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76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33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76화
장천운과 철무 사이에 끼어 있는 왕규는 죽을 맛이었다.
앞뒤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의 그물이 그를 칭칭 얽어매고 있었다.
“자네에게 볼일이 있다더군.”
“아무에게도 알리면 안 된다고 말씀드린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어둠조차 진저리치는 기운이 장천운의 전신에서 흘러나와 왕규를 휘감았다.
왕규는 식은땀을 흘리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굳이 내가 말할 것도 없었네. 자네를 나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었으니까.”
“나를 루주보다도 더 자세히 안다?”
철무를 바라보는 장천운의 눈빛이 어둠보다 더 어둡게 가라앉았다.
느릿하게 말아 쥐는 주먹에서 은은한 아지랑이가 일렁거렸다.
그때 철무가 말했다.
“총사의 말보다 더하군.”
‘응?’
“그는 자네의 실력이 성의 장로나 호법들에게 뒤지지 않을 거라고 했지. 그런데 헛소리였어.”
“총사를 아시오?”
“어지간한 장로나 호법은 둘이 덤벼도 자네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은데, 대화를 나누기 전에 진짜 실력을 한번 알아보고 싶군.”
왕규는 자신의 몸을 뒤덮었던 그물이 눈 녹듯 사라지자, 재빨리 옆으로 비켜났다.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어?’
그는 이제 어디 가서도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지 않기로 했다.
정말 세상에는 무시무시한 놈들이 너무 많았다.
‘그냥 구석에서 정보장사나 하는 게 오래 사는 길이지.’
그때 구산이 어깨를 으쓱하며 나섰다.
“그 전에 나하고 먼저 해봅시다.”
그 동안 실력이 적지 않게 늘은 그였다. 하지만 정체를 들킬까봐 함부로 실력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본 철무는 그의 피를 끓게 했다.
“안 돼. 구 형은 아직 저자의 적수가 아냐.”
구산이 이마를 찌푸리며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재보면 알겠지.”
“저 사람이 누군지 알아?”
“누구든 상관없어.”
장천운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한번쯤 하늘을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했다.
“그럼 삼 초만 싸워 보고 물러서.”
겨우 삼 초식?
구산은 불만이 많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삼 초식 안에 끝내버리지 뭐.
“조심하쇼.”
무뚝뚝하게 한마디 내뱉은 구산이 두 주먹을 앞세우고 몸을 날렸다.
삼 초. 정확히 삼 초 십이식을 겨루었다.
구산의 표정은 공격 직후부터 일그러졌다.
상대는 유령이었다. 분명히 주먹으로 쳤는데도 손에 걸리는 것이 없었다.
날아드는 손을 잡았는데도 허공만 움켜쥐었다.
진기로 감싸서 터트려 버리려 했는데, 허공만 터져 나갔다.
대신 일 초식을 펼칠 때마다 한 대씩, 세 대 맞았다. 마지막 세 번째 공격은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해서 맞은 직후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끄응,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철무도 끙끙거리며 일어서는 구산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대충 싸운 것이 아니다. 자신의 실력을 대부분 드러냈다.
조금만 방심했다면 나뒹군 사람은 덩치 큰 저놈이 아니라 자신이었을 것이다.
거기다 다른 두 놈도 덩치와 큰 차이는 없을 듯하다.
셋이 덤빈다면 이길 수 있을까?
패하진 않는다 해도 고생은 좀 해야 할 것 같다.
‘흑월조라 했던가? 생각보다 강하군.’
하지만 진짜배기는 아직 등장도 하지 않았다.
철무는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온몸의 신경이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당겨졌다.
“이제 자네 차례군.”
“원하신다면.”
찰나, 장천운의 모습이 어둠속으로 흩어졌다.
철무도 허깨비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지켜보던 왕규와 구산, 진구, 저두심은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어둠을 응시했다.
대장간 앞마당은 제법 넓었는데 어디에서도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회오리치는 어둠 뿐.
유령과 귀신의 대결?
어이없지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터텅! 퍼퍼벅!
짧고 강렬한 소음이 어둠 속에서 울렸다.
