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43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6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43화
어떻게 생각하면 사마경이 떠나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소성주가 성을 버리고 떠나면 자신의 뜻에 반대하던 자들도 어쩔 수 없을 테니까.
문제는 그 이후다.
그저 어디론가 멀리 떠나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러나 강호에는 십이지부가 있다. 사마중천이 직접 제압해서 충성을 받아낸 전사들이.
자신은 십이지부 중 겨우 사개 지부의 약속만 받아냈다. 나머지는 자신이 성주가 될 경우 미련 없이 등을 돌릴 수 있는 자들이다.
사마경이 만에 하나 그 힘을 결집한 다음 돌아온다면 또 한 번 격변을 겪을 게 뻔하다.
‘나로 하여금 마지막 선택을 하게 하지 마라. 그럼 너만 불행해지니까.’
한편, 우문각은 공손백에게서 좌측으로 십여 장 떨어진 곳에 서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몸을 돌리며 공손백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평소 속마음이 거의 드러나지 않던 공손백이 오늘만큼은 자신의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마경의 속셈을 눈치 챈 듯했다.
‘공손백,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승부는 아직 끝난 게 아니야.’
***
비령각으로 돌아간 우문각은 의자에 앉지도 않고 명령부터 내렸다.
“정유, 비령조 일개 조를 보내라.”
정유가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비령조는 총사의 극비 명령을 수행하는 조직이다.
그들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사람은 우문각과 사군사뿐. 구천성의 간부들조차 그들의 존재를 모른다.
공손백이나 백리호조차도.
그러니 비령조의 존재가 드러난다면 우문각이 손에 쥔 비밀 패 중 하나를 잃어버리는 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괜찮겠습니까?”
“소성주가 위험한 경우가 아니면 나서지 말고 지켜보기만 하라고 해. 그리고 다른 사람 앞에 나설 경우 이곳으로 귀환하지 말고 천비장으로 가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총사.”
우문각은 정유를 내보내고 난 후에야 자리에 앉았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이 허공을 노려보았다.
상황이 자신의 예상대로 흐른다면 공손백에게 힘이 더 실릴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그 일을 더 바라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다.
현재 소성주라는 존재는 그에게 힘이 되기보다 족쇄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 족쇄가 벗겨져야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올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래도 확률이 삼 할밖에 안 된다는 게 아쉽군.’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너무 위험해서 문제일 뿐.
실패하면 그 삼 할마저도 잃어버릴 테니까.
피식.
갑자기 그의 입술 사이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모험인 것은 마찬가진데, 뭐가 두려운 거냐, 우문각?’
실소를 지은 이후 그의 눈빛이 전보다 부드러워졌다.
탁!
의자의 손잡이를 손바닥으로 치고 일어났을 때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마저 떠올라 있었다.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이라 했다.
“일은 사람이 꾸며도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늘의 뜻. 내가 하려는 일도, 공손백이나 소성주가 하려는 일도 결국은 하늘이 결정할 것인데 무슨 고민할 것이 있겠는가.”
담담히 중얼거린 그는 방을 나섰다.
‘일단 태상호법부터 만나봐야겠군.’
19장: 대운사의 밤바람은 차갑기만 한데
바람이 제법 불긴 해도 그다지 추운 날씨는 아니었다.
사마경 행렬은 별다른 마찰 없이 연평에 도착했다. 지난 유월 대운사에 갈 때처럼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낼 생각이었다.
이미 사흘 전에 연락을 취해서 마을에 있는 객잔 하나를 통째로 빌려놓은 상태였다.
호위대는 적을 경계한다는 핑계를 대고 객잔의 담장 밖을 에워싸다시피 했다.
수혼대는 객잔에 바짝 붙어서, 흑월조와 구천호령은 건물 안에서 소성주를 호위했고.
구천호령과 흑월조는 눈 밑으로 면사를 써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구천호령은 청의에 청색면사, 흑월조는 흑의에 흑색면사.
면사를 쓴 것은 장천운의 제안 때문이었다.
위압감과 신비감만으로도 적의 접근을 견제할 수 있다나?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생각보다 보기도 괜찮았고.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스름이 짙어질 무렵.
