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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93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31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93화

그때였다.

여철숭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난 총사의 의견에 찬성이네.”

“나도 찬성이야.”

나극도 손을 들었다.

그 직후, 독고태가 기이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서 흔들었다.

“이 독고태는 장인어른의 뜻에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

 

오전의 대회의는 한 시진에 걸친 피를 말리는 설전 끝에 뜻밖의 결론을 내리고 끝이 났다.

 

-소성주 사마경을 일 년 간 임시성주로 삼는다.

-임시성주 사마경은 일 년 동안 구천성을 위협하는 자들을 물리치고 성주로서의 위엄을 보여야 한다.

-구천성의 모든 무사들은 정쟁을 멈추고 임시성주를 돕는다.

-구천대평의회에서 성과가 인정되면 다음해에 정식 성주로 취임한다.

 

대회의가 끝나고 한참이 지났다. 구천대전에 남아 있는 사람은 공손백과 사계, 문인동과 종리성학뿐.

‘죽일 늙은이들!’

공손백은 허공을 노려보며 분노를 억눌렀다.

생각 외로 많은 간부들이 찬성했다. 참석한 지부장 중 절반이 찬성했고, 심지어 여철숭도 우문각의 손을 들어주었다.

더 의외였던 것은 나극과 독고태다.

그들이 찬성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들이 찬성함으로서 그들을 따르던 자들도 손을 들었고, 그 바람에 찬성하는 자가 절반이 넘었다.

자신을 견제할 목적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애첩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했던 일에 대한 복수일 수도 있고.

“아무래도 독고 단주가 대장로를 부추긴 것 같습니다.”

종리성학이 이를 갈듯이 말했다.

공손백은 미미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놈의 교활함은 전부터 알아줬지.”

어이없게 일이 틀어졌다.

나극과 독고태를 너무 만만하게 봤나?

그렇다면 자신의 실수다. 그리고 실수는 한번으로 족하다.

공손백은 허공에서 시선을 내리고 문인동을 바라보았다.

“대책은 있느냐?”

문인동이 입술만 살짝 비틀며 말했다.

“아직 원단이 되려면 한나절 이상 남아 있습니다. 내일이 되기까지는 임시성주도 아닌 소성주일 뿐이지요.”

공손백이 다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주름진 눈꺼풀 속에서 푸르스름한 광채가 번뜩였다.

“맞아. 네 말대로 아직 원단은 오지 않았다. 새벽닭이 울 때까지 시간은 많아.”

 

***

 

소천전으로 돌아온 사마경은 무너지듯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

칼날이 오가는 것보다 더 살벌한 설전을 악착같이 벌였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한 마디만 삐끗해도 공손백에게 주도권이 넘어갈 판이었으니까.

그렇게 한 시진, 비록 최선은 아니라 해도 차선으로선 충분한 성과를 얻었다.

일단 시간적인 여유를 벌었고, 임시성주로서 구천성 무사들을 지휘할 자격이 생겼다.

공손백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천운, 어떻게 생각해?”

“너무 강하게 자극했습니다. 공손백의 인내가 최소한 세 번은 무너질 뻔했었죠.”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이다. 사실 최고의 인내를 발휘한 사람은 공손백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아버지의 독살에 대해서 묻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지만 혀를 깨물고 참아야만 했다.

복수는 의욕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더구나 상대는 천하제일세를 좌지우지하는 절대권력자 아닌가 말이다.

“그럼 저만 죽어라 고생했을 겁니다.”

장천운이 불만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사마경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호위무사가 그 정도는 해야지.’라고 쏘아붙일 것 같은 표정으로 말을 돌렸다.

“백부가 어떻게 나올 것 같아? 그냥 지켜보기만 할까?”

“그럴 사람이 절대 아니죠. 아마 그는 소성주가 임시성주 되는 것도 못마땅해서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겁니다.”

“우문 숙부가 멋지게 뒤통수를 쳤어.”

사마경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임시성주에 대한 의견은 아무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일 년 간의 한시적인 성주대행.

기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그 기간 동안 성주로서의 위엄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사마경에게 주어진 숙제다.

그런데 말이 임시성주지 권한에 관한한 일 년 동안은 실제 성주와 큰 차이가 없다.

그 점이 핵심이다.

성주의 자격으로 구천성 무사를 지휘할 수 있다는 것!

문제는 강호 대세력과의 전쟁을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에 대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성주가 되어도 헤쳐 나가야 할 일이니까.

