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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8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40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82화

독고태는 은묘가 보낸 시비에게 설명을 듣고 이를 악물었다.

‘경고인가? 나, 독고태에게 그 따위 경고를 보냈단 말이지?’

경고의 뜻은 명백하다.

머리 자른 고양이를 보냈지 않은가.

성주자리를 욕심내지 말라는 뜻이겠지.

‘공손백, 이제 보니 너는 나를 모르고 있었구나. 나는 남에게 밟히는 걸 질색하는 사람이거늘. 밟으면 밟힌 만큼 그 아픔을 가슴 속에 쌓아놓고 반드시 갚아주는 사람이거늘.’

치기어린 반발심이 아니다. 속 좁은 자의 복수심이 아니다.

자존심이다. 밟히고는 못사는 독고가의 자존심.

“위정.”

한쪽에 조용히 서 있던 무표정한 장한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단주.”

“오늘 밤, 은묘의 목을 쳐라.”

장한, 위정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독고태가 이 사이로 씹듯이 말을 이었다.

“아깝긴 하지만, 이 독고태가 계집 하나 때문에 자존심을 꺾을 수는 없지.”

나직이 몇 마디 내뱉은 그의 눈에서 불길이 일렁거렸다.

‘두고 봐라, 공손백! 언젠가는 네놈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처참하게 짓밟아줄 것이니라!’

 

***

 

은묘의 죽음은 해가 중천에 떠서야 알려졌다.

그녀는 가끔 늦잠을 잤기 때문에 시비도 그녀의 죽음을 모른 듯했다.

시비는 나중에서야 목과 몸이 잘린 채 죽어 있는 은묘를 발견하고 비명을 내지르며 혼절해버렸다.

 

독고태의 애첩, 은묘의 죽음은 또 한 번 구천성을 침묵시켰다.

누가 그녀를 죽였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조사도 따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이한 침묵이 하루 종일 구천성을 휘감았다.

그날 오후, 공손백이 직접 독고태를 찾아가서 짤막하게 은묘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애도를 표하는 바이네. 이제 애첩보다 단주의 건강에 더 신경을 썼으면 하네.”

독고태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야지요. 저도 이제부터 제 건강에 대해서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져볼까 합니다.”

두 사람의 눈빛은 고요했다.

그러나 둘 다 알고 있었다.

상대의 말에 칼날이 숨겨져 있다는 걸, 은묘의 죽음으로 서로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걸.

 

***

 

철무는 뇌혈산에 대해서 확인해볼 것이 있다며 먼저 떠났다.

사마경도 구절곡에서 흑월조를 기다렸다가 다음 날까지 오지 않으면 구천성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장천운과 소연추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꾸었다.

“일찍 가 봐야 저들에게 대책을 세울 기회만 줄 뿐입니다. 여기서 사나흘 기다렸다가 가죠.”

“저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아가씨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있는 게 나아요.”

사나흘이라면 참고 기다릴 수 있었다.

“알았어. 나도 그들이 올 때까지 무공이나 익혀야겠어. 내 목숨을 남에게만 맡길 순 없으니까.”

사마경은 그 이후부터 수련에만 전념했다. 눈을 뜨자마자 운공조식부터 했고, 잠자기 전까지 오직 무공만을 생각했다.

깨달음이란 십 년을 붙잡고 씨름해도 얻지 못할 수 있는가 하면, 번개가 번쩍이는 찰나에 얻을 수도 있는 법이다.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그래선지 그때만큼은 두양양이 웃으면서 장천운에게 접근해도 모른 척했다.

 

장천운도 시간만 나면 구석에서 명상을 하며 몽중무 중 삼 초식의 무공, 두 번째와 세 번째 초식을 기억해보려고 머리를 쥐어짰다.

그러나 아쉽게도 짙은 안개에 가려진 듯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 무공이라면 꿈속에서 매일 자신을 죽였던 그 무지막지한 고수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후우우, 너무 급하게 마음먹지 말자.”

