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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8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46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84화

“귀마궁과 삼혈방까지 움직였습니다. 저도 장인어른께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묻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극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아니라고 말해도 믿지 않겠군.”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문제라는 거지요.”

“허어, 도대체 그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군.”

“담 궁주와 적 방주가 장인어른을 돕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나선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문제는, 결코 도움이 안 된다는 거지요.”

“정녕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거라고 보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면 혹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정체가 밝혀진 이상 도움은커녕 장인어른만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나극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깨를 펴고 냉랭히 코웃음 친 그가 말했다.

“흥! 하지도 않은 짓 때문에 곤란해질 이유는 없네. 만약 이번 일로 나를 다그친다면, 그게 누구든 내가 왜 마제라고 불렸는지 알게 될 거네!”

그 동안 계책이니 병법이니 하는 말에 너무 휘둘렸다.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자신의 성격대로 일을 처리했다면 지금처럼 골치 아픈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인어른…….”

“더는 자존심 상해가면서 변명 따위 하지 않을 거네. 누구든 입을 허투루 놀리는 자가 있으면, 머리통을 부숴버릴 것이야!”

나극의 전신에서 폭풍 같은 기세가 일었다. 마제의 위엄이 십 년 만에 되살아난 듯했다.

독고태도 더 이상 이해시키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궁지에 몰린 마당. 차라리 나극의 방법이 옳을지도 몰랐다.

“알겠습니다. 대신 나머지 일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아무래도 이번 일에 대해서 자세히 조사해봐야겠습니다.”

“알아서 하게. 이제부터 나는 잔머리 굴리는 일은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니까.”

독고태는 그쯤에서 일어났다.

한발만 자칫 잘못 디뎌도 빠져나오지 못할 수렁에 빠질 수 있다. 그런 경우를 당하지 않으려면 할 일이 많았다.

‘이해할 수가 없어. 담 궁주와 적 방주는 장인어른의 명이 없으면 움직일 자들이 아니거늘…….’

 

***

 

천하무림의 모든 시선이 구천성으로 향했다.

원단이 되면 천하무림을 좌우하는 구천성의 주인이 결정되는 것이다.

천하는 공손백의 성주 취임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문파에서는 공손백에게 축하인사를 하기 위해서 미리 사절단을 파견했다.

수많은 문파들이 아부하기 위해서 온갖 선물을 마련했다.

어느 누구도 이변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마제 나극이 강력한 대항마이긴 하나 공손백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사라진 소성주에 대해서 우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여기저기서 축하사절이 습격 받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구천성을 향한 발걸음을 돌리는 자는 없었다.

구천대령주, 대백 공손백, 그가 천하제일세인 대 구천성의 성주가 되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이었다.

 

구천성 내에서도 성주 취임에 대한 준비로 북적거렸다. 닷새 전부터 준비했는데도 시간이 빠듯했다.

얼마나 많은 손님이 올 것인지 예상하기도 힘든 상황. 천궁마신의 장례 때와 비슷할 거라 생각하면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이제 원단이 이틀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정확히는 만 하루하고도 한 나절. 그 시간이 지나면 천하무림은 새로운 제왕을 맞이해야 하리라.

 

그렇게 성주 취임 준비로 정신이 없던 날 오후, 차가운 바람이 약간 누그러진 미시 말쯤이었을 것이다.

정문위사를 삼 년째 맡고 있던 진삼은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구천성의 쪽문은 워낙 커서 어지간한 대장원의 정문과 비슷했다.

성주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손님들은 바로 그 쪽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다가오는 자들은 쪽문이 아닌 정문을 향해서 곧장 걸어오고 있었다.

구천성의 무사 복장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면사로 얼굴을 반쯤 가린 자도 있었고, 팔이 하나 없는 여인도 있었다.

성주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 그런 자들 중 한 부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들 중 두어 명이 눈에 익다는 것이었다.

‘누구지?’

의아함도 잠시, 큰 키에 조금 마른 듯 보이는 청년을 바라보던 진삼의 눈이 점점 커졌다.

“저, 저, 저 친구는……?”

“진삼, 누군데 그래? 별 볼일 없는 놈들 같은데, 쪽문 쪽으로 가라고 할까?”

위사 경력 일 년도 채 안 된 장한이 턱짓을 하며 물었다.

진삼은 대답할 정신도 없었다.

‘그자야, 장천운!’

그 뒤의 커다란 덩치는?

‘구 장로의 아들인 구산이고…… 저 한쪽 팔이 없는 여자는 소연추? 가만, 그럼…… 설마 저 남장에 면사를 쓴 사람이……?’

그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을 즈음, 구산이 큰 소리로 외쳤다.

“정문을 활짝 열어라! 소성주께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셨다!”

 

구산의 진기가 실린 커다란 목소리는 천둥벼락이 되어서 구천성의 백만 평 대지를 뒤흔들었다.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무슨 개소리야? 소성주께서 돌아오시다니?”

“어떤 새끼가 장난을 치는 거냐!”

“누군지 몰라도 죽으려고 작정했군! 장난칠 말이 없어서 하필이면…….”

“설마 진짜 소성주는 아니겠지?”

 

끼이이익!

한 면의 너비가 일장 반이나 되는 거대한 정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구산의 외침에 걸음을 멈추었던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정문으로 향했다.

남녀가 섞인 십여 명이 활짝 열린 정문을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오연하면서도 당당한 자세, 거침없는 발걸음.

어디서 한바탕 싸웠는지 옷자락에 피가 묻은 자도 있었는데, 그 때문에 분위기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정말 소성주가 돌아온 걸까?”

“맙소사!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내일만 지나가면 원단인데 말이야.”

“이거 심상치 않은데?”

