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2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8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20화
백리우진과 몇 마디 나누더니 상황을 전해들은 듯했다.
상념을 털어낸 장천운이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전주.”
“수하들을 시켜서 포위했으면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왜 혼자 싸우다가 그냥 보냈느냐?”
옆에 있던 마동곽이 코웃음 치며 한마디 거들었다.
“흥! 공에 욕심나서 혼자 싸운 거겠지.”
장천운은 적의 정체를 말하지 않았다.
아직 확실치 않은 상대의 정체를 말해봐야 믿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때는 포위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마 호법 말대로 욕심을 부린 것이 아니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우진의 말을 듣자하니 놈이 떠나가는 데도 바라만 봤다면서? 왜 그랬지?”
“제 임무는 소성주를 지키는 것이어서 마차 곁을 떠날 수 없었을 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적의 수장이라면 잡았어야지! 어차피 도주하는 놈들인데 뭐가 그리 겁이 난 거냐?”
백리호가 계속 다그치자 사마경이 나섰다.
“천운도 다른 사람 못지않게 열심히 싸웠어요. 그만하세요.”
“아무리 열심히 싸워도 결과가 시원치 않으면 공을 세웠다 할 수 없는 법이네, 소성주. 적의 수장을 놓친 장천운보다는 적을 몇 명이나 척살한 우진이 더 큰 공을 세운 것 같군.”
결국 공적 때문인가?
장천운은 냉소를 지은 채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어차피 저는 공을 바라지 않으니 그리 말씀하신다면 할 말 없습니다.”
사마경도 차가운 눈빛으로 몇 마디 거들었다.
“천운이 저리 말하니 더 이상 공에 대해서는 논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솔직히 적지 않은 무사들이 죽거나 다친 지금 공을 논한다는 것도 조금 그렇지 않나요?”
“소성주,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지 공과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되네. 수하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알았어요. 그 말은 백리 전주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군요. 앞으로는 공과를 철저히 따지도록 하죠.”
“험, 소성주가 내 뜻을 알아주니 고맙군.”
나름대로 뜻을 관철시틴 백리호가 득의의 미소를 지을 때였다.
근처에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던 막소광이 갑자기 짝! 소리가 나도록 박수를 쳤다.
“이제 생각났어!”
박수치는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벼락이 떨어진 듯했다. 오죽하면 득의의 미소를 짓던 백리호가 깜짝 놀라서 흠칫했을까.
‘저 귀신 낯짝같이 생긴 놈이……!’
높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저런 건방진 행동이라니. 하여간 흑월대원들은 마음에 드는 놈이 없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막소광을 바라보았다.
대낮에 귀신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그 귀신이 갑자기 박수를 치고는, 세상 그 누구도 모르는 사실을 밝혀낸 것처럼 소리치니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귀신같은 자가 날아가는 참새 뭐라도 봤나?’
‘하늘로 올라가던 원혼이 놀라서 떨어지겠군.’
‘정말 생긴 것 답게 노네.’
하지만 막소광은 다른 사람이 속으로 뭐라 하든 말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 내가 왜 그 인간을 몰라봤지?”
“무슨 말이야? 아까부터 참새귀신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뭐가 생각났다는 거야?”
등평이 뚱한 표정으로 막소광을 째려보았다.
“그 놈! 아니, 그 인간!”
“누구?”
“악, 악, 어…… 악귀처럼 우리 대주를 물고 늘어졌던 그 자 말이야!”
막소광은 대충 얼버무리며 말을 돌렸다.
본래는 ‘악귀 같은 대주를 물고 늘어졌던’이라고 하려했는데, 차마 장천운의 면전에 대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그게 누군데!”
등평이 빽 소리쳤다.
다른 사람들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막소광을 바라보았다.
장천운과 싸운 자를 안다고? 적의 수장을?
사실이라면 예사로 생각할 일이 아니다. 적의 정체를 좀 더 확실하게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을 때, 막소광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천한마검(天寒魔劍) 구‧양‧명!”
“…….”
주위가 조용해졌다.
‘천한마검’이라는 이름 때문이다.
당금 마도에서 가장 강하다고 일컬어지는 열 명의 위대한 고수를 가리켜 천중십마(天中十魔)라 칭한다.
