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1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36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10화
장천운도 물러서지 않았다.
“모르셨습니까? 호위무사는 주인의 모든 것을 지켜줘야 하지요.”
체면도.
“소성주는 구천성의 임시성주이기도 하지만 내 사질이기도 하다. 설마 나나 사형이 소성주의 자리를 욕심내기라도 할 줄 아느냐?”
“그거야 누가 알겠습니까?”
“뭐야?”
“태상호법께서도 호법전 안에서 돌아가셨고, 소성주 역시 그곳에서 암습까지 받았는데 누굴 믿는단 말입니까?”
“네놈이 감히……!”
백리호가 분기를 참지 못하고 눈을 부라렸다.
그러든 말든, 장천운은 고개를 돌려서 사마경을 바라보았다.
사마경의 얼굴이 서서히 제 색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소성주, 제가 무례를 범했다면 벌을 내리십시오. 달게 받겠습니다.”
사마경이 숨을 깊게 몰아쉰 후 백리호를 향해 냉랭하게 말했다.
“전주, 천운의 말은 잘못된 것이 없어요. 호위무사라면 당연히 주인의 체면도 지켜주어야 하죠.”
백리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마경이 몇 마디 덧붙였다.
“앞으로는 오늘과 같은 실수가 없도록 주의하세요.”
잠깐의 시간이었다. 그 사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젠장, 사제 때문에 완전히 주저앉힐 수 있는 기회를 놓쳤군.’
공손백이 아쉬워하고 있을 때, 사마경은 대전 안을 둘러보며 턱을 쳐들었다.
그녀에게서 조금 전의 도도함이 살아났다.
허공을 날카롭게 찢어발기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좋아요!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면 무얼 못하겠어요!”
그녀의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들이 움찔했다.
공손백과 백리호도 멈칫했다.
사마경이 말을 이었다.
“천은방에서 적절한 해명을 하지 못하면 제가 직접 나서서 죄를 묻겠어요! 됐나요?”
얼굴이 해쓱해서 그런지 전보다 더욱 도도하게 느껴졌다.
“소성주,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오! 전쟁터에 직접 가시겠단 말이오?”
혁련광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사마경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성주의 위엄을 보여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렇다면 보여줘야죠!”
오기라면 오기였다.
물러설 수 없다면 정면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총사께서는 사자를 보내고 출정준비를 갖추어 주세요.”
“예, 소성주. 명에 따르리다.”
“다른 분들도 언제 출정할지 모르니 장기간의 외출은 자제하고 대기하세요.”
사마경이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다른 사람은 끼어들 새도 없었다.
공손백은 입을 꾹 다문 채 바라보기만 했다. 수염 끝이 사시나무 이파리처럼 잘게 떨렸다.
‘사마경, 모든 것은 네가 자초해서 벌어진 일이니 나를 원망하지 마라.’
***
사마경은 구천무원으로 돌아오자마자 무너지듯 의자에 앉았다.
“고마워, 천운.”
“할 말을 했을 뿐입니다.”
“정말…… 힘들었어.”
사마경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장천운은 앉아서 차를 마시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찻잔 속의 차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손의 미세한 떨림 때문이다.
아직도 구천대전에서의 충격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나보다.
“정말 천은방과의 전쟁에 직접 나서실 겁니까?”
“나서지 않으면?”
어떻게든 나서게끔 유도할 것이다. 아니면 겁쟁이라고 소문을 내든지.
어느 쪽이든 지금보다 좋을 게 없다.
“밖으로 나가면 위험이 배가 될 겁니다. 전쟁 중에 죽으면 의심이 덜 할 테니까요.”
“나도 알아.”
“아가씨, 차라리 대장로를 앞세우는 게 어떻겠어요?”
소연추가 걱정되는지 나름대로의 생각을 말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하지만 백부가 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안 그래, 천운?”
장천운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경이 직접 나서지 않는다 해도 강제로 밀어낼 수는 없다.
문제는 그럴 경우 더 힘든 일이 닥칠 거라는 점이다.
실망감만 안겨준 군주를 지지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직접 나서겠다고 한 이상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으로선 천은방의 일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게 최선입니다.”
“함께 갈 무사들을 최강의 정예로 꾸릴 거야.”
