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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0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38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08화

호북성 북부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천은방은 수주 북서쪽에 있는 조양의 조강산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무당파나 제갈세가 때문에 한수 서쪽에선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그들이 호북성 북부의 패자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원단이 팔일쯤 지났을 때였다. 칙칙한 어둠이 깔린 초저녁, 조강산 산자락의 천은방 총단에 손님이 은밀히 찾아왔다.

그로부터 이각이나 지났을까, 어둠이 온 세상을 뒤덮은 시각. 거대한 장원 깊숙한 곳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이제 우리 천은방이 날아오를 때가 되었어!”

호경담이 상기된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와 달리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청년, 호양청의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너무 위험합니다, 아버님.”

“꿈을 위해서는 모험을 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니라.”

“모험의 대가보다 실패했을 때 잃는 것이 더 많습니다.”

“대신 실패할 확률이 적지. 그렇다면 못할 것도 없어.”

“스스로가 아닌, 그것도 저들의 힘을 빌린 성공은 결코 성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저들이 성공의 대가를 대부분 가져갈 테니까요.”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나는 믿는다. 내 아들이라면 절대 그들에게 모든 걸 넘겨주지 않을 거라는 걸.”

“정녕 하셔야만 하겠습니까?”

“지금이 아니면 할 기회가 없다는 걸 너도 알잖느냐?”

부친의 의지가 너무나 확고하다. 자신이 말한다 해서 변할 것 같지가 않다.

호양청은 이미 자신이 막기에는 늦었다는 걸 알고 방향을 틀었다.

“좋습니다. 그럼 하나만 약속해주십시오. 약속해주신다면 저도 찬성하겠습니다.”

“말해봐라.”

“천화동인(天火同人)의 괘(卦)가 깨지면, 그 이후부터는 제 말을 따라주셔야 합니다.”

호경담은 누구보다 아들의 뛰어남을 잘 알고 있었다.

아들은 무림십룡에게 뒤지지 않는 기재다. 무공은 조금 뒤질지 몰라도 또 다른 능력은 무림십룡이 따라올 수 없다.

그 중 하나가 앞을 보는 눈을 가졌다는 것이다.

하기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는 아들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으음, 알았다. 그렇게 하마.”

“그리고 대봉문과 양가장을 반드시 끌어들여야만 합니다. 그들이 연수하지 않겠다면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음이니 뜻을 늦추십시오.”

“일리 있는 말이구나. 내 즉시 사람을 보내마.”

 

***

 

장례 기간 중 나머지 며칠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많은 사람의 우려와 달리 공손백은 묵묵히 지켜만 봤다. 독고태와 백리호는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사마경의 주위는 건드리지 않았고, 나극은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자신의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우문각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장천운과 만난 이후 인상을 찡그리는 일이 많아졌다. 가끔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서 중얼거렸는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구천성 무사들은 살을 에는 긴장감 속에서 숨 쉬는 것도 조심했다.

그 사이 장례는 별 다른 사건 없이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여철숭과 공선도의 묘는 사마중천이 잠든 마신총(魔神塚) 근처에 마련되었다. 죽어서도 호법이 되어 천궁마신을 호위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장례가 끝나고 이틀이 지나자, 사마경은 거처를 소천전에서 구천무원으로 옮겼다.

구천성 무사들은 사마경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려고 짐을 옮기는 일에 앞다투어서 나섰다.

젊은 청춘뿐만이 아니라 중년에 들어선 자들도 슬쩍 경쟁에 끼어들었다.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나섰는지 선별을 해야 할 정도였다.

사마경은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서 치하했다. 그 정도 몸짓만으로도 무사들은 황홀함에 취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쨌든 그 덕분에 반시진도 되지 않아서 이사가 모두 끝났다.

 

연송하와 시비 둘이 소연추의 지시를 받으며 방을 정리하는 동안 사마경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찻잔을 들었다.

“잘하면 백부와 싸울 힘이 생각보다 빨리 만들어지겠어.”

장례식에서의 상황 변화와 최근의 무사들 태도를 보고 하는 말이다.

장천운도 그녀의 말을 어느 정도는 인정했다. 그러나 쉽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그들만으로는 힘듭니다.”

“첫술부터 배부를 순 없지.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사람이, 더 강한 사람이 모여들 거야.”

