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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4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82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42화

장천운이 사마경의 두 눈을 직시한 채 말했다.

“십일월에 조부님 제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아. 십일월 십일일이야.”

“그때 대운사에 가시죠.”

사마경과 소연추가 장천운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뜻이야?”

“제사를 지내러 가시라는 겁니다. 전에도 그곳에서 제사를 지낸 걸로 아는데요?”

“항상 그곳에서 제사를 지냈던 것은 아니야. 보통 삼 년에 한 번 정도 그곳에서 지냈어.”

“그러니까 이번에도 가시라는 겁니다.”

“작년에 그곳에서 제사를 지냈는데도?”

“이 년 연속 대운사에서 제사 지낸다고 누가 뭐라고 합니까?”

그제야 장천운의 의도를 깨달았는지 사마경의 눈이 커졌다.

“그럼 제사를 지내러 가서 도망치자는 거야?”

“도망치다니요? 머리도 식힐 겸, 그냥 잠시 여행을 떠나는 거죠.”

사마경이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백부가 보내주지 않을 거야.”

“어차피 이판사판인데, 뭐 어때요? 만약 대운사에 보내주지 않으면 성주 자리를 진짜로 포기한다고 하세요.”

“뭐?”

“공손백은 소성주가 포기한다고 해서 덥석 주워 먹지 못합니다. 보셨잖아요? 아까도 거절하는 걸.”

“그거야 그렇지만…….”

“오히려 다른 사람들 눈치 때문에 허락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곳에 간다 해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할 걸?”

“그거야 당연하죠. 그래도 최소한 이곳보다는 덜 할 겁니다.”

“감시를 빠져나간다 해도 악착같이 잡으려 할 걸?”

“까짓 거, 잡히면 마음이 답답해서 잠깐 바람 좀 쐬러나갔다고 변명하죠 뭐. 소성주께서 잠깐 감시망을 벗어났다고 해서 설마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사마경은 장천운의 말에 눈빛이 반짝거렸다.

농담 같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어쩌면 목숨이 걸린 농담일 수도 있었다.

소연추 역시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현재로선 그보다 나은 방법이 없었다.

장천운은 그 외에도 나름대로 생각한 방법이 있지만, 당장은 말하지 않았다.

아직 그 말을 하기에는 일렀다.

 

***

 

닷새가 지나도록 여철숭은 풀려나지 않았다.

백리호는 이런저런 조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자꾸만 시일을 끌었다. 그 사이 눈치를 보던 호법 두어 명이 슬그머니 공손백파에 합류했다.

우문각은 바늘방석에 앉아 쓸개를 씹는 심정이었지만, 비령각에서 나오지 않고 별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렇게 십일월이 되었을 때, 사마경이 결심을 굳히고 공손백을 찾아갔다.

이번에는 장로원의 호위무사들도 그녀를 막지 않았다.

 

사마경이 공손백의 방에 들어갔을 때, 방에는 공손백과 호위무사 둘, 그리고 그의 시종으로 알려진 삼십대 문사만 있었다.

“대운사에서 조부의 제사를 지내겠다고?”

공손백은 사마경의 말을 듣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올해는 아버지까지 돌아가셨으니 그게 나을 것 같아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 준비는 내가 다 할 테니 그냥 여기서 지내도록 해라.”

“아니에요. 대운사에는 이제 조부님과 아버지, 어머니의 위패가 모두 있어요. 그러니 그곳에서 지내는 게 더 나아요.”

“지금처럼 적이 날뛰는 시기에 네가 그곳까지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해. 적들이 그 사실을 알면 보고만 있지 않을 거다.”

“결국 제가 차기 성주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뜻이군요.”

“당연한 말 아니냐? 모두 너를 위한 일이니, 이 백부의 뜻에 따르도록 해라.”

공손백이 달래듯이 말했다. 그러나 반드시 그래야한다는 듯 위압적인 말투였다.

사마경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준비한 말을 꺼냈다.