사마경은 철통같은 호위 속에서 장로와 호법 등 고위 간부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간부들이 비록 공손백 쪽 사람들이긴 하지만 모두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 아닌가. 약간 서먹서먹한 분위기이긴 해도 먼저 외면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 식사가 끝날 즈음, 장로인 노현이 은근한 어조로 사마경을 압박했다.
“소성주, 강호에는 우리 구천성을 노리는 자들이 많네. 제사가 끝나면 바로 돌아가도록 하세.”
호법인 갈원이 그의 말에 동조했다.
“성주께서 돌아가신 후 간덩이가 부은 놈들이 많아졌어. 소성주의 몸에 이상이 생기면 안 되니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을 것 같군.”
“걱정 말아요. 저 역시 오래 머물 생각은 없어요. 제사 지내는 날까지 사흘만 머물고 돌아갈 거예요.”
사마경은 걱정할 것 없다는 투로 대답하면서 기간을 자연스럽게 사흘로 정했다. 그것도 굉장히 빠르게 돌아가는 것처럼.
하지만 장로나 호법들 입장에서는 사흘이라는 시간도 길었다.
그들은 공손백의 언질을 받은 터라 제사를 끝내고 바로 다음 날 되돌아갔으면 싶었다.
정이청이 넌지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이틀이면 충분하지 않겠나?”
“제사를 지내는데 하루, 불공을 드리는데 하루, 그리고 저도 하루는 쉬어야지요. 돌아가고 싶으시면 먼저 가셔도 상관없어요.”
먼저 가려면 가라는 사마경의 말에 갈원이 헛기침을 하며 멋쩍은 투로 말했다.
“허험, 이틀 안에 끝냈으면 싶지만 어쩔 수 없지. 설마 하루 정도 더 머문다고 무슨 큰일이 나겠나? 소성주께서 원하시니 그럼 그렇게 하세.”
“죄송하지만 저 먼저 일어나겠어요. 오랜만에 멀리 나와서 그런지 몸이 찌뿌드드하네요. 그만 올라가서 쉬어야겠어요.”
사마경은 식사가 대충 끝나자 몸을 일으켰다.
조금만 더 함께 앉아 있으면 인내심이 무너질 것 같았다.
‘역겨운 자들. 아버지 앞에서 간 쓸개 다 빼줄 것처럼 충성을 맹세한 자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녀와 나란히 앉아 있던 소연추가 따라서 일어서고,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 서있던 장천운과 영호관이 한두 걸음 거리를 좁혔다.
사마경은 장로와 호법들의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렸다.
먼저 식사를 마친 후 대기하고 있던 류화와 이능능, 연송하가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그때였다.
바로 옆 탁자에 앉아 있던 청삼중년인 하나가 도발하듯이 말했다.
“소성주. 긴 여행으로 몸이 지치신 것은 이해하오만, 그래도 장로와 호법들이 계신데 너무 일찍 일어나신 것 같소이다.”
단순히 예의를 따지기 위한 말이 아닌 듯 느껴지는 까칠한 말투.
사마경이 고개를 돌려서 그자를 바라보았다.
사십대 중반의 나이, 턱에 꺼칠한 수염이 수북한 그는 경천단의 무사들을 이끌고 있는 부단주 혈심검(血心劍) 단강선이었다.
단주인 독고태의 좌우 양팔 중 하나.
“단 부단주, 소성주께서 몸이 안 좋다는 것을 오실 때부터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그걸 몰라서 말씀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소연추가 대신 나서서 냉랭히 말했다.
단강선도 차갑게 받아쳤다.
“선자에게 말한 것이 아니오.”
“그러신가요? 그럼 소성주께 충고를 하셨나 보죠? 소성주께서 언제부터 부단주가 충고를 해도 되는 대상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저는 오늘 처음 알았어요.”
“내가 어찌 소성주께 충고를 한단 말이오? 단지 상황이 조금 보기 안 좋아서 말씀드린 것뿐이오.”
“보기 안 좋다? 그거야 소성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거겠죠.”
“다르게 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잘못 되었기 때문에 그 점을 짚어준 것이오.”
“그래요? 그럼 하나만 묻죠. 만약 전 성주께서 몸이 안 좋으셔서 일찍 일어나셨어도 부단주가 그리 말할 수 있었을까요?”
