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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7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50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72화

“들어오시오.”

왕규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대장간의 문턱을 넘었다.

대장간 안으로 들어가면 두 번 다시 과거의 길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그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구천성의 그물에 갇힌 그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최소한 그 건방진 새끼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다시 한 번 결심을 굳힌 그는 장천운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걸음을 옮겼다.

 

장천운은 왕규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방문을 닫고 돌아선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무슨 일로 찾아왔습니까?”

“구천성에서 자네들을 찾고 있네.”

알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모른 척했다.

“그들이 왜 우릴 찾는단 말입니까?”

“그거야 자네들이 더 잘 알지 않나?”

장천운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왕규를 직시했다.

반문 속에 심장을 후벼 파는 칼날이 숨어 있다.

‘너희들의 정체를 다 안다.’ 그런 뜻.

“어디까지 알고 있습니까?”

왕규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대부분은. 자네와 함께 왔던 사람이 누군지도.”

“그걸 알면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까?”

장천운의 전신에서 스멀스멀 살기가 피어났다.

왕규는 솜털이 올올이 곤두서는 느낌에 몸을 움찔 떨었다. 하지만 곧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온 거네. 이러나저러나 목이 달랑거리는 사정은 마찬가지니까.”

“왜 우리를 찾아온 겁니까? 차라리 구천성에 알렸으면 상금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말했으면 그들은 아마 상금 대신 내 목을 쳤을 거네. 나는 줄 것 다 주고도 목이 잘려서 죽는 더러운 꼴은 당하고 싶지 않네.”

“우리 역시 당신을 죽일지 모릅니다.”

“그래도 자네와는 아직 거래할 것이 남아 있으니, 앞뒤 꽉 막힌 그들보다는 살 확률이 조금 높다고 할 수 있지.”

“입을 닫고 있으면 그들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이곳까지 안내한 공패란 놈의 입을 믿을 수가 없어. 그렇다고 동생이나 다름없는 그놈을 내 손으로 패죽일 수도 없고…….”

더구나 공패를 없앤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다.

장천운의 의뢰 대상이 대장간에 있다는 걸 아는 사람도 몇이나 되고, 공패가 장천운과 사마경을 대장간으로 안내한 걸 아는 자도 많다.

그들이 입을 열면, 왕규가 정보를 숨겼다는 걸 구천성에서 바로 눈치 챌 것이다.

결국 구천성이 대장간을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일 뿐.

장천운도 상황의 심각함을 깨닫고 더 이상 말을 돌리지 않았다.

“조금 전 거래라 했는데, 무슨 거래를 하자는 겁니까?”

왕규는 숨을 깊게 몰아쉰 다음, 은근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이곳을 떠난다 해도 평생 쫓겨 다니며 살고 싶진 않네. 아마 자네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그래서 말인데, 먼 곳으로 가서 함께 손잡고 세력을 일으켜보는 게 어떻겠나?”

“세력을 만든다?”

“뭐 큰 세력을 만들자는 것은 아니네. 나도 번거로운 건 싫으니까. 그저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네만.”

엉뚱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헛소리로 치부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구천성의 눈을 피해서 여행만 다닐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사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장천운이 잠시 생각에 잠기자, 왕규가 넌지시 말했다.

“항주나 소주 정도면 구천성도 적극적으로 손을 쓰지 못할 거네.”

장소도 마음에 들었다. 사마경이 가고 싶어 하는 곳 아닌가 말이다.

“흠, 그런데 세력을 만들려면 돈이 적지 않게 들어갈 텐데…….”

“자금은 걱정 말게. 그 동안 모은 돈이 적지 않으니까.”

“자금까지 충분하면 루주 혼자 가도 편히 살 수 있을 텐데, 왜 우리와 손을 잡자는 거요?”

“객지에서 힘을 펴려면 혼자보다는 둘이 나은 법이네.”

왕규는 객지에서 자리를 잡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합비에서도 자리를 잡는데 오 년이나 걸렸으니까.

