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9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92화
천하의 누구라도 숨이 막혀서 입을 열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
하지만 사마경은 오히려 턱을 쳐들고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제가 할 일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어요. 백부께서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셨는데, 어찌 제 맘대로 안 한다고 할 수 있겠어요?”
목소리는 조금 전과 다름없이 맑고 고왔다.
그러나 구천대전 내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싸늘함과 열기가 뒤섞여서 금방이라도 충돌할 듯했다.
“그럼 소성주께서 정말로 성주 자리를 맡으시기라도 하겠다는 거요?”
간부들 속에서 누군가가 발작하듯 소리쳤다.
몇 사람이 그 말에 대해서 강력히 반발했다.
“무슨 소린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가? 당연히 맡으셔야지!”
반대의견도 많았다.
“대 구천성의 성주 자리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자린가? 말이 되는 소릴 하게나!”
“아무리 스무 살이 되었다 해도 아직은 너무 어리네.”
“허어! 못할 이유는 또 뭐요? 무사가 한번 한 말을 뒤집겠다는 거요?”
“지금 자존심 운운할 땐가? 구천성을 먼저 생각하게!”
“솔직히 말하지요! 소성주께선 너무 늦게 돌아오셨소이다! 성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할 때에 밖으로 돌아다녔으니 어찌 보면 직무유기라고도 할 수 있소!”
“맞소! 그로 인해 성의 인력을 낭비했으니 오히려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거요!”
“어차피 모든 일은 대령주께서 주관하셨지 않소이까? 맡은 일이 따로 없는데 무슨 직무유기란 말이오?”
여기저기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간부들의 뜻이 찬성과 반대로 갈라졌다. 찬성보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훨씬 컸다.
그때였다. 사마경이 공을 공손백에게 넘겼다.
“백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공손백은 갑작스런 질문에 흠칫했다.
자신이 약조했던 말이다.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성주자리를 맡으라고 하자니 그 동안 들인 공이 물거품 될 판이다.
‘영악한 계집!’
주위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군웅들의 시선이 일제히 공손백을 향해 집중되었다.
공손백은 숨 한번 쉬는 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소성주가 성주 위를 맡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그런데 현 강호의 상황이 문제구나.”
“어떤 문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검왕문은 물론이고 장강팔련과 귀마궁 등 강호의 대문파들이 호시탐탐 본 성을 노리고 있다. 날이 풀리면 그들과 전쟁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네가 과연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들과는 항상 대립해왔지 않나요?”
“물론 그랬지. 그런데 성주의 위가 공석인 틈을 타서 그들의 발호가 더욱 거세지더니, 이제는 본 성을 위협할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말이다만…….”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하는 공손백의 눈빛이 몇 마디 하는 동안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어떻게 보면 살모사의 눈처럼 차가웠고, 어떻게 보면 천년 묵은 교활한 여우 같았다.
사마경은 그 변화를 눈치 채고 뒷짐 진 손을 지그시 움켜쥐었다.
“말씀해 보세요, 백부.”
“고민 끝에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다. 그 중 하나는 구천성의 권위를 위협하는 놈들을 제압할 때까지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에요. 그런데 지난 일 년 동안 달라진 것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현 상태를 유지한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이 있을까요?”
한마디로 ‘지난 일 년 간 뭐했냐? 당신이 더 다스린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잖느냐?’ 그 말이다.
공손백이 왜 그녀의 말뜻을 모를까?
그는 가슴속에서 칼날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누르고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본 성의 힘이 둘로 나뉘다 보니 적절히 대응할 수가 없었느니라. 장로들도 그것 때문에 저리 말을 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게 네 잘못이야!’ 그런 뜻.
사마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수긍했다.
“그랬군요. 하긴 제가 너무 오래 나가 있었어요.”
“네가 이해한다니 다행이다.”
“그런데 우리 구천성이 저 하나가 없다 해서 그들을 상대할 수 없을 줄은 몰랐어요. 절반의 힘만으로도 그들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그건…….”
“어쨌든 그게 이유라면 이제는 걱정하시지 않아도 돼요. 제가 돌아왔으니까요.”
공손백의 눈매 끝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일 년 동안 많이 컸구나. 성학이 말대로 그때 죽였어야 했나?’
그래도 입가의 웃음은 여전했다.
“허허허, 그래, 이제 그 점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가 없지.”
“다른 방법을 말씀해 보세요.”
“네가 선봉에 나서서 저들을 제압하는 것이다. 하나 네가 직접 전쟁에 나서기에는 아직 무리일 것 같구나.”
“전쟁을 하는데 꼭 성주가 직접 나서서 싸울 필요는 없지 않나요?”
“네가 아직 모르고 있구나. 본 성의 주인 된 자는 전쟁이 나면 선봉에 서서 성주로서의 위엄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구천성을 따르는 천하 군웅들의 충성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공손백의 힘이 실린 목소리가 구천대전을 휘돌았다.
전쟁, 검, 충성.
무사들의 본능을 자극하는 말이 나올 때마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전대 성주인 사제도 그래서 성주가 되자마자 직접 검을 들고서 전쟁에 나섰고, 천궁마신이라는 위대한 별호를 얻으며 구천성의 권위를 천하에 떨쳤던 것이니라.”
