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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0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44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00화

딸깍.

기다렸다는 듯 장천운이 현월을 밀어 올렸다.

입술 가에 걸린 무심한 냉소.

단강선을 직시한 채 한 걸음 내딛은 그가 검병을 움켜쥐었다.

전혀 예측치 못했던 상황. 흠칫한 단강선이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뒤늦게 자신이 기세에 밀렸다는 걸 깨달은 그는 이를 악물었다.

경천단의 이인자인 자신이 새파란 애송이에게 밀리다니!

“이 쥐새끼 같은 놈이!”

잇새로 분노를 씹어뱉은 그가 검을 잡으며 물러섰던 만큼 앞으로 나섰다.

순간!

쉬아악!

장천운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뽑았다.

현월이 일렁거리는 횃대의 불빛을 받으며 벼락처럼 뻗어나갔다.

단강선도 마주 검을 뽑으며 마주쳐갔다.

두 사람의 검이 충돌하기 직전, 현월이 서너 개의 그림자를 남기며 상대 공세의 실낱같은 틈을 파고들었다.

대경한 단강선이 다급히 검세에 변화를 주었다.

검첨이 휘돌면서 세 줄기 검기가 현월을 휘감았다.

‘흥! 어림없다, 이놈!’

명색이 절정 경지에 이른 단강선이다. 그는 자신의 검이 장천운의 검세를 충분히 제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능력을 과신한 착각이 깨지는 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구륜의 힘이 담긴 현월은 단강선이 펼친 검의 변화를 강제로 파훼하고서 심장을 노리며 뻗어갔다.

‘허억!’

단강선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상대의 검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순간 그의 머릿속은 공포만이 가득했다.

그때 가슴에 꽂힐 것 같던 현월이 가슴을 스치면서 어깨 위로 흘러갔다.

쉬이익!

그와 동시, 환영처럼 앞으로 미끄러져간 장천운이 좌수를 내밀었다.

그의 좌수에서 푸른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뇌정무극수가 한 자 거리를 두고 단강선의 가슴을 강타했다.

막고 자시고 할 틈도 없었다.

쾅!

“크억!”

비명을 내지른 단강선이 일 장 가량 떠서 뒤로 날아간 후 떼굴떼굴 굴렀다.

현월이 스쳐간 옷자락은 가슴에서 어깨까지 길게 갈라져 있었고, 갈라진 옷자락 사이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장천운은 버둥거리며 일어서는 단강선을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검을 거두었다.

그의 시선이 전면을 향했다.

“지금부터 앞을 막는 자는 그게 누구든! 구천률에 의해 처리할 것이오!”

그 말이 절대명령이라도 되는지, 무사들이 바다가 갈라지듯 옆으로 물러서며 길을 터주었다.

장천운에 대해선 소문만 무성했다.

장로가 그에게 패했다는 말도 있었고, 대령주의 최측근 절정고수가 그를 죽이려다 거꾸로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특히 장로원의 경비조장이 그의 앞을 막았다가 목이 잘렸다는 이야기는 코흘리개 애들도 다 알았다.

흑도출신 열여섯 살 장천운에게 사밀령 사령주의 눈두덩이 깨졌다던가, 강련곡 수련생 장천운의 주먹에 동겸의 이가 우수수 빠졌다는 이야기는 전설이 된 지 오래고.

아마 그에 대한 소문만 적어도 책 한 권은 가볍게 나올 것이다.

하지만 구천성 무사 중 그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소문이란 왕왕 부풀려지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현실은 소문보다 더했다.

절정고수인 단강선이 저리도 허망하게 패할 줄 누가 알았으랴.

심지어 지켜보기만 했던 냉원상과 소연추조차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가시죠, 소성주.”

사마경은 당연히 그런 결과가 나올 줄 알았다는 듯 표정 변화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무화원에서 멀어질 즈음,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이 날듯이 달려왔다.

우문각과 우경이었다.

“잠깐 멈추시오, 소성주!”

장천운이 사마경을 돌아다보았다.

사마경이 입술을 씹으며 말했다.

“그냥 가.”

그때 장천운 앞에 도착한 우문각이 눈짓으로 장천운을 제지하고 사마경에게 말했다.

“안 되오, 소성주.”

“뭐가 안 된다는 건가요?”

“이번 일은 누군가가 소성주를 무화원에서 끌어내기 위한 짓일 확률이 높소. 태상호법과 공 호법의 죽음에 대해서는 이 우문각이 철저히 조사해볼 테니, 소성주는 그곳에 가지 마시오.”