그렇게만 된다면 무슨 걱정일까.
그런데 공손백과 나극이 최고의 정예를 순순히 내줄까?
‘그럴 리가 없지.’
검왕문과 장강팔련만 아니어도 적지 않은 무사를 데려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많은 무사를 빼낼 수 없다.
사마경도 모르지 않았다.
”천운, 뭐 좋은 생각 없어?”
“제가 뭐 병법전문가라도 되는 줄 아십니까? 아무 때나 기가 막힌 계획을 뽑아내게요.”
“홍구로의 귀호라면 그 정도는 생각해 내야지.”
“소성주께서 귀호 하십쇼.”
“싫어. 여자가 귀호면 구미호가 되잖아.”
쓴웃음을 지은 장천운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생각난 계획을 하나 말했다.
“일단 총사께서 천은방에 사자를 보내면, 사자가 돌아올 때까지 며칠 정도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 동안 흑월조를 흑월대로 정비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수혼대도 인원을 한 백 명쯤 더 뽑고 말이죠.”
사마경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흠, 호위무사대를 키워서 자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정예무사의 숫자를 늘린다? 그거 괜찮은 생각이네. 봐, 역시 굴리니까 나오잖아.”
소연추는 실소가 절로 나왔다. 두 사람을 대하고 있으면 정신이 없었다.
전쟁을 앞두고 저런 농담이 나올까?
그때 장천운이 정색하고 말했다.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소성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걱정 마. 나도 다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소성주님이 다치시면 모든 게 헛수고가 됩니다.”
“알았다니까. 그런데 천운.”
사마경이 갑자기 심각한 어조로 불렀다.
평소와 다른 그녀의 말투에 장천운이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왜 그러십니까?”
“그 소성주님이라는 소리 좀 안 하면 안 돼?”
“하지만…….”
“그냥 전처럼 아가씨라고 불러.”
“그랬다간 성의 간부들이 저를 패 죽이려 할 겁니다.”
“동생이라고 부르는 건 어때?”
“그럼 패 죽이는 게 아니라 잡아먹으려고 하겠죠.”
“하아, 차라리 소성주일 때가 더 나았던 것 같아.”
아버지의 일만 아니었어도 지금쯤 신나게 여행 중일 텐데…….
가보고 싶었던 소주와 항주도 가봤을 것이고.
어쩌면 장천운과 좀 더 깊은 관계가 되었을 지도…….
그때였다.
멈칫한 사마경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힘들다고 해서 복수를 포기할 순 없어!’
어이가 없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알고도 놀러 다닐 생각이나 하다니.
아버지는 독을 복용하면서도 자신만을 걱정했다. 절대 경지의 고수인 아버지가 극렬한 고통을 겪었다지 않던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자신은 그 사실을 안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투정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미안해했던 마음이 다 거짓이었나? 그저 한순간 욱했던 분노에 불과했던 걸까?
‘아냐! 그게 아냐!’
사마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짜릿한 통증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머리를 감싼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천운과 소연추는 갑작스런 사마경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뭔지 몰라도 충격을 받은 듯했다.
사마경은 반각 정도 지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반각 전과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알고 복수를 다짐했던 그때의 눈빛과 비슷했다.
너무 갑자기 달라져서 소연추와 장천운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유모, 천운. 미안해. 내가 너무 철이 없었어.”
“아가씨…….”
소연추가 무심결에 전처럼 호칭했다.
“그래, 유모에게는 언제나 아가씨인 게 좋겠어. 앞으로도 그렇게 불러줘.”
“하지만…….”
“명령이야.”
“정 원하시면 그렇게 할 게요.”
“그리고 천운.”
“예, 소성주.”
“후우, 역시 소성주란 말은 마음에 안 들어. 그래도 할 수 없지.”
사마경은 호칭 변경을 순순히 포기하고 말을 이었다.
“천운은 최대한 빨리 귀독마종을 찾아내.”
“알겠습니다.”
“왕규에게는 연락 없어? 지금쯤 연락 올 때 되었을 텐데.”
“아직 없습니다.”
“그 일은 천운이 전적으로 맡아.”
“예, 소성주.”
