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15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15화
당초당이 귀기서린 눈빛으로 왕규를 노려보았다.
“정말 그런 독을 원하느냐?”
“크흑흑! 예, 어르신!”
“좋아, 주지. 대신 네놈도 내가 주는 독을 복용해야 한다.”
“예?”
“네놈이 세상에 나가서 나에 대해 말하면 안 되니까.”
“절대 말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네 말을 믿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 그럼…… 어떤 독입니까? 설마 먹고 죽는 독은……?”
“백일 동안은 잠복해서 독기가 활성화되지 않을 거다. 그 백일 안에 내가 말하는 한 가지 일을 처리하고 돌아와라. 그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돌아오면 너에게 쓴 독도 해독시켜주고, 네가 원하는 독도 주마.”
“정말입니까?”
“못 믿겠으면 믿지 마. 나도 너를 실험재료로 쓰고 버릴 테니까.”
“아, 아닙니다, 어르신! 믿습니다! 믿고말고요!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왕규는 진심으로 믿고 싶었다. 아니, 믿어야 했다.
살기 위해서는 귀독마종이 양처럼 순한 사람이라고 해도 믿어야 했다.
“이걸 복용해라.”
당초당이 시커먼 단약을 내밀었다.
“행여나 해독할 생각은 하지도 마라. 내가 만든 해독제가 아니면 내장이 모조리 녹고,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고통을 겪으며 죽어갈 거다.”
“제가 무슨 재주가 있어서 천하제일이신 당 어르신의 독을 해독할 수 있단 말입니까? 걱정 마십시오!
왕규는 달달 떨리는 손을 내밀어서 단환을 건네받았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은 법이다. 머뭇거려봐야 속만 탈 뿐.
‘에이. 씨발!’
왕규는 눈 딱 감고 단환을 입에 넣었다.
당초당은 자신의 해독제만으로 해독할 수 있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독왕의 해독제마저 무용지물인 것은 아니겠지?
49장: 출정(出征)
호경담에게 보낸 사신은 공손백이 공표한 이틀째 오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사마경은 더 기다리지 않고 토벌대 소집명령을 내렸다.
그날 미시 무렵.
대연무장에 무사들이 도열했다.
예상했던 인원은 오백여.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았다. 그것도 이백 명 가까운 인원이 늘어났다.
숫자가 늘어난 수혼대까지 세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생각지 못한 자들이 합류했기 때문이다.
둥! 둥! 둥……!
북소리와 함께 선발대인 거경당과 절검당 이백 무사가 구천성의 정문을 나섰다.
마침내 천은방에 죄를 묻기 위한 토벌대가 출정을 시작을 시작한 것이다.
검왕문을 치기 위해 지원대를 보낼 때도 이런 식의 출정식은 없었다.
천궁마신이 전설의 탑을 쌓기 위해 나섰던 때 이후 처음이다.
연무장 연단 위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구천성의 주요 간부들은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중앙에는 사마경과 공손백, 나극이 서 있었고, 그들 좌우에는 독고태와 백리호, 우문각 등 각 조직의 장과 장로와 호법 등이 늘어서 있었다.
혁련광을 비롯해서 출정이 예정된 간부들은 무사들을 지휘하느라 연단에 올라오지 않았다.
선발대가 정문을 거의 다 나갈 무렵, 사마경이 고개를 돌렸다.
“성을 부탁해요, 백부.”
“조심해라. 무엇보다 네 안전이 우선이니 너무 무리하지는 마라.”
“너무 걱정 마세요.”
사마경과 공손백이 담담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어차피 형식적인 인사일 뿐이다.
공손백으로선 사마경보다도 그녀의 뒤쪽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장천운이 더 신경 쓰였다.
“장천운, 소성주를 잘 보필해라. 만약 소성주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네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대령주. 소성주께 해를 끼치는 자는 그 누구도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설사 하늘이라 해도.”
장천운은 고개를 숙인 채 나직이 대답했다. 말끝이 살짝 올라가면서 그의 고개도 들렸다.
순간적으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었다.
‘건방진 놈!’
‘어디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독사 같은 늙은이. 마음대로 되진 않을 거다.’
콰르르르르르.
사두마차 세 대가 구천성 이천 무인의 환송을 받으며 정문을 나섰다.
