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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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6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77화
“크억!”
사명학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회전하는 검기가 살을 찢으며 파고들어서 뼈까지 부수었다.
강렬한 그 고통에 강련곡의 수련과 흑월조 수련을 견뎌낸 사명학마저 비명을 내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떼굴떼굴 세 바퀴나 구른 그의 몸이 온통 피로 물들었다.
그 상태에서도 그는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다해보았다. 그러나 옆구리의 상처로 인해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흐흐흐, 이제야 조용해졌군.”
지켜보고만 있던 서궁이 음침한 조소를 흘리며 사명학에게 다가갔다.
“지금이라도 흑월조 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면 목숨은 살려주마.”
“피가 빠져나가니까 개소리도 이상하게 들리는군.”
“네놈이 정녕 지옥을 구경하고 싶은가 보구나.”
“서궁, 너 그거 알아?”
“뭘 말이냐?”
“네 목소리가 개소리보다도 더 듣기 싫다는 거.”
서궁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네놈의 사지를 하나씩 잘라주마. 어디 그래도 버티는지 보자.”
그가 검을 사선으로 들어올렸다. 두 자 네 치의 검신에서 아지랑이 같은 검기가 넘실거렸다.
사명학이 그 검기를 보며 하얗게 웃었다.
“그래, 역시 너답구나, 서궁. 너 같은 놈은 무사의 도리가 뭔지도 모르지. 사지를 자르던 팔지를 자르던 마음대로 해. 그래야 내 시신을 보고 사람들이 너를 욕할 거 아니냐? 무사도 아닌 개잡종이라고 말이야.”
“닥쳐라!”
서궁이 평정심을 잃고 검을 내리쳤다.
본래 팔 하나를 자르려던 그의 검이 가슴을 가르고 지나갔다.
쩍 벌어진 가슴에서 피분수가 뿜어졌다.
그 상태에서도 사명학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웃음을 지은 모습 그대로 스르르 쓰러졌다.
사지가 잘리며 죽는 것보다는 한방에 죽는 게 편했다. 다행히 상대의 속을 긁은 것이 효과가 있었나보다.
‘너도 곧 알게 될 거다, 천운이 얼마나 독한 친군지.’
“제기랄.”
서궁이 짜증을 내며 돌아섰다.
그때 일갈이 그의 고막을 뒤흔들었다.
“명학아!”
서궁은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서너 사람이 날아들고 있었다. 죽은 놈의 동료들인 듯했다.
“오호! 흑월조 놈들이구나! 그러잖아도 한 놈으로는 아쉬웠는데 잘 됐군!”
“명학아! 이 개자식들!”
“다 죽여버리겠어!”
진구와 저두심이 악을 쓰며 광혈단 무사를 공격했다.
셋 중 가장 강한 구산이 정이청을 상대했다.
장천운은 곧장 서궁과 가등 앞으로 나아갔다.
서궁은 그때까지도 다가오는 사람이 장천운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일 장 거리를 두고 걸음을 멈춘 장천운은 사명학을 내려다보았다.
피분수를 뿜으면서도 웃고 있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거린다. 하지만 목소리 대신 핏물만 흘러나온다.
“바보같이. 그냥 돌아오라니까.”
“저, 저 개…… 부숴 버려…….”
“잔소리 말고 가만 있어.”
장천운은 혈도를 찍어서 지혈을 한 후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조소를 짓고 있는 서궁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마주치자, 서궁이 비릿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도 그놈처럼 죽고 싶지 않으면 순순히 내말을…….”
“정말 개새끼가 짓는 것 같군.”
“……!”
“살려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서궁. 두들겨 맞은 개새끼처럼 도망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서궁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분노가 머리꼭대기까지 치민 것으로도 모자라서 백회혈을 뚫고 폭발할 듯했다.
“이 찢어죽을 놈이 어디서……!”
그때 가등이 먼저 몸을 날렸다.
“서 공자, 그놈은 내가 처리하겠네!”
그는, 검도 뽑지 않고 서 있는 장천운이 겁을 먹었다고 생각한 듯 앞뒤 재지 않고 곧장 공격했다.
장천운이 가등을 향해서 한 걸음 내디뎠다.