“정 안 된다면 소성주라는 지위를 내놓겠어요. 그럼 되겠죠?”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공손백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말 그대로 소성주의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뜻이에요. 그럼 적들도 저를 공격할 이유가 없잖아요?”

“어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구나! 소성주라는 자리가 그리도 가벼운 자리인 줄 아느냐? 더구나 너는 차기 성주가 될 몸이다. 함부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느니라.”

“말만 차기 성주면 뭐하겠어요? 조부님의 제사도 제 마음대로 지낼 수 없는 신세인 걸요. 그렇게 살아갈 바에는 소성주고 뭐고 모두 내려놓겠어요.”

사마경이 굽히지 않고 강하게 반발하자, 공손백도 더 이상 강요하기가 애매했다.

사마경이 스스로 소성주자리를 내놓는다고 해도, 남들은 자신이 그녀를 쫓아냈다고 생각할 것이 뻔했다.

그럴 경우 소성주파들이 들고 일어날 터. 아직 십이지부를 장악하지 못한 그로서는 막대한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으음, 좋다. 정 그렇다면 대운사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해라. 단, 네 안전을 위해서 경호를 철저히 해야 하는 만큼 그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무화원에 있는 호위무사들 외에는 백부님이 알아서 하세요.”

“알았다. 누구도 감히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호위대를 붙여주마.”

말을 하며 사마경을 바라보는 공손백의 눈에서 한광이 번뜩였다.

‘너도 허튼 생각하지 마라.’ 그런 뜻이 담긴 눈빛.

사마경은 그의 마음을 짐작했지만 모른 척 고개를 숙였다.

“허락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럼 가보겠어요.”

 

사마경이 나가고 방문이 닫히자, 공손백은 커다란 태사의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성학,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의 옆에는 삼십대 장한이 시선을 아래로 한 채 조용히 서있었다.

나직한 그의 질문에 장한이 눈을 들었다.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답답해서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거나, 아니면 그물을 빠져나갈 기회를 찾아보려는 수작이거나.”

장한의 이름은 종리성학. 그는 어릴 때부터 십수 년 동안 시종처럼 공손백의 곁에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그를 공손백의 시종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말투나 눈빛은 시종의 것이 아니었다.

그를 바라보는 공손백의 눈빛 역시 단순한 시종을 보는 것과는 달랐고.

“네가 따라가도록 해라.”

“예, 주군.”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야. 철저히 살펴봐.”

 

***

 

사마경은 우문각에게 연락을 취해서 대운사에 간다는 사실을 알렸다. 진짜 목적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그저 제사 핑계만 댔다.

우문각은 연락을 받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성주가 조부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대운사에 간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정유?”

“의문이 많은 행차입니다, 총사.”

“역시 그렇지?”

우문각이 아는 한 사마경은 조부의 제사에 대해서 지금까지 신경 쓴 적이 없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조부에게 무슨 특별한 정이 있을까.

더구나 대운사에 가면서 습격을 받은 적이 있지 않은가.

‘지금 같은 때에 위험을 무릅쓰고 대운사에 간다는 것은 제사 때문이 아닐 거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강력한 압박감에 짓눌려 있는 사마경이 구천성에서 이틀거리나 되는 대운사에 간다?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대령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겠다는 것. 탈출.

‘그래, 그럴 수도 있어.’

사실이라면 사마경이 그렇게 무리한 계획을 생각했을 리 없다.

문득 장천운을 떠올린 우문각의 눈빛이 기이하게 번뜩였다.

‘그 녀석이라면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해내고도 남아.’

사마경은 장천운을 신임하고 있다. 장천운이 그녀를 설득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정말 대단한 놈이야. 일 년도 안 된 짧은 기간에 소성주를 움직일 정도로 신임을 얻다니.’

어쩌면 나이가 젊기 때문에 통하는 것일지도…….

어쨌든 사마경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준다면 변화를 꾀할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총사?”

