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89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4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89화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이다.
사마경이 연송하를 붙잡아 놓고 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나, 장천운과 그만큼 가까운 사이가 됐어. 그러니 송하는 이제 손 떼.
그런 뜻이었을까?
두양양 때문에 골이 난 걸 보면 억측이라고 볼 수만은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소성주님이 죽을 뻔했을 때 구해주셨다고 하던데요?”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 나는 호위무사잖아.”
“독이 자욱한 계곡을 내려갈 때는 조장님이 업고 가셨고요.”
“위험하니까 그랬지.”
“소성주님은 조장님의 등이 너무 넓어서 정말 편했대요.”
“별 말 다했네.”
“그리고 얼굴의 변용도 조장님이 직접 지워주셨다고 하던데.”
“자기 얼굴을 못 본다고 대신 해달라고 해서 그랬지 뭐.”
“입술이 부딪쳐서 얼굴이 빨개졌다는 말은 뭐예요?”
“어? 글쎄, 그런 일이 있었나?”
장천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연송하가 장천운을 흘겨보더니 체념한 표정으로 말했다.
“좌우간 걱정하시지 않아도 돼요. 저는 괜찮으니까요. 어차피 저와 조장님은 오빠와 동생 사이인데요 뭐.”
입을 삐죽이며 말한 연송하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녀는 장천운이 자신을 동생 취급만 하는 것이 불만이었다.
자신은 앞에 서 있기만 해도 가슴이 이렇게 두근거리는데 말이다.
“송하야.”
“예.”
“내 동생 되는 게 싫어?”
“아뇨, 싫은 건 아닌데…….”
항상 동생이어야만 할지 모른다는 게 마음에 안 들 뿐이다. 두렵기도 하고.
“나는 이 세상에 내 동생이 있다는 게 너무 좋다. 사실 나는 엄마 얼굴도 몰라. 본 적이 없거든.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항상 나 혼자였는데, 이제는 혼자가 아니잖아.”
“…….”
연송하의 기다란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그때 소천전 쪽에서 진구가 소리쳤다.
“조장! 소성주께서 찾으셔!”
장천운은 진구를 향해 손을 들어서 알았다는 뜻을 전하고 연송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존댓말, 너무 어색해. 그냥 전처럼 불러. 그럼 이따 봐.”
씩 웃어준 그는 몸을 돌려서 소천전으로 향했다.
연송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소매로 슬쩍 눈을 찍었다.
‘쳇, 그래도 오빠는 싫어.’
***
장천운이 사마경의 방으로 들어가자, 구천호령의 두 령주인 영호관과 원세명이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았다.
사마경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듯 두 사람의 눈에서는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어디까지 이야기했을까, 독살에 대한 것도 말했을까?
‘아직은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아서 좋을 것 없어.’
장천운이 내심 우려하고 있는데, 사마경이 영호관과 원세명에게 말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 계세요. 자세한 건 내일 이야기해요.”
“알겠습니다, 소성주.”
“그럼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포권을 취하고 돌아선 영호관과 원세명이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소성주께 말씀 다 들었다. 그 동안 수고가 많았다.”
먼저 돌아선 영호관이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별 말씀을. 저는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말이 거의 없던 원세명도 오늘만큼은 한마디 했다.
“소성주를 부탁한다, 장 조장. 그럼 내일 보자.”
두 사람이 방을 나가자, 장천운이 사마경을 돌아보았다.
그가 묻기도 전에 사마경이 미리 짐작하고 전음을 보냈다. 이제는 눈치도 절정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독살에 대해선 말하진 않았어.]
영호관과 원세명이 아무리 충성심 강한 구천호령이라 해도 성주의 죽음 당시 아무 것도 감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게다가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 않은가.
현재 구천성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마경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오늘 밤은 천운이 이 방 안에 남아 있어. 유모는 아직 몸이 안 좋아서 쉬어야 하니까.”
“방 안에요?”
“싫어?”
장천운이 슬쩍 소연추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소연추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전음을 보냈다.
[아가씨 말씀대로 해. 내가 있고 싶어도 아직은 무리야.]
[그래도 주무시는데 제가 있으면…….]
[일 년 동안 함께 지낸 사람이 뭐가 어때서?]
장천운은 속이 뜨끔했다.
사마경이 도대체 뭐라고 했을까?
설마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
어둠의 장막으로 뒤덮인 구천성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했다.
구천성 무사는 물론이고 손님으로 온 자들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방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를 꺼렸다.
어제만 해도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오늘밤은 밤새조차 숨을 죽이고 울지 않았다.
밖에선 화톳불이 피냄새를 맡은 듯 붉은 이를 드러내며 춤을 추고, 한겨울 밤바람소리가 온 세상을 얼려버릴 듯 불어댔다.
그러잖아도 싸늘하게 심장이 식은 사람들은 지붕을 뒤집어엎을 듯 불어대는 거센 바람소리에 몸마저 얼어붙었다.
이제 밤이 지나면 원단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다.
아마 오늘 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소성주가 돌아온 이상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냥 지나가진 않을 테니까.
무슨 일이 벌어질까?
설마 동료들끼리 칼을 들이대는 일이 벌어지진 않겠지?
사람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었다.
동료가 언제 적으로 변할지 모른다는 것.
과연 친구에게 검을 겨누라는 명령이 떨어진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날 밤, 공손백도, 독고태와 나극도, 우문각도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사마경의 귀환 목적이 그들을 괴롭히려는 것이었다면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고민하는 것은 오늘밤 때문만이 아니었다.
오늘밤은 구천성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사마경에게 쏠려 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느 누가 저 많은 시선을 뚫고서 사마경을 죽이려하겠는가.
문제는 원단이 하루 남은 내일이다.
내일. 내일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둥! 둥! 둥……!
