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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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33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96화
백리우진이 조소를 지으며 옆을 바라보았다.
“강 형이 상대해보시지요.”
이마에 푸른 무사건을 두른 매부리코 청년이 오만한 표정으로 나섰다.
유고원 앞에 선 그가 말했다.
“나는 강조라 한다. 율검당 당주께서 부친이시지.”
스릉.
유고원은 그에 대한 대답으로 검을 뽑았다.
“내 검은 당신이 누구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니 무기나 뽑으쇼.”
강조가 눈을 치켜뜨고는 도를 뽑았다.
“오냐, 이놈. 어디 덤벼 봐…….”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유고원이 벼락처럼 쇄도했다.
쉬쉬쉬쉭!
유고원의 검이 허공 가득 검화를 쏟아냈다.
강조는 눈을 치켜뜨고 황급히 도를 휘둘렀다.
“이 비겁한 놈이……!”
구천성의 기재 중 하나로 불렸던 그답게 선수를 뺏겼음에도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쩌저저저정!
두 사람의 검기와 도기가 뒤엉켰다.
유고원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갔다. 두 눈이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번뜩였다.
강조도 이를 악물고 맞섰다. 유약해 보이는 유고원에게 밀린다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둘러서 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전개된 치열한 격전을 숨도 쉬지 않고 지켜보았다.
유고원과 강조의 실력은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유고원이 선공을 취하지 않았으면 밀렸을지 모를 정도로 강조의 공력이 조금 더 강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차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상대가 밀리고 있다는 걸 느낀 강조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유고원의 옷자락 두어 군데가 도기에 갈라지며 너풀거렸다. 갈라진 옷자락 사이로 언뜻 피가 비치는 듯했다.
흑월조원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백리우진 일행은 여유만만 한 표정을 지었다.
‘건방진 놈! 참담한 패배를 안겨주마!’
자신감이 생긴 강조는 자신이 아는 도법 중 가장 화려한 백화추살도를 펼쳤다.
마무리를 멋지게 지어서 누구도 자신을 얕볼 수 없게 만들고 싶었다.
백송이 꽃을 쫓아서 모조리 갈라버리는 백화추살도라면 자신의 위신을 제대로 세워줄 수 있으리라!
그가 눈 깜짝할 순간에 손목을 대여섯 번 비틀자, 도첨에서 피어난 검영이 허공에 그물처럼 퍼졌다.
정말 백 송이 꽃이 허공에 떠 있으면 모조리 부숴버릴 듯했다.
바로 그때, 유고원이 그의 도세 속으로 몸을 던졌다.
강조는 유고원을 물리친다 해도 자신 역시 무사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찰나의 순간, 유고원은 강조의 자만이 만들어낸 실낱같은 빈틈을 발견했다.
동시에 벼락같이 삼검을 뻗었다.
“헛!”
헛바람을 삼킨 강조가 다급히 반격을 가했다.
유고원은 강조의 칼이 어깨로 날아드는 걸 빤히 보면서도 내지른 검을 멈추지 않았다.
순전히 기세 싸움이었다.
강조는 이긴다 해도 다치면 자신만 손해라는 걸 알고 마지막 순간에 한 걸음 더 물러섰다.
그 직후, 유고원이 내지른 삼초 검식이 각기 세 번의 변화를 만들어내며 구궁으로 변화를 일으켰다.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강공을 취한 유고원의 검세는 강조의 도세를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대경한 강조가 물러서려고 했을 때는 검화가 서른여섯 개나 피어난 후였다.
그 중 두 개가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빈틈 사이로 날아들었다.
얼굴이 사색이 된 강조는 전력을 다해서 도를 휘둘렀다. 그러나 한 번 드러난 빈틈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더구나 유고원이 작심을 하고 공격한 터라 더욱 위협적이었다.
폭이 좁은 유고원의 검이 강조의 방어막을 교묘히 뚫고 들어갔다.
안색이 급변한 강조는 다급히 뒤로 두어 걸음 더 물러섰다.
유고원은 한번 잡은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가까스로 잡은 기회를 놓치면 그 이상의 위기가 찾아오는 법.
그는 날아드는 칼날 사이로 몸을 밀어 넣으며 어깨를 비틀었다.
잘 벼려진 칼날이 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가슴마저 스치며 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목표를 향해 검을 뻗었다.