사마경은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가슴이 저릿했다. 이럴 때는 표정을 감출 수 있는 면사가 고맙기만 했다.
“결국 성주가 되면 직접 전쟁에 나서야한단 말이군요.”
“바로 그것이니라. 그래서 당장 너에게 성주가 되라고 할 수 없단다. 안 그렇습니까, 대장로?”
나극은 공손백이 결론을 자신에게 떠넘기자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성주가 되면 성주의 위엄을 보여야 하지.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소성주는 성주의 위엄을 보이기에 너무 어리네.”
“태상호법께서는 어떤 생각이세요?”
이번에는 사마경이 여철숭에게 물었다.
여철숭이 수염 가득한 턱을 두어 번 씰룩이더니 입을 열었다.
“대령주와 대장로의 말씀이 맞네. 전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 정도로는 아직 이 거대한 구천성을 맡기에 부족한 감이 많아.”
여철숭의 단호한 말에 공손백이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사마경이 나타나자 마음이 변할지 모른다는 우려감이 없지 않았거늘.
‘만약을 생각해서 여철숭의 가족들을 금제해놓길 잘했어.’
반면 사마경은 실망감이 깃든 표정이었다. 세 사람 중 그나마 자신에게 동조해줄 사람은 여철숭이 유일했는데…….
그래선지 그녀의 목소리가 차갑게 튀어나왔다.
“제가 어려서 성주의 위엄을 보일 수 없다는 말씀은 승복할 수 없어요.”
여철숭의 턱이 다시 씰룩였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는 순식간이었고, 사마경에 가려져서 공손백은 보지 못했다.
“어린 나이의 소성주가 성주가 된다면 무사들도 구천성에 전과 같은 기대를 할 수 없을 거네. 그럼에도 성주가 되려한다면…… 결국 전쟁에 나서서라도 무사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수밖에 없겠지.”
공손백이 흠칫하며 여철숭을 돌아다보았다.
“무슨 말씀이오, 태상호법?”
“말 그대로네. 성주가 되고자 한다면 대 구천성 성주의 위엄을 보여서 무사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라는 말일세,”
공손백의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여철숭의 말은 자신과 나극이 한 말과 비슷했다. 그러나 면밀히 따져보면 약간 달랐다.
아니, 많이 달랐다.
자신과 나극은 포기하라는 뜻으로 한 말이고, 여철숭의 말에는 독려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영감이 설마……?’
그때였다. 간부들 중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던 우문각이 일어났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공손백이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말인가?”
“대 구천성을 이끌 능력이 문제 된다면, 태상호법의 말씀처럼 그 능력을 보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공손백은 이마를 찌푸렸다.
우문각이 자신과 손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사마경이 나타나지 않았을 경우의 이야기다.
사마경이 나타난 이상 언제든 적으로 돌아설 수 있는 자가 우문각인 것이다.
‘저놈이 무슨 생각으로 나선 거지?’
이미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놓고 대회의를 소집했다.
만약 배신의 마음을 먹고 있다면 처절하게 후회하리라.
그런데 그때 백리호가 일어났다.
“말이야 쉽지, 실제로 능력을 보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오, 총사?”
“쉬운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소성주께서 직접 성주가 될 능력만 보여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능력을 직접 보여준다? 저 연약한 소성주에게 전쟁터 속으로 뛰어들라고 하란 말이오?”
“꼭 전쟁만이 성주의 능력을 보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전쟁이라면 해야겠지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간부들 중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소성주의 지위로는 전쟁을 지휘하는데 한계가 있소이다! 그에 대해선 대처할 방법이 있소이까?”
마른 체구의 오시대 초반 초로인, 그가 바로 무혼단 단주 진강이었다. 진구의 부친.
우문각은 그 질문이 나오자마자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잘하든 못하든, 일단 임시로 성주직을 수행하면서 성주가 될 자격을 증명해 보이는 건 어떻겠습니까?”
이번에는 혁련광이 꼬리를 물고 물었다.
“기한도 없이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 언제까지 임시성주로서 능력을 보이면 되는 것이오?”
“기간은 일 년이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령주?”
갑작스런 바람은 불 때만큼이나 빠르게 정리가 되었다.
공손백과 백리호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 역시 반박할 마땅할 말을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다.
“임시성주라…….”
“현재로선 그보다 나은 대안이 없어 보입니다만.”
“굳이 임시성주 자리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럼 곧장 성주로 추대하실 것인지요?”
“…….”
공손백은 차가운 눈빛으로 우문각을 쳐다보았다.
‘차라리 죽이는 게 나았어.’
사마경이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 몰랐던 게 실수다.
어쨌든 이미 벌어진 일. 일단은 가장 큰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
“좋아! 그럼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도록 하세. 만약 자네 의견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절반을 넘으면 나도 따르겠네.”
장내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제각각으로 변했다.
소성주편은 잘해야 삼 할 정도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그 정도도 안 될지 모른다.
그들 중에서도 어린 소성주가 성주가 되는 걸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찬성과 반대를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 정도.
우문각도 그렇게 나올 줄은 생각지 못한 듯 난감한 표정이었다.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대 구천성의 미래를 위한 일이네.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결정이 내려져야하지 않겠나?”
공손백은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럼 망설일 것도 없지.”
공손백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 장내의 간부들을 향해 돌아섰다.
“자!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총사의 의견에 찬성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