그렇게 사람들이 고민하는 사이 고루(鼓樓)에서 자정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드디어 또 하루가 지나가고 그 날이 다가온다.
***
‘이제 정말로 하루 남았군.’
가부좌를 틀고 있던 장천운은 북소리에 눈을 뜨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십 년만큼이나 긴 하루가 될 거라던 그 날이 왔다.
물론 하루가 무사히 지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건 아니다.
어쩌면 그 이후부터 더욱 더 험난한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쨌든 하루가 지나야 가시밭길도 건널 수 있지 않겠는가.
“으으음.”
뒤에서 나직한 비음이 들렸다.
사마경이 잠자면서 흘리는 소리였다.
방 안에서 그녀를 지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천운도 오늘 처음으로 알았다. 사마경의 잠버릇이 썩 좋지만은 않다는 걸.
이불을 제멋대로 차냈고, 침상 좌우 끝을 자주 오갔다. 그렇게 오가면서도 떨어지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후우우. 그나마 겨울이어서 다행이군.’
옷이라도 제대로 입고 있었으니까.
만약 여름이었다면?
아마 자신이 아는 모든 불경구절을 백번은 반복하며 마음을 다스려야 했을 것이다.
‘밤새 같은 방에서 호위한다는 것도 못할 짓이군.’
둥! 둥! 둥……!
북이 열두 번째 울렸다. 아직 열두 번이 더 남았다.
장천운은 북소리를 하나하나 세 보았다. 한 번이라도 잘못 치면 쫓아가서 따지기라도 하겠다는 듯.
‘열셋, 열넷,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열여…… 응?’
열여덟 번째 북소리를 세던 그가 허리를 바짝 세우고 이마를 찌푸리며 고개를 살짝 쳐들었다.
둥!
열아홉 번째 북소리가 울렸다.
단 하나 켜져 있는 촛불이 북소리에 놀란 듯 좌우로 흔들렸다.
순간, 장천운의 몸이 가부좌를 튼 그대로 떠오름과 동시에 한 줄기 검은 그림자가 창문 쪽에서 사마경의 침상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어딜!’
허공에 떠오른 장천운이 우수를 쫙 펼치고 흔들었다.
무음의 뇌정무극수가 이 장 거리를 격한 채 허공을 두들겼다.
퍼버벅!
허공에서 울리는 둔탁한 폭음.
침상을 향해서 날아가던 그림자의 주인이 뒤로 튕겨나갔다.
그 소리에 잠을 깬 사마경이 반사적으로 이불을 걷어차고 몸을 날려서 침상을 벗어났다.
방바닥을 힘껏 밀친 그녀는 공중제비를 돌며 이 장을 날아간 후 장천운의 뒤에 내려섰다.
마치 그곳이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장소라도 되는 듯, 그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오연히 서서 머리를 쓸어 올리며 명령을 내렸다.
“잡아.”
딸깍.
장천운이 검을 밀어 올리며 검은 그림자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차갑게 굳은 그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검은 그림자의 주인은 복면을 쓰고 있었다.
벽 쪽으로 밀렸던 복면인은 일차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장천운을 공격했다.
후우웅!
바위조차 가루로 만들 것 같은 웅혼한 장력이 장천운을 향해 밀려갔다.
절정경지에 이르지 않은 자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위력적인 장공.
자신의 무공을 믿는 듯 복면인의 행동은 한 점 망설임이 없었다.
장천운은 상대의 장력에서 느껴지는 가공할 위력에 표정이 굳어졌다.
쉬아악!
현월이 뽑히면서 한 줄기 번개가 번쩍였다. 천뢰구검 중 전광일혼이었다.
복면인은 예상치 못한 강한 위력의 반격에 다급히 손을 휘두르며 뒤로 물러섰다.
장력이 스치는 곳의 물건은 뭐든 가루가 되어 버렸다.
자기로 된 찻잔도, 서탁과 그 위에 있던 벼루도 모래처럼 부스러졌다.
소리 없는 파괴. 섬뜩한 위력이었다.
그러나 전광일혼은 그의 생각보다 더 빠르고 강력했다.
두 사람의 장공과 검기가 뒤엉킨 순간.
콰르릉!
천둥소리가 나직이 울렸다.
현월에서 뻗친 검기가 파도처럼 밀려드는 장세를 갈기갈기 찢으면서 방향을 틀었다.
사선으로 치고 올라간 검기는 피할 틈도 주지 않고 복면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큭!
신음을 속으로 삼킨 복면인이 신경질적으로 삼장을 쳐냈다.
장천운도 현월로 세 개의 원을 삼각 형태로 그렸다.
푸른 검기로 이루어진 원이 벽을 형성했다.
그가 비록 약간의 이득을 취했다 하나 복면인의 공격은 찰나의 여유도 부릴 수 없을 만큼 위력적이었다.
자칫해서 실수라도 하면 소성주가 위험해지는 만큼 일단은 방어에 치중했다.
그때 복면인이 장천운을 향해 쌍장을 강하게 휘두르고는 창문 쪽으로 몸을 날렸다.
스륵!
복면인의 손짓에 창문 한쪽이 소리가 거의 나지 않고 열렸다.
그와 동시, 방문이 열리고 사공명신과 두양양이 방안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
“조장!”
“소성주님을 보호하고 있어!”
강력한 공격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섰던 장천운이 짧게 외치고 복면인을 쫓아서 신형을 날렸다.
그야말로 말 한 마디 건넨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복면인은 그 사이 창문 밖으로 사라진 상태였다.
밖으로 나간 장천운은 좌우를 둘러보았지만 침입자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그는 즉시 지붕 위로 몸을 날렸다.
지붕 위에 서서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그는 사위를 둘러보며 수상한 움직임을 찾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