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69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5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69화
두 사람은 뒷짐 진 채 서 있는 장천운을 보고 버럭 소리쳤다.
“조장, 이제 오면 어쩌자는 거야? 약속을 일 년이나 어기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젠장, 살아 있었군. 근데 어째 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잖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반가움을 표현한 두 사람은 환하게 웃으며 장천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세 사람의 팔이 뒤엉켰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매가 가늘게 떨렸다.
장천운이 피식 실소를 지으며 격정을 가라앉혔다.
“내가 살아 있는 게 서운한 모양이군. 오늘 한 말, 잊지 않겠어.”
움찔한 진구와 사문학이 얼버무렸다.
“무슨 소리? 서운하다니? 우리 조장이 살아서 돌아왔는데.”
“나도 같은 생각이야. 너무 기뻐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라니까?”
그때 소연추 방의 방문이 열리고 사마경이 나왔다.
“왔군. 다행이야.”
구산에게 미리 언질을 받은 진구와 사명학이 즉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차렸다.
“소성주, 무사하셔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소성주를 뵙습니다.”
“그만 일어나.”
진구와 사명학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벌떡 일어났다.
어느 정도 격정은 가라앉았지만, 그래도 아직 여운이 남았는지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때 장천운이 일어선 진구와 사명학에게 말을 걸며 분위기를 바꾸었다.
“진 형은 도박장에서 일한다던데, 많이 배웠어?”
“도박은 잘 하지 못해도 속임수 가려내는 법은 조금 배웠지.”
원리원칙에 충실한 진구 아닌가. 속임수를 써서 이기려는 자들에게는 천적이라 할 수 있었다.
“명학은 흑화방에 들어갔다며?”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아서.”
“강련곡의 유 교두가 흑화방 출신인 거, 알고 있었어?”
사명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그게 정말이야?”
“사실일 거야. 유 교두가 그렇게 말했거든.”
“제길, 미리 알았으면 그딴 놈들에게 맞지 않아도 됐을 텐데…….”
첫날 밤, 신고식을 제대로 했다.
건방져 보인다나?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뒷골목 건달들에게 뼈가 흐물흐물해지도록 맞았다.
핏대가 솟았다.
모조리 죽여 버릴까? 그런 마음마저 들었다.
아마 방주의 딸이라는 소녀가 그들을 말리지만 않았어도,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예쁘지만 않았어도 정말 발작했을지 몰랐다.
딱 하나,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이라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보기보다 성숙해서 이삼 년만 기다리면…….’
사명학이 엉뚱한 생각을 하며 히죽거리는데 장천운이 물었다.
“추 형과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들은 거 없어? 도박장이나 흑화방에 있었다면 뭐든 알 법도 한데.”
정신을 차린 사명학이 말했다.
“정확한 것은 모르고, 내 생각으로는 합비에 들어왔다가 일찍 떠난 거 같아.”
“그래?”
“구천성에서 보낸 무사들이 합비성 안으로 들어왔는데, 아무래도 그들 때문에 떠났나 봐.”
사마경의 표정이 굳어졌다.
“구천성 무사들이 합비에 들어왔었다고?”
“예, 소성주. 변복한 자들 중 눈에 익은 자가 있어서 그들이 구천성 사람이라는 걸 바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사마경의 질문에 대답한 사명학이 장천운을 보며 씩 웃었다.
“아마 조장도 그를 봤으면 무척 반가웠을 거야.”
“누군데?”
“독고민. 그놈이 합비성을 활보하고 있지 뭐야.”
사명학이 이름을 말하고는 히죽 웃었다.
“독고민이 여기에 왔었단 말이지?”
“합비를 샅샅이 뒤지며 소성주님을 찾았지. 그러다 한 달이 되어갈 때쯤 돌아갔어.”
아쉽다고 해야 하나,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장천운은 독고민을 떠올리며 냉소를 지었다.
그때 사명학이 얼굴을 내밀며 나직이 말했다.
“그런데 그제 오전에는 서궁이 들어왔어.”