“그만큼 대령주의 경계심도 강해질 겁니다.”

“나도 알아.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잖아?”

“그거야 당연하죠.”

사마경은 잠시 말을 멈추고 앵두 같은 입술을 찻잔에 대고 천천히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남자라면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고혹적인 모습이었다.

아마 많은 남자들이 찻잔을 부러워할지도…….

그런데 천천히 눈을 든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근데…… 내가 그렇게 예뻐? 천운은 어떻게 생각해?”

그런 말을 할 땐 영락없이 심술꾸러기 열여덟 살 소성주 같았지만.

“아름답습니다.”

“정말?”

“노인네들조차 침을 질질 흘릴 정도인데, 아름답지 않다고 하면 그게 이상한 거죠.”

사마경은 장천운을 째려보았다.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 뭐가 불만이야?”

“때로는 달콤한 꿀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너무 급하게 서두르면 늦는 것만 못할 수도 있어요.”

얼굴만 믿고 서두르지 말라는 뜻. 사마경도 그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나도 서두르고 싶지 않아. 그런데 백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져.”

장천운은 사마경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했다.

크고 맑은 봉목에서 뻗은 기다란 눈썹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상대는 강합니다. 천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잡니다. 하지만 소성주는, 비록 임시긴 해도 이제 천하제일세인 구천성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성주입니다. 꿀릴 게 없죠.”

“성주…… 그래, 나는 이제 성주지. 저 드넓은 연무장 한가운데 세워진 목봉의 끝에 위태위태하게 서 있는 임시성주.”

“겁납니까?”

“솔직히 여기 올 때만 해도 겁이 안 났어. 그런데 막상 성주로서 구천성을 지휘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겁이 나.”

“그래도 이번 장례 때는 처신을 아주 잘 하셨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예, 저뿐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많이 떨렸어. 사람들이 모두 나를 비웃는 것처럼 보였거든. 그때마다 아버지 얼굴을 떠올렸어. 그리고…… 천운이 내 옆에 있다는 것도.”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리듯 말한 사마경이 시선을 들어서 장천운의 두 눈을 직시했다.

“앞으로 일 년이야. 일 년을 더 견뎌야 돼. 그 안에 저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증거를 찾아내야 해.”

그녀가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기다림의 세월이었다.

원수를 곁에 두고 죽음과 맞싸우면서 일 년을 기다린다는 것. 그게 어찌 쉬운 일이랴.

아마 밝혀내지 못하면 저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제거하려고 할 것이다.

그 전에 모든 걸 끝내야 한다.

“최선을 다해서 밝혀내겠습니다.”

“꼭 해내야 돼. 약속해줘, 천운.”

“약속하죠.”

그때 사마경이 일어나더니 장천운을 향해 다가갔다.

장천운은 그녀의 뜻을 알고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차마 물러설 수가 없었다.

하늘이 짓누르는 엄청난 중압감을 버티고 있는 그녀다. 자신이 피한다면 그녀는 그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할 듯했다.

사마경은 장천운의 코앞까지 다가가더니 가만히 손을 뻗어서 장천운의 허리를 안았다. 그러고는 넓은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고마워, 천운.”

“더 강해지셔야 합니다.”

“그냥 천운의 등에 업혀서 다녔던 때가 좋았던 것 같아.”

“성주의 체통도 생각하시고요.”

“천운이 얼굴을 닦아줄 때 정말 기분이 좋았어.”

“이제 그만…….”

“앞으로 두려움을 겪을 때가 많을 거야. 어려운 일도 많겠지. 그때는 천운이 나를 안아 줘.”

“성주…….”

“날…… 떠나지 마.”

장천운은 처연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를 차마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성주이고 자신은 호위무사인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사마경의 떨림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얼마나 힘들면 떨고 있을까.

‘후우우우.’

속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숨 쉬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쳐들어 허공을 바라보며 사마경을 가만히 안았다.

그 바람에 볼 수가 없었다. 얼굴을 가슴에 기댄 사마경이 몰래 웃고 있다는 걸. 웃음을 참는 것이 떠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도 알지 못했고.

‘천운, 너는 내꺼야.’

절반쯤은 소연추가 알려준 방법대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순전히 본능에 따랐다.

십중팔구는 성공한 듯했다.