“지금 억지를 쓰자는 거요?”
“억지가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거예요.”
단강선이 입을 꾹 다물고 소연추를 노려보았다. 수염만큼이나 거친 그의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소연추 역시 물러서지 않고 더욱 차가운 냉기를 흘렸다.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자, 장로와 호법, 삼단의 간부들은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사마경도 무심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 끼어들지 않았다.
장천운은 흥미진진한 구경거리를 마주한 사람처럼 눈빛을 빛냈다. 잘하면 자신의 계획에 이용할 상황이 만들어질지도 몰랐다.
‘좀 더 화를 내봐, 털보.’
그때 말싸움에서 밀린 단강선이 탁자를 탕! 소리 나도록 때리며 일어났다.
“선자, 지금 나를 책망하겠다는 거요?”
“제 질문에 먼저 대답해 보시죠.”
“못할 것도 없소이다! 솔직히 말해서, 돌아가신 성주님과 나이 어린 소성주를 똑같이 대할 수는 없는 일 아니오?”
단강선이 자신의 감정을 일부 드러내자 몇 사람의 표정이 변했다.
소연추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고, 사마경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장로와 호법은 물론, 호위대의 간부들은 약간의 우려와 당연하다는 반응이 교차했다. 몇몇은 이 기회에 소성주의 위치가 정리되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반면 한쪽 구석진 곳에 앉아 있던 종리성학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언젠가는 터질 일. 그래서 놔두었다. 외부로 나온 상태에서 터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으니까.
이제 사마경 쪽의 반응에 따라서 대응하면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장천운의 전음이 소연추의 고막을 울렸다.
전음을 듣고 눈빛이 찰나 간 눈살을 찌푸린 소연추가 다시 입을 열었다.
눈살을 찌푸린 것이 단강선의 말 때문인 것처럼 보여서 다른 사람의 의심을 사지는 않았다.
“역시 그랬군요. 그렇다면 소성주께서 정식으로 성주가 되셔도 그 마음은 여전하시겠군요.”
“소성주께서 성주가 되신다면 당연히 다르게 대할 거요.”
“지금도 위에 오르지만 못했을 뿐 성주나 다름없다는 걸 모르시나 보죠?”
“그거야 아직 모르는 일…….”
짜증을 내듯이 몇 마디 내뱉던 단강선이 입을 다물었다.
소연추의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
“소성주께서 성주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나 보죠?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소?”
“세 살 먹은 아이도 부단주의 말을 듣고 그 정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뭐요?”
“결국 소성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 아닌가요? 이제야 부단주의 마음을 알겠군요. 그런데 그러한 행동이 어떤 죄인지는 알고 있나요?”
“보자보자 하니까 못하는 말이 없군! 내가 선자 말에 겁이라도 먹을 줄 아시오?”
단강선이 눈을 치켜뜨고 버럭 소리쳤다.
근처에 있던 간부들 중 몇 명의 눈빛에서 싸늘한 한광이 번뜩였다.
손만 놓으면 활시위에서 화살이 튀어나갈 것 같은 분위기.
건물 안에 있던 구천호령과 흑월조도 바짝 긴장해서 상황을 주시했다.
그때 장천운이 나직이 말했다.
“소성주님쯤이야 두렵지도 않은가 보군.”
움찔한 단강선이 홱 고개를 돌려서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는 거냐?”
“소성주의 유모를 무시한다는 것 자체가 소성주를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놈, 내 말뜻을 왜곡하지 마라.”
“왜곡이 아니라 사실 같습니다만.”
“이 건방진 놈이! 하찮은 호위조장 따위가 감히 어디서 끼어드는 거냐?”
“소성주의 호위라서 끼어드는 거요. 진짜 호위는 주인의 몸만이 아니라 체면도 지켜드려야 하니까.”
“함부로 끼어들다가 개죽음 당하지 말고 꺼져라!”
단강선이 냉랭히 소리치며 윽박질렀다.
하지만 그 정도에 기가 죽을 장천운이 아니었다. 기가 죽기는커녕 싸늘한 눈빛으로 피식, 실소를 지었다.
“그 말, 협박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