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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7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56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70화

느긋이 술을 마시고 있던 왕규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손님을 맞이하고 잔뜩 긴장했다.

핏빛 혈포를 걸친 중년인 둘과 청년 하나.

그들에게서 흐르는 싸늘한 살기는 절정고수인 그조차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그들의 정체는 왕규로 하여금 반항할 마음조차 갖지 못하게 했다.

구천성, 그곳에서 온 사람들이었으니까.

“나는 구천사령(九天使令) 서궁이라 한다. 당신이 합비의 정보상인 중에서 가장 확실한 정보만 판다고 하더군.”

세 사람 중 청년, 서궁이 오만한 투로 말을 건넸다.

그의 공식적인 지위는 구천사령, 장로 정이청과 함께 이번 일의 책임자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보잘 것 없는 주루의 주인일 뿐인데…….”

“말장난하려고 찾아온 것 아니다. 오면서 조환과 이걸성도 만났지. 제법 목에 힘을 주고 거짓말을 하더군. 그 바람에 조환은 목이 부러지고, 이걸성은 두 다리가 부러졌지.”

왕규의 눈꺼풀이 미미하게 떨렸다.

조환과 이걸성은 자신처럼 정보장사를 하는 자들이다. 그것도 합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자들.

이미 자신의 본업을 알고 왔다는 뜻.

“뭘 알고 싶어 오신 거요?”

“흠, 그래도 두 사람보단 눈치가 빠르군. 좋아, 말하지. 그대 밑에 있는 자들을 전부 동원해서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사람들을 찾아라.”

“누구를 찾으시는데……?”

서궁은 몇 사람의 인상착의를 설명했다.

왕규는 표정변화를 보이지 않기 위해서 주먹을 움켜쥐고 다른 생각에 몰두했다.

오래 들을 것도 없었다. 이들이 원하는 사람들 중 몇 명은 이미 찾았으니까.

하지만 그 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비밀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목이 달아날 수 있다.

특히 구천성의 비밀과 관계된 것이라면, 소성주의 일이라면 더욱 더 위험하다.

구천성의 공손백은 소성주 제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걸 원치 않을 테니까.

‘공패 놈의 입이 문제군.’

자신이 모른 척한다고 해도 공패가 떠들어대면 끝장이다.

그래서 더 골치가 아팠다.

“……그들을 찾기만 하면 엄청난 상금이 주어질 거다.”

서궁이 말을 맺으며 당근을 제시했다.

그러나 왕규는 아무리 큰 당근도 필요 없었다. 죽으면 씹지 못하니까.

그래도 당장 찾아 나설 것처럼 말했다.

“알겠소. 애들을 모조리 동원해서 찾아보겠소.”

그때였다.

툭.

서궁이 주머니 하나를 꺼내서 탁자 위에 던졌다.

“은자 백 냥이다. 선수금이라 생각해. 찾아내면 구백 냥을 더 주지.”

왕규는 이게 웬 횡재냐는 듯 짐짓 눈을 크게 뜨고 환한 표정을 지으며 주머니를 집었다.

“걱정 마시오. 내 꼭 찾아내겠소.”

서궁은 그런 왕규를 보고 비릿한 조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돈이면 무슨 짓이든 하는 벌레 같은 놈. 그 돈은 저승길 노잣돈으로나 써라.’

 

***

 

남화로 구석진 곳에 있는 허름한 객잔의 방안.

쪽빛 하늘에서는 맑은 겨울 햇살이 쏟아지고 있는데, 방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세 사람 표정은 무겁고 침침하기만 했다.

“강 형을 어떻게 빼내지?”

“창궁무전이 사흘 남았네. 비무대회를 시작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리겠지. 그때를 노려보세.”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군.”

“그런데 강 형은 어떤지 모르겠군. 벌써 사흘이나 지났는데.”

방호의 말에 이공진과 유각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뇌옥에 갇혔다고 들었네. 아직 죽었다는 이야기가 없으니 무사하겠지.”

“개자식들, 죽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왜 안 믿어?”

투덜거리며 남궁세가를 욕하던 유각이 방호를 바라보았다.