절독곡에서 기연 아닌 기연으로 공력이 급증한 것만 해도 어딘가?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욕심이었다.

고개를 흔들며 아쉬움을 털어낸 그는 자신이 자주 애용하는 절벽 틈바구니에서 나갔다. 구산과 저두심, 진구의 지옥수련을 도와줄 시간이었다.

‘추 형이 올 때가 됐는데…….’

장천운의 느낌은 귀신도 울고 갈 정도로 정확했다.

절벽 틈바구니에서 나간 그가 통나무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공터로 다가갈 때였다.

저 아래쪽 계곡 입구에서 몇 사람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왔군.”

태성산 구절곡에서 기다린 지 사흘. 마침내 추소철 등이 도착한 것이다.

“조자아아앙!”

“천우우운!”

이한과 추소철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다.

한명후와 유고원은 환한 표정으로 두 손을 흔들고 있다.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표정.

심지어 길쭉한 상흔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오관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장천운도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모두 무사했군. 정말 다행이야.’

 

***

 

아침 일찍 구절곡을 나선 장천운과 사마경 일행은 곧장 구천성으로 향했다.

지난 나흘간의 구절곡 생활은 몇 사람의 자세와 표정을 바꾸어 놓았다.

항상 자신만만하던 사공명신은 어깨가 약간 처졌고, 두양양의 푸른빛 나는 눈동자는 더욱 빛을 발했다.

왕규는 처음보다 표정이 조금 밝았는데, 구천성에서 살아나올 수 있는 희망이 전보다 조금 커졌기 때문이었다.

‘새파란 놈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해. 잘하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겠는데?’

방호와 이공진, 유각은 구산과 저두심, 진구와 매일 비무를 하더니 눈에서 독기가 흘렀다.

그들은 하루에 두 번씩 비무를 했는데, 그야말로 지켜보는 사람이 살 떨리는 비무였다.

저러다 누가 죽지나 않을지 걱정될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어쨌든 죽은 사람은 없었고, 크게 다친 사람도 없었다.

그저 눈에서 독기만 흐를 뿐.

 

추소철 등은 아직 들뜬 마음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들에게서도 적지 않은 변화가 엿보였다.

의외라면 유고원이었다. 추소철과 함께 갔던 사람들 중 그가 제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볼이 조금 홀쭉한 걸 제외하면 겉모습은 전과 비슷했다. 그런데 눈빛이 매처럼 빛났다. 게다가 손등과 손바닥에 숱한 상흔이 있었다.

전에 없던 상흔. 지난 일 년 동안 생긴 상흔이었다.

그 상흔이 돋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다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수련으로 인한 상흔이라는 점이다.

그와 함께 다녔던 추소철 등은 그 상흔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 육 개월, 유고원은 어디에 그런 독함이 숨어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지독하게 수련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이제부터 내 목숨은 내가 지키겠어.

수혼대에 있을 때 그는 왕조산에게 구박만 받았고, 대운사를 떠난 후로는 주로 남의 신세를 져야 했다.

더 이상 남의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던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을 다그쳤다.

그러던 어느 날, 오관이 그를 구하려다 부상을 입었다. 오관의 얼굴에 새로 생긴 길쭉한 상흔이 바로 그때 생겼다.

하마터면 오관의 얼굴이 반쪽으로 갈라질 뻔한 그 일 이후 유고원은 더욱 독해졌다.

덕분에 지금 그의 실력은 일행이었던 사람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많이 변한 사람은 사마경이었다.

사흘밖에 안 되는 수련기간 동안 그녀는 경지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어제 저녁, 단 한 시진 동안의 운공조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장천운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저녁식사를 마치고 한 시진쯤 지났을 때였다.

 

***

 

통나무집 안에서 운공조식을 하던 사마경의 몸이 잘게 떨렸다.