두 주먹이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검세 사이를 파고들었다.
밖에서 보면 평범한 주먹질이었다. 그러나 주먹을 대한 당사자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기분. 그러한 기분은 주먹에 맞았든 맞지 않았든 똑같이 느껴졌다.
“뭐, 뭐야?”
면면부절 끊이지 않고 뻗어나간 주먹은 벼락이었다.
콰광!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알 틈도 없었다. 가등은 전력을 다해서 권격을 막았다.
검기가 나선으로 휘돌며 권격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쾅!
이를 악다문 가등은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져서 정신없이 물러섰다.
난생 처음 대해본 무시무시한 권격.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숨이 콱 막혀서 얼굴이 시뻘게졌다.
서궁이 그 광경을 보고 경악으로 눈을 부릅떴다.
“저놈이 누군데……!”
그때 장천운이 서궁을 향해 돌아섰다.
서궁은 얼굴이 달라진 장천운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장천운이 그를 향해 걸음을 내딛자 눈을 홉떴다.
문득 조금 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얼굴은 전과 달랐지만, 목소리는 분명 그였다.
절대 잊을 수 없는 놈!
“설마…… 장천운?”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천 형! 우리도 왔네! 걱정 말고 그놈이나 잡게!”
방호와 그의 일행이었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하하하! 구천성이 잔머리나 굴리는 자들인 걸 오늘에서야 알았군!”
“정 장로! 오전에 못 다한 승부를 가려봅시다!”
남궁호와 사공명신, 두양양 마저 나타났다.
서궁 등이 성 안으로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은 시간은 그들과 장천운이 비슷했다.
그들은 보고를 받자마자 남궁세가를 나섰다. 하지만 행선지를 몰라서 대륙객잔으로 가는 바람에 장천운보다 늦게 도착한 것이다.
구산 등이 걱정이었던 장천운으로선 그들의 등장이 반갑기만 했다.
“서궁, 우리도 시작해볼까?”
장천운은 처음부터 작정하고 서궁을 혼천수라권으로 상대했다.
혼천수라권이 뛰어난 무공이어서만은 아니었다.
최대한 잘근잘근 짓이길 작정이었다.
사명학을 위해!
콰과광!
검기와 권풍이 맞부딪치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충격이 큰 듯 나름대로 내공에 자신이 있던 서궁의 얼굴이 움켜쥔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이 놈이 어디서……!”
그러나 대결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그리고 혼천수라권은 쉴 새 없이 한 시진을 펼쳐도 끊임이 없는 절고의 권법이었다.
서궁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가공할 권풍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돈 많은 아버지 덕분에 영약을 많이 먹어서 공력은 높였지만, 초식은 돈이나 영약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십여 초식의 공방이 지나면서부터는 손목이 시큰거리고 가슴이 턱턱 막혔다.
쾅! 콰광!
이십여 초식에 이르렀을 때는 입술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흐읍!”
창백한 안색, 일그러진 얼굴. 처한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의 표정.
하지만 그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듯 그의 검이 돌변했다.
“오냐, 이놈! 이것도 받아봐라!”
서궁의 검첨에서 검기가 쏟아져 나왔다.
순간, 장천운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너는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서궁!”
나직이 일갈을 내지른 장천운이 주먹을 엇갈리며 벼락처럼 쳐냈다.
찰나에 칠 권이 쏟아져 나오더니 밀려드는 검기를 휘감았다.
혼천수라권의 회(回)자결과 파(破)자결이 동시에 펼쳐진 것이다.
날아들던 검기가 권풍에 휘말려서 산산이 부서졌다.
그와 동시, 충격을 이기지 못한 서궁이 뒤로 주르륵 물러서더니 한 움큼 피를 토했다.
우웩!
보통 대결에서 그 정도면 손을 멈추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장천운은 그대로 쇄도하며 찰나에 십팔 권을 내질렀다.
“아, 안 돼!”
서궁이 해쓱한 표정으로 검을 들어서 막아봤지만, 절반도 막기 전에 검이 허공으로 튕겨져서 날아갔다.
장천운은 검을 놓친 팔을 좌수로 휘감고는 그대로 꺾었다.