그리고 전쟁을 시작할 봄이 되려면 아직 두 달이나 남아 있었다.

“대장로와 독고 단주가 찬성한 것이 의외야.”

“그들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공손백에게 모든 것을 순순히 넘겨줄 수는 없으니 시간을 벌고 싶었겠지요.”

“어쨌든 오늘 밤을 조심해야 합니다, 아가씨.”

소연추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투정이나 부리던 사마경이 전쟁에 나서야한다는 사실이 안쓰럽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살아남은 이후의 이야기다.

“너무 걱정하지 마, 유모. 사람들의 눈이 모두 이곳을 향해 있으니 백부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거야.”

장천운도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찝찝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이 정도로 그냥 물러설 사람이 아니긴 한데…….’

 

***

 

오시가 지나갈 무렵.

동문 북쪽의 객방에 머물던 석초산은 느닷없이 찾아온 손님을 보고 바짝 긴장했다.

“대 구천성의 총사께서 여긴 어쩐 일이시오?”

“허창 석가장의 셋째 주인이 방문했다기에 찾아왔소. 좀 더 일찍 왔어야하는데 오늘 아침에서야 들었소.”

“석가장도 구천성의 그늘에 있으니 성주 취임을 축하하러 오는 거야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런데 조금 전에 들으니 대령주의 성주 취임이 취소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렇소. 하지만 성주 취임은 예정대로 진행 될 것이니 너무 실망하진 마시오.”

“하지만 소성주는 임시성주라고…….”

“비록 한시적이긴 하지만 임시성주도 성주는 성주지요.”

“하긴…….”

“다만 취임식을 성대하게 하지는 못할 것 같소. 일 년 후라면 또 모를까.”

“아, 예…….”

“함께 온 분들이 계시다고 들었는데, 다른 방에 계시오?”

“조카와 이 방을 함께 쓰고 있습니다.”

석초산이 이십대 청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문각이 고개를 돌리자, 청년이 인사를 건넸다.

“석중경이라 합니다. 우문 대협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호오, 석 장주의 둘째 아들이시군.”

“그렇습니다, 우문 대협.”

우문각이 석중경에게서 시선을 돌려 석초산을 응시했다.

“다른 한분은 어디 가셨소?”

“오전에 급히 볼 일이 있어서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떠났습니다.”

“아쉽구려. 듣자하니 대단한 분이 오신 것 같던데, 어떤 분이셨소?”

석초산은 입안이 바짝 말랐다.

구천성의 총사, 귀안신마(鬼眼神魔) 우문각에 대해서 수많은 소문을 들었다.

진심을 속일 수 없는 자.

그 몇 마디만으로도 우문각에 대해서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아마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면 바로 눈치 챌 것이다. 잘못될 경우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었다.

“장주 형님과 가까운 사이이신 임청백 대협입니다.”

“무영신수 임청백 대협이 오셨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허어, 그런데 왜 방명록에 존함이 없었지?”

“그분은 본래 이곳이 목적지가 아니어서 잠깐 들렀다가 바로 떠날 생각이셨습니다. 그래서 방명록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아쉽구려. 임 대협이 온 걸 알았으면 당장 달려왔을 텐데 말이오.”

임청백은 우문각이 그렇게 말해도 될 만한 고수 중의 고수다.

아마 구천성을 통틀어도 그와 비견될 수 있는 고수는 스물을 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는 무공보다도 신(信)과 의(義)로 이름이 높았다.

“나중에 임 대협을 만나면 그 말씀 전하겠습니다.”

“그래 주시구려. 그런데…… 임 대협도 파천회의 일원이오?”

“…….”

석초산은 심장이 떨어질 듯 놀라서 대답도 바로 하지 못했다.

이름 자체가 비밀인 파천회다. 그런데 잘 아는 듯 말하지 않는가 말이다.

“회주를 만나시게 되면 내 말을 전해주시구려.”

한겨울인데도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석초산은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우문각만 노려보았다.

“무슨 말을……?”

우문각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남에게 어부지리를 주고 싶지 않으면 공연한 짓은 하지 말라고 말이오.”

 

***

 

우문각이 석초산을 만나고 있던 그 시각.

진삼은 앞에 서 있는 무사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키가 크고 몸은 마른 듯 보였다. 얼굴은 지저분한 털목도리로 코까지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여우나 늑대를 통째로 벗겨서 만든 목도리인 듯했다.

