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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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54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67화
“그렇다네.”
“무슨 일이오?”
“나는 남궁호라 하네. 사문이 어떻게 되는가?”
“말씀드려도 잘 모르실 것이오만, 사정이 있어서 말할 수도 없으니 이해하시오.”
“남궁세가에서 열리는 창궁무전 때문에 왔는가?”
“기회가 닿으면 구경이나 해볼까 하오.”
청년, 남궁호는 장천운의 눈을 직시했다.
자신의 이름을 밝혔음에도 눈빛 하나 흔들림이 없다.
자신을 모르던가, 아니면 남궁세가의 이름에 위축되지 않는 배짱을 지닌 자라는 뜻.
그때 문득, 키가 작은 소년도 아무런 동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호의 무사 중 어느 누가 남궁세가의 이름을 듣고 저리 태연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상한 자들이군.’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다면 이만 가보겠소.”
장천운이 곤혹스러운 표정의 남궁호를 향해 포권을 취하고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발랄한 표정의 여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꽤나 오만한 분이군요. 남궁 공자가 호의로 물었는데도 그리 쌀쌀맞게 돌아서다니.”
장천운은 그녀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사마경은 장천운에게 뭐라고 하는 여인의 말투에 기분이 상했다.
“대답 다 하고 돌아서는데 뭐가 오만하다는 거지?”
여인이 눈을 치켜떴다.
“뭐?”
“길 가는 사람 붙잡고 질문을 한 쪽은 당신들이잖아?”
툭툭 쏘아붙이는 사마경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자, 장천운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렸다.
“그만하고 가시죠.”
“알았어. 정말 웃기는 사람들이네.”
사마경이 분기를 겨우 가라앉히고 돌아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인, 소서연이 참지 못했다.
“거기 서!”
“안 서면 어쩔 건데?”
“당신 여자지? 여자가 남장을 하고 다니는 걸 보니 수상해.”
“내가 남장을 하든 변장을 하든, 눈을 이마에다 달든 말든 당신이 무슨 상관이지?”
“최근에 수상한 자들이 합비에 들어왔다는데, 혹시 알아? 그들과 한패인지.”
소서연은 억지를 쓰면서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구천성에서 엄청난 중압감을 견뎌온 사마경의 눈썹 한 올 흔들지 못했다.
“증거 있어? 설마 정파의 무사가 증거도 없이 죄 없는 사람을 몰아붙이겠다는 건 아니겠지?”
“이이이…….”
소서연은 이를 악물고 사마경을 노려보았다.
사마경도 피하지 않고 마주 쳐다보았다.
그녀가 비록 평범한 소년처럼 분장을 했다 해도 몸에 밴 위엄 서린 오연함이 완전히 감춰진 것이 아니었다.
소서연은 사마경의 눈을 바라보고 있을수록 몸이 움츠러들자 당황해서 남궁호와 두씨 성의 여인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결국 남궁호가 나섰다.
“죄가 없다면 정체를 밝히지 못할 것도 없잖소?”
“사람마다 다 각자의 사연이 있는 법이에요. 그 중에는 말 못할 사연도 있죠. 당신은 항상 남이 물으면 사실대로 대답하나요?”
턱을 척 치켜들고 말하는 사마경의 태도에 남궁호는 일시지간 대답을 못했다.
평범해 보이는 시골 소년, 아니 여인이 자신에게 그런 식으로 말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것이다.
“감히 뉘 앞이라고!”
남궁호 좌측 한발 뒤쪽에 서 있던 남궁세가 무사가 눈을 부라리며 나섰다.
그래봐야 사마경의 코털도 흔들지 못했지만.
“남궁세가는 주인이 말하고 있는데 수하가 아무 때나 나서나 보군요.”
“흥! 그럼 내가 나서주지!”
코웃음 친 소서연이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몸을 날리며 우수를 뻗었다.
사마경은 슬쩍 눈만 돌리고는, 우수를 자연스럽게 휘돌려서 소서연의 좌수를 휘감은 다음 밀어냈다.
공력은 물론이고 초식의 운용에서도 사마경이 소서연보다 두어 수 위였다.
소서연은 자신의 일수가 실패로 돌아가자 검을 뽑았다.
창!
“어디 얼마나 솜씨가 좋은가 보자!”
그녀가 악에 받친 듯 소리치며 사마경을 공격했다.
사마경은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날아드는 검을 바라보기만 했다.
누가 봐도 위험한 상황.
