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17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3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17화
“그럼 백 명 정도면 어떻습니까? 그 정도면 섭가장의 능력으로 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섭평산의 눈빛이 살아났다.
“백 명 정도라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구먼.”
“대신 정예무사여야 합니다.”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닌가.”
정유가 다시 사마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소성주, 섭 장주께서도 최선을 다해 지원을 하겠다고 하니 이제 그만 노여움을 푸시지요.”
사마경은 서릿발이 내린 눈빛으로 섭평산을 쳐다본 후 정유의 청을 받아들였다.
“알았어요. 섭 장주도 제가 왜 이러는지 충분히 이해할 거라 믿어요. 모든 것이 구천성과 구천성의 형제들을 위한 일이라는 점,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섭평산이 후다닥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였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주르륵 뺨을 타고 흘렀다.
“어찌 소성주의 마음을 모르겠소이까? 그저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해 송구할 뿐이외다.”
얼굴이 일그러진 백리호는 이만 악물었다.
백 명이라는 인원이 문제가 아니다. 섭평산이 사마경에게 굴복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빌어먹을! 사형이 알면 또 한마디 하겠군.’
***
후원에 위치한 별원이 사마경의 거처로 주어졌다. 별원은 건물 세 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정원이 오밀조밀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그날 밤, 섭평산이 정성껏 마련한 저녁식사를 마친 후 사마경의 방에서 네 사람이 차를 마셨다.
사마경과 소연추, 정유는 의자에 앉아 있고, 장천운은 평소와 같이 사마경의 좌측 한걸음 뒤에 서 있었다.
연송하가 찻잔에 적당히 따뜻해진 차를 따랐다.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인 사마경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고했어요, 군사.”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소성주.”
정유는 황송하다는 듯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사마경이 섭평산을 극단까지 몰아붙인 것은 즉흥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었다.
섭가장에서 쉬어가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을 때부터 이미 정유와 이야기가 오간 터였다. 지원받을 무사의 숫자도 처음부터 백 명으로 계획했고, 결국은 계획대로 되었다.
그 모든 계획은 정유가 세웠다.
아마 섭평산과 백리호, 마동곽 등 공손백과 나극 쪽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정유를 패죽이고 싶을 것이다.
“계획대로 지부 두어 곳에서 삼사백 명만 지원받을 수 있다면 피해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천은방에 동조하는 세력의 유무를 아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아직 들어온 소식은 없나요?”
“아직은 없습니다. 첩밀각과 사밀령이 조사하고 있으니, 필양에 도착하면 보다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마경은 고개를 주억거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천운, 확인했어?”
“예, 소성주. 우리 쪽에서 일곱, 섭가장에서 열두 명은 확실합니다.”
정유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마경과 장천운을 번갈아보았다. 그는 두 사람의 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장천운이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설명해주었다.
“아군 속의 반대자들이 때론 적보다 더 위험할 때가 있죠. 그래서 소성주의 의견에 반하는 자들을 추려본 겁니다.”
군사인 정유가 왜 그 말의 본뜻을 모를까.
“아!”
탄성이 절로 나온 한편, 많은 숫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은가?”
“많긴 하지만 우려했던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담담한 말투다. 하지만 정유는 오히려 그 말투에 소름이 끼쳤다.
“그들을 어떻게 할 건가?”
“끝까지 소성주를 따르지 않겠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요.”
“설마……?”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만, 명을 거역하면 구천률에 따라서 처리할 겁니다.”
전시에서의 구천률은 엄하다. 과거 천궁마신이 천하를 종횡할 때 세운 법이기 때문이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게 전쟁 아니던가. 그리고 전쟁에서는 승리가 우선이다. 그 다음이 다수의 생존이고.
정당함? 비겁한 짓?
그딴 것은 생각지 않았다.
오직 승리와 다수의 생존을 위해서 만들어진 법! 그게 바로 구천률이다.
그 중에서도 전쟁 시 구천령주의 명령은 절대다.
반드시 지켜져야 할 명령. 거역해서는 안 되는 절대명령!
백리호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사마경의 목소리가 커지자 입을 닫은 것이다.
“너무 많은 피가 흐르면 무사들이 동요할 수 있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죠.”
정유는 소리 나지 않게 숨을 내쉬었다. 사마경과 장천운은 그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면이 있었다.
‘소성주에게서 천궁마신의 기세가 느껴졌다고 하더니, 총사께서 그냥 한 말이 아니었어.’