사마경이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이 사마경을 끝까지 지지하던 분이 살해당했어요. 아무리 그 위험이 크다 해도 가지 않을 수 없어요. 아마 내가 가지 않으면 구천성의 모든 무사들이 겁쟁이라며 나를 비웃을 거예요.”

“소성주…….”

“숙부, 구천성 안에서조차 몸을 사리는 사람이 밖에 나가서 무슨 큰일을 할 수 있겠어요? 친한 사람들이 죽어 가도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란 말인가요? 나는 그럴 수 없어요!”

그 말에는 우문각도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 봤을 때 무척 놀랐다. 일 년이 지났을 뿐인데도 사마경은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 스무 살인 그녀가 일 년 만에 달라졌으면 얼마나 달라졌겠는가,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이 사마경을 너무 과소평가 했던 것 같다.

앞에 있는 여인이 진짜 소성주 사마경일까? 혹시 가짜가 아닐까?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러나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현재 사마경이 지닌 힘은 이번 위험을 피해나가기에 너무 약하다.

그는 사마경을 막지 못한 장천운을 책망했다.

[왜 소성주가 나서는 걸 제지하지 않았느냐?]

[어차피 언젠가는 치러야할 일입니다. 그리고 태상호법마저 죽는 바람에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최악의 경우라 해도 소성주만큼은 반드시 지킬 겁니다.]

[제기랄.]

우문각이 얼마나 속이 탔는지 전음으로 욕을 하고는 냉원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냉원상도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할 수 없이 그가 다시 한 번 사마경을 말려보았다.

“소성주, 호법전은 지금쯤 복마전으로 변해 있을 거요. 소성주가 그곳에 가서 치명적인 피해를 본다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소.”

죽이지 않고 불구로 만들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좌절시킬 수도 있고.

우문각은 그런 일이 벌어질까봐 더 걱정이었다.

“우문 숙부, 죽음의 사지보다 더한 곳이라 해도 갈 생각이에요. 가서 알려줄 거예요. 이 사마경은 그런 잔머리 따위로 굴복시킬 수 없다는 걸 말이에요!”

사마경이 굽히지 않고 소리쳤다.

그녀의 도도한 목소리가 겨울바람을 타고 일대에 울려 퍼졌다.

근처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수많은 무사들은 가슴이 얼얼해졌다.

투정이나 부리던 어린 소성주, 수하 따위는 우습게 생각하던 오만한 소성주.

그것이 지금까지 자신들의 뇌리에 박혀 있던 소성주에 대한 단상이다.

그런데 이제는 투정이나 부리던 오만한 소성주의 모습이 뇌리에서 점점 희미해지고, 도도한 자신감과 수하들을 위해 사지로 뛰어들겠다는 열정적인 소성주가 대신 자리 잡기 시작했다.

우문각은 그러한 변화를 눈치 채고 눈매를 부르르 떨었다.

사마경은 단순히 모습과 말투만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맙소사! 기질까지 성주를 닮아가고 있구나!’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의 대화가 어쩌면 사마경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잃었던 무사들의 충심을 되찾을 수 있는 천금 같은 시간.

우문각은 그 점을 간파하고 짜릿한 전율마저 느꼈다.

‘하늘의 뜻은 정말 알 수가 없구나.’

사마경이 미리 예상하고 행한 일은 아닐 것이다. 슬픔과 분노를 다스리기도 바빴을 테니까.

천년 묵은 여우 뺨때릴 정도로 속을 알 수 없는 장천운이 계획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절묘하게도 자신이 그녀의 앞을 막으면서 그 일이 이루어졌다.

‘공손백, 그대는 아는가? 무사들의 가슴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는 걸!’

십여 년 전에도 그랬다. 사마중천이 성주가 된 지 일 년째 되던 날에도.

그날, 공손백이 성주가 되지 못한 것에 불만이던 무사들의 가슴이 뜨겁게 달구어졌고, 얼마 후 성주는 한마음이 된 수하들과 함께 천하를 휩쓸었지 않은가.

우문각은 더 이상 사마경의 앞을 막지 않기로 했다.

그는 오늘의 일을 하늘의 시험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소성주의 생각이 정 그렇다면 막지 않겠소. 대신 내가 따라가겠소.”

“아니에요, 숙부. 숙부 말대로 누군가가 저를 불러내기 위한 것이라면 숙부는 함께 가지 않는 게 좋아요.”

“소성주…….”

“제가 잘못되면 뒤처리 해줄 사람은 있어야하지 않겠어요?”

사마경이 도도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장천운에게 눈짓을 했다.

“출발해, 천운.”