그리고 유령과 귀신이 처음 서 있었던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약간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철무의 어깨 한쪽이 살짝 처져 있다는 걸.
“천하에 유령마영(幽靈魔影)보다 더 어이없는 신법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군.”
“제가 생각해도 미치지 않고는 익힐 수 없는 것이죠.”
“내가 누군지 아나?”
끄덕끄덕.
“구천무령 철무, 성주의 그림자. 맞습니까?”
33장: 친구를 버리고 갈 순 없다
사마경은 어깨를 쭉 펴고 머리를 뒤로 당긴 채 오연한 자세로 철무를 맞이했다.
“오랜만이야, 철무 아저씨.”
그녀의 목소리 끝이 살짝 흔들렸다.
나름대로 침착하려 했지만 격동하는 마음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그 동안 별고 없으셨습니까, 소성주.”
“안 보여서 걱정이 많았어.”
“성주님의 명으로 조사할 것이 있어서 성을 떠나 있었습니다.”
“아저씨도 아버지께서 병에 걸리셨다는 걸 알았어?”
“예, 소성주. 하지만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소성주.”
철무가 고개를 더욱 깊숙이 숙였다.
사마경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가 무슨 잘못이야? 잘못을 따지자면, 아버지가 병에 걸린 것도 모르고 투정만 부린 내 잘못이 더 크지.”
“소성주…….”
“그렇게 돌아가실 줄 알았으면 더 잘해드렸을 텐데……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하겠어?”
끝내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철무는 천천히 고개를 쳐들고 사마경을 바라보았다.
이전의 사마경이 아니었다. 부드러움 속에 오연한 기상이 잠재된 그녀에게서 여제의 모습이 엿보였다. 아직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항상 아이 같던 사마경이 언제 이렇게 컸던가?
‘성주,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소성주께서 이제 어른이 되셨습니다.’
누구보다 사마중천의 마음을 잘 아는 그다. 사마경의 의연한 모습을 보니 가슴이 먹먹했다.
“우린 소주와 항주 쪽으로 가볼 생각이야. 어쩌면 그곳에 자리를 잡을지도 몰라.”
사마경의 말이 철무의 가슴을 다시 가라앉혔다.
“그 전에 먼저 결정을 내려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어떤 결정? 혹시 소성주 자리를 내놓을 것인지, 그걸 결정해 달라는 거야?”
“그와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걱정할 것 없어. 우문 숙부께 가서 말씀드려줘. 나는 소성주 자리에 미련이 없다고.”
“먼저 제 말씀을 듣고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말해봐.”
철무는 숨을 골랐다.
막상 독살에 대해서 말하려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곳으로 올 때만 해도 복수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불공대천지수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사마경의 행복한 모습을 보니, 복수가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수의 길로 들어서면 목숨을 내걸고 피를 봐야 한다.
지금의 저 행복한 상상은 영원히 꿈으로만 끝날 수 있다.
또한 복수의 대상이 너무 거대하다는 것도 그를 망설이게 했다. 상대에게 당할 확률이 훨씬 더 큰 것이다.
차라리 모든 걸 잊고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저승에 계신 성주께서도 딸이 행복의 길을 찾아서 떠나는 걸 바라시지 않을까?
자신이 말하지만 않으면 그렇게 살 수 있다.
우문각에게 말하면 그도 이해하겠지.
철무가 망설이고 있는데, 밖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조자아앙!”
미간을 좁힌 채 철무를 바라보고 있던 장천운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지?”
“서궁과 광혈단이 돌아와서 흑화방을 공격했네. 아무래도 명학이 때문인 것 같아.”
사명학은 오랫동안 사귄 친구들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떠날 때쯤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사이 서궁이 들이닥친 것이다.
어쨌든 흑화방은 사명학이 있다는 것 외에도 유진생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곳.
장천운으로선 서궁에게 당하도록 놔둘 수 없었다.
“아가씨, 저희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가봐.”
사마경도 이번만큼은 고집 부리지 않았다.
“아가씨를 부탁합니다.”
