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8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43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80화
“두 소저도?”
“왜요, 저는 누군가에게 호승심을 느끼면 안 되나요?”
그림자 중 키가 큰 자, 사공명신이 달빛에 미소를 지었다.
“보통 여인들은 호승심보다 호기심을 많이 갖지요. 특히 남자에 대한 호기심은 지나칠 정도여서 가끔 피곤할 때가 있지요.”
“그런 여인들을 많이 아나 보죠?”
“굳이 많은 여인을 알 필요도 없소. 내 동생만 봐도 아니까. 그런데 두 소저는 내 동생과 너무나 다르군요.”
“어릴 때부터 생존을 위해서 살아오다 보면 일반적인 여인과는 다를 수밖에 없죠.”
사공명신이 슬쩍 눈을 돌려서 두양양을 바라보았다.
두양양의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음울하게 들렸다.
그런데 달빛에 비친 그녀의 옆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고향이 운남성 남쪽이라고 했던가?’
남들은 아름답다고 하지만, 피부색이 거무스름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자신은 거무스름한 피부보다 하얀 피부를 더 선호했으니까.
아마 밤이 아니었다면, 모든 사람들을 검게 물들인 어둠이 아니었다면 여전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생각이 든 순간, 문득 자신이 뭔가를 놓치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둠 속에서는 모두가 같다.
미운 얼굴, 예쁜 얼굴, 눈이 하나 있든, 코가 들창코든…… 그저 같은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겉모습에 집착했을까?
그래도 다시 밝아지면 피부색에 연연하겠지? 전과는 조금 다를까?
‘어쨌든 정말로 아름답군.’
사공명신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언제까지 그렇게 가자미눈으로 볼 건가요?”
두양양이 툭 쏘듯이 말했다.
사공명신이 재빨리 눈을 돌리고 얼버무렸다.
“오늘따라 밤바람이 유난히 차갑군요.”
순간, 그의 눈이 한껏 커졌다.
‘윽!’
속으로 비명을 지른 그는 오른발로만 통통 뛰었다.
“왜 그러죠?”
“튀어나온 돌에…… 발가락이…….”
절정고수도 발가락으로 튀어나온 돌을 차면 아픈 법이다.
두양양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고 속도를 조금 늦추었다.
‘꼭 호승심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를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어서 가는 거죠.’
***
태양이 지평선 위로 머리를 내밀 즈음, 장천운 일행은 합비에서 백이십 여 리 떨어진 곳에 있는 송림을 통과했다.
오 리 정도 이어진 송림이 끝나자 작은 개울이 나왔다.
그들은 개울가에서 쉬며 불을 피우고 준비해온 식량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먼저 저두심이 모닥불에 놋쇠로 된 과(鍋)를 얹고 차를 끓였다.
여행물품을 준비할 때만 해도 사람들은 저두심에게 핀잔을 주었다. 특히 힘이 세다는 이유로 물품보따리를 메게 된 구산이 제일 투덜거렸다.
그러나 따뜻한 차를 받아들자, 누구도 과를 갖고 가자고 한 저두심을 탓하지 않았다.
아침식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에 마른 육포와 만두 두어 개가 전부였지만,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바라보며 하는 식사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그런데 식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만 나와서 차라도 한잔 하시오.”
장천운이 숲을 향해 말했다.
다섯을 셀 즈음, 사공명신과 두양양이 숲속에서 나왔다.
그들을 한번이라도 봤던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남천신룡이잖아?”
“황산협녀도 왔는데?”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거지?”
그들의 의문을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장천운이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왜 우리를 따라온 거요?”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나 해서 따라왔네.”
장천운은 사공명신의 장난기처럼 느껴지는 대답에 눈빛이 싸늘해졌다.
사공명신은 강서 제일이라는 남경의 남천신문 문주의 아들이다.
그 정도 위치라면 그 동안 재미있는 일과 재미없는 일, 둘 중 하나를 자신의 마음대로 택하고, 그러한 선택을 당연히 여기며 살아왔을 것이다.
재미있으면 하고, 재미없으면 하지 않고.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재미없는 일이라 해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고, 그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또한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라 해도 할 수 없을 때가 있고, 억지로 했다가는 명령을 어겼다며 벌을 받을 때가 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팔자가 다른 것이다.