구천성 전대 성주인 천궁마신 사마중천과 대장로 마제 나극이 천중십마에 속해 있으니 그들의 강함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비록 말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나 천한마검이라는 별호도 그 열 명의 위대한 마도고수 안에 들어있다.
바로 그 점이 사람들의 입을 반강제로 닫게 만든 것이다.
결국 ‘흑월대주 장천운이 천중십마 중 한 사람인 천한마검 구양명과 싸웠고, 승부를 내지 못했다!’ 그런 뜻 아닌가 말이다.
얼굴이라도 좀 멀쩡한 자가 말하든가, 아니면 인상이라도 순한 자가 말했다면 절반 정도는 믿어줬을지 모르다.
천한마검은 아니라 해도 그 만큼 강한 자와 싸웠단 말이겠지, 하면서.
그러나 막소광의 인상은 믿음을 주기에 많은 점이 부족했다.
피식, 웃은 백리호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돌아서고, 몇몇 사람도 고개를 흔들며 시선을 돌렸다.
“난 또…….”
“진짠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얼굴도 험하게 생긴 친구가 말은 정말 그럴 듯하게 하는군.”
그런데 이마를 찌푸리고 있던 장천운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렸다.
“역시…… 그자였나?”
백리호가 멈칫하더니 고개만 돌리고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네 잘못이 가려질 줄 아느냐?”
그 말에 막소광이 눈을 치켜떴다.
“거 왜 사람 말을 못 믿는 거요? 틀림없이 구양명이었다니까! 내가 오 년 전에 코앞에서 봤던 그자가 분명하단 말입니다!”
그때 죽을 뻔했다. 순전히 얼굴 때문이었다.
귀신을 닮은 얼굴.
구양명은 자신의 얼굴만 보고 옆에서 패악질을 일삼던 자들과 한패라고 단정했다.
그러고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죽이려 했다.
-개자식! 사람을 왜 얼굴만 보고 평가해?
그는 그렇게 소리치며 놈의 목을 따고 싶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표정도 최대한 순하게 보이려 노력했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그런데 앞에 있는 인간들도 그놈과 똑같았다. 믿어주기는커녕 그때 그놈과 똑같이 얼굴만 보고 평가하지 않는가.
지들은 얼마나 잘나서!
“그 대주에 그 수하군. 그 얼굴로 거짓말하면 누가 믿어줄 줄 아느냐?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정리나 해!”
백리호가 냉랭하게 말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막소광은 그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너도 똑같은 놈이야. 두고 봐, 후회할 때가 있을걸?’
하지만 모두가 백리호처럼 그의 말을 무조건 의심하지는 않았다.
사마경이 물었다.
“정말 천한마검 구양명이 나타났단 말이죠?”
“그렇다니까요. 제가 전에 분명히 봤단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머리 모양과 옷이 달라져서 바로 못 알아 봤을 뿐이죠.”
사마경이 장천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천운도 그라고 생각해?”
장천운은 잠시 생각한 후 화제의 방향을 돌렸다.
“그가 누구든, 한번 나타난 이상 다시 얼굴을 보일 겁니다. 그때 가서 확인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겠지요. 그보다 지금 중요한 건 천은방 외에도 소성주를 노리는 자들이 더 있다는 겁니다. 그 일부터 알아보는 게 먼저일 것 같습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혁련광이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으으음, 네 말이 맞구나.
그러고는 주위를 향해 소리쳤다.
“자자! 어서 정리하고 이곳을 떠납시다!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이러다 이곳에서 밤을 새겠습니다!”
51장: 비가 오던 날
술시 정(戌時 正:오후8시), 빗방울이 어둠의 장막을 적시며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람도 차가운 날에 내리는 겨울비는 어느 누구에게도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필양으로 들어서는 구천성 무사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는 빗방울이 쇳덩이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축축하게 적셔진 어깨가 천근만근 무게를 못 이기고 축 처졌다.
천은방과의 싸움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백 명 가까운 전력이 손실을 입었다.
들판에 꽃이 피기 전까지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들판에 야생화가 피는 것을 볼 수나 있을까?
가슴에 돌덩이가 들어찬 듯 답답했다.