선두의 마차에는 사마경과 소연추, 철무, 정유, 연송하, 류화가 탔다. 사람들은 철무의 얼굴을 처음 보고도 그저 호위무사 중 한 명이려니 생각했다. 어차피 역용을 해서 진짜 얼굴과 다르긴 했지만.
그 뒤를 따르는 마차 두 대에 장로와 호법이 나누어 탔다.
호법 중에서는 육선기, 기철문, 엽등광, 전무궁, 장린이, 장로 중에선 구평추, 이만양, 마동곽, 가유덕, 그리고 장로 중 유일한 여인인 서두향이 나섰다.
사마경이 탄 선두 마차는 유난히 컸다.
여덟 명이 탈 수 있는 마차의 외부는 검은색과 붉은 색으로 화려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고, 검은 지붕에는 꿈틀거리는 붉은 용 아홉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부석에는 장천운이 마부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장천운은 악착같이 우겨서 마부석에 앉았다. 사마경과 연송하의 눈빛을 받으며 앉아있는 것보다는 찬바람을 맞더라도 밖에 있는 것이 더 속편했다.
‘안에 있으면 한 시진도 안 돼서 돌아버릴 거야.’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콰르르르르르.
마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마차 좌우에서 커다랗고 화려한 깃발 두 개가 바람에 펄럭였다.
‘멋지군!’
왼쪽 깃발에는 ‘대(大) 구천(九天)’이라는 글자가 황금실로 수놓아져 있고, 오른쪽 깃발에는 붉은 용 아홉 마리가 뒤엉켜서 여의주 하나를 받들고 있다.
그 깃발이 바로 한때 천하를 떨쳐 울렸던 구천령기와 전설의 패왕기다.
과거 천궁마신이 타고 다녔다는 패왕거(霸王車)의 바퀴가 십여 년 만에 다시 구르기 시작한 것이다.
흑월대가 마차에 가까이 붙어서, 수혼대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마차대를 호위했다.
각 조직에서 골고루 무사들을 차출한 수혼대는 숫자가 백 명이나 되었다. 그 자체로 오단팔당에 밀리지 않을 막강한 힘이 갖춰진 것이다.
저 뒤쪽에서는 의외의 인물들이 함께 달렸다.
백리우진과 독고민이 천혼전과 경천단 무사들을 각각 오십여 명씩 이끌고 합류한 것이다.
무사의 숫자가 칠백에 달하는 것은 그들 영향이 컸다.
사마경과 장천운으로선 그들의 합류가 반갑지 않았지만 대놓고 거부할 수도 없었다.
“천운, 백리우진과 독고민이 합류한 것을 어떻게 생각해?”
사마경이 마차 안에서 물었다.
마부석에 앉아 있던 장천운이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저들도 결국은 구천성의 무사들 아닙니까? 목적이 다른 것만 아니라면 적이 아닌 아군입니다. 미리부터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그건 그래. 대신 이상한 짓하면 절대 그냥 안 놔둘 거야. 잘 지켜봐.”
그런 마음은 장천운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엉뚱한 생각을 품었다가는 따라온 것을 후회하게 될 겁니다.”
***
휘이이잉.
산 정상에서 불어대는 바람은 아직도 차가웠다.
세 사람은 차가운 바람이 불어대는 데도 움직이지 않고 전면만 바라보았다.
저 멀리 구천성의 거대한 전각군이 펼쳐져 있었다.
“드디어 움직였군.”
수백 명이 개미떼처럼 빠져나온다. 그 중간에 마차도 있다.
중앙에 서 있던 중년의 거한이 선두의 검붉은 마차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패왕거다!”
좌우측의 두 장한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패왕거가 나왔다는 말에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번뜩였다.
“저 맨 앞의 마차가 패왕거입니까?”
“분명해. 방주께 전서구를 띄워라. 사마경이 패왕거를 타고 출정했다고 해.”
좌측에 서 있던 장한이 한쪽에 놓아두었던 새장을 열었다.
새장 안의 비둘기는 세 마리. 비둘기 다리에는 각각 다른 색의 띠가 매달려 있었다.
붉고, 파랗고, 검은 색으로 물든 띠.
장한은 그 중 붉은 띠가 다리에 매달린 비둘기를 꺼냈다.