똥개도 잘 사는 집에서 자라야 상팔자로 살다 죽지 않는가?
하물며 뒷골목 고아 출신인 자신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재미라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선택의 조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사공명신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들 수밖에.
“두 소저는?”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서 따라와 봤어요. 어차피 나온 김에 함께 갔으면 싶은데, 괜찮겠어요?”
두양양은 사공명신보다 솔직했다.
“아주 위험한 길이 될 거요. 어쩌면 목숨을 내놓아야할지도 모르고.”
사공명신이 어깨를 으쓱했다.
“강호의 길이 다 그렇지 않은가? 그보다 차나 한 잔 주게. 찬바람 속에서 밤새 걸었더니 따뜻한 차가 그립군.”
강호의 길은 다 그렇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공명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길이 될 것이다.
게다가 조건도 까다로웠다.
“우린 놀러가는 것이 아니오. 지시를 따를 수 없다면 함께 갈 수 없으니 지금 돌아가시오.”
“어? 그것은 좀 마음에 안 드는데?”
사공명신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지시를 받는다는 것은 조직원으로서 움직여야한다는 말이다. 자유분방한 그로선 목숨을 내놓는 일보다 그게 더 마음에 걸렸다.
반면 두양양은 좀 더 세밀하게 따졌다.
“언제까지 지시를 따라야 하는 거죠? 수하로 들어오라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최소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그 후에는 손님으로서 머물든, 계속 함께 있든 상관없소. 단, 계속 함께 있을 것이면 서로간의 관계를 명확히 해야 하오.”
사공명신은 두양양의 눈치를 봤다. 마음에 드는 조건은 아니지만 두양양이 간다면 함께 갈 생각이었다.
두양양은 이마를 찌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그 결정은 목적지에 도착해서 해도 되는 거죠?”
“물론이오.”
“좋아요, 그럼 함께 가겠어요.”
두양양이 시원하게 결정을 내리자 사공명신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두 소저가 간다면 나도 가야지.”
장천운으로선 절정고수가 둘이나 합류한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최소한 구천성에 도착할 때까지는 써먹을 수 있을 테니까.
문제는 두 사람의 남다른 신분이었다.
“강서제일 세력인 남천신문의 뒤를 이을 사람이 너무 쉽게 결정하는 것 아니오?”
사공명신이 눈을 껌벅거렸다.
“응? 남천신문의 뒤를 이어? 누가 말인가?”
“귀하가 남천신문의 후계자라는 걸 모르는 강호인이 누가 있단 말이오?”
“하, 하, 하. 그게 말이야, 조금 와전된 이야기네. 내가 남천신문 사람인 것도 맞고, 부친이 문주인 것도 맞아. 하지만 후계자는 아니네. 남천신문은 첩의 자식을 후계자로 삼지 않거든.”
첩의 자식? 그럼 서자란 말?
“남들은 당신을 남천신문의 미래라고 하던데?”
“사실 그런 소문 때문에 내가 조금 곤란해졌네. 동생이 무척 싫어하거든. 아버지도 싫어하고. 첩의 자식이 소문주보다 더 유명해지면 아무래도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잖은가?”
가볍게 실실 웃으며 던지는 사공명신의 말투에서 오랜 세월 쌓인 아픔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 아픔이 끝이 아니었다. 그 아픔 너머에서는 이질적인 불길이 잠자고 있었다.
그것은 욕망의 불길.
아마 자신에게 특별한 감각이 없었다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서자로서 겪은 고통에 대한 보상을 원하는 건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서자로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당신도 꽤나 힘들게 살아왔나보군.’
장천운은 더 묻지 않고 그의 결정에 맡기기로 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마음대로 하시오.”
“내가 뼈저리게 후회한 것은 오 년 전이 마지막이네. 멍청하게도 절대로 해선 안 될 결정을 내렸거든. 그 이후론 후회하지 않기로 했지.”
씩, 웃은 사공명신이 따뜻한 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 결정으로 힘과 자유를 얻은 대신 사랑을 잃었다.
나중에서야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후회했을 때는 이미 사랑이 떠나간 뒤였다.
그날 이후, 그는 매일 죽음과 싸웠다.