그나마 사마경이 패왕거를 부상자에게 내주고 걸어가지 않았다면 사기는 급전직하, 땅속을 십팔 층까지 파고들었을 것이다.
정유는 섭가장을 떠날 때 미리 필양에 사람을 보내서 객잔을 예약해두었다.
객잔은 모두 다섯 곳. 한 곳에 각각 백 명에서 이백 명씩 나누어져서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비 맞은 생쥐처럼 축 처진 무사들이 우르르 몰려가자, 객잔의 주인과 점소이들이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맞이했다.
“부상자를 안으로 옮겨라!”
무사들이 달려들어서 부상자들을 조심스럽게 마차에서 빼내 객잔으로 옮겼다.
그들의 몸에서 떨어진 핏물로 인해서 바닥이 붉게 물들었다.
사마경과 장로와 호법은 다섯 개의 객잔 중 가장 큰 북풍객잔으로 향했다.
굳은 표정, 무거운 발걸음. 필양의 밤거리가 적막감에 짓눌렸다.
빗방울도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했다.
저녁식사는 해시로 넘어가기 전에 끝이 났다. 평상시보다 식사시간이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할 기분도, 분위기도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거운 마음이어서 요리를 평가하는 말장난 따위는 생각도 못했다.
간부회의 자리는 식사가 끝난 후 따로 마련되었다.
밤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일과를 끝내고 편히 잠자리에 들 상황이 아니었다.
언제 어느 때, 또 어떤 적이 공격해올지 모르는 상황. 아무래도 길고 긴 밤이 될 듯했다.
“군사, 사절방이 왜 이곳에 나타났다고 생각하세요?”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형주에 있는 그들이 우리가 이곳을 지나가리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단순히 누군가가 알려주었을 거라는 말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너무 많다.
“천은방과 한 패거리라는 말인가요?”
“현재로선 그 외에 다른 이유를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만, 다른 경우 역시 배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밀령과 첩밀각은 본 성 최고의 정보조직인데 왜 그들의 움직임을 놓쳤다고 보나요?”
정유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에 대한 대답을 하려면 예민한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문제는 그럴 경우 일이 엉뚱한 상황으로 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마경이 한마디 더했다.
“듣자하니 최근 일 년 사이에 첩밀각과 사밀령의 인력 손실이 많았다고 하던데, 그 때문인가요?
그제야 정유는 사마경의 질문이 지닌 본 뜻을 눈치 챘다.
단순한 질책이 아니라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는 걸.
눈에 힘을 준 그는 사실대로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소성주 말씀대로 첩밀각과 사밀령의 조직체계가 너무 많이 무너졌습니다.”
“이유가 뭐죠? 자세히 말해보세요.”
처음에만 해도 신경을 쓰지 않았던 백리호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사마경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이런! 저 영악한 계집이……!’
그 사이 정유가 대답했다.
“지난 일 년 동안 첩밀각과 사밀령 말단에 있는 정보요원들의 보직이 상당부분 바뀌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비밀 정보선이 많이 끊어지고, 조직원들도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다. 공손백이 직접적으로 제거한 요원도 많다. 특히 내부감시 요원들을.
“뭐라구요?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정보요원들의 보직을 함부로 바꾸다니, 도대체 누가 그런 명령을 내린 거죠? 비령각주였나요?”
사마경이 발끈한 표정으로 소리쳐 물었다.
막 한마디 하려던 백리호는 사마경의 치켜뜬 눈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아닙니다, 소성주. 그 명령이 내려온 곳은 청묵전이었습니다.”
“뭐예요? 대령주께서 왜 그런 명령을……?”
“정보요원들로 하여금 다방면에 걸친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건 대령주께서 잘못 판단하신 것 같군요. 정보와 관련된 사람들은 오랜 세월 나름대로 구축한 정보수집 방법이 있는 법인데……. 피해는 얼마나 되죠?”
“보직이 바뀌는 바람에 요원들의 동선이 밖으로 드러나서 지금은 전문 정보요원들이 절반도 남지 않았습니다.”
“어쩐지 생각했던 것보다 첩밀각과 사밀령의 정보망이 허술하다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군. 도대체 백부께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군요.”
“소성주,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백리호가 다급히 끼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