그는 과거 천궁마신 사마중천의 기세가 어떠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사마경과 마주한 하루 만에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어쩌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군.’
***
아침이 밝자마자 첩밀각의 정보원이 섭가장으로 찾아왔다.
정유가 먼저 첩밀각의 정보원을 만난 후 사마경에게 보고를 올렸다.
“천은방 무리는 정보원이 떠나올 때까지 신천장에 집결해 있었다고 합니다. 숫자는 칠팔백 명 정도이고, 본 성에서 자신들을 치러올 거라는 걸 알고 잔뜩 긴장해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그들을 도울 만한 문파는 얼마나 되죠?”
“근처에 몇몇 문파가 있긴 합니다만, 특히 남양의 대봉문과 등주의 양가장이 가장 위협적입니다.”
“그들의 움직임은 감시하고 있나요?”
“예, 소성주. 남양과 등주에도 사람을 보냈습니다. 하오나 그곳의 소식은 내일 아침쯤에나 알 수 있을 겁니다.”
사마경은 눈을 가늘게 좁히고 허공을 응시했다.
숫자야 문제될 것 없다. 천은방이 아무리 정예무사를 보냈다 해도 구천성 무사들보다는 약할 테니까.
문제는 다른 세력의 도움이다.
그들이 지원을 받는다면 자신들도 지원을 받아야만 천은방을 적은 희생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청의 철기보에서는 언제쯤 올 거 같나요?”
철기보는 십이지부 중 하나다. 그들은 구천성 십이지부 중 가장 많은 말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청은 역(驛)과 가까워서 인근에 커다란 목장이 세 곳이나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철기보가 운영하는 목장이었던 것이다.
“그들도 내일 오후는 되어야 합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필양까지 가봐야 알 수 있겠군요.”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노산의 풍운산장은?”
사마경의 질문에 정유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복우산 동쪽 끝에 있는 풍운산장도 십이지부 중 하나다. 그럼에도 그들이 소성주를 도와주러 달려올 거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없었다.
“그들이 움직일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본래 중립을 지키고 있던 자들이어서…….”
사마경은 더 묻지 않았다. 정유는 반반이라고 했지만, 실제 가능성은 그보다 낮다고 봐야 했다. 자신의 희망을 꺾지 않기 위해서 비율을 높인 것일 뿐.
‘잘해야 사 할이나 될까? 일단은 그들이 오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계획을 세워야겠군.’
아침식사를 마친 토벌대는 섭가장을 출발했다. 이제 무사 숫자가 팔백이나 되었다.
섭가장 일백 무사는 장로이자 섭평산의 사촌형인 섭평수가 지휘했는데, 정유가 요구한 대로 정예무사임이 분명해 보였다.
의외라면 섭평산의 장자인 섭중만이 합류했다는 것이다.
그는 섭가장의 기재들만 모아놓았다는 오룡검대를 이끌고 있었다.
어쨌든 숫자가 일백이 늘어나니 토벌대도 사기가 오를 대로 올랐다.
하지만 속이 불편한 사람도 있었다. 특히나 백리호는 돌아가는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침 먹은 게 가슴에 얹힌 듯했다.
‘제기랄! 일이 처음부터 이상하게 꼬이는군.’
50장: 천한마검을 만나다
신시쯤 되자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었다. 제법 짙은 것이 비가 오려나 보다.
반갑지 않은 일이다.
많은 비야 오지 않겠지만 아직은 겨울이다. 비를 맞으면 체력이 급격하게 소모될 게 뻔하다.
“소성주, 속도를 조금 높여야겠소이다!”
선두를 이끌던 거경당주 황대광이 소리쳤다.
“그러세요.”
사마경의 명이 떨어지자 속도가 빨라졌다.
콰르르르르르.
패왕거가 우레 소리를 내며 달렸다.
빠른 속도는 아니다. 그러나 커다란 마차 세 대와 팔백 무사가 위용을 자랑하며 질서정연하게 달려가는 모습은 양민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도 남았다.
유시 초, 선두에서 달리던 거경당과 절검당 무사들이 계곡길로 접어들었다.
황량한 계곡은 바짝 마른 대지에 집채만 한 바위가 자갈처럼 굴러다녔다.
주위의 산들은 높지 않아서 일천 척 봉우리가 그나마 높은 편이다.
그 계곡이 끝나면 필양현이 지척이다.
필양에서 당하까지는 백오십 리 정도.
토벌대는 일단 필양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당하로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계곡길로 접어든 후 시간이 가면서 선두와 마차대와의 거리가 점점 늘어졌다.