설마 사마경이 피하지 않을 줄 몰랐던 남궁호와 두씨 성의 여인은 흠칫하며 소서연을 말리려 했다.
“헛!”
“멈……!”
그 순간, 창백한 빛을 발하는 소서연의 검첨이 사마경의 얼굴 다섯 치 앞에서 멈추었다.
어느새 뻗었는지 장천운이 그녀의 검첨을 붙잡고 있었다.
사마경은 여전히 싸늘한 눈빛으로 소서연만 바라보고 있었고.
어찌 보면 섬전처럼 뻗어나간 검을 잡은 장천운보다 흔들림 없는 사마경이 더 대단해 보였다.
“봐주는 건 이번 한 번 뿐이오.”
장천운이 나직이 말하고 검을 놓아주었다.
소서연은 갑자기 검이 잡히면서 진기 유동이 막히자 기혈이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주춤, 한 걸음 뒤로 물러선 그녀의 안색이 해쓱했다.
사마경이 냉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그만 가.”
그때만 해도 장천운과 남궁호는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다.
여인이 오기가 발동하면 얼마나 지독해질 수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그리 생각한 것이다.
“죽어!”
한 걸음 물러섰던 소서연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사마경을 공격했다.
앞에는 장천운이 서 있고, 옆은 담이었다.
그녀가 비록 소서연에 비해 두어 수 위의 고수라 해도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온전히 피할 틈이 없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봉황의 발톱처럼 구부리며 몸을 틀었다. 봉황장을 펼치기 위함이었다.
자신의 무공을 함부로 드러내선 안 되지만, 아무 탈 없이 벗어나려면 봉황장 외에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리는 그 짧은 순간에 손에서 노랗고 붉은 기운이 서렸다.
그와 동시, 검과 그녀 사이에 환영이 스며들더니, 푹!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의 진로가 가로막혔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찰나에 벌어졌다.
“천운!”
봉황장을 펼치려다 멈춘 사마경이 눈을 홉뜨고 소리쳤다.
소서연의 검과 사마경 사이에 스며든 사람은 장천운이었다.
그는 무심한 눈으로 소서연을 바라보면서 옆구리 가죽옷에 박힌 검을 천천히 잡아 뺐다.
그가 검을 뺄 때마다 소서연이 뒤로 밀려났다.
“아까운 옷만 찢어졌군. 어제 저녁에 샀는데.”
장천운이 나직하게 말하며 손에 잡혀 있던 검을 밀었다.
소서연이 주르륵 서너 걸음을 밀려난 뒤 겨우 멈춰 섰다.
장천운은 소서연에게서 시선을 떼고 남궁호와 두씨 성의 여인을 천천히 번갈아 보았다.
“계속 할 거요?”
남궁호는 판단이 서질 않았다.
수상한 자처럼 보이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건드려선 안 된다는 어떤 예감이 자꾸만 뒷목을 당겼다.
그때 두씨 성의 여인이 나섰다.
“남궁 공자, 그만 하는 게 좋겠어요.”
남궁호는 차라리 잘 되었다는 듯 그녀의 말에 찬성했다.
“그럽시다.”
소서연이 한 번 더 사마경을 째려보고는 홱 몸을 돌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장천운은 두씨 성의 여인을 지그시 쳐다보고는 사마경에게 말했다.
“그만 가시죠.”
“알았어.”
사마경이 오연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장천운은 한숨이 나왔지만 그녀를 타박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주인, 자신은 호위무사니까.
‘후우, 귀찮은 일이 안 생기면 좋은데…….’
남궁호는 장천운과 사마경이 멀어지는 모습을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두 소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남궁호가 두씨 성의 여인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저런 사람들이 어찌 평범한 사람들이겠소?”
“게다가 실력도 만만치 않아요.”
남궁호의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그는 안다. 아름다운 두씨 성의 여인, 두양양이 얼마나 강한 여인인지.
강호에 난 소문보다 적어도 배는 더 강하다는 걸. 자신보다도 훨씬 더 강하다는 걸.
그런 여인이 만만치 않다고 하지 않는가.
“두 소저가 그리 말하니 저자들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지는구려.”
남궁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옆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도학, 그대가 두 사람을 데리고 따라가서 저자들의 정체를 알아보게.”
옆에 서 있던 삼십대 무사가 고개를 숙였다.
“예, 이공자.”
***
어깨에 힘을 주고 걷던 사마경이 장천운을 힐끔 쳐다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다쳤어?”