“서궁이?”
“그렇다니까.”
“구천성 무사들과 함께?”
끄덕끄덕.
장천운의 이마에 주름이 그어졌다.
벽호당주 서호의 아들인 서궁은 독고민을 믿고 거들먹거리던 자다. 그러다 자신의 손에 팔목이 부러졌지만.
자신에게 원한이 있는 그가 한 발 먼저 합비로 들어왔다니. 그들과 마주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몇 명이나 왔지?”
“한 삼십 명 정도? 그들을 보고 이제 이곳을 떠나야할 때가 되었나 보다 했는데, 하마터면 소성주님과 조장을 보지도 못하고 떠날 뻔했지 뭐야.”
사명학이 씩 우승며 말을 맺자, 조용히 서 있던 진구가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조장?”
장천운은 사마경을 돌아다보았다.
“소성주, 유모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사마경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이마를 찡그리고 잠시 생각한 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유모의 내상이 나으려면 며칠 걸릴 것 같아. 움직이는데 이상이 없을 때까진 여기 있는 게 좋겠어.”
장천운은 토를 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선자의 치료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서 지내지요.”
그러고는 사명학을 돌아다보았다.
“명학,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북성로 쪽의 대륙객잔에 있어.”
“너무 가까이 접근하진 마. 위험하니까.”
“걱정 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펴보기만 할 거니까.”
“천운, 그들이 왜 합비로 다시 돌아왔을 것 같아?”
사마경이 물었다.
고개를 돌린 장천운이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마지막 확인을 위해서 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합비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도 사람을 보냈겠네?”
“그랬을 겁니다.”
“만약 저들이 나를 찾으면, 지금도 생포해가려고 할까?”
사마경이 음울하게 느껴질 정도로 목소리를 낮게 깔며 물었다.
장천운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제는 반드시 죽이려고 할 겁니다.”
필살의 명령.
그녀는 이제 마지막 남은 대관식의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일 뿐이었다.
***
합비성 동남쪽에는 십여 채의 고루거각을 품은 거대한 장원이 수만 평의 대지를 짓누르며 우뚝 서 있었다.
그곳이 바로 삼백여 년 간 합비에서 제왕처럼 군림한 남궁세가였다.
당금 가주는 창궁신검 남궁력으로, 검에 관한한 무림에서 열손가락 안에 든다는 초절정고수였다.
그런데 겨울바람이 매서운 십이월 어느 날, 장원의 남쪽에 있는 가주의 집무실에서 두 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구천성 무사들이 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가주.”
“구천성 무사들이?”
태사의에 앉아 있던 중년인이 이마를 찌푸리며 눈을 들었다.
한 팔을 태사의의 손잡이에 걸친 그는 오랜 세월 만인을 다스려온 자의 위엄이 온몸에 배어 있었다.
그가 바로 남궁세가의 주인이자 합비의 제왕인 남궁력이었다.
“설마 우리의 계획을 알고 온 것은 아니겠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왜 이곳에 온 거지?”
“아무래도 사람을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 년 전에도 그러지 않았나?”
남궁력은 일 년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냉소를 지었다.
당시 구천성 무사들은 한 달에 걸쳐서 합비성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 광경을 바라봐야만 했던 남궁력은 치욕에 이를 갈았다.
남들이 남궁세가의 안마당을 들쑤시고 다니는 데도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하다니!
하지만 구천성에 대항할 힘이 없는 이상은 그들의 행사를 적극적으로 막을 수도 없었다.
그때의 치욕을 어찌 잊으랴.
“그 당시와 비슷한 인원입니다. 그렇다면 찾으려는 자도 결코 예사 인물은 아닐 겁니다.”
“당연히 그러겠지. 전에는 사라진 소성주를 찾는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누구를 찾는지 모르겠군.”
“일단 아이들에게는 지켜보며 명령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따로 내리실 명령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지요.”
“너도 알다시피 창궁무전이 끝나면 본가의 제자들을 여주로 파견할 거다. 저들이 알게 되면 안 되니 철저히 감시하도록 해라.”