콰직!
“끄억!”
팔뼈가 으스러지며 서궁의 얼굴이 나찰귀처럼 일그러졌다.
장천운에게 팔뼈가 부러져본 경험이 있는 그로선 악몽이 따로 없었다.
“이건 명학이를 대신한 복수다, 서궁!”
냉랭히 소리친 장천운이 우수를 벼락처럼 뻗었다.
콰과과광! 우직! 퍼벅!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졌다.
턱뼈가 쪼개지고 하얀 이가 부서져서 허공으로 튀었다.
순식간에 십이 권을 얻어맞은 서궁의 몸이 해파리처럼 늘어졌다.
“나는 너 같은 놈을 잘 안다. 남에게 고통을 줄 때는 즐거웠겠지?”
“사, 사, 살려줘…… 제, 제발…….”
“서궁, 너는 해충 같은 놈이다. 해충은 살아 있어봐야 주위에 해만 끼치지.”
“아, 안…… 제, 제발 살려…….”
서궁이 부들부들 떨며 애원했다.
그러나 장천운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서궁은 벽호당주의 외아들이다. 죽으면 피의 폭풍이 거세게 불어댈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이상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소성주를 위해서라도.
“그만 지옥으로 가라, 서궁.”
장천운이 손을 흔들자, 뇌정무극수가 심장을 부숴버렸다.
“꺽!”
서궁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풀쩍 뛰었다가 떨어져서 널브러졌다.
장천운은 무심한 눈으로 그를 보며 손을 거두었다.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리는 몸, 급격히 꺼져가는 눈빛.
구천성 벽호당주의 아들로 남부러울 것 없었던 서궁이 컥컥거리며 비참하게 죽어간다.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모습.
하지만 결정을 내린 이상 후회하진 않았다.
‘나는 소성주의 호위무사다. 소성주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야 해.’
그는 죽어가는 서궁에게서 냉정하게 시선을 돌리고 사명학에게 다가갔다.
사명학을 조심스럽게 안아든 그의 눈매가 잘게 떨렸다.
사명학의 옆구리 역시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는데, 오전에 본 검흔과 비슷했다.
그는 사명학을 안전한 곳에 내려놓고 옆구리로 손을 가져갔다.
현월은 고의로 가져오지 않았다. 구천성의 누군가가 알아보면 엉뚱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스르르르.
요대처럼 허리에 감겨 있던 연검이 그의 손짓을 따라 부드럽게 뽑히며 시퍼런 몸체를 드러냈다.
서궁이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비록 다른 소리에 묻혀버렸지만, 정이청과 광혈단 무사 중 들은 자가 있을지 모른다.
소성주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뜻.
‘모두 지운다!’
가볍게 땅을 구르자, 그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가장 늦게까지 이어진 사공명신과 정이청의 싸움이 백여 초식 만에 끝이 났다.
“이, 이런 어이없는…….”
정이청이 자신의 심장 부위를 왼손으로 틀어막고 말을 더듬었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핏물이 손가락 사이로 쿨렁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귀하보다 내 운이 좀 더 좋았소.”
사공명신이 창백한 안색으로 말하며 검을 거두었다.
-남천신룡이 섬혼수 정이청을 꺾었다!
내일부터 그 소문이 강호 곳곳으로 달려가리라.
그것만으로도 합비까지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창궁무전은 애들 소꿉장난이나 마찬가지였다.
털썩.
부들거리며 피를 쏟아내던 정이청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것으로 한밤에 흑화방을 피로 물들인 싸움은 끝이 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환호대신 굳은 표정으로 주위만 둘러보았다.
흑화방을 공격한 구천성 무사 중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 도주하려던 자들조차 장천운이 냉혹하게 숨통을 끊어버렸으니까.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은 서궁과 정이청, 광혈검마의 제자인 가등의 죽음이었다.
특히 서궁의 처참한 죽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왜 서궁을 죽인 거요?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잖소?”
남궁호가 침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속은 시원했지만 뒤탈이 만만치 않았다.
“내 친구가 그에게 당했어. 그것만으로도 죽일 이유는 충분해.”
장천운은 무심한 어조로 말하고 사명학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