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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9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45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91화

제일 바쁘게 움직인 사람은 독고태였다.

그는 경천단 무사들을 동원해서 무화원을 둘러쌌다.

이번 일과 자신은 연관이 없다는 것, 소성주와도 적이 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리고자 함이었다.

그 시각, 무화원 안쪽은 득달같이 달려온 냉원상이 수혼대와 함께 지켰고, 영호관은 구천호령과 함께 소천전 내부경비를 보강했다.

소천전 이층에서 무화원 바깥을 바라보던 사마경이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장천운에게 물었다.

“천운, 어떻게 생각해?”

“독고 단주가 똥줄이 탔군요. 자신의 짓이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은 모양입니다.”

“마다할 필요는 없겠지?”

“지켜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지요. 이제 적의 침입은 걱정 마시고 마음 푹 놓고 주무십시오.”

“이 판국에 잠이 오겠어?”

“아까는 잘 주무시던데요?”

“그때는 그때고. 상황이 달라졌잖아.”

“그럼 책이라도 보시죠.”

“책? 그거 괜찮은 생각이야. 근데 뭘 읽지?”

“먼저 구천률서 두 권을 읽으십시오.”

“그 졸릴 정도로 따분한 책을 읽으라고?”

장천운이 아는 한 사마경은 구천률서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 그 똑똑한 사마경이 율법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게 증거다.

하지만 이제는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교활하고 강력한 힘마저 지닌 공손백과 독고태를 상대하려면.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강요하진 않았다.

강요는 반발을 잉태하니까.

“읽다가 졸리면 주무시는 것도 나쁘진 않죠.”

잠이 안 와서 읽는 거잖아?

“그건 말이 되네. 그것 말고 또 뭘 읽을까?”

“일단 그것부터 읽으십시오. 제법 두꺼워서 내일 아침까지 읽어도 다 읽기 힘들 겁니다.”

 

사마경은 책장에서 구천률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읽기 전에 한숨부터 나왔다. 장천운의 말대로 구천률서는 무척 두꺼웠다.

두껍고 지루한 율법서를 밤새도록 읽어야할 걸 생각하니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후우우, 베개로 쓰면 딱 좋은 두께군.”

그뿐이 아니었다.

구천률서는 율법서답게 재미가 눈곱만큼도 없었다. 석 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덮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사마경의 태도가 서서히 달라졌다.

그녀는 졸지도 않았고, 따분해하지도 않으면서 두꺼운 구천률서를 파고들었다.

자신이 그 동안 율법에 너무 무지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율법 안에서 희미하나마 공손백에게 대항할 수 있는 길이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가 일 권의 마지막 장을 덮고 고개를 들어 창문을 바라봤을 때는 어느새 날이 환하게 밝아온 후였다.

‘읽기를 잘했어.’

그녀의 입가로 서릿발처럼 하얀 웃음이 번졌다.

 

-성주는 성의 위급 시 필요에 따라서 임시 조직을 만들 수 있다. 성주가 만든 임시 조직은 오직 성주의 명령만 받든다.

-서열을 친족보다 우선한다. 성주의 웃어른이라 해도 서열을 어길 순 없다. 특히 전시에는 상위서열이 생사여탈권을 갖는다.

-지부는 오직 성주만이 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기타 등등…….

 

 

39장: 하루 전

 

 

원단 전날도 예외 없이 태양이 떠올랐다.

그날의 태양은 유난히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때쯤에는 소천전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긴장감은 더욱 팽팽해져서 날이 없는 목검만 대어도 툭 끊어질 듯했다.

붉은 태양이 동산 위로 솟구친 진시 말쯤, 사마경은 냉원상과 장천운을 비롯한 흑월조 모두를 대동하고 소천전을 나섰다.

아침 바람이 제법 차갑게 불어왔다. 하지만 그들은 물론 구천성 사람들 누구도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사마경 일행이 무화원을 나서자, 경천단과 율검당 무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사마경을 향해 예를 취했다.

