그때 장천운을 걱정한 사마경이 무의식중에 자신의 목소리 그대로 말했다.
“너는?”
남자의 얼굴에서 흘러나온 가느다란 여자의 목소리.
그녀를 바라보는 하위명의 눈이 커졌다.
“설마……?”
“두심 형, 뭐해? 어서 모시고 가!”
장천운이 재촉하며 검을 뽑았다. 하위명이 눈치 챈 이상 다른 방법이 없었다.
피를 봐야한다면 보는 수밖에!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사마경은 이를 악물고 돌아서서 몸을 날렸다.
소연추가 먼저 그녀를 따라가고, 저두심도 마지못한 표정으로 두 여인을 따라서 달렸다.
“저자들을 잡으시오!”
하위명이 사마경을 보며 소리쳤다.
천주검문 무사 십여 명이 도주하는 세 사람을 향해 몸을 날렸다.
장천운은 뒤로 죽 물러서면서 우측으로 지나치려는 자들의 앞을 막았다.
“죽기 싫으면 비켜라!”
오황문이 버럭 소리쳤다.
동시에 천주검문의 무사 둘이 장천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장천운의 신형이 좌우로 흔들리더니 잔영을 남기며 흐릿해졌다.
순간, 두 줄기 벼락이 달려드는 자들을 향해 뻗어나갔다.
오싹한 느낌이 든 두 무사는 다급히 검을 휘둘러서 장천운의 검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벼락이 한발 먼저 그들의 가슴과 목을 파고들었다.
“컥!”
“으헉!”
거의 동시에 터져 나온 두 가닥 비명.
핏줄기가 허공을 붉게 수놓으며 솟구쳤다.
“이놈!”
노성을 내지른 오황문이 장천운을 향해 검을 뻗었다.
쩌저저적!
절정고수인 그의 검세는 폭풍이 몰아치듯 거셌다. 대기를 찢어발긴 열두 줄기 검영이 장천운을 집어삼킬 것처럼 밀려갔다.
장천운은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의 검세를 바라보며 좀 더 물러섰다.
지금은 맞서 싸울 때가 아니다. 상대의 전진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 사마경이 도주할 시간을 벌어줘야 하는 것이다.
“어딜 도망가려고!”
오황문은 장천운을 따라가며 계속 검을 펼쳤다.
장천운은 뒤로 칠팔 장을 물러선 후에야 철주처럼 두 다리를 대지에 딛고 마주 검을 뻗었다.
폭풍 같은 검세와 섬전처럼 빠른 검세가 정면으로 뒤엉켰다.
쩌저저정!
순식간에 삼초의 공방이 오갔다.
검기의 회오리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휘몰아쳐서 다른 사람은 접근도 할 수 없었다.
장천운은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오황문의 성명절기인 폭풍철검과 맞섰다.
오황문은 일개 호위조장이 자신의 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자 자존심이 상했다.
“오냐, 이놈! 어디 이것도 받아봐라!”
일갈을 내지른 그는 공력을 구성까지 끌어올렸다.
쾅!
두 사람의 검세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굉음이 울렸다.
장천운은 격돌의 반탄력을 이용해서 뒤로 몸을 날렸다. 그러고는 사마경을 뒤쫓는 천주검문 무사들의 후미를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조심해라!”
오황문이 악을 쓰듯 외쳤다.
그가 경고를 보냈을 때는 장천운이 이미 천주검문 무사들의 이 장 뒤까지 다가간 후였다.
천주검문 무사 두어 명이 오황문의 목소리를 듣고 급히 고개를 돌렸다.
장천운은 찰나도 망설이지 않고 검을 뻗었다.
번갯불처럼 뻗어나간 검기가 두 무사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오황문은 무사 둘이 또 쓰러지자 분노해서 몸을 날렸다.
“이 죽일 놈이!”
땅을 박찬 장천운은 허공을 부유하듯 칠팔 장을 날아갔다.
그즈음 천주검문 무사 서너 명이 뒤로 처져 있던 저두심의 뒤로 바짝 접근했다.
그들은 천주검문 최강의 무력단체인 용검단의 중간 간부들로, 뚱뚱한 몸만 보고는 저두심이 둔해서 느린 거라 지레짐작했다.
“돼지 같은 놈! 죽고 싶지 않으면 멈춰라!”
“순순히 납작 엎드리면 죽이진 않겠다!”
하지만 저두심이 뒤로 처진 것은 느려서가 아니었다. 사마경과 소연추의 후미를 지키기 위함이었을 뿐.
용검단의 간부들은 저두심을 모욕한 대가를 톡톡히 지불해야만 했다.
홱, 몸을 돌린 저두심이 뚱뚱한 체구와 달리 곱상하게 생긴 손을 흔들었다.
“이거나 먹어라!”
휘리리릭!
양손에서 하나씩, 한 뼘 길이의 표도(鏢刀) 두 개가 허공을 가르며 날았다.
“헉!”