장천운은 사마경의 호위를 철무에게 맡겼다.
철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로선 잠깐 생각할 시간을 번 셈. 차라리 잘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마경과 함께 있다 보면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어쩌면 운명의 주사위를 하늘에 맡겨야 할지도 모르겠군.’
***
서궁과 정이청은 광혈단 고수 열 명만 대동하고 합비로 들어왔다.
그들은 흑화방으로 달려가서 경고도 없이 전격적으로 공격했다.
흑화방이 합비의 흑도에서 제법 힘을 쓴다지만, 강호의 고수들을 상대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고, 피가 어둠을 붉게 물들였다.
순식간에 수십 명이 죽고 수십 명이 쓰러졌다.
흑화방을 빠져나가려던 사명학은 떠날 수가 없었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난 일 년 가까이 시시덕거리며 친구처럼 지낸 사람들이다.
그들이 사지가 잘리고 목이 베어져서 죽어가고 있다.
흑화방의 안쪽 마당은 이미 피가 흥건해진 상태, 사방에 널브러진 시신이 벌써 수십 구다.
그들을 버리고 어찌 그냥 간단 말인가.
더구나 위험에 처한 사람 중에는 소화도 있었다. 흑화방주 소순의 딸.
결국 그는 떠나는 대신 그 동안 숨겼던 자신의 실력을 모두 드러냈다.
흑화방도들은 사명학이 놀라운 무공을 펼치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개중에는 사명학을 부하 다루듯 했던 자도 있었고, 잔심부름이나 시키던 자도 있었고, 가끔씩 뒤통수를 때리며 욕을 퍼부은 자도 있었다.
당황한 그들은 사명학의 눈치를 보며 탈출로를 찾아서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사명학 혼자서는 전세에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저 동료 십여 명에게 도망갈 시간을 준 것이 전부일 뿐.
그마저도 서궁과 함께 혈포중년인이 나타나면서 더 이상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흥! 네가 흑월조 놈이구나!”
혈포중년인이 검을 빼들고 사명학을 공격했다.
오전에 두양양과 대결을 벌였던 자, 광혈검마의 제자인 가등이었다.
사오 초식의 공방이 이어지는 사이 사명학의 몸에 두어 군데 상처가 생겼다.
사명학이 전보다 강해졌다 해도 가등과 같은 절정고수를 혼자 상대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다른 놈은 어디에 있느냐? 순순히 말한다면 살려주겠다!”
가등이 다그쳤다.
사명학이 냉소를 지으며 맞받아쳤다.
“어디서 개가 짓는 거냐!”
“이 죽일 놈이!”
“흥! 어디 죽이고 싶으면 죽여 봐라, 개자식!”
“오냐, 이놈!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주마!”
가등은 계속되는 ‘개’소리에 오전의 분노까지 한꺼번에 폭발해버렸다.
광혈검마의 다섯 제자 중 하나인 그가 언제 그런 욕을 들어보았던가.
사명학의 입을 통해서 다른 놈을 찾으려 했던 계획조차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그는 곧바로 살초를 펼쳤다.
쏴아아아아!
그가 검을 뻗자 소나기 같은 검기가 사명학을 뒤덮었다.
사명학이 사력을 다해서 대항했지만 내공의 차이가 너무나 컸다. 더구나 그는 광혈단 무사들과 싸우느라 힘이 빠질 대로 빠진 상태였다.
쩌저정!
“크윽!”
삼 초 만에 다시 어깨가 갈라진 사명학이 신음을 삼키며 뒤로 물러섰다.
사명학을 죽이기로 마음먹은 가등은 지체 없이 쇄도하며 검을 뻗었다.
검첨이 파르르 떨리며 십여 줄기 검기가 악마의 이빨처럼 뻗어나갔다.
사명학은 오싹 소름이 끼쳤다.
쐐기처럼 생긴 검기가 나선을 그리며 날아드는데 어느 쪽으로 날아들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사명학은 정면으로 부딪치지 못하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가등이 펼친 검기는 빠르고 강력했다.
두 줄기 검기가 사명학의 방어막을 뚫고서 옆구리를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