“이제부터 너무 오랜 시간만 아니면 독자적으로 움직여도 돼. 철무 아저씨가 있으니까 내 걱정 말고.”
장천운은 멈칫했지만 반론을 제기하진 않았다.
귀독마종을 찾아서 뇌혈산의 유통경로를 확인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잘하면 공손백을 옭아맬 죽음의 동아줄이 될 수도 있으니까.
“상황을 봐서 필요하다 싶으면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사마경이 일어났다.
“이번 천은방 공격, 최대한의 인원을 동원할 거야. 안에서 안 되면 밖에서라도.”
밖에는 십이지부가 있다. 최소한 한두 곳 정도는 지원무사를 보내줄 것이다.
‘한바탕 피바람이 불겠군.’
***
유시 무렵, 장천운은 풍혼단으로 가서 한 사람을 만났다.
“이게 누구야?”
“오랜만입니다. 선우 형.”
“그 유명한 흑월조 조장이 나를 찾아오다니, 영광이군.”
훤칠한 키에 준수한 청년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진년 일차 수련생 중 일조장이었던 선우상이었다.
선우상은 풍혼단의 기재 중 하나다. 현재 조장을 맡고 있지만, 이삼 년만 더 지나면 대주가 될 것이 확실했다.
“그냥 얼굴 보러 온 것은 아닐 거고…… 말해 보게. 무슨 일인가?”
“이번에 흑월조 인원을 늘릴 생각입니다. 성주께서도 허락했죠. 그래서 선우 형을 데리러 왔습니다.”
“나야 싫은 건 아닌데, 단주께서 허락하실지 모르겠군.”
추소철도 풍혼단 출신이었다.
그를 흑월조로 편입한다고 했을 때 엽가승이 짜증을 잔뜩 냈었다. 선우상마저 데려간다고 하면 노발대발하겠지?
아니, 칼을 들고 흑월조가 있는 무화원으로 달려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천운은 엽가승이 달려올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엽가승이 뒤에서 나타났다.
장천운이 미소 띤 표정으로 돌아섰다.
“제 때에 오셨군요. 안 그래도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요.”
엽가승은 흠칫하며 장천운과 선우상을 번갈아보았다.
선우상이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과거의 그날을 떠올린 엽가승이 인상을 쓰며 눈을 치켜떴다.
“혹시…… 또?”
“소성주님의 명령으로 호위무사대를 보강하는 중입니다.”
소성주는 이제 임시 성주다. 진짜 성주나 마찬가지.
성주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는 일.
엽가승은 그래서 더 장천운에게 화가 났다.
‘보나마나 이놈이 선우상을 선택했을 거야.’
쓱, 선우상을 째려본 엽가승은 속만 끓었다.
싫은 기색이면 어떻게든 잡아보려 했다. 그런데 싫은 기색은커녕 은근히 기대하는 표정 아닌가 말이다.
“가고 싶으냐?”
“흑월조에 강한 자가 많다고 해서 말이죠.”
“빌어먹을, 이러다가 쭉정이들만 남겠군.”
“당주께선 풍혼단원들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풍혼단에는 저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습니다.”
“헛소리하지 마라. 뛰어난 놈이 그렇게 많다면 내가 왜 속이 끓겠냐?”
툭 쏘아붙인 엽가승이 사생결단이라도 낼 것 같은 표정으로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또 데려갈 놈 있느냐? 있으면 미리 말해!”
“없습니다.”
“정말이지?”
“예, 당주.”
“좋아, 그럼 데려가.”
엽가승이 신경질적으로 말하고는 돌아섰다.
장천운은 이채 띤 눈으로 엽가승을 바라보고는 선우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일 아침 사시 초에 무화원으로 오십시오.”
***
장천운은 고르고 골라서 아홉 사람을 찍었다.
대부분 삼십대 아래의 젊은 무사들이었다. 각 단체에서 골고루 뽑았는데, 심지어 경천단과 광혈단에 속한 자도 있었다.
직접 찾아가봐야 매번 신경전을 벌여야 할 터, 그는 성주의 직인이 찍힌 명령서만 보냈다.
오단 팔당의 주인들은 속이 쓰렸지만 사람을 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무화원에 찾아온 사람은 열 명이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이 하나 더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