사마경은 도도한 표정으로 슬쩍 고개를 끄덕이고는 구천대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금실로 봉황이 수놓아진 핏빛 시뻘건 경장이 붉은 태양과 잘 어울렸다.

 

구천대전 앞에 무사 백 명이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날씨가 차가운데도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휘날리는 옷자락도 세찬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것일 뿐.

사마경이 그들 속으로 들어섬과 동시, 백 명의 무사가 일제히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충! 충! 충!

땅과 하늘이 울렸다.

그 사이를 걸어가는 사마경 일행의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사마경이 대전의 거대한 문 앞에 서자, 검고 붉은 색으로 칠해진 구천대전의 웅장한 문이 활짝 열렸다.

“소성주, 호위 두 사람만 데리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벽호당 부당주 마승이 두 손을 맞잡고 예를 취하며 말했다.

사마경은 도도한 자세로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장천운과 소연추만 대동하고 구천대전의 문턱을 넘었다.

사백 평에 달하는 거대한 구천대전 안에는 고위급 간부들이 집결해 있었다.

대략 팔십여 명.

구천대평의회에 참석할 수 있는 간부 중 구천성 내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모인 듯했다. 개중에는 십이지부 중 여덟 곳의 주인도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사마경은 늘어선 간부들 사이를 오연한 자세로 걸어갔다.

금실로 봉황이 수놓아진 붉은 경장, 뒤로 늘어뜨린 기다란 머리카락, 검은 면사 위로 드러난 차가운 눈빛.

사마경은 이제 일 년 육 개월 전의 나약한 소녀가 아니었다.

부친의 죽음을 슬퍼하며 구천성을 떠날 생각만 하던 소녀는 사라지고, 이제는 도도하고 거만하게까지 느껴지는 소성주만이 존재했다.

늘어선 간부들이 공수의 예를 취하며 말없이 고개만 살짝 숙였다.

그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었다.

경악, 감탄, 곤혹함, 비웃음…….

그 중 가장 많은 표정은 ‘경악’이었다.

오랫동안 사마경을 지켜봐 왔던 사람들조차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소성주가 언제 저렇게 컸지?

작년 여름, 소성주가 당차게 말했었다.

 

-최소한 삼 년 안에 여러분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어요. 기대해도 좋아요!

 

그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대부분 코웃음 쳤었다.

일이년 만에 성견이 되는 강아지도 아니고, 나약한 소녀가 삼 년 만에 대 구천성을 이끌 정도로 큰다는 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그런데 지금 보고 있는 사마경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 상석 앞에 도착한 사마경이 걸음을 멈췄다.

상석에는 일장 간격으로 놓인 커다란 태사의에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구천대령주 공손백, 태상호법 여철숭, 장로원주 나극.

그리고 공손백과 여철숭 사이에 빈 의자가 하나 있었다. 소성주 사마경의 자리였다.

사마경이 걸음을 멈추자, 앉아 있던 세 사람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대 구천성의 소성주를 맞이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셋 모두 말이 없었다.

그러나 사마경의 뒤에 서 있던 장천운은 눈빛과 표정만 보고도 그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마경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과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강압적인 눈빛, 착잡한 표정, 침중하게 가라앉은 눈빛.

-죽기 싫으면 입조심해라.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공손백과 여철숭의 눈빛과 표정은 바로 읽을 수 있었다.

문제는 나극의 눈빛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눈빛에서 이질감마저 느껴졌다.

설마 후회하기라도?

정말 그런 눈빛이라 해도 믿기가 힘들었다.

나극이 누군데?

그가 마제라고 불린 것은 이십여 년 전부터다.

패도적인 무공과 살수를 아끼지 않았던 그는 한때 공포의 존재였다.

아마 천궁마신 사마중천이 아니었다면 마도제일인으로서 강호에 우뚝 섰을 것이다.