강조의 눈이 한껏 커졌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유고원의 검이 그의 목 바로 아래에서 멈춰 있었다.
한 치 떨어진 거리. 검에서 뿜어지는 검기에 가슴이 싸늘하게 얼어붙는 듯했다.
“저 독한 친구 보게.”
왕규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흑월조원 중에서 그와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유고원이다.
부드러운 인상에 정확한 분석과 빠른 판단력을 지니고 있으니 그의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생긴 것과 달리 독한 면이 있었다.
“제가 이긴 것 같군요.”
유고원은 검으로 강조를 겨눈 채 뒤로 물러섰다.
안색이 창백해진 강조는 입술을 씹으며 유고원을 노려보았다.
“이 교활한 놈이…….”
“교활? 적이었다면 당신 목에 구멍이 뚫렸을 텐데? 내가 본 강호는 말이오, 살아남는 자가 승자입디다.”
유고원이 조소를 지으며 검을 거두고 돌아섰다.
자존심이 상한 듯 강조가 치켜뜬 눈으로 유고원의 등을 노려보았다.
“남자가 말이야, 패했으면 순순히 승복해야지, 왜 이러쿵저러쿵해?”
한쪽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왕유였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던 강조는 왕유의 비아냥거리는 말에 핏대가 솟았다.
“건방진 놈!”
욕설을 퍼부으며 몸을 날린 그는 이를 악물고 칼을 휘둘렀다.
설마 강조가 공격할 거라 생각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이 대경해서 소리쳤다.
“고원!”
“피해!”
“저 개새끼가!”
유고원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옆으로 몸을 눕히며 땅을 밀었다. 그의 몸이 땅에 거의 닿다시피 한 상태로 일 장 이상 날아갔다.
일류고수라면 능숙하게 펼칠 수 있는 철판교 신법이었다.
그러나 급습을 받은 상태여서 강조의 도세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를 악문 유고원은 강조의 도세를 막기 위해서 검을 가슴 앞으로 눕혔다.
검에 의해 위력이 감소되면 적어도 죽지는 않겠지, 그런 마음이었다.
“죽어라, 이놈!”
강조가 악을 쓰며 칼을 내리쳤다.
바로 그때,
쉐에엑!
한 줄기 빛살이 바람을 갈랐다.
등골이 오싹해진 강조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면서 칼을 열십자로 그었다.
땅!
표도 하나가 허공으로 튕겨나갔다.
그러나 표도는 하나가 아니었다. 그가 표도를 튕겨냄과 동시에 또 하나의 표도가 그의 어깨 쇄골 위에 꽂혔다.
“크윽!”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 강조는 비틀거리며 정신없이 옆으로 물러섰다.
“네놈들이 감히……!”
중심을 잡은 그는 어깨를 움켜쥐고 오른쪽을 노려보았다.
저두심이 절룩거리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다행인 줄 알아. 만약 당신이 적이었다면 심장이나 목을 노렸을 거야.”
차갑게 말을 뱉은 그가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들어 올렸다.
손가락 사이에 표도 네 개가 꽂혀 있었다.
안색이 창백해진 강조는 지레 놀라서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빌어먹을!’
이마를 찌푸리며 속으로 욕을 내뱉은 백리우진은 저두심을 노려보았다.
절룩거리는 그의 걸음만 보면 영락없이 병신이었다. 그러나 그가 날린 표도는 다리병신과 거리가 멀었다.
자신의 일행 중 표도가 날아간 궤도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잘해야 두세 명 정도?
더구나 지금 그의 손가락 사이에는 두 개가 아닌 네 개의 호랑이이빨 같은 표도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갈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느 분이 나와 싸울 거요? 나는 아직 날아가는 표도를 내 마음대로 멈추게 할 재주가 없으니 그 점 이해하고 덤비쇼.”
저두심이 백리우진 일행을 둘러보며 말했다.
강조의 패배를 보고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있던 구천성의 잘난 공자들 중 반은 슬그머니 그의 눈을 피했다.
싸울 때 가장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무기가 바로 암기다. 언제 어디서 날아들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거리가 먼 곳에서 날아들면 공격도 못한 채 방어에만 치중해야 한다.
이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가 말이다.
그들은 암기나 던지는 다리병신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이겨봐야 본전 아닌가?
