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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7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51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78화

사명학 곁에는 구산과 진구, 저두심이 서 있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여인이 사명학의 상처를 천으로 감싸며 울고 있었다.

잘 봐줘도 십육칠 세나 되었을까 싶은 소녀였다.

“흑화방주의 딸인 소화 소저네.”

진구가 그녀를 아는 듯 말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구산이 투덜거렸다.

“이제 보니 저 소저 때문에 여기서 지낸다고 했던 거군. 엉큼한 놈.”

그때 정신을 잃은 줄 알았던 사명학이 힘겹게 손을 들더니 소화의 손을 잡았다.

“흑흑, 가가, 괜찮아요?”

장천운이 그녀 옆에 멈춰 서서 사명학을 내려다보았다.

피를 많이 흘리고 갈비뼈가 잘리긴 했지만 다행히 심장을 다치진 않았다. 옆구리의 상처도 몸을 비틀어 피한 덕에 내장은 무사한 듯했다.

아니라면 이미 죽었겠지.

‘더 이상 큰 충격을 받지만 않으면 목숨은 건질 것 같군.’

무공이 문젠데, 아무래도 부상 상태가 심각해서 정상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흑월조의 수련을 버텨낸 친구이니 어떻게든 예전의 모습에 가깝게 돌아오지 않겠는가.

“명학이의 심장을 가른 사람은 서궁이지만, 옆구리의 일검은 가등에게 당한 것이오. 보시면 알겠지만, 전홍기의 상흔과 똑같소. 구산, 그 불 좀 떼어와.”

구산이 기둥에 붙어 있는 초롱불을 떼어서 들고 사명학을 비추었다.

옆구리 상처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장천운의 말대로 검흔이 똑같았다.

남궁호는 검흔을 확인하고 이를 갈았다.

“정말 가등이 범인이었군.”

그때 사공명신이 말했다.

“그래도 서궁은 살려놓았어야 하지 않을까? 벽호당주 서호가 서궁의 죽음을 알면 절대 가만있지 않을 텐데.”

“몸 안의 뼈가 조각조각 부서졌소. 그 상태로는 살려서 돌려보내느니 차라리 죽이는 게 낫소.”

“살려서 보내는 것보다 죽이는 게 낫다?”

“그렇소. 살려서 보내면, 서호는 병신이 된 자식을 볼 때마다 두고두고 한을 씹으며 복수를 생각 할 거요. 하지만 죽었다는 걸 알면, 그는 복수와 욕망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소.”

“복수야 그렇다 치고, 욕망은 또 뭘 말하는 건가?”

“구천성의 대권이 오락가락 하는 걸로 알고 있소. 복수를 하겠다고 날뛰다가 다른 간부에게 서열이 밀리느냐, 아니면 입지를 확실하게 다지느냐, 그는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그는 자식의 복수를 위해서 욕망을 접을 자가 아니오.”

그 말에 남궁호가 미간을 좁히고 말했다.

“구천성을 잘 아나 보구려.”

“남보다 조금 더 아는 정도요.”

“다른 자들이 복수를 돕겠다고 함께 나설 수도 있지 않소?”

“신뢰가 무너진 현재의 구천성에 그 정도의 의리를 지닌 사람은 많지 않소. 아마 그를 돕겠다는 사람보다는 그의 낙마(落馬)를 기다리는 사람이 더 많을 거요.”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로 냉정한 추측이다.

거기다 감정이 배제된 무심한 어조는 듣는 사람들의 심장을 싸늘하게 식히고도 남았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왜 죽였소?”

“어차피 오늘 이후 구천성과는 적이 될 수밖에 없소. 그렇다면 한 사람의 적이라도 줄이는 게 상책 아니겠소?”

장천운은 당연하지 않느냐는 투로 둘러댔다.

틀린 말이 아니니 남궁호도 더 이상 추궁할 수가 없었다. 그저 가슴이 이상할 정도로 답답할 뿐.

아무리 미래에 적이 될 자라 해도 구천성과 같은 거대세력의 사람을 제거한다는 것은 냉정한 판단력과 강심장이 없으면 힘든 일이다.

그런데 장천운은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손을 썼다.

자신이라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정체가 뭔지 모르겠군.’

저자는 적인가, 아니면 친구인가?

정체가 뭐기에 구천성의 내막을 잘 아는 거지?

남궁호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 의문을 파헤치겠다고 상대를 몰아붙이기도 애매했다.

“어쨌든 구천성에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군.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은 분명한데…….”

“남궁 형에게 부탁하나 해도 되겠소?”

“부탁?”

“저들은 시신을 찾으려 할 거요. 시신은 넘겨주되 시간을 조금 끌어주시오.”

“왜……?”

남궁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우린 오늘 밤 합비를 떠날 거요. 더 이상 저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소.”

“흐음, 오래 놔둘 순 없어도, 잠시라면 어떻게 해보겠소.”

그때 두양양이 물었다.

“여길 떠나면 어디로 가실 건가요?”

장천운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보면, 어딘가에는 우리가 머물 수 있는 곳이 나오지 않겠소?”

두양양은 기이한 눈빛으로 장천운을 쳐다보기만 할 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장천운도 그쯤에서 몸을 돌렸다.

 

 

34장: 시간을 끄는 법

 

 

장천운은 사명학을 놔두고 대장간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사명학은 죽기 직전의 중상을 입은 상태다. 대장간까지 옮기느니 흑화방에서 치료하는 게 나았다.

소화는 그의 결정에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다.

뒤늦게 사명학과 소화의 관계를 알게 된 구산과 진구, 저두심은 대장간에 도착할 때까지 투덜거렸다.

“이제 보니 도적놈이 바로 옆에 있었어.”

