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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8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45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81화

35장: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사람들

 

 

태성산은 대별산맥 남단에서 북쪽으로 뻗은 줄기 끝에 우뚝 솟아 있었다.

합비에서 칠백 리 정도 떨어진 그곳에서 구천성까지는 삼백리쯤 되었다.

기암절벽이 즐비한 태성산에는 열두 개의 계곡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험하고 깊은 곳이 구절곡이었다.

구절곡은 산세가 너무 험해서 봄부터 가을까지 들락거리던 약초꾼과 사냥꾼들도 겨울이 되면 발길을 끊었다.

철무가 약속 장소로 구절곡을 택한 이유는 그 두 가지 때문이었다.

구천성까지 경공을 펼치면 하루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곳.

게다가 구절곡 안에는 약초꾼과 사냥꾼을 위한 커다란 통나무집이 있어서 사나흘 지내기에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장천운 일행은 합비를 출발한지 사흘 후, 석양이 질 무렵쯤 그 통나무집에 도착했다.

태성산과 석양과 통나무집이 어우러진 고즈넉한 광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그들은 그곳에서 흑월조의 나머지 인원이 올 때까지 무공을 수련하기로 했다.

호랑이굴에 들어가서 살아남으려면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야 한다.

땀을 한 방울 더 흘리는 사람은 피를 한 방울 덜 흘릴 것이다.

 

***

 

새해가 열흘 남짓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구천성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용했다.

그러나 겉보기에만 그럴 뿐, 곳곳에서는 눈치싸움이 칼을 들이댄 싸움보다 더 무섭게 벌어졌다.

독고태가 우문각을 은밀하게 찾아간 것도 그날 저녁이었다.

술잔을 목구멍 안으로 털어 넣은 그가 우문각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미 많은 말을 나눈 듯 그의 목소리에 약간의 실망감과 기대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집요함이 뒤섞여 있었다.

“총사, 정말 이대로 모든 것을 공손백에게 넘겨줄 생각인가?”

우문각으로선 독고태의 방문이 반가울 리 없었다.

새해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 공손백 측의 신경이 곤두서 있을 때 찾아오다니.

그래도 장로원주 나극을 따르는 측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던 터라 당황하진 않았다.

“넘겨주지 않으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자네와 우리가 손을 잡으면 그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네.”

우문각의 입술 끝에 미소가 매달렸다. 입술 끝이 살짝 틀어졌는데 조소처럼 보이기도 하고, 단순한 미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묘한 웃음을 지은 그가 독고태의 빈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게 그의 전부라 생각하십니까?”

“물론 숨기고 있는 것이 아직도 많겠지. 하지만 우리도 그 동안 놀고만 있진 않았네. 지난 일 년, 그의 힘을 철저히 조사하고 분석했지.”

“그럼 절반 정도는 파악했겠군요.”

“절반?”

“설마 그 이상 알아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우린 적어도 팔 할은 파악했다고 생각하네만.”

“그래서 시기상조라는 겁니다. 장로원주와 단주께선 대령주를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독고태는 눈썹을 송충이처럼 두어 번 꿈틀거리고는, 술잔을 단숨에 비운 후 마지막 패를 꺼냈다.

“으으음, 만약 자네가 우리와 함께 하겠다면…… 성주의 자리도 양보할 수 있네.”

뜻밖의 말이었다. 굳이 머릿속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었다. 눈만 봐도 거짓은 아닌 듯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겠지.

“저는 제 자신이 성주의 재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안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정말 끝까지 거부할 텐가?”

독고태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겉으로는 살기를 드러내지 않았으나 무형의 살기가 방 안을 휘감고 흘렀다.

우문각은 낙뢰 아래에 서 있는 듯 신경이 곤두섰지만 태연하게 술잔을 잡아가며 말했다.

“대신 약속을 하나 하지요.”

“약속?”

우문각이 손에 든 술잔을 들고 입으로 가져갔다.

느릿하게 술잔을 다 비운 그가 탁! 소리가 나도록 잔을 내려놓고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상황이 대령주의 뜻대로 흐르도록 보고만 있진 않을 겁니다. 단주와 원주께서는 지켜보시다가 변화가 보이면 그때 선택을 하십시오.”

독고태는 우문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한편이 되겠다는 것도, 적이 되겠다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경계에 선 말이었다.

‘여우같은 놈.’

그래도 어쨌든 공손백 편에 서지 않겠다는 뜻이 조금 더 강하니 우선은 그 정도로 만족하는 수밖에.

“부디 현명한 선택을 했으면 좋겠군.”

“저 역시 같은 마음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독을 품은 화살이 오갔다.

‘적이다 싶으면 제일 먼저 죽여야 할 놈이야.’

‘그 머리로 날 이용해먹으려면 쉽진 않을 거다, 독고태.’

 

독고태가 방을 나선 후 정유가 들어왔다.

그도 독고태가 온 것을 알기에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가 맞은편에 앉자, 차가운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우문각이 나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대령주도 곧 독고태가 나를 찾아왔다는 걸 알게 될 거다.”

“괜찮겠습니까?”

“의심은 하겠지만 지금보다 특별히 더할 것도 없을 거다. 대관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시끄러워져서 좋을 것 없으니까.”

“그 전에 거치적거리는 장애물을 치우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최소한 겉으로 드러내진 않을 거다.”

정유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자신이 온 이유를 말했다.

“총사, 비령조에게서 급전이 달린 전서구가 날아왔습니다.”

우문각의 가라앉았던 눈빛이 살아났다.

“합비의 일이냐?”