장천운은 우문각을 향해 가볍게 포권을 취하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장천운, 나와 약속한 대로 목숨을 걸고 소성주를 지켜라.]

우문각의 전음이 귀청을 울렸다.

장천운은 냉소를 지으며 답했다.

[저는 반드시 살 겁니다. 그리고 소성주 역시.]

우문각은 멀어지는 사마경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사안(邪眼)이라고까지 불리는 그의 두 눈에서 기이한 광채가 번뜩였다.

‘공손백, 당신은 오늘 큰 실수를 저질렀다. 만약 소성주를 제거하지 못한다면, 오늘 일로 인해서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하늘은 과연 누구를 택할 것인가.

공손백? 나극? 독고태? 소성주? 아니면…….

 

***

 

사마경 일행이 호법전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듬성듬성 타오르는 화톳불이 차가운 겨울 밤바람에 흔들리며 불빛도 흔들렸다.

그 불빛을 받은 얼굴이 기괴하게 보여서 마치 시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리는 듯했다.

호법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장천운과 냉원상이 앞장서고, 사마경과 소연추가 뒤에 섰다. 흑월조와 수혼대는 그 뒤를 따라갔다.

그들이 정원을 가로지르자, 여기저기 서너 사람씩 모여 있던 호법들이 건성으로 포권을 취했다.

사마경은 간단한 목례로 인사를 대신하고 여철숭의 거처로 향했다.

호법들도 이미 반 수 이상이 공손백의 사람이 된 터였다. 신뢰를 저버린 자들.

앞장 선 장천운은 상황을 세세히 살펴보았다.

여철숭의 거처 쪽에 있는 사람은 이십여 명 정도. 조사를 위해서 벽호당과 율검당, 사건 관련자 외에는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더니 사실인 듯했다.

‘소성주를 지지하는 호법들은 아예 밖으로도 못 나오게 한 것 같군.’

호법이든 경비무사든, 웃음을 보이거나 반가운 표정으로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하지만 사마경은 어깨를 펴고 곧장 여철숭의 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철숭의 방 앞에는 여섯 사람이 서 있었다.

장로인 언동교와 마동곽, 호법 기철문, 그리고 나머지 세 사람은 삼십대 장한들로 율검당 복장을 하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소성주.”

착잡한 표정의 기철문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마음이 아프시겠습니다, 기 호법님.”

“허어,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키가 작은 언동교가 두 사람의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다.

“오셨소, 소성주?”

사마경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기철문을 볼 때와는 달리 차가운 눈빛이었다.

“언 장로님과 마 장로님께서는 어쩐 일이신가요?”

“우리와 기 호법이 이번 사건의 조사에 감독관으로 나섰소.”

장로 언동교. 그는 튀어나온 광대뼈 왼쪽에 깊은 상처가 있었다.

마도 고수인 혈염마객을 죽이면서 입은 상처로, 술을 마시거나 흥분하면 그곳이 붉어져서 제삼의 눈처럼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삼안혈수(三眼血手)라고 불렀다.

“태상호법 어른의 시신은 어디에 모셨나요?”

“아직 안에 그대로 있소. 조사가 끝나지 않아서 시신을 관에 안치하지 못했소.”

겉으로는 친절하게 말하는 듯했다. 그러나 온기가 없는 목소리에 칼날이 숨어 있었다.

“들어가서 제가 직접 살펴봐야겠어요.”

사마경은 언동교와 마동곽 앞을 지나쳐서 여철숭의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방문 바로 앞에 서 있던 무사들이 앞을 막았다.

복장을 봐선 율검당의 특수대인 구율대 무사들인 듯했다. 개개인이 조장급 이상의 일류고수들.

“아직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사마경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쳐들었다.

“비켜요.”

한쪽에 서 있던 기철문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소성주,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소.”

“저도 들어갈 수 없단 말인가요?”

“사건 현장이 훼손될지 모르기 때문에 내려진 명령이니 이해해 주시오.”

“누가 그런 명령을 내렸나요?”

“대령주께서…….”

“그 명령에 저도 포함된단 말인가요?”

“그렇소.”

“아무리 대령주라 해도 저에게 명령을 내릴 순 없어요. 비키세요.”

사마경이 강하게 재촉하자, 기철문은 할 만큼 했다는 듯 순순히 물러섰다.

그런데 구율대 무사 중 하나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대령주께 허락을 받고 오기 전에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소성주. 그만 돌아가시지요.”

비웃음이 가득한 말투.

사마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주시했다.

입꼬리가 슬쩍 치켜 올라가 있는 걸 보니 비켜설 마음이 없는 듯하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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