“별 이상은 없습니다.”
“그까짓 것도 못 막아?”
“적당히 하고 멈추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사마경도 알고 있었다. 못 막은 게 아니라 안 막았다는 걸.
자신이 봉황장을 펼치려는 걸 망설였던 것처럼 장천운도 자신의 무공이 드러나는 걸 원치 않았던 것이다.
정확히는 구천성의 무공이 드러나는 걸.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 말을 돌렸다.
“좌우간, 어제 산 옷이 찢어져서 아깝다는 투로 한 말은 조금 웃겼어.”
“웃으라고 한 말이 아닙니다.”
사마경이 다시 장천운을 힐끔거렸다.
“내가 뭐 잘못한 것 있어?”
“아닙니다.”
“그런데 왜 한숨을 쉴 것 같은 표정이야?”
“조금 귀찮아질 것 같아서요.”
“왜?”
“남궁호가 저와 아가씨의 정체를 캐려고 사람을 붙였습니다.”
사마경이 슬쩍 고개를 돌리더니 조소를 지었다.
“할 일 되게 없나 보네.”
“일단 여기저기 돌아다녀보지요. 어쩌면 제풀에 지쳐서 떨어져나갈지도 모르니까요.”
“그냥 지금 떼어내면 안 돼? 남궁세가의 졸개 정도는 가볍게 떨쳐낼 수 있잖아?”
“그럼 우리에 대한 의심이 더 커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찾게 될 겁니다.”
“그건 그러네. 그럼 어디로 가지?”
장천운과 사마경은 한 시진 동안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합비성 내를 구경했다. 어차피 아는 곳도 없으니 목적지를 정할 필요도 없었다.
남궁세가의 방계혈족인 남궁도학은 한 시진이 넘어가자 슬슬 짜증이 났다.
‘도대체 어딜 찾아가려고 저리 뱅뱅 도는 거지?’
그리고 반 시진이 더 흐르자 이를 갈았다.
상대는 길거리에서 이것저것 사먹으며 배를 채우는데 자신은 쫄쫄 굶고 지켜봐야만 했다.
‘죽일 놈들.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하지만 두 시진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이를 가는 것도 지쳐버렸다.
‘특별한 목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만 돌아갈까?’
그 동안 남궁세가의 무사들을 몇 번 보긴 했다.
그러나 자신이 오히려 그들을 피해 다녀야 할 판이었다. 두 사람이 추적을 눈치 채면 안 되니까.
‘제기랄! 미치겠군!’
그러다 다시 일각이 지났을 때, 마침내 그들을 놓치고 말았다.
분명히 작은 주루로 들어가는 걸 보고 뒷문까지 지켰는데 사라진 것이다.
더 미치고 환장할 일은, 점소이에게 물어보니 졸린 눈을 겨우 뜨고 말하는데 사람이 들어온 줄도 모른 채 졸고 있었다는 것이다.
남궁도학은 화가 났지만, 한편으로는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이름도 모르는 낭인들 뒤나 쫓아야 하다니.
‘돌아가서 적당히 둘러대는 게 낫겠어.’
장천운은 이층의 작은 골방 안에서 남궁도학이 두 무사와 함께 사라지는 걸 창문 사이로 확인한 후 몸을 돌렸다.
“이제 떨어졌습니다.”
“남궁호가 우리 찾는 걸 포기할까?”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적극적으로 찾지도 않을 겁니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왕규였다.
장천운과 사마경이 남궁도학을 따돌린 곳은 다름 아닌 보정루였던 것이다.
“끄응, 왜 하필 이곳이오?”
“아는 곳이 이곳뿐이어서 그랬소. 저들의 눈을 속일 정도로 거짓말을 잘하는 점소이도 이곳밖에 없고.”
왕규의 얼굴이 움켜진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제길, 만에 하나 남궁세가가 알게 되면 나는 끝장이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만 않으면 우리도 절대 당신이 우리를 도와주었다고 안 할 거요.”
“제기랄, 더럽게 걸렸군.”
“우리가 부탁한 사람은 찾았소?”
“한 사람을 찾긴 했는데, 확인은 귀하가 해보시오.”
“어디에 있소?”
“남화로의 석가철방이라는 대장간이오.”
“대장간?”
“그렇소. 그곳에는 젊은 대장장이가 둘 있는데, 그 중 덩치 큰 자의 모습이 귀하의 말과 일치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