“예, 가주.”
***
하루는 무사히 지나갔다.
저두심은 그날 표도를 스물두 자루나 만들었다.
전에는 서른여섯 자루를 지니고 다녔는데, 영원히 낫지 않을 다리 몫까지 하려면 더 많은 표도가 필요했다.
다음 날도 오전에는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저두심은 오전에만 표도 열다섯 자루를 만들었다.
그런데 날씨가 화창한 그날 오후…….
“호오, 정말로 이런 곳에 대장간이 있었군.”
의외라는 말투와 함께 누군가가 대장간 안으로 들어왔다.
한쪽에서 표도를 손질하고 있던 저두심은 고개를 돌려서 문 쪽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들어서고 있었다.
청의무복을 입고 등에 검을 맨 자와 갈의를 입고 허리에 도를 찬 자.
둘 다 이십대 청년으로 보였는데, 어디서 대판 싸웠는지 찢긴 옷자락에 여기저기 말라붙은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저두심이 일어나며 한쪽에 놓인 표도를 거적으로 덮었다.
“무기를 잘 고친다고 해서 왔네.”
갈의무복을 입은 자가 옆구리의 도를 빼더니 저두심을 향해 쑥 내밀었다.
예리한 도신이 저두심의 코앞 한 자 앞에서 번쩍였다.
상대가 흑심을 품고 휘두른다면 피를 볼 수밖에 없는 거리.
그러나 저두심은 평범한 대장장이처럼 움찔하기만 했을 뿐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날이 너무 많이 나갔어. 손 좀 봐주었으면 싶은데.”
저두심은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흐르는 데도 태연히 말했다.
“세 곳이 심하게 파이고 한 곳은 미미하게 금이 갔군요. 다행히 심하진 않아서 수리가 어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갈의청년이 도를 도집에 집어넣었다.
“얼마나 걸리지?”
“내일 이때쯤 찾으러 오십시오.”
“너무 늦어. 저녁식사 전까지 안 될까?”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으니 공임은 배로 주셔야 합니다.”
“얼마지?”
“은 반 냥은 주셔야 합니다.”
갈의청년은 두 말 하지 않고 한 냥짜리 은자를 꺼내서 던지고는 허리에서 도집을 풀었다.
“다 주지. 대신 제대로 해놓아.”
“알겠습니다. 저녁에 찾으러 오십시오.”
“좋아, 그때 오지. 아, 대신 저 칼을 가져갔으면 하는데, 괜찮겠어? 남화로는 워낙 험한 곳이어서 말이야.”
갈의청년이 한쪽에 세워놓은 유엽도를 보며 말했다.
그가 맡긴 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싸구려 칼이어서 저두심도 망설이지 않고 허락했다.
“그러십시오.”
갈의청년은 유엽도를 집어 들고 슬쩍 빼보았다. 저두심이 며칠 전에 손질을 해둔 것이어서 날이 잘 벼려져 있었다.
“그럭저럭 쓸 만하군.”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갈의청년의 말꼬리 머리가 좌우로 흔들렸다.
그때 청의무복을 입은 청년이 말했다.
“누가 묻더라도 우리가 여기에 왔다는 말을 하지마라. 입을 함부로 놀리면 너희만 피곤해질 테니까.”
“걱정 마십시오. 저희도 그 정도 눈치는 있습니다.”
두 청년이 나간 후 뒷문이 열리고 장천운이 나왔다.
그는 대장간 문 밖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뒷모습을 보이며 골목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아직 합비에 있었군.’
청의와 갈의를 입은 두 청년은 다름 아닌 사자검 이공진과 일섬쾌도 유각이었다.
그렇다면 풍낙선 방호도 근처에 있다는 뜻.
“아는 자들이야?”
저두심이 물었다.
장천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잠깐 나갔다 올게. 소성주께서 찾으시면, 이각 안에 돌아올 거라며 나갔다고 말씀드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