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9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4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90화
‘어디로 갔지?’
침입자의 무공과 신법은 그가 지금까지 대해본 사람 중 철무를 제외하면 가장 뛰어났다고 할 수 있었다.
신법만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북소리를 이용했다 해도 자신의 감각을 속이지 않았는가.
어둠 속에 모습과 살기를 숨길 줄 안다는 것은 절정의 은신술을 익혔다는 뜻.
게다가 복면인의 장법에는 정심하고 심후한 내공이 실려 있었다.
누굴까?
구천성에 그런 무공을 지닌 자가 있었던가?
장법이든 신법이든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무공이었다. 어쩌면 외부 인물일 가능성이 컸다.
‘절대 평범한 자는 아니야.’
장천운은 이마를 찌푸린 채 지붕에서 내려왔다.
“장 조장, 무슨 일인가?”
외부를 지키던 관철양이 수혼대원들과 함께 그를 향해 달려왔다.
표정을 보니 침입자를 보지도 못한 듯했다.
“침입자가 있었습니다.”
관철양이 눈을 부릅떴다.
“침입자? 그게 사실인가?”
“방 안에서 저와 싸우고 밖으로 도주했는데, 나와 보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도대체 어떤 놈이……!”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대령주와 장로원주 쪽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누가……?”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장천운이 방으로 돌아가자 소연추도 도착해 있었다.
“못 찾았어?”
사마경이 물었다.
“예, 소성주.”
“누가 보냈을까?”
사마경은 침입자의 정체보다 침입자를 사주한 자가 누군지 더 궁금한 듯했다.
“그게 이상합니다. 공손백과 나극, 독고민 쪽에서 보냈다고 보기에는 의문이 많습니다.”
“그들 말고 아가씨를 노리는 자들이 또 있나 봅니다.”
소연추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장천운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 역시 선자와 같은 생각입니다.”
사마경이 입술을 씹었다.
그들 외에 또 다른 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상대해야할 적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었다.
‘누구든 상관없어. 나를 죽이려 했다는 건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자일 가능성이 커. 그들이 누구든 용서치 않을 거야.’
그때 장천운이 말했다.
“누군지 몰라도 아주 대단한 자였습니다.”
그는 침입자를 사주한 자보다 침입자의 정체가 더 궁금했다.
“어느 정도 실력이라고 생각해?”
사마경의 질문에 잠시 생각을 정리한 장천운이 말했다.
“제가 싸워본 사람 중 제일 강했던 자가 추산입니다. 그런데 침입자는 추산보다 강했습니다.”
사마경과 소연추도 추산의 무서움을 익히 알고 있었다.
일파의 종주에게 뒤지지 않는 절정고수가 바로 추산이다. 그보다 더 강한 자는 구천성에서도 많지 않았다.
“앞으로는 더 강한 자를 보내겠군.”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둘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사마경이 그 말을 듣고 장천운을 흘겨보았다.
“지금 나 겁주는 거야?”
“제가 겁준다고 겁먹을 분입니까?”
“아예 셋을 보내라고 하지?”
“으음, 그럼 정말 위험해질 겁니다.”
“흥! 천운이 알아서 다 막아.”
이야기가 이상하게 흐르면서 칼날 위에 서 있는 것처럼 팽팽하던 긴장감이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소연추는 쓴웃음을 지었고, 사공명신과 두양양은 한숨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목숨이 오락가락 하고 있는 판이다. 지금 그런 걸로 다툴 때인가 말이다.
그런데 장천운이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근데 사공 형과 두 소저는 왜 늦게 들어온 거요? 바로 들어왔으면 그자를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사공명신이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소성주와 조장이 다투는 줄 알고…….”
두양양이 머뭇거리며 덧붙였다.
“침상 위에서 이불이 펄럭거리는 것 같다고…….”
사공명신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들어가 봐야 괜히 눈치 없다는 소리나 들을지 모른다며 말렸다.
‘그렇게 위험했으면 소리라도 치지…….’
***
공손백은 종리성학의 보고를 받고 이마를 잔뜩 찌푸렸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잠도 자지 못하고 있던 중에 들려온 소식은 그의 짜증만 가중시켰다.
“소천전에 자객이 침입했다고?”
“예, 주군.”
“설마 독고태 그 놈이……?”
“독고 단주나 대장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쪽도 지금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럼 누가 사마경을 죽이려 했단 말이냐?”
“아무래도…… 제 삼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삼자?”
공손백이 눈을 치켜떴다.
“최근 강호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되었습니다.”
“수상한 움직임이라니?”
“정파의 고수들이 비밀결사를 맺고 본 성을 노린다고 합니다. 그들 짓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일이라면 공손백도 알고 있었다. 실체를 아직 확인하지 못해서 놔두고 있는 것일 뿐.
“흥! 쥐새끼 몇 놈이 날뛴다고 해서 흔들릴 것 같았으면 지금의 구천성은 존재하지도 못했을 거다. 그래도 쥐새끼들을 그냥 놔두면 광의 쌀독이 비는 법. 놈들에 대해서 철저히 조사해봐라.”
“예, 주군.”
“멍청한 놈들, 시도할 거면 성공을 하든지…… 공연히 건드려서 일만 복잡하게 만드는군.”
공손백은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저지른 암살 실패가 무척 못마땅했다.
그들이 성공만 했어도 자신은 ‘내 조카를 해친 자들을 반드시 잡아 죽일 것이니라!’ 라며 노성 한번 내지르는 것으로 모든 고민을 털어냈을 것 아닌가 말이다.
“하긴 정파라는 놈들 하는 짓이 그렇지.”