아마 앞에 있는 젊은 놈들만 있다면 일 년 안에 충분히 남부럽지 않은 세력을 만들 수 있으리라.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직접 뛰어다니기에는 자신의 나이도 적지 않았다.

“어디 깊은 산중에 숨어서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산 속에 숨어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저승사자를 기다리며 살다가 죽긴 싫네.”

장천운은 왕규를 빤히 쳐다보았다.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거짓은 아닌 듯했다.

“좋습니다. 일단 손을 잡는 것부터 확실하게 합시다. 나중에 딴소리하면 안 되니까.”

“걱정 말게. 이 왕규가 비록 흑도에서 살았지만 약속하나는 칼이네.”

“비마(秘魔) 왕대규가 약속을 잘 지킨다는 말은 저도 들어봤습니다.”

순간, 왕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알고 있었나?”

“루주가 우리를 알고 있는데, 우리라고 해서 루주를 모르며 되겠습니까?”

왕규의 이름은 본래 왕대규(王大圭)다. 그런데 가명을 만들며 ‘대규’를 합쳐서 규(奎)로 했다.

‘역시 보통 놈이 아니야.’

강호에서 모습을 감춘 지 이십 년이나 된 자신을 알다니.

‘이거 괜한 짓 한 것 아냐?’

그러나 기호지세(騎虎之勢)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이상 내릴 수도 없었다.

“하긴 어차피 함께 하려면 감추는 게 있어선 안 되겠지. 앞으로는 한 가족처럼 지내야 할 텐데 말이야. 하, 하, 하.”

“옳은 말씀입니다. 좌우간 결정은 아가씨께서 내리실 것이니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장천운은 사마경에게 왕규와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그래?”

사마경도 싫지 않았다.

더구나 장소가 항주나 소주라면 금상첨화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사람, 믿을 수 있겠어?”

“강호의 소문이 사실이라면, 거짓말로 남을 농락할 사람은 아닙니다.”

장천운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이제 사마경에게 장천운은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다.

“좋아, 그럼 천운이 알아서 해.”

 

장천운이 다시 왕규를 만났을 때, 왕규는 바싹 마른 입술을 축이기 위해서 차를 석 잔이나 마신 상태였다.

“아가씨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언제 합류하실 겁니까?”

“언제 떠날 건가?”

“내일 밤 자시쯤 출발할 생각입니다.”

“그럼 정리할 것 정리해서 내일 해시 말쯤 오겠네.”

돌아서는 왕규의 표정이 처음보다는 많이 풀어져 있었다.

‘인생 새로 사는 셈 치지 뭐.’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장천운이 구천성의 이름으로 벌여놓은 일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

 

사시(巳時:오전9시~11시) 무렵, 남궁세가의 쪽문이 열리고 아홉 사람이 장원을 나섰다.

앞장 선 사람은 남궁호였고, 남궁도학을 비롯한 여섯 명의 호위와 일남일녀가 그의 뒤를 따랐다. 그 중 여인은 검성의 제자인 두양양이었다.

곧장 대로를 가로지른 그들은 합비성 중간쯤에서 북성로 쪽으로 꺾어졌다.

“구천성이 대단하긴 대단하군. 합비에서 대놓고 남궁세가의 순찰무사를 공격하다니.”

남궁호와 나란히 걷던 영준한 청년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이십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청년은 하늘색 무복을 단정하게 입고, 오색수실이 달린 검을 등에 매고 있었다.

그는 어깨를 펴고 턱을 치켜든 채 걸었는데, 단순한 걸음걸이에서조차 명가의 품위가 느껴졌다.

“사공 형께 말하기가 창피하기만 하오.”

“도대체 얼마나 잘난 자들이어서 안하무인인지 한번 봐야겠어.”

“섬혼수 정이청도 왔다고 하오. 만약 그가 나서면 사공 형이 맡아주시오.”

“섬혼수? 괜찮은 상대군.”

사공 성의 청년은 상대가 섬혼수 정이청이라는 데도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걱정하지 않는 표정이었고.

남천신룡(南天神龍) 사공명신.