그리고 삼 년쯤 지나서 정신을 차렸을 때, 남들이 그를 남천신룡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어디로 가기에 그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내거는 건가?”
“구천성으로 가오.”
“구천성? 그곳에는 왜?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소성주께서 돌아가시기로 결정하셨소.”
“소성…… 헛! 뭐?”
뒤늦게 장천운의 말뜻을 깨달은 사공명신이 입을 쩍 벌리고 눈을 부릅떴다.
두양양의 눈도 커졌다.
장천운은 그녀가 눈을 크게 뜬 후에야 눈동자의 색이 묘하다는 걸 알았다.
그녀의 눈동자 테두리에서 은은한 녹색이 비쳤다.
‘정말 신비한 눈동자군.’
***
광혈단 이조 조장 화응태는 대륙객잔의 싸움에서 부상을 입었다. 그 바람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남은 광혈단원을 지휘했다.
그런데 구천사령과 장로 정이청, 대주와 광혈단 무사들이 합비성에 들어간 후 아무런 연락이 없자 초조해졌다.
어느덧 동산 위로 고개를 내민 태양이 신나게 솟구치고 있었다.
반면 그의 마음은 태양이 솟구치는 만큼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그는 수하 둘을 시켜서 합비성 안의 상황을 알아보게 했다.
그로부터 두 시진 후, 화응태는 안색이 창백해져서 돌아온 수하의 보고를 받고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흑화방은 초상집이나 다름없는 상태입니다, 조장. 흑도무리들이 절반 가까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놈들이야 몰살을 당했든, 단체로 미쳐서 옷을 홀딱 벗고 춤추든 상관할 바 없었다.
“구천사령은? 장로님과 대주님은 어떻게 된 거야?”
“그게…… 흑화방을 공격하다가…… 전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코가 들창코인 무사가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야?
“시신은 남궁세가에서 수습해갔다고 합니다.”
“안 되겠다. 안으로 들어가서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야겠어.”
하지만 화응태는 합비성 안으로 들어가 보지 않고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합비성 서문에서 마차 두 대가 나오고 있었다.
남궁세가 무사 수십 명이 마차를 호위하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나름대로 엄숙했다.
“구천성에서 오신 분이오?”
남궁세가 쪽에서 남궁호가 소리쳤다.
그는 전날 광혈단과 두 번이나 싸운 터라 광혈단의 복장을 바로 알아보았다.
화응태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소.”
화응태와 광혈단 앞으로 마차를 몰고 간 남궁호가 무척 안타까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젯밤에 합비성 안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소. 글쎄, 누가 흑화방을 공격했지 뭐요? 그래서 가봤더니 이 사람들이 죽어 있었소. 뭐, 실수로 내 검에 한 사람이 죽긴 했는데, 부상당한 몸으로 도망치다가 나를 죽이겠다고 덤벼들어서 어쩔 수 없이 손을 썼소.”
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들이 누군데 흑화방 따위에게 당한단 말인가?
화응태가 믿든 말든 남궁호는 최대한 친절을 베풀었다.
“이쪽 마차에는 서 공자와 정 장로, 그리고 가 대주가 실려 있소. 저쪽 마차에는 다른 무사들이 실려 있고. 관에 잘 넣었으니 조심해서 운구하도록 하시오.”
“그럼…… 정말로……?”
화응태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마차는 돌려주지 않아도 되오. 내 실수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시오. 그럼 우린 창궁무전 준비 때문에 바빠서 이만…….”
남궁호는 찬바람 불어대는 들판에 마차를 놔둔 채 돌아섰다.
어차피 말은 노마고, 마차도 낡아서 아까울 것 없었다.
아마 저 마차를 끌고 가려면 속 좀 탈 것이다.
‘그래도 무거운 관을 들고 가는 것보단 낫겠지?’
관은 돈 좀 들였다. 두꺼운 원목으로 만들었으니까. 거기다 나무에 물까지 먹여서 무게가 일반 관보다 배는 더 무거웠다.
아마 돌아가는 시간이 배는 더 걸릴 것이다.
‘그 친구가 시간을 끌어달라고 했는데, 이 정도면 나도 할 만큼 한 거 아니겠어?’
화응태는 남궁세가 무사들이 서문으로 들어갈 때까지 발이 굳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한바탕 난리 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