길이 험하진 않지만, 폭이 좁고 굽은 곳이 많아서 서로가 보이지 않다 보니 일어난 현상이었다.
처음에만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십 리쯤 가자 거리가 지나치게 벌어졌다.
정유가 그 사실을 알고 우려했다.
“냉 대주! 선두로 사람을 보내서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라고 하십시오!”
그가 창문 밖으로 소리쳤다.
“알았네.”
냉원상도 거리가 너무 벌어진 것이 마음에 걸렸던 터라 즉시 그의 말에 따랐다.
그가 막 지시를 내리고 있을 때였다.
“으아악!”
“웬 놈들이냐!”
“놈들을 막아라!”
갑자기 저 앞, 선두 쪽에서 비명과 고함이 터져 나왔다.
냉원상이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마차대는 중간에 위치해 있다. 뒤쪽의 무사들이 선두를 구하려 간다면 약간의 차이는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그 약간의 차이로 수많은 무사들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냉원상이 망설이고 있는데 마차 안에서 사마경이 싸늘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냉 대주께서 수혼대와 함께 먼저 가보세요!”
“알겠소이다, 소성주! 즉시 선두 쪽으로 달려간다. 나를 따라와!”
냉원상이 악을 쓰듯 외치고는 일백 명이 넘는 수하들을 이끌고 선두를 향해 달려갔다.
그들이 빠져나가자 마차 주위의 경계태세가 순간적으로 헐거워졌다.
“모두 정신 차리고 사주 경계를 철저히 하시오!”
마부석의 장천운이 일어서서 소리쳤다.
뒤쪽으로 쳐졌던 후미도 비명을 들었는지 속도를 높여서 마차대를 향해 달려왔다.
마차에 타고 있던 장로와 호법들도 모두 내려서 전방을 주시했다.
수혼대가 도착했을 때 거경당과 절검당 무사들이 적과 맞붙어서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었다.
언뜻 봐도 적의 숫자가 더 많은 듯했다.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바닥에 쓰러진 양당의 무사가 벌써 삼십 명이 넘는다.
적도 비슷한 피해를 본 듯했다. 시신과 부상자가 뒤엉켜 있는데 어느 쪽 무사가 더 많이 쓰러져 있는지 바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놈들을 쳐라!”
냉원상이 노성을 터트리며 신형을 날렸다.
수혼대원들이 모두 무기를 빼들고 메뚜기 떼처럼 날아올랐다.
거경당과 절검당 무사들도 힘을 내서 반격을 가했다.
적들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싸움을 포기했다.
“놈들이 온다! 모두 후퇴해라!”
누군가가 명령을 내리자, 갈의와 청의를 입은 적들이 썰물처럼 뒤로 물러섰다.
“어림없다, 이놈들! 놈들을 잡아 죽여라!”
거경당주 황대광이 상처 입은 곰처럼 포효하며 뒤를 쫓았다.
수하를 십여 명이나 잃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당원들이 지금은 피바다 속에 누워 있다.
황소처럼 커다란 그의 눈에 핏발이 섰다.
거경당 무사와 절검당 무사들도 죽은 동료의 복수를 위해서 뒤따라갔다.
“놈들을 쫓아!”
“개자식들! 토막을 내서 죽이고 말겠다!”
냉원상 역시 그들 뒤를 따라서 쫓아가려다 멈칫했다.
수혼대의 본 임무는 소성주를 지키는 것이다. 적의 뒤를 쫓으면 소성주 일행과 너무 멀어진다.
문득 스치는 생각.
흠칫한 그가 전면을 향해 소리쳤다.
“너무 무리해서 쫓지 마시오! 적의 함정일지도 모르오!”
그러나 활활 타오르는 분노의 불길이 온몸을 집어삼킨 거경당과 절검당 무사들은 발길을 늦추지 않았다.
“당주, 따라가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바로 뒤따라온 관철양이 물었다. 그도 적의 후퇴가 왠지 모르게 께름칙했다.
문제는 그대로 놔둘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미 거경당과 절검당 만으로 처리할 수 없는 자들이라는 게 증명되었다. 그들이 쫓아간다고 해서 적을 섬멸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냉원상도 그 점을 모르지 않기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관철양, 내가 쫓아갈 테니 너는 여기 남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려줘라!”
관철양을 향해 소리친 냉원상이 저만치 앞쪽, 굽이를 돌아가는 무사들의 꼬리를 쫓아갔다.
“이조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나를 따라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