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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99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36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99화

부르르, 몸을 떤 여철숭이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허, 허, 허……. 세상이 참으로 무섭다는 걸…… 나이 칠십이 넘어서야 깨닫다니…….”

“숙부님의 가족은 제가 보살펴드리겠습니다.”

“내 가족은…… 걱정 마라. 네놈이 아니어도…… 굶어죽지는 않을 거다.”

여철숭이 냉랭히 말했다.

남보다 못한 조카였다. 그런 조카에게 가족을 맡길 순 없는 일 아닌가.

중년 무사로선 그런 반응이 더 편했다.

호법전 외에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정 때문에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어쨌든 저는 제 생각대로 살아갈 겁니다. 이해해달라고는 않겠습니다.”

 

***

 

여철숭이 처연한 표정을 지으며 숨을 거두던 그 시각.

호법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연못, 일명 북천소(北天沼) 곁을 지나던 벽호당 경비무사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겨울 연못은 수련도 잎이 물러져서 물 위에 떠 있는 물체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연못가에서 이 장쯤 떨어진 곳에 뭔가 커다란 것이 둥둥 떠서 물결에 출렁거렸다.

어둠 때문에 물체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자신이 아는 한 처음 보는 것이었다.

“뭐지?”

그는 연못가로 바짝 다가가서 물 위를 쳐다보았다.

“뭔데 그래?”

그 경비무사의 동료인 또 다른 무사가 그에게 다가오며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날씨도 차가운데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댔다. 근무 교대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빨리 가서 쉬고 싶었다.

그때 물 위의 물체가 바람 때문에 옆으로 돌았다.

물 위를 빤히 바라보던 경비무사의 눈이 점점 커졌다.

“뭐, 뭐야? 시체잖아?”

 

***

 

소천전에서는 사마경과 소연추, 장천운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마경과 소연추는 탁자 양 옆에 앉아 있고, 장천운은 사마경의 좌측에 조용히 서 있었다.

연송하가 사마경과 소연추의 찻잔에 차를 따라놓고는 슬쩍 장천운을 바라본 후 한쪽으로 가서 섰다.

사마경은 차에 손도 대지 않고 이마를 찌푸렸다.

“유모, 영호 령주가 왜 안 오지? 오늘밤에는 구천호령도 호위에 가담할 거라고 했잖아?”

“대령주가 오늘 밤까지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라고 명령을 내렸대요.”

전에는 구천호령 중 일령이 소천전을 호위해도 아무 말 없었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명령까지 내리면서 막는단 말인가?

“백부나 대장로가 나를 제거할 생각인 걸까?”

“그들이 아무리 아가씨를 해치고 싶어도 오늘밤은 힘들 거예요.”

“정말 그럴까?”

“어차피 아가씨가 성주가 되는 데까지는 일 년이라는 시간이 있어요. 저들로서는 서두를 이유가 없는데 굳이 오늘 무리를 할 필요는 있겠어요?”

“전쟁터로 보내 놓고 제거해도 충분하단 말이지?”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소연추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걸 알기에 아니라는 말을 확고하게 하지 못했다.

“천운은 어떻게 생각해?”

장천운은 사마경을 직시한 채 하루 종일 가슴에만 품고 있던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나중은 나중이고, 지금은 지금입니다. 제 생각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오늘을 넘기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손을 쓸 겁니다.”

“경비가 저렇게 삼엄한데도? 설마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그런 무식한 공격이야말로 가장 우려되는 일이다.

장천운 역시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공손백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무턱대고 힘자랑을 하진 않겠지요. 하지만 오늘 아무 행동도 안 하고 그냥 넘어간다면 사람들이 자신을 우습게볼지 모른다고 생각할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때였다. 밖에서 관철양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성주, 급히 보고 드릴 일이 있습니다.”

“들어와요.”

방문이 열리고 관철양이 들어왔다. 왠지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무슨 일인가요?”

“공선도 호법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사마경의 눈이 커졌다.