“일단 흐르는 대로 놔둬. 아직 시간이 있으니 지켜보면서 상황에 따라 대응해도 돼. 어쨌든 재미있게 됐어.”

그러잖아도 기이한 우문각의 눈빛이 탁하게 흐려졌다.

‘한쪽을 신경 쓰다 보면 다른 쪽에서 빈틈이 보이는 법이지.’

 

***

 

제사를 사흘 남겨 놓고 구천성을 출발하기로 했다.

공손백은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서 나흘 전에야 호위대를 구성했다.

호위대를 구성하면서도 소성주가 대운사에 간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수혼대와 구천호령 일령을 제외한 인원은 모두 백여 명. 철혈단과 경천단, 광혈단의 정예무사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그들 외에도 노현과 정이청을 비롯한 장로 넷과 호법 둘이 따라가기로 했다.

모두 공손백의 사람들이었다.

 

장천운도 나름대로 몇 가지 물건을 준비했다.

마침 수혼대에는 온갖 물건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가 원하는 물건도.

때로는 비밀리에 호위임무를 수행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를 위해서 준비해놓은 물건들이었다.

“지금 있는 것 중에는 이게 제일 낫네.”

관철양이 얇은 가죽처럼 생긴 물건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살색에 구멍이 뚫려 있고 검은 털이 달려 있는 가죽. 그것은 인피면구였다.

 

동이 틀 무렵, 수혼대가 바빠졌다.

소성주의 행차를 미리 준비해 놓아야 식사 후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그 시각. 장천운은 흑월조의 방에서 등잔불 때문인지, 아니면 흥분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얼굴이 붉게 상기된 조원들을 둘러보았다.

평균적인 무위가 전에 비해 배 이상 강해졌다. 아직은 구천호령에게 뒤지지만, 이제는 그 차이가 전처럼 크지 않았다.

그 정도 차이는 정신력으로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흑월조는 구천호령과 함께 최측근에서 소성주를 호위할 거다. 어쩌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니 단단히 각오해.”

“그 동안 땀을 얼마나 흘렸는데? 구천호령에게 질 순 없지.”

나이가 가장 많은 추소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옥수련에 예외는 없었다. 그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굴렀다.

덕분에 흑도의 일개 조장이 대 구천성의 최정예 무사가 되었다.

당장 죽은들 무사로서의 삶에 여한이 없었다.

이한과 한명후, 저두심 역시 다르지 않았다.

“내 목숨이 필요하면 언제든 명령만 내려.”

“우리 목숨은 이미 네 거야. 마음대로 해, 귀호.”

“멋지게 죽을 자리만 만들어 줘. 나는 그거면 돼.”

구산과 진구, 사명학, 유고원, 오관도 이제는 그들을 흑도의 건달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니지 못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불길처럼 뜨거운 그들의 열정은 온갖 편견을 녹여버렸다.

편견이 사라지고 땀으로 뭉친 그들은 이제 한배를 탄 동료가 되었다. 서로의 목숨을 지켜줄 동료.

장천운은 조원들을 향해 씩 웃어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우리 한 번 멋지게 일을 저질러 보자고!”

 

사시 초.

마차 세 대와 이백에 가까운 호위무사대가 구천성을 나섰다.

냉원상이 열두 명으로 이루어진 수혼대 이개조를 이끌고 선두에 섰다.

그 뒤를 사마경이 탄 마차가 따라갔다.

마차의 우측은 구천호령이, 좌측은 흑월조가 호위했다.

장로가 탄 마차와 물품이 실린 마차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서 따라가고, 삼단의 정예무사로 이루어진 호위대가 좌우와 후미에 섰다.

종리성학은 공손백이 비밀리에 키운 단혼객(斷魂客) 일조 열 명과 함께 뒤로 처져서 호위대의 뒤를 따라갔다.

공손백은 천경전 앞에 서서 정문을 빠져나가는 행렬을 지켜보았다.

‘네가 무슨 꿍꿍이로 이런 일을 벌이는지 몰라도 뜻대로 안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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