‘곧 본심이 드러나겠지.’

장천운이 세 사람의 마음을 파악하는 사이, 사마경은 말없이 공수의 예만 건네고 빈자리로 갔다.

공손백 등 세 사람의 뒤에는 호위무사가 둘씩 서 있었는데, 장천운도 소연추와 함께 사마경의 뒤쪽에 가서 섰다.

소연추의 한쪽 팔소매가 펄럭거릴 때마다 간부 중 몇은 빤히 쳐다보았고, 그녀를 잘 아는 몇 사람은 씁쓸한 표정으로 슬그머니 눈을 돌렸다.

“모두 좌정하시오!”

상석의 앞쪽에 서 있던 덩치 큰 무사가 고개를 돌리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가 바로 천경전의 주인이자 혁련기의 부친인 패왕도(霸王刀) 혁련광이었다.

덩치와 목소리가 크다는 것 외에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중도파이기에 오늘 대회의의 진행자로 선택되었다.

간부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혁련광이 사마경에게 말했다.

“소성주, 그간의 일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으면 하오.”

 

사마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넓은 구천대전 안으로 둘러본 그녀가 턱을 치켜들고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뵈어요.”

낭랑하면서도 맑고 차가운 목소리가 구천대전에 울려 퍼졌다.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구석에 서 있던 경비무사들도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의아해했을 거예요. 소성주가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왜 몰래 떠났을까, 왜 소성주라는 만인지상의 자리를 박차고 도망쳤을까?”

간부들이 숨을 죽이고 사마경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잠깐 말을 멈췄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사마경이 다시 말을 멈추고 공손백을 바라보았다.

공손백의 눈꺼풀이 보일 듯 말 듯 흔들렸다.

‘이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마경의 목소리는 자신이 알고 있던 반항기 많은 소녀의 투정 섞인 목소리가 아니었다.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고, 설득력이 있었다.

벌써 많은 간부들이 긴장을 풀고 저 계집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은가.

저러다 엉뚱한 소리라도 한다면?

‘멍청한! 저 계집이 사마중천의 핏줄이라는 걸 잊었어!’

그것도 너무 오래 잊었다. 자신의 계획에 형편없이 끌려 다니는 모습만 봤기 때문인가?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살기가 꿈틀거렸다.

그때 사마경이 붉은 입술을 떼고 말했다.

“이 사마경은 세상을 구경하고 싶은데, 백부님께서 제 안전을 걱정해서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몰래 도망치듯 떠나버렸죠. 듣자하니 바깥에서는 자식들이 그렇게 가출하는 일이 자주 있다고 하더군요.”

여기저기서 자잘한 웃음과 함께 웅성거림이 흘러나왔다.

“하하하, 사실 나도 그랬다네.”

“자네도? 흐흐흐, 나는 말이야, 칠 년 만에 돌아갔더니 집이 이사를 가서 찾을 수가 없지 뭔가.”

“후우,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네. 돌아가면 아버지에게 맞아죽을 것 같아서 포기했지. 어머니는 아직 살아계시는지…….”

사마경은 그들의 웅성거림을 들으며 공손백을 돌아다보았다.

“죄송해요, 백부.”

공손백은 언제 살기를 품었냐는 듯 웃음기 띤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어쨌든 무사히 돌아왔으니 다행이다.”

“이해해주셔서 고마워요.”

공손백을 향해서 예를 취한 사마경이 다시 간부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혁련광이 불붙은 폭약을 던지듯 물었다.

“소성주! 대령주께서는 소성주께서 스무 살이 되는 해 정월 정식 성주 위에 올라 본 성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시게 될 거라고 하셨소이다! 그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오?”

구천대전 안이 한밤의 공동묘지처럼 고요해졌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행여나 옷자락 스치는 소리라도 나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움직임조차 없어서 팔십여 개의 석상이 앉아있는 듯했다.

그 석상들의 시선이 사마경을 향해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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