마뜩지 않은 표정으로 투덜거린 공손백이 살기가 풀풀 날리는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성학, 날이 새는 대로 본 성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라. 누구든 허튼 수작을 부린 게 밝혀지면, 그 문파를 주춧돌 하나 남기지 않고 쓸어버릴 것이라고 해!”
사람들은 자신을 의심할 것이다. 그 의심을 지우려면 보다 더 강하게 치고나갈 필요가 있었다.
“존명!”
***
흔들리는 촛불 아래, 오십대 중반의 초로인이 피로 물든 자신의 어깨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초조한 표정의 이십대 청년이 그의 어깨 상처에 금창약을 뿌리며 치료 중이었다.
분명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인데도 마치 남의 몸에 난 상처인 것만 같았다.
“어이가 없군.”
반백의 수염을 단정하게 기른 그는 자신이 새파란 애송이에게 당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것도 성명절기인 무영환신(無影幻身)을 펼쳐서 전력을 다해 도주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사십대로 보이는 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 역시 불신의 표정이었다.
“정말 흑월조의 조장이란 자가 그리도 강했단 말입니까?”
“최소한 방심하다가 당한 것은 아니네.”
“정보를 수집하면서 그가 강하다는 말을 듣긴 했습니다만, 임 대협에게 부상을 입힐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계획을 바꿔야 할 것 같네, 석 아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임 대협이 부상을 입었을 정도면 그자도…….”
초로인이 쓴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는 부상을 입지 않았네.”
“예?”
“그래서 더 어이가 없는 것이야. 이 임청백이 당하고도 옷자락 하나 못 건드렸으니까.”
“맙소사.”
“그의 신법은 결코 나에게 뒤지지 않았네. 그리고 그의 검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강했지.”
중년 남자, 석초산의 표정이 바위처럼 굳어졌다.
임청백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무영신수(無影神手) 임청백.
그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저 ‘정사 중간의 신비고수’ 정도로만 알려져 있을 뿐.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구문팔가의 주인들 아래로 평하지 않았다.
남 앞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가 이번 일에 나서게 된 것은 그의 절친한 친구가 그에게 부탁했기 때문이다.
아마 친구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그는 결코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겨우 부탁해서 나선 고수가 일개 호위무사에게 당하다니.
구천성에 대한 두려움이 새삼 가슴을 짓눌렀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두 번째 계획은 포기하고 일단 지켜보는 게 좋겠네.”
새벽쯤 몇 사람을 제거해서 혼란을 유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임청백이 당한 이상 계획을 계속 추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이리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네만, 계획은 실패했어도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볼 수 있네.”
“예?”
“누군가가 사마경을 암살하려고 침입했다는 소문이 나면 공손백과 나극이 바짝 긴장해서 서로를 의심할 거야.”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마경이야 당연히 그들을 믿지 못할 거고.
“그리되면 한 동안 구천성은 물에 뜬 기름처럼 화합을 이루지 못할 거네.”
석초산이 눈빛을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럼 회에서도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가 쉬워지겠지.”
“알겠습니다. 임 대협의 말씀을 회에 전하겠습니다.”
임청백은 석초산이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자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임무의 실패로 친구 얼굴에 먹칠하는 것 아닌지 걱정이었거늘.
그때 문득 자신의 몸에 검흔을 남긴 새파란 애송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의 자존심을 형편없이 구겨놓은 그놈의 낯짝이.
‘장천운이라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내 앞을 막는 자들 중에는 장씨가 많군.’
십여 년 전에도 장씨가 자신의 앞을 막았는데…….
그 장씨는 오늘 만난 장천운보다 훨씬 약했다. 자신이 한 팔만으로 상대해도 여유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근성 하나만큼은 이가 갈릴 정도로 끈질겨서 결국 그자 때문에 목표물을 놓치고 말았다.
이래저래 장씨 때문에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임청백은 은근히 화가 났다.
‘빌어먹을 장씨 애송이! 언제 그놈과 정식으로 한번 붙어봐야겠어!’
이유야 어쨌든, 정말 오랜만에 투지가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
비령각의 등잔불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
우문각은 차를 마시며 책을 읽던 중에 그 소식을 들었다. 허겁지겁 달려온 정유에게 상황을 전해들은 그는 찻잔을 잡으며 중얼거렸다.
“그들이 움직였나?”
‘그들’이 누구를 뜻하는지 잘 아는 정유가 침중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총사.”
“그들이 왜 소성주를 노렸을 거라고 보느냐?”
“죽이려고 노린 것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죽일 생각은 없었다?”
“소성주를 죽이면 대백에게 힘이 실립니다. 파천회로선 달갑지 않은 결과지요.”
“그럼 그들이 원한 것은?”
“소성주와 대백, 대장로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문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도 정유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똑같지는 않았지만.
“정유, 파천회의 회주가 누군지 밝혀졌느냐?”
“아직…… 워낙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운용되어서 그 끝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본 성에 들어온 자 중 파천회의 인물로 의심되는 자는 몇이나 되지?”
“세 사람이 있습니다.”
“날이 밝으면 그들이나 만나봐야겠군. 만나보면 알겠지. 누가, 무슨 목적으로 소성주를 공격했는지.”
차갑게 웃은 우문각이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긴장이 활시위처럼 바짝 당겨진 상태. 발을 내딛기만 해도 깨질 듯한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 누군가가 기침만 해도 칼이 날아갈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
그는 지금 같은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흥미로운 하루가 되겠어.’
그때 정유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전의 대회의 때 소성주에 대한 거취가 결정될 것입니다. 총사께선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멈칫한 우문각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둔 것이 있다. 아주 재미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