예상치 못한 저두심의 공격에 용검단 간부들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거리라고 해봐야 사오 장. 게다가 표도는 기묘한 나선을 그리며 날아들었고, 그들은 사마경 등을 붙잡기 위해서 빠르게 달리던 중이었다.
퍼벅!
표도는 피할 틈도 주지 않고 먹잇감의 어깨와 가슴을 파고들었다.
“으윽!”
“크억!”
비명과 함께 간부 둘이 꼬꾸라졌다.
저두심은 표도 두 개를 더 날렸다.
쒜에에엑!
“피해!”
겨우 피했던 두 사람은 대경해서 속도를 줄이고 다급히 방향을 틀었다. 뒤따라가던 자들도 표도가 날아들자 지레 놀라서 좌우로 흩어졌다.
장천운은 그 틈을 이용해서 천주검문 무사들을 앞질렀다.
“어서 가!”
저두심을 향해 소리친 그는 몸을 돌리고는 검을 좌우로 휘둘렀다.
쏴아아아아!
현월이 찰나 간에 십팔 변을 일으켰다.
은은한 묵빛 검신에서 먹구름 같은 검기가 피어나더니, 뒤따라온 오황문과 하위명을 향해 파도처럼 밀려갔다.
오황문과 하위명은 전력을 다해서 검을 펼치며 장천운의 검세에 맞섰다.
떠더더덩!
귀청을 울리는 연이은 충돌음.
눈을 부릅뜬 오황문이 주춤거리며 두 걸음 물러섰다. 하위명은 이를 악문 채 주르륵 밀려났는데, 충격이 컸는지 얼굴이 창백했다.
장천운은 훌쩍 이 장을 날아간 후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죽고 싶은 자는 얼마든지 덤벼라!”
냉랭한 일갈이 들판에 울려 퍼졌다.
사선으로 늘어뜨린 그의 검에서 은은한 묵빛 검기가 일렁거렸다. 언제든 이를 드러내며 뛰쳐나갈 것처럼.
천주검문 무사들은 앞으로 나서지도 못하고 눈치만 봤다.
폭풍철검 오황문조차 이기지 못한 자다. 먼저 나서서 죽고 싶지 않았다.
그 사이 장천운은 미끄러지듯 삼 장을 물러섰다.
잠깐 자신이 막고 있는 동안 저두심과의 거리가 삼십여 장으로 벌어졌다. 사마경과 소연추는 그보다 이십 장 앞을 달리는 중이었고.
그 정도 거리라면 추적을 떨쳐낼 수 있을 듯했다.
나름대로 계산을 마친 장천운은 뒤로 몸을 날렸다.
“어딜 도망가느냐! 저놈들을 잡아라!”
오황문이 악을 썼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장천운은 한 마리 매 같았다.
경공과 신법이라면 천하의 누구와도 견줄 수 있는 그가 아닌가.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오황문조차 따라잡지 못했다. 아니, 따라잡기는커녕 점점 더 거리가 벌어졌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오황문은 오 리쯤 뒤쫓다가 결국 추적을 포기했다.
따라잡기도 쉽지 않고, 따라잡는다 해도 그때쯤 남은 검문의 무사는 서너 명뿐일 터. 어차피 그들만으로는 소성주 일행을 잡을 수 없을 듯했다.
“빌어먹을!”
그가 멈추자, 바로 뒤따라온 하위명이 벌건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어떻게 하긴? 일단 구천성과 인근의 본문 무사들에게 알려야지.”
“구천성에도 알리실 겁니까?”
“그래야겠지.”
오황문이 무사 둘을 지목했다.
“너는 구천성으로 가고, 너는 북쪽에 있는 본문의 무사들에게 달려가서 소성주가 이쪽에 있다고 전해! 심장이 터질 때까지 달려가!”
21장: 혈투(血鬪)
장천운 일행은 바람이 거센 들판을 가로질렀다.
천주검문 무사들은 추적을 포기한 듯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는 일. 그들은 속도만 약간 늦추고 계속 이동했다.
오십여 리를 가자 아담한 크기의 호수가 나왔다. 호숫가에는 키가 넘는 갈대밭이 숲처럼 펼쳐져 있었다.
“저기서 쉬었다 가죠.”
장천운의 말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퐁!
조약돌이 호수에 파문을 일으켰다.
돌을 던지고 파문을 바라보던 사마경이 장천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장천운은 바위 위에 앉아서 육포를 씹고 있었다.
“합비까지 얼마나 남았지?”
“정확하진 않지만, 제가 배운 대로라면 대략 삼백 리 정도 남았을 겁니다.”
장천운의 대답에 소연추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 조장 말대로 그쯤 남았을 거예요.”
“우리가 어디로 가든 백부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래도 구천성보다는 낫겠죠.”
“그건 그래.”
사마경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려움은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각오했다. 어차피 다른 길도 없다.
‘미리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어.’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에 뜬 돛단배나 다름없는 그녀에게 장천운은 누구보다 든든한 기둥이었다.
그만 곁에 있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견뎌낼 수 있을 듯했다.
‘고마워.’
그때였다.
바위 위에 앉아 있던 장천운이 번쩍 고개를 쳐들더니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