그 일만 아니었어도 그날 밤 다음 단계를 실험해봤을 텐데…….

 

***

 

미시 무렵, 우문각이 보낸 전령이 구천무원으로 달려왔다.

삼십대 중반의 전령은 우문각이 신임하는 자 중 하나로 항상 비령각 전각 문 앞에 서 있던 자였다.

“소성주, 당하의 신천검문이 천은방의 공격을 받고 멸문지경으로 당했다 하옵니다!”

장천운은 그 말을 들은 순간 신경이 바짝 당겨졌다.

불길한 예감.

사마경도 놀라서 눈을 홉떴다.

“뭐? 천은방이 신천검문을 멸문시켜?”

“신천검문이 먼저 천은방 무사들을 살해해서, 천은방이 복수를 했다고 합니다!”

“피해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

“삼백이 넘는 무사가 죽어서 장원 안이 시산혈해가 되었다 합니다.”

사마경은 입술을 깨물고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십이지부에 속한 신천검문은 구천성 권역의 서쪽을 책임지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사마경을 따르는 몇 안 되는 지부 중 하나라는 점이다.

“천은방이 신천검문을 쳤다는 건 우리 구천성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봐야겠지?”

자세한 상황을 모르는 지금으로선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장천운은 왠지 모르게 찝찝했다.

“이상한 일이군요.”

“이상하다니, 뭐가?”

“신천검문 무사들이 천은방 무사를 죽인 것도 석연치 않고, 그렇다고 해서 천은방이 전격적으로 신천검문을 공격한 것도 정상이 아닙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천은방이 아무리 힘을 키웠다 해도 구천성을 상대하려면 아직 멀었다.

그런데 왜?

무사 몇 명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천은방주 호경담은 그렇게 다혈질인 사람이 아니다. 자파의 무사가 죽었다 해도 구천성에 먼저 조심스럽게 서신을 보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볼 사람이다.

그런데 무조건 구천성의 십이지부를 공격해?

사마경이 전령에게 물었다.

“백부도 알고 있어?”

“지금쯤 소식이 전해졌을 겁니다.”

“가서 총사께 간부들을 모두 구천대전으로 불러들이라고 해.”

“예, 소성주!”

 

 

46장: 풍운(風雲)의 전조(前兆)

 

 

천은방의 공격에 신천검문이 피로 물들었다는 소식은 구천성을 또 한 번 뒤흔들었다.

구천대전의 분위기도 상황을 그대로 대변했다.

저벅, 저벅, 저벅…….

대전으로 들어서는 간부들의 표정이 모두 굳어 있었다. 말없이 걷는 그들에게서 묵직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천하제일세의 위상이 짓밟혔다. 그 말인 즉 구천성 무인들의 자존심이 짓뭉개졌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사마경은 상석에 앉아서 간부들이 모여드는 것을 바라보았다.

느낌이 대회의 때나 연회 때와는 또 달랐다.

분노를 담은 가공할 패기가 대전 안을 소리 없이 휘돌며 어깨를 짓눌렀다.

그녀는 어깨와 허리에 힘을 주었다. 도도함을 잃지 않기 위해서 두 눈도 힘주어 떴다.

그의 바로 뒤에는 장천운과 소연추가 서 있고, 좌우측 이 장 떨어진 곳에는 영호명과 원세명이 서 있었다.

아니, 다른 사람은 굳이 생각할 것도 없다. 장천운이 바로 뒤에 있지 않은가.

그 사실만으로도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간부들이 칠할 쯤 들어왔을 때 나극이 독고태와 함께 들어섰다.

유난히 굳은 표정. 꾹 다문 입과 찌푸려진 인상에선 복잡한 심사마저 느껴진다.

왜? 그런 의문이 들 정도다.

많은 간부들이 두 사람을 향해 슬쩍 고갯짓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도 마주 인사를 하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 와중에도 몇 사람이 더 안으로 들어왔다.

공손백은 그로부터 스물을 셀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백리호와 장로 셋, 호법 둘을 거느리고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등장하자 중압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마치 의도적으로 사마경을 압박하려는 것처럼.

저벅, 저벅, 저벅…….

발걸음소리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사마경은 이를 악물었다. 발자국소리를 듣고 있으니 심장이 밑으로 쏠리고, 머릿속이 아득해져서 혼마저 바닥으로 꺼질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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