“예. 합비에 들어갔던 서궁과 정이청, 그리고 광혈검마의 제자인 가등을 비롯한 광혈단 무사 열 명이 흑화방이라는 흑도방파를 공격하던 중 모두 죽었다고 합니다.”

“뭐야? 서궁과 정이청에 가등까지 갔는데, 남궁세가도 아니고 흑화방을 공격하다 죽어?”

우문각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곧 그 안에 또 다른 사연이 있음을 간파하고 눈빛을 싸늘하게 번뜩였다.

“누가 그들을 죽였다고 하더냐?”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만, 남궁세가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날 오전에 그들과 남궁세가가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고 합니다.”

“남궁세가가 아무리 힘을 키웠다고 해도 구천성 무사를 대놓고 죽이지 못할 텐데?”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흑화방이 서궁 등을 죽였을 리는 없고, 만약 남궁세가의 짓이 아니라면 다른 누군가의 짓이라는 건데…….”

우문각은 정유의 말에 입술을 비틀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누군가의 짓일지도 모른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군.”

“일단 좀 더 자세히 알아보라고 답신을 보냈습니다만, 따로 내리실 명령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우문각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생각을 정리했다.

‘철무는 드러내놓고 일을 벌이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천하에서 구천성의 장로와 정예무사들을 망설이지 않고 몰살 시킬 만큼 배짱 큰 놈이 누가 있을까?

천하십대고수에 드는 자라 해도 구천성을 향해 함부로 검을 들이대지 못하거늘.

그때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흑도 출신 주제에 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놈의 얼굴이.

‘혹시 그놈이……?’

갑자기 갈증이 났다.

그는 앞에 있던 술잔을 들어서 목구멍 안으로 털어 넣었다.

갈증이 조금은 덜어지는 듯했다.

“정유.”

“예, 총사.”

“은명객을 소집해서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대기시켜.”

“예?”

어둠속의 무사, 은명객(隱冥客)은 비령각의 숨겨진 힘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공손백이나 나극 쪽에서도 존재를 모르는 자들.

하지만 정유가 놀랄 것은 우문각이 갑자기 그들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성격이 제멋대로인 꼴통들이었다.

실력이야 놀라울 정도로 대단했지만, 빌어먹을 성격 때문에 비령조에서 퇴출된 자들.

왜 총사는 그런 문제아들을 하필이면 지금 써먹으려는 걸까?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문각이 하얀 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곧 재미있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미리 대비해두어서 나쁠 건 없지.”

 

***

 

공손백은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백리호로부터 합비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고 받았다.

겨울 햇살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던 그는 보고를 받고 눈살을 찌푸렸다.

“서호와 탕추강도 아느냐?”

“곧 알게 될 겁니다, 사형.”

“알면 불같이 화를 내겠군.”

“어쩌면 당장 남궁세가를 치러가겠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을 죽인 것은 남궁세가가 아니라 했잖느냐?”

“시신이 도착해봐야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만, 진실과 상관없이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것도 나쁘진 않군. 구천성의 주인이 바뀐 것을 기념할 정도는 되겠어. 하지만 원단이 지나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말라고 전해라.”

“걱정 마십시오. 아무리 분노했다 해도 사형의 대계를 망치지는 못할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담담히 말하며 찻잔을 내려놓은 공손백이 눈을 들었다.

순간, 그의 전신에서 거대하고도 태산만큼이나 무거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 기세가 얼마나 거센지 커다란 대전조차 그가 손을 한번 저으면 장난감 집처럼 부서질 듯했다.

“어젯밤 독고태가 우문각을 만났다고 했지?”

백리호는 공손백의 입이 열리면서 겨우 숨을 들이쉴 수 있었다.

“예, 사형.”

“다른 놈은 다 건드려도 우문각은 안 된다. 나극과 독고태에게 경고를 보내서 함부로 움직이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줘라.”

잠시 생각한 백리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독고태가 애지중지하는 계집에게 머리 없는 고양이를 선물로 보내겠습니다.”

독고태가 총애하는 애첩의 이름은 은묘(銀猫). 그녀는 하얀 고양이를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

 

겨울해가 동쪽 산 위로 힘겹게 올라설 무렵.

‘창문이 열렸나?’

차가운 새벽공기가 매미날개처럼 얇은 속옷 사이로 스며들었다.

“아이, 추워.”

잠에서 깬 은묘는 몸을 뒤척이며 이불을 끌어당겨 목까지 덮었다.

그때 언뜻 손이 스친 왼쪽의 이부자락이 축축한 듯 느껴졌다.

뭔지 몰라도 손에 닿은 감촉이 영 좋지 않았다.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은 그녀는 앙증맞은 하품을 하며 습관적으로 왼손을 들어서 입을 막았다.

아아아함.

그제야 축축한 느낌의 정체를 깨달았다.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 입을 막은 손바닥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부자락이 축축하다 했더니 피가 묻어 있었나보다.

“어마, 오늘 그날도 아닌데 어디서 피가……?”

그렇다고 해서 어디 다친 곳도 없었다. 어디에서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얗고 윤기가 나는 이마를 찡그린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이불자락이 내려가며 매미날개 같은 속옷 속의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가냘프게 보이는 몸매인데도 의외로 가슴이 무척 컸다. 그런데 오십대 중반의 독고태를 사로잡은 그 가슴 부분에도 붉은 핏물이 묻어 있었다.

“뭐지?”

오싹 소름이 끼친 그녀는 눈을 홉뜨고 이불을 젖혔다.

순간!

“꺄아아아악!”

그녀의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얀 털이 시뻘겋게 변한 커다란 고양이가 이불 속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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