“공 호법님이 돌아가셨다고?”

“예, 소성주. 사망한 채로 북천소에 떠 있는 걸 경비무사들이 발견했다고 합니다.”

사마경의 기다란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철수신장(鐵手神掌) 공선도. 구천팔위에 속한 고수로 아직까지도 자신을 옹호하는 사람 중 하나다.

몇 남지 않은 확실한 우군 중 한 명이 죽다니. 그것도 원단을 몇 시진 남겨놓지 않은 이 시간에.

“범인은 밝혀졌나요?”

“조금 전에 시신이 발견되어서 일대를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사마경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연추가 흠칫하며 눈을 쳐들고 물었다.

“가보시려고요?”

“가봐야지. 나를 믿고 기다려준 분이 죽었다잖아.”

“너무 위험합니다, 아가씨.”

“위험하다고 해서 방안에만 처박혀 있으면 사람들이 나를 비웃을 거야. 비웃음거리 되는 것보다는 위험한 게 나아.”

사마경이 고개를 돌리며 장천운을 불렀다.

“천운!”

“예, 소성주.”

“천운도 유모와 같은 생각이야? 말해 봐.”

“사람들은 소성주께서 성주의 위엄을 보이길 원합니다. 그런데 비웃음을 사면 성주의 위엄을 보이는 건 요원한 일이죠.”

“내 생각도 그래.”

“하지만 위험한 줄 뻔히 알면서 지금 북천소로 가는 것도 현명한 선택은 아닙니다.”

“그래도 본 성의 무사들은 좋아할 거야. 언제든 자신들을 위해서도 나서줄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어쩌면 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는 나를 보고 가슴이 뜨거워질 수도 있지 않겠어?”

이제 제법 무사의 마음도 고려할 줄 안다.

장족의 발전이다.

무사들이야 그 이유보다 사마경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더 가슴이 뜨거워지겠지만.

“그렇게까지 생각하신다면 위험을 감수하지 못할 것도 없죠.”

“위험이야 항상 있어 왔잖아?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

사마경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하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앞으로 어떤 위험이 언제 자신을 덮칠지 모른다. 그때마다 피해 다닐 수만은 없는 일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장천운은 찜찜한 불안감 때문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단순한 살인은 아니야. 그렇다면 범인에게 뭔가 목적이 있다는 건데…….’

경고를 하기 위해서 죽인 것을 수도 있다. ‘소성주를 돕는 자는 이렇게 죽는다!’라는 경고.

아니면…….

“안 갈 거야?”

사마경이 재촉했다.

때마침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밖에서 냉원상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성주께선 안에 계시느냐?”

“예, 대주.”

“들어와요.”

구산의 대답과 거의 동시에 사마경이 말했다.

문이 열리고 냉원상이 들어왔다. 그런데 평소의 냉정무심한 표정이 아니었다.

분노를 억누르는 표정, 긴장감이 감도는 눈빛. 관철양보다 배는 더 무겁게 느껴지는 표정이다.

“무슨 일인가요?”

사마경이 물었다. 냉원상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소성주, 호법전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안 그래도 조금 전에 공선도 호법이 살해당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공 호법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사마경의 눈이 의아함으로 커졌다.

냉원상이 호흡을 정리한 후 충격적인 말을 던졌다.

“태상호법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뭐예요?”

“시비가 조금 전 방안에서 피바다 속에 쓰러져 있는 태상호법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사마경이 눈을 부릅떴다.

소연추도 놀라서 입이 반쯤 벌어졌고, 장천운은 표정이 바위처럼 굳어졌다.

여철숭이 비록 공손백 쪽에 붙었다지만 오전의 일을 봐선 남모를 사연이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가 죽었단다.

구천성 태상호법 여철숭이. 자신의 거처인 호법전에서.

공선도에 이어 여철숭까지. 두 사람이 거의 비슷한 시간에 죽었다는 것은 그들을 살해한 자들에게 뭔가 목적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가, 천운.”