“어쩐지 흑화방에서 지내는 게 편하다고 하더니…….”

“엉큼한 새끼. 혹시 이미……?”

중상을 입은 사명학이 조금도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불쌍하기는커녕 부럽기까지 했다.

 

사마경은 사명학이 중상을 입었다고 하자 무척 안타까워했다.

“서궁에게 당했다고? 죽진 않겠지?”

“예, 아가씨. 치료하는 데 시일이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별 일만 없다면 목숨을 잃진 않을 겁니다.”

“서궁은?”

“제 손에 죽었습니다. 잘근잘근 뼈를 부숴 버렸죠.”

“잘 죽였어. 그자는 그렇게 죽어도 싸.”

“명학은 흑화방에서 계속 치료하게 놔두고, 자시 쯤 출발할 생각입니다.”

장천운의 말에 사마경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유모도 이제 많이 좋아져서 크게 무리만 하지 않으면 괜찮을 거야.”

장천운이 철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철무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모호했다. 살짝 내리 깔은 눈은 초점이 없이 허공을 보는 듯했고, 꽉 다문 입술은 말라붙어서 보풀이 일어나 있었다.

깊은 갈등에 빠진 표정.

장천운은 철무의 표정을 그렇게 해석했다.

왜, 무엇 때문에, 무슨 고민에 빠진 걸까?

“구천무령께선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가 물었다.

철무는 눈의 초점을 잡고 장천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곧 사마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말씀해 보세요, 철무 아저씨. 그러고 보니 흑화방의 일이 있기 전에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죠?”

철무가 숨을 들이켠 후 소리 나지 않게 한숨을 쉬고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소성주, 지금 행복하십니까?”

“응.”

“성에 있을 때보다도 좋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훨씬 나아.”

대답하는 사마경의 얼굴이 너무 밝아서 빛이 나는 듯했다. 행복의 빛.

철무는 사마경의 표정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더 말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저리 행복해 하는 사마경에서 어찌 피의 길을 재촉하랴.

하지만 그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보았다.

“만약…… 성주님께서 성에 계시다면…… 그래도 밖으로 나오신 게 행복하셨을까요?”

사마경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사마중천을 떠올린 그녀가 철무에게서 시선을 떼고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전에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는 걸 더 원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밖에서 행복해도…… 아버지가 성에 계시다면, 나도 성에 남았을 거야. 어머니도 안 계시는데 나까지 떠난다면 아버지가 너무 불쌍하잖아.”

철무는 사마경이 아버지에 대해서 원망하는 마음만 있는 줄 알았다.

구천성을 떠나기 전까지 십여 년 동안 그런 모습만 봤으니까.

그래서 행복을 찾아 떠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을 보니 자신이 잘못 생각한 듯했다.

부친의 죽음을 보고 심경의 변화가 생겼든, 아니면 전부터 그런 마음이었는데 표현을 못했든, 중요한 것은 시기가 아니라 그녀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미처 몰랐군.’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라면 진실을 감추는 게 자칫 큰 실수가 될 수도 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그는 사마경이 충격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며 입을 열었다.

“소성주, 만약…… 성주님께서 병으로 돌아가신 게 아니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마경이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슨 말이야? 왜 그런 걸 물어봐?”

“성주님께서 병 때문이 아니라 음모에 당해 돌아가셨을 경우에 대한 소성주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 물어본 것입니다.”

철무의 말이 이어지면서 사마경의 표정도 서서히 굳어졌다.

그때 장천운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성주님의 죽음에 대해서 따로 밝혀낸 사실이라도 있습니까?”

“그렇다네.”

“병이 아니라면, 독이었습니까?”

그리 물어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듯 철무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사실, 대 구천성의 성주께서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 아닙니까?”

“분명 이상한 일이지. 하지만 아직 음모자가 누군지 명백하게 밝혀지진 않았네. 아니, 음모인지 아닌지조차 확실하지 않네.”

“독에 의해 돌아가신 것은 분명한데 음모에 의해서인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중독된 것인지 모른다는 뜻입니까?”

“맞아. 그래서 확고하게 말씀드리지 못한 거네.”

“그 일을 조사하신 구천무령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철무가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가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나는…… 성주께서 음모에 의해 독살 당했다고 보고 있네.”

멍하니 있던 사마경이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쳐 물었다.

“천운, 황 당주가 오랜 병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했잖아? 영호 령주도 아버지가 병을 앓아왔다고 했고!”

감정을 최대한 누르고 한 말임에도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장천운이 사마경을 바라보았다.

“황 당주는 일차 조사를 마치자마자 자결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저들에게 당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쨌든 그가 저들과 한통속이었다면, 그 정도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겁니다.”

“영호 령주나 원 령주는?”

“그분들은 정말로 몰랐을 겁니다. 성주님조차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당신이 중독되었다는 걸 모르셨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왜, 왜 그런 말을 나에게 안 했어?”

“의문일 뿐이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 그런 의문은 저 외에도 많은 사람이 품고 있었지요. 총사 역시.”

“그래도 말했으면 어떻게든 확인해볼 수…….”

“말했으면…… 아마 소성주께선 이미 저들의 손에 당했을 겁니다. 당연히 밖으로 나오시지도 못했겠지요.”

“아무리 그래도…… 철무 아저씨, 정말, 정말 아버지가 독살 당했다고 생각해? 말해봐, 어서!”

사마경의 목소리가 커졌다.

커다란 눈에는 어느새 물기가 맺혀 있고, 의자의 손잡이를 잡은 손끝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철무도 더 이상 대답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소성주. 현재까지 조사한 바로는 성주께서 독살 당하셨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독에 당해서 돌아가셨단 말이지?”

“예, 소성주. 정확히는 뇌혈산(腦血散)이라는 기독에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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