그러고는 붉은 띠에 몇 자 적은 후 허공으로 비둘기를 날렸다.
중년의 거한은 날아가는 비둘기를 잠시 바라보고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 시작이다. 과연 방주의 모험이 옳았는지, 아니면 소방주의 신중함이 옳았는지 곧 밝혀지겠지.’
***
이월이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았건만 바람에서 제법 온기가 느껴진다.
며칠만 지나면 누런 들판에 초록색 주단이 펼쳐질 듯하다.
성질 급한 놈들은 벌써부터 고개를 내밀고 바람에 흔들리며 두리번거린다.
들꽃이 피기 전에 돌아갈 수 있을까?
누렇게 말라버린 풀숲을 달리는 무사 모두 그렇게 되기를 기원했다.
아무리 검을 업으로 삼은 무사들이라 해도 전쟁이 반가운 이 누가 있을까.
싸우지 않으면 몸에 곰팡이가 피는 줄 아는 일부 투견들을 제외하면.
하지만 강호는 무정한 대지다. 바라건 바라지 않건 피가 흐르는 곳.
남쪽의 대별산맥을 옆구리에 끼고 평원을 달린 구천성의 토벌대는 석양이 질 무렵 신양성 인근에 도착했다.
저 멀리 신양성이 보일 즈음, 토벌대는 방향을 남쪽 산자락으로 틀었다.
신양성 남쪽 산자락에는 십이지부 중 하나인 섭가장이 있었다.
토벌대는 섭가장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에 출발할 계획이었다.
“소성주, 섭가장이 보입니다!”
방향을 꺾어서 십 리쯤 달려갔을 때 선두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아니나 다를까,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가자 저 멀리 거대한 장원이 보였다.
‘저기가 섭가장인가?’
장천운은 패왕거 마부석에 앉아서 가까워지는 장원을 쳐다보았다.
산자락에 수십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구천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일개 강호문파라고 하기에는 굉장한 크기다.
문득 섭중화가 떠올랐다. 섭가장은 그의 본가다. 그는 지금 백리우진의 부하로서 이번 출정에 동행한 상태다.
‘그가 부럽게 느껴지기는 처음이군.’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딘가.
‘언제 시간 나면 무창에 한번 가볼까?’
흑월대 사람들과 함께 가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오늘 밤은 섭가장에서 쉬고 내일 아침 신양을 출발하면 당하까지 이틀 정도 걸릴 것입니다, 소성주.”
정유가 차분하게 말했다.
사마경은 정유가 마음에 들었다. 우문각처럼 눈을 바라보기가 힘든 것도 아니고, 인상도 훨씬 순했다.
“천은방 무사들이 신천장을 차지하고 있다고 했죠?”
“예, 소성주. 숫자는 칠백 정도 된다고 합니다. 천은방 정예무사가 사백여 명이고, 나머지는 천은방과 손을 잡은 문파 무사들입니다.”
“우리와 전반적인 무력을 비교한다면 어떤가요?”
“별 다른 일만 없다면, 정면대결을 펼칠 경우 한 시진 이내에 저들을 전멸시킬 수 있습니다.”
숫자는 비슷했다. 그러나 개인적인 무력에서 차이가 컸다.
“군사는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보는 모양이군요.”
“첫째, 현재까지 밝혀진 저들의 전력이 전부가 아닐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무사들을 어딘가에 숨겨놓았을 지도 모릅니다.”
“하긴 우리와 싸우려는 자들이 모든 걸 다 드러내지는 않았겠죠.”
“둘째, 누군가가 저들을 도와준다면 상황이 더 복잡해집니다. 정체를 알기 전까지는 도와주는 자들의 전력을 감조차 잡기가 힘들 테니까요.”
“흠, 또 있나요?”
“우리 내부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군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에요.”
“내부에서 문제가 생길 시 최대한 빨리 정리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전력누수가 최소화됩니다.”
사마경이 고개를 끄덕이고 전면의 벽을 쳐다보며 말했다.
“천운, 들었지?”
“예, 소성주.”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질게. 만약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누구든 깨끗이 정리해. 적을 이롭게 하는 자도 우리의 적이야.”
사마경은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서 무시무시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는, 정유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흠칫했던 정유의 눈이 그녀의 미소에 몽롱하게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