“방 형, 그때 전음을 보낸 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객잔에서 한번 봤을 뿐이야. 어디 가서 찾겠나?”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자가 세 사람에게 동시에 전음을 보냈다는 걸.

은근히 서로를 원망하던 세 사람은 그 사실을 알고 머쓱해서 한동안 말도 제대로 못했다.

“그자만 도와주면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방호는 정체불명의 고수가 도와주길 기대하는 유각을 슬쩍 쳐다보았다.

이공진과 유각에게는 그날의 일을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다.

자신이 그자의 자리를 얌체처럼 빼앗았다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괜히 장난기가 발동해서…….’

참으로 후회막급한 일이었다.

‘젠장,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그때 방문 쪽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들어가도 되겠소?”

약속이라도 한 듯 세 사람이 동시에 벌떡 일어섰다.

‘그자다!’

‘그때 그 목소리야!’

‘씨발!’

 

방에 들어선 장천운은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무안함과 기대감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제안할 것이 있어서 왔소.”

장천운의 말에 방호가 눈빛을 반짝였다.

자신들에게 제안할 내용이 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중 하나가 강상을 구하는 일과 관계된 것만큼은 분명했다.

“말해보시오.”

“강상이라는 사람을 구하는데 도와주겠소. 대신 당신들도 나를 도와주었으면 하오.”

이미 장천운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지 않았는가. 거기다 강상까지 구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인들 못할까.

“강 형을 구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소.”

 

 

30장: 믿을 수 있는 이유

 

 

광혈단 이조장 화응태는 저만치 앞쪽에서 주루로 들어가는 청년을 보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응? 저 자는……?’

청년은 흑의에 검은 가죽 겉옷을 걸치고 있었다.

이제 이십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그런데 언젠가 본 얼굴이었다.

‘사명학 같은데?’

화응태는 흑의청년이 들어간 주루의 입구로 다가가서 안쪽을 바라보았다.

흑의청년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마침 옆모습을 보인 채 서 있었다.

그가 분명했다. 흑월조의 사명학.

화응태는 뒤쪽을 향해 손짓했다. 모르는 사이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던 장한 하나가 그에게 다가왔다.

“저 안쪽에 이야기 나누는 놈들 보이지? 왼쪽 놈이 사명학이다. 서 공자께 보고하고 올 테니 철저히 감시하고 있어라.”

 

서궁은 화응태의 보고를 받고 눈을 치켜떴다.

“사명학? 그게 사실인가?”

“예, 공자. 겉모습이 많이 달라지긴 했습니다만, 흑월조에 들어갔다는 사명학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소성주와 함께 떠난 자들 중 몇은 이곳에 아직도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단 소리군.”

“그렇습니다, 공자.”

“놈에 대한 감시는?”

“조원들을 남겨놓고 움직임을 놓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밤이 되면 놈이 동료들에게 갈 가능성이 큽니다.”

“수고했네.”

서궁은 짧게 치하하고 두 눈에서 살기를 번뜩였다.

‘놈들만 잡으면 제일 큰 공을 세우게 된다. 잘하면 오만한 독고민과 백리우진에게 한방 먹일 수 있겠군. 후후후후.’

 

***

 

서궁이 득의의 웃음을 짓고 있을 즈음, 죽립을 쓴 무사 하나가 합비성 서문을 통과했다.

작은 키에 마른 몸매, 단정히 뒤로 묶은 머리, 무심한 표정. 죽립 아래로 보이는 눈빛은 광채가 없어서 산 자의 눈이 아닌 듯했다.

그는 합비성 지리를 잘 아는 듯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걸음을 옮기더니, 백여 장쯤 전진해서 정화루를 돌아 우측 골목으로 꺾어졌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걸이, 일정한 보폭.

걸음만으로도 그가 절제된 삶을 살았으며, 어지간한 일에는 일 푼의 동요도 없는 무심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을 짐작게 했다.

그렇게 골목을 두어 번 더 꺾어지며 걷던 그가 멈춘 곳은 노리개와 화장품을 파는 가게 앞이었다.