드넓은 대로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눈치를 보며 수군거리는 그들의 표정이 가지각색이다.

그런데 너무 오래 떠나있었던 건가? 어느 누구도 예를 제대로 갖추는 자가 없었다.

“언제부터 소성주님을 그렇게 빤히 쳐다보기만 했단 말인가! 예를 갖추어라!”

한쪽 팔소매를 바람에 휘날리며 걷던 소연추가 냉랭히 소리쳤다.

사마경의 얼굴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나마도 변용을 지운 얼굴에 면사까지 쓴 상태 아닌가.

그러나 소연추를 아는 사람은 많았다. 한바탕 바람을 일으키고 소성주와 사라진 장천운과 흑월조 역시.

드넓은 연무장이 조용해졌다.

무사 몇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포권을 취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소연추와 흑월조를 알아보고도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지금은 공손백의 세상이다. 이틀 후면 그가 성주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소성주를 소성주로 대하기에는 껄끄러움이 많은 시기.

그때였다.

“저 여인이 소성주라는 걸 어찌 믿으란 말이오?”

엉거주춤 서 있는 무사들 뒤에서 세 사람이 나왔다.

머리를 위에서 묶고 말꼬리처럼 뒤로 늘어뜨린 중년무사와 차가운 표정의 삼십대 장한 둘.

중년무사는 신월당의 부당주인 귀혼도(鬼魂刀) 곡사였고, 두 장한은 곡사의 그림자라는 마월쌍도(魔月雙刀) 장씨 형제였다.

그들을 알아본 소연추의 눈초리가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곡 부당주, 설마 나를 몰라보는 건 아니겠지요?”

“내 어찌 선자를 몰라보겠소.”

“그런데도 감히 소성주님을 의심하겠다는 건가요?”

소연추가 화를 내며 쏘아붙였다.

그러나 곡사는 턱을 쳐들고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선자를 믿는 것과 소성주를 확인하는 것은 다른 일 아니오?”

“뭐라고요?”

“후후후, 여기 이 사람들에게 물어보시오, 저 여인이 소성주라는 걸 누가 아는지.”

“어디서 감히……!”

소연추가 눈을 부라렸지만, 곡사는 조소를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여기를 봐라! 저 여인의 얼굴이 소성주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

무사들이 다시 웅성거렸다. 그러나 몇 사람이 손을 반쯤 들고 망설일 뿐, 자신 있게 손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곡소가 소연추와 장천운을 쳐다보며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성주는 일 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어. 그런데 소성주와 일푼도 닮지 않은 여자를 데려와서 소성주라고 우기다니. 선자도 그렇지만, 네놈도 간덩이가 크구나!”

그들이 아는 소성주는 면사 밖으로 드러난 얼굴에 점과 기미 등이 잔뜩 끼어 있었다.

그 얼굴을 본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사람들은 당연히 사마경을 못생긴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지금의 사마경은 눈 위가 백옥처럼 깨끗해서 맑고 큰 두 눈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면사로 얼굴이 가려졌음에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

하거늘 누가 그녀를 소성주라 생각하겠는가?

“흥! 내가 그럼 가짜란 말인가요?”

사마경이 도도하게 코웃음 치며 다그치듯 물었다.

전에 사마경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 곡소는 움찔했다.

정말 소성주란 말인가?

하지만 진짜라 해도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사마경의 등장은 폭풍을 몰고 올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신월당이 대령주 공손백 편에 선 상태라는 것이다.

“구천성의 소성주라면 최소한 성의 무사들이 알아야 하지. 그런데 모두들 소성주가 아니라고 하지 않나?”

사마경은 곡소를 노려보았다.

“삼 년 전 구천대전에서 부당주를 만난 적이 있었죠. 당시 부당주는 오른쪽 눈이 찢어져서 퉁퉁 부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안 그런가요?”

“훗, 그 정도야 선자에게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이야기 아닌가? 설마 그런 이야기 따위로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곡사의 조소가 더욱 짙어졌다.

‘진짜 소성주라 해도 막아야 해.’

어차피 소성주의 얼굴을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령주에게 반기를 들만큼 간 큰 자도 없고.

억지를 부린다 해서 누가 자신에게 죄를 묻겠는가.

반면 사마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사람과 많이 만나지 않았다. 외출을 한 것도 장천운이 수혼대에 들어오고 난 이후였다.

오죽하면 부친이 간부들과 만나는 자리에 나간 게 오 년 동안 열 번도 되지 않을까.

또한 구천성에서 그녀가 익힌 봉황신무검법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자신이 사마경이라는 걸 밝히고 싶어도 마땅한 증거가 없었다.

그때 장천운이 사마경 앞으로 나섰다.

“소성주가 귀환한 것을 반기지는 못할망정 존재 자체를 믿지 못하겠다고? 머리가 나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군.”

“말조심해라, 이놈!”

“말조심? 말조심은 귀하가 소성주께 해야 되는 것 아닌가?”

“뭐야?”

“하극상이 무슨 죄인지 모르진 않을 텐데?”

“흥! 그거야 저 여자가 소성주일 때 이야기지. 어디서 데려왔는지 몰라도 잘못 골랐어. 설마 소성주가 못 생겼다는 걸 모르진 않을 거고…… 혹시 다급한 마음에 기루의 기녀를 데려온 거 아니냐?”

한껏 장천운과 사마경을 싸잡아서 비웃은 곡사는 턱을 치켜들고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흐, 감히 내 앞에서 사기를 치려고 하다니. 뭐하느냐! 저들을 잡아라!”

주위에 서 있던 무사 중 일부는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고, 일부는 사마경과 흑월조를 에워쌌다.

사방에서 무사들이 모여들더니 순식간에 백여 명에 이르렀다. 대부분 공손백을 따르는 세력의 무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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