백리우진은 일행들이 저두심을 상대하길 꺼리자 이마를 찌푸렸다.
이제는 이겨봐야 비기는 셈이 된다. 패배하기라도 하면 낯을 들고 다니기도 창피할 것이고.
‘젠장, 너무 쉽게 봤어.’
그때 장천운이 나섰다.
“더 할 필요 있겠어? 우리나 그쪽이나 다 같은 구천성의 사람들인데, 굳이 피를 보며 싸울 필요까진 없잖아?”
백리우진으로선 울고 싶은데 때려주니 고맙기만 했다.
“좋아, 오늘은 그만하지. 강 형도 치료해야 하니까.”
“좌우간 걱정이군. 아들이 다쳤다고 아버지가 달려오면 곤란한데 말이야. 가서 말 잘해라, 백리우진. 우리에게 책임 떠넘기지 말고. 괜한 잔머리 굴린 사람은 너잖아?”
은근한 조롱. 백리우진은 입술을 씹으며 몸을 돌렸다.
‘죽일 놈! 오늘은 그냥 물러난다만, 언제든 네놈의 뼈를 잘근잘근 부숴주마.’
장천운만 제거한다면 사마경을 얻을 수 있을지도…….
이제 그는 모든 욕망보다 그녀를 더 앞에 놓았다.
그녀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41장: 석양(夕陽)의 방문객(訪問客)
오후가 깊어가면서 찬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러나 경천단 내실은 생각보다 훈훈했다.
“후후후, 정말 속이 다 시원합니다.”
“오늘은 다행히 공손백의 기를 꺾었네만 앞으로가 문제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소성주가 임시성주가 되면서 일 년이라는 시간을 벌었으니 다행이야. 언젠간 기회가 오겠지.”
최소한 공손백이 성주 자리에 오르는 것만큼은 막았다.
소성주 역시 임시성주일 뿐이다.
그로 인해 얻은 것은 일 년이라는 시간.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독고태는 막상 원하던 결과가 나오자 그것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다.
“놈이 가져간 것을 하나, 하나 되찾을 겁니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앞으로 공손백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거네.”
“그러겠죠. 하지만 함부로 할 수도 없으니 답답할 겁니다.”
“일단은 공손백을 견제할 방법부터 생각해봐야겠어.”
“우리가 저들과 반대로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일 년이라는 시간을 벌었으니 최대한 이용해볼 생각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독고태가 차가운 조소를 지으며 허공을 노려보았다.
‘큰 것을 얻기 위해선 모험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나를 주고 둘을 얻으면 돼!’
그때 나극이 말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우문각을 다시 한 번 만나보는 게 좋겠어.”
***
그날 오후의 구천성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분위기가 흘렀다.
긴장감과 기대감과 살기가 뒤섞인 혼탁한 분위기.
겉으로는 원단을 앞둔 여느 집처럼 활기찼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살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암류가 흘렀다.
그 즈음, 장천운은 의약당에 찾아갔다.
황사중이 자살한 이후 의약당은 호북제일의로 불렸던 호광신의(湖廣神醫) 송명선이 책임자로 임명된 상태였다.
“소성주님의 호위무사인 장천운이라 합니다. 소성주께서 신경을 너무 쓰다 보니 두통이 심하십니다. 약을 좀 지어주시지요.”
“허어, 그래? 나와 함께 가보세. 진맥도 않고 약을 지을 수는 없다네.”
“그냥 가벼운 두통이니 일반적으로 먹는 약이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흐음, 신경을 쓴 것 때문에 머리가 아픈 거라면 진맥까지 할 필요는 없네만…… 좌우간 알았네. 조금만 기다리게.”
송명선은 무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성주로 인해 벌어진 소란을 모를 정도로 눈과 귀가 막히지도 않았다.
그는 나이 어린 소성주가 오죽 힘들까 싶어서 정성 들여 약을 지었다.
장천운은 약을 짓고 있는 송명선을 무심한 눈으로 주시했다.
소성주가 보냈다는 말을 듣고도 흔들림이 없다.
독살과 관련이 있다면 저토록 태연할 수는 없을 텐데.
그는 마저 시험을 해보았다.
“당주님, 전 당주이셨던 황사중 당주님과는 어떤 사이였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