그는 당금 강호무림의 청년고수 중 가장 강하다는 열 명, 무림십룡(武林十龍) 중 일인이다.

강서 최강의 세력인 남천신문의 미래를 책임진 신진고수.

정이청이 아무리 구천성의 장로라 해도 그를 이길 수는 없으리라.

 

남궁호 일행이 대륙객잔에 도착할 무렵, 남궁세가의 상황을 지켜보던 진구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남궁호가 젊은 고수들을 데리고 구천성 사람들을 찾아갔네.”

보고를 받은 장천운은 사마경에게 예를 취하고 돌아섰다.

“쳇, 호위무사가 내 옆을 지켜야지, 왜 밖으로만 돌아다녀?”

사마경이 뒤에서 구시렁거렸지만 못들은 척했다. 구시렁거리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었다.

사마경은 함께 못 나가서 불만이 쌓인 것이다.

그렇다고 구천성 무사들과 부딪칠지 모르는 곳에 그녀를 데려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방을 나서자 제법 세찬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장천운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많이 낀 날씨였다. 사람들의 가슴을 삭막하게 만드는 날씨, 쌓인 분노를 풀기에 좋은 날씨.

남궁호가 구천성 사람들을 합비에서 쫓아낼 수 있을까?

쫓아내든 쫓아내지 못하든, 변화의 바람은 일으킬 수 있으리라.

‘일단 방호부터 만나야겠군.’

 

 

31장: 그는 범인이 아니다

 

 

장천운이 대장간을 나서서 방호에게 가던 그 시각, 팽팽한 긴장감이 대륙객잔을 휘감았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

칼날 같은 목소리에 살이 갈라질 듯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 구천성에 죄를 묻겠다는 건가?”

서궁이 턱을 쳐들고 냉랭히 말하자, 남궁호도 지지 않고 눈을 부라렸다.

“두 번 말하지 않겠소. 어젯밤 순찰조를 공격한 자들을 내놓으시오. 그들만 내놓는다면 우리도 구천성을 탓하지 않겠소.”

“그럴 수 없다면?”

“구천성이 우리 남궁세가를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남궁호가 마지막 경고라는 듯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서궁은 그의 뜻을 따를 생각이 없는 듯 조소를 지었다.

“무시하면 또 어때? 사실 무시당할 만하지 않았나?”

쿵!

발을 굴러 객잔을 뒤흔든 남궁호가 노성을 내질렀다.

“감히!”

“감히라……. 남궁세가 따위가 언제부터 본 구천성을 우습게봤는지 모르겠군.”

남궁호는 으드득 이를 갈았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구천성이라는 이름에는 그만큼 엄청난 무게가 있었다.

그때였다. 조용히 서 있던 사공명신이 입을 열었다.

“구천성의 지저분한 횡포에 대해서 그 동안 말로만 들었는데, 직접 대해보니 기본적인 예의도 없군.”

내심 득의만만하던 서궁의 눈이 그에게로 향했다.

지저분한 횡포? 예의가 없어?

“너는 또 누구냐?”

“너? 구천성에는 실력도 없으면서 입만 나불거리는 놈들이 많은가 보군.”

“뭐야?”

“상대도 몰라보고 그딴 식으로 말했다가는 죽기 십상이지. 그런데 덤빌 용기나 있는지 모르겠군.”

미소마저 띤 사공명신의 말에 서궁이 먼저 폭발했다.

“뭐하는가? 구천성을 욕보인 저놈들을 잡아서 무릎을 꿇려라!”

 

장천운이 방호 일행과 도착했을 때는 객잔 안팎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대로 붙었군.’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서궁과 정이청이라면 자신을 알아볼지도 모르는 일, 그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격전을 지켜보았다.

두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이 그의 관심을 끌었다.

한 곳에서는 하늘색 청삼청년과 정이청이 대결을 벌이는 중이었고, 또 다른 한 곳에서는 두양양이 혈포를 입은 중년인과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섬혼수 정이청이 청삼청년에게 밀리는 듯 보였다.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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