가게 앞에 서서 죽립을 슬쩍 쳐든 그의 무채색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자신이 찾아온 게 잘한 일일까? 공연히 찾아온 건 아닐까? 그냥 돌아갈까?

찰나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무려 십이 년 만이다. 이곳으로 돌아오는데 걸린 시간이.

‘아직도 계실지 모르겠군.’

그의 마음에 답하듯 가게 안에서 탁한 목소리가 들렸다.

“뉘슈?”

죽립인은 가게 안을 바라보았다.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진열대 사이에서 나와 입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노인을 본 죽립인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생김새는 그가 아는 사람과 많이 달랐다. 하지만 그는 노인이 ‘그’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이거늘.

“철무입니다, 사형.”

입구 쪽으로 나오던 노인이 걸음을 멈췄다.

어깨가 보일 듯 말 듯 미미하게 떨렸다. 볼에서 일기 시작한 잔파도가 귀밑까지 퍼졌다.

노인은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홱 몸을 돌렸다.

“장사 끝났으니 그만 가슈!”

냉정한 축객령.

죽립인, 철무는 노인의 등을 바라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목에 고인 격정의 외침이 밖으로 터져 나올 듯했다.

‘사형!’

그는 안다, 사형이 왜 저러는지. 왜 자신을 외면하려고 노력하는지, 내치고 싶으면서도 그러질 못하는지.

결국 그는 목 안의 외침을 짓누르며 가게 안으로 발을 디뎠다.

노인은 보지 않고도 그가 들어왔음을 알았는지 멈춰 서서 격동을 씹어뱉었다.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니다. 그냥 가!”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볼 일 없다. 네가 뭐라 해도 사부님께서 네 손에 돌아가신 사실이 뒤바뀌진 않아!”

“싫어도 한번은 보셔야합니다.”

“이노오옴! 가라니까!”

노인이 고개를 돌리며 버럭 소리쳤다.

그런데 철무가 가슴 옷자락을 넓게 벌리고 상체를 모두 드러낸 채 서 있었다.

마른 듯 보이는 철무의 상체는 군살 하나 없이 완벽했다.

그 완벽한 상체에 그물처럼 그어진 수많은 선들. 그 선을 자세히 보면 오래 전에 생긴 상흔임을 알 수 있었다.

노인은 더 볼 것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려다 멈칫했다.

철무의 상흔 사이에서 뭔가 이상한 흔적이 보인 것이다.

심장어림에서 옆으로 약간 비켜간 곳에 거무스름한 자국이 있었다.

까마귀가 발톱으로 찍은 듯 보이는 세 줄기 검은 자국.

그 자국을 본 노인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설마…… 흑령마조(黑靈魔爪)?”

“사형이 밖으로 나가 계신 삼 년 동안 사부님께선 손대서는 안 되는 것을 손대셨습니다. 호기심 때문이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저에게 부탁하셨습니다. 만약 당신 눈의 흰자위가 검게 변하면 입마(入魔)에 들었다는 증거이니 지체하지 말고 심장에 검을 꽂아달라고 말입니다.”

“말도 안 되는…….”

“그런데 그날 사부님의 눈자위가 검게 변해갔습니다. 사부님은 저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부님의 명을 받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부님께, 제가 도와드릴 테니 흑령기공의 운기를 빨리 멈추라고 간절히 외쳤습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입마에 들어선 사부는 오히려 자신을 공격했다.

당시 자신은 흑령마조를 막을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다.

피한다고 피했는데도 온전하게 피하지 못한 채 일격을 허용해야만 했다.

-사부님! 제발 정신을 차리십시오!

참담해진 마음으로 간절히 외쳤다. 그 외침이 사부의 정신을 일부 일깨웠다.

사부는 그 순간을 이용해서 그의 검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도 반사적으로 검을 뻗었다.

그 검이 사부의 가슴에 박혔다.

놀란 그가 검을 빼려했는데, 사부는 검신을 잡고 더욱 깊숙이 몸을 밀어 넣었다.

“사부님께선 미안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의 부주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그런데 사부께서 돌아가시기 직전 그의 사형인 반승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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