눈은 길면서도 약간 가늘었는데, 마치 칼날을 잘 벼려서 박아놓은 듯 날카롭게 느껴졌다.

나이는 눈 주위와 피부를 봤을 때 많아야 서른 살 정도?

등 뒤에는 일반적인 검보다 훨씬 더 길고 가느다란 검을 매고 있었다.

“이름.”

“목진화.”

“사문은?”

“세검문(細劍門).”

“세검문? 그런 문파도 있었나?”

“문도가 세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문파요.”

이름을 목진화라고 밝힌 자는 구천문 정문을 휘휘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아마 우리 세검문보다 이 정문을 짓는데 돈이 더 많이 들어갔을 거요.”

붓을 내려놓은 진삼은 비웃음이 담긴 표정으로 목진화라는 장한을 슬쩍 쳐다보고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본 성에 온 목적은?”

“팔촌 되는 형님이 구천성에 계시다고 해서 만나려고 왔소.”

“팔촌 형님? 누군가?”

“정유라는 분이오. 비령각에 계시다던데…….”

흠칫한 진삼이 새삼스럽다는 눈빛으로 목진화를 쳐다보았다.

정유는 비령각의 이인자다. 총사의 최측근.

진짜 그의 동생이라면 자신이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저쪽으로 가면 객당이 있네. 그곳에 가서 이야기하고 기다리게. 그럼 비령각에 연락해줄 거네.”

“고맙소.”

진삼은 목진화가 휘적휘적 멀어지는 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는, 속으로 ‘자식, 제법 분위기를 잡을 줄 아는군.’ 그러면서 피식 웃으며 돌아섰다.

그런데 돌아선 순간.

‘헉!’

가슴이 덜컹 떨어지는 줄 알았다.

언제 다가왔는지 그의 앞에 한 사람이 또 서 있었다.

목진화라는 자보다 키도 작고 몸매도 빼빼했는데, 왠지 모르게 음침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자였다.

나이는 이십대 중후반쯤? 짙은 회색 무복과 탁한 안색이 음침함을 더해주는 듯했다.

“무, 무슨 일인가?”

“여기서 방명록을 작성하라던데.”

목소리도 음침하게 느껴지는 놈이었다.

“응? 음, 그래, 적어야지.”

진삼은 내려놓았던 붓을 다시 들었다.

오각이라는 놈이 배탈 났다며 나오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방명록을 자신이 적게 되었다.

하필이면 오늘 나온 위사 중 글자를 제대로 적을 수 있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름.”

“수은귀.”

뭔 이름이 그 따위야?

“사문은?”

“단도문(短刀門).”

음침한 놈은 어울리지 않게 짧고 굵은 칼을 옆구리에 매달고 있었다.

“처음 듣는 문파군.”

“사부와 나, 문도가 두 명밖에 안 되는 문파요.”

음침한 놈이 정문을 휘휘 둘러본다.

‘설마 이놈 문파도……?’

아니나 다를까, 놈이 말한다.

“문짝이 정말 크군. 아마 우리 단도문은 재산을 다 팔아도 이 문짝 하나 사지 못할 거요.”

진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오늘 왜 이런 자식들만 오지? 뭐하는 것들이야?’

진삼은 그를 쫓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정체 모를 불길함이 그의 분노를 짓눌렀다.

‘지미, 마누라가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화를 내지 말라고 해서 내가 참는다.’

마누라의 이름으로 분노를 억누른 그는 마저 임무를 다했다.

“무슨 일로 왔는가?”

“외가의 팔촌형님을 찾아왔소.”

또 팔촌형님?

다만 외가라는 것이 다르다.

“그분 이름이……?”

“비령각의 정유.”

진삼은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 손을 들어서 객당을 가리켰다.

“저쪽에 가서 기다리게. 조금 전에도 정 부각주님의 팔촌 동생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었네. 객당에 가면 있을 거야.”

그때 정문 쪽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방명록을 적어야 한다던데, 자네가 서기인가?”

진삼은 홱 고개를 돌리고는 흠칫했다.

‘어떤 놈이 감히!’라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진짜 귀신처럼 생긴 자가 서 있었다.

그 자에 비하면 수은귀는 애교 넘치는 애기 귀신이었다.

‘오늘 진짜 재수 더럽게 없군. 오각 이 새끼만 아니었어도…….’

진삼은 일단 숨을 깊게 들이쉬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질문했다.

“무슨 일로 오셨소?”

“사돈의 팔촌 되는 동생을 만나러 왔네.”

‘이 씨발 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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