이번만큼은 사마경도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다.

여철숭의 죽음은 그만큼 충격이었다.

장천운은 불안감이 더욱 짙어졌지만 사마경을 제지하지 않았다. 막는다 해도 사마경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을 듯했다.

그렇다면 차선의 방법이라도 구하는 수밖에.

[송하야.]

갑작스런 장천운의 전음에 연송하도 전음으로 대답했다.

[예?]

[가서 사공 조장에게 내 말 좀 전해.]

 

***

 

“뭐야?”

우문각은 공선도와 여철숭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벌떡 일어서다 찻잔마저 엎었다.

“현재 상황은?”

“호법전 일대에 비상이 걸리고, 무사들에게는 함부로 밖에 나오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햇빛을 보지 못하고 골방에만 처박혀 지낸 듯 얼굴이 하얀 삼십대 유생이 보고를 올렸다.

비령각 군사 중 하나인 우경이었다.

“정유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직접 상황을 알아보겠다며 호법전 쪽으로 갔습니다.”

비령위를 보내도 될 일이다. 그럼에도 직접 갔다는 것은 상황을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뜻.

우문각은 미간을 좁히고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누가 그들을 죽였는지, 또는 누가 범인을 사주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으니까.

아마 자신뿐만 아니라 몇몇 사람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왜 지금 그들을 죽였는지, 왜 죽여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다.

여철숭은 어쩔 수 없이 공손백과 손을 잡았고 공선도는 아직도 소성주를 옹호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그 두 사람의 공통점은?

소성주파라는 것.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 이유 때문에 두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뭔가 더 적극적인 목적이 공손백으로 하여금 극단의 선택을 하게 했을 것이다.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린 우문각의 눈빛이 흔들렸다.

조호이산(調虎離山).

호랑이를 잡으려면 산에서 떠나게 만들어야 한다.

무화원을 공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마경을 어떻게 해보려면 그녀를 밖으로 끌어내는 수밖에.

“젠장! 무화원으로 가자! 소성주를 호법전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야 돼!”

 

***

 

사마경이 소천전을 나서자 흑월조와 수혼대 이조가 그녀를 좌우에서 호위했다.

장천운이 선두에 섰다.

구산과 저두심이 바로 뒤를 따르고, 그 뒤에서 사마경이 소연추, 냉원상과 함께 걸었다.

나머지 흑월조는 후위를 지켰고, 횃불을 들고서 좌우로 늘어선 수혼대 이조는 눈을 부릅뜬 채 수상한 자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선두에 선 장천운이 먼저 무화원을 나섰다.

대낮처럼 밝혀진 무화원 일대의 무사들이 일제히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호법전의 참극 소식을 들었는지 긴장감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사마경과 소연추가 무화원에서 나오자, 바라보던 무사 중 하나가 굳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경천단 부단주인 혈심검 단강선이었다.

독고태의 오른팔.

“소성주, 이 밤에 어딜 가시려고 나서신 겁니까?”

그를 바라보는 장천운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호법전에 가려는 거요.”

“너에게 물은 것이 아니다. 비켜라!”

“소성주께선 지금 귀하의 말에 대답할 기분이 아니오. 비켜줘야 할 사람은 귀하 같소만.”

대운사로 가던 길 객잔에서 단강선의 행태를 지켜봤던 장천운은 그를 곱게 대할 마음이 없었다.

“이 건방진 놈이…….”

“호법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들었을 텐데도 상황파악을 못하시는군.”

“뭐라?”

단강선이 눈을 치켜떴다. 그도 장천운에게 안 좋은 감정이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사마경이 결정을 내렸다.

“천운, 무시하고 그냥 가.”

단강선이 그 말에 불쾌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며 인상을 썼다.

“소성주, 말씀이 지나치시오. 이 단강선도 소성주에게 무시당할 정도로 별 볼일 없는 사람은 아니외다.”

사마경은 그의 말에 대꾸할 기분이 아니었다.

“막으면 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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