그녀가 복수심과 절박함으로 자신의 몸을 극한의 상태로 몰아가자 진기가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각, 장천운은 밖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추소철 등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한이 먼저 왜 합비를 떠났는지 말했다.

“꼴 보기 싫은 놈이 보이지 뭐야? 그래서 곧바로 합비성을 나서서…….”

그 후 얼마나 돌아다녔는지도 이야기하고……

“반년 동안은 정신없이 돌아다녔지. 심지어 남경을 지나서 항주까지 갔다니까? 왜 소성주님께서 소주나 항주를 가보고 싶다고 하셨잖아. 더구나 유고원의 고향이 항주여서…….”

왜 황보산에 들어갔는지도 실감나게 풀어놓았다.

“……여름에는 무호에서 장강을 건넜다가 삼혈방 놈들과 마주쳐서 대판 싸웠는데, 쪽수에서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근데 마침 양씨 형제가 나타나서 도와줬지. 그 후 그들이 사는 황보산으로 가서 지냈어.”

오관이 유고원을 구하려다가 얼굴에 기다란 상처가 난 것은 그때였다.

장천운은 모든 질문을 뒤로 미루고 듣기만 했다.

자신과 사마경을 찾기 위해서 안휘는 물론이고 강서와 절강을 넘나든 듯했다.

고생은 했겠지만 강호를 실컷 돌아다녔으니 후회는 없을 듯했다.

그런데 이한의 이야기가 마무리 된 직후였다.

장천운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통나무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응? 무슨 일이지?’

그도 사마경이 운공조식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미미하게 느껴지는 진기의 유동이 왠지 모르게 불규칙하고 지나치게 거셌다.

그녀의 마음상태가 불안정하다는 걸 알고 있던 장천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그가 사마경의 방안을 살펴본 순간, 그녀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이를 악물고서 날뛰는 진기를 억누르려는 것 같은데, 본인의 힘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넘은 듯했다.

“이런!”

그는 생각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그녀의 등 뒤로 몸을 날렸다.

그러고는 즉시 우장을 그녀의 명문혈에 붙인 후 자신의 공력으로 날뛰는 사마경의 진기를 가라앉혔다.

“정신을 집중하십시오. 그리고 제 진기에 저항하지 마시고 흐르는 대로 놔두세요.”

사마경의 공력은 장천운이 생각한 것보다 더 높았다. 아마 그에게 절독곡의 기연 아닌 기연이 없었다면 그녀의 진기를 누르기는커녕 자신까지 다쳤을지도 몰랐다.

장천운은 사마경의 진기를 강제로 다섯 번이나 돌렸다.

어차피 손을 댄 김에 충격을 받은 그녀의 임맥과 독맥을 깨끗하게 정리해서 안정시키는 것이 나을 듯했다.

그렇게 모든 상황이 끝났을 때는 한 시진이나 흐른 후였다.

“좀 어떠십니까?”

장천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마경이 눈을 감은 채 뒤로 스르르 넘어갔다.

흠칫한 장천운이 재빨리 손을 뻗어서 그녀를 안 듯이 붙잡았다.

“괜찮으세요?”

장천운의 품에 안기다시피한 사마경이 힘없이 말했다.

“괜찮아, 고마워.”

“일단 몸을 세우시고…….”

“잠시만 이대로 있어. 너무 편해.”

“…….”

“싫어?”

“……아뇨.”

“걱정 마. 내일부터는 안 그럴 거니까. 이럴 시간도 없을 거고.”

장천운은 그녀를 안은 채 한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천하나 다름없는 힘을 상대해야 하는 여인이다.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 것인가.

아무리 자신이 이해할 수 있다 해도 사마경이 느끼는 무게의 일 할이나 이해할까 싶다.

‘너무 힘들고 어려운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래도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정 힘들면 저에게 말하세요.’

사마경을 안은 장천운의 손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사마경은 그의 가슴 속에 몸을 더 깊숙이 파묻었다.

정말 너무 편했다. 이대로 잠들었으면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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