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06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3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06화
장천운의 의문을 풀어주려는 듯 철무가 마저 이름 하나를 말했다.
“귀독마종 당초당이네.”
‘역시 그였군!’
장천운은 고개를 주억거렸고, 사마경은 눈이 동그래졌다.
“귀독마종이라면 독왕 할아버지의 손녀인 초아라는 여인을 중독 시킨 자잖아?”
“맞습니다.”
철무가 사마경과 장천운을 번갈아 보았다.
“소성주께서 독왕과 귀독마종을 어떻게……?”
장천운이 절독곡에서 독왕과 만난 사연을 말해주었다.
단, 자신의 몸으로 독을 실험한 일에 대해선 대충 얼버무렸다.
사마경도 굳이 그 일을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장천운이 백독을 견딜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비밀이라면 비밀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날 헤어진 이후 곽산에서 몇 달 더 지내고 내려왔습니다.”
“그럼 독왕이 사는 곳을 아나?”
“듣긴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 안하기로 약속했죠.”
철무가 사마경을 돌아다보았다.
사마경은 이마를 찌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 말했다.
“약속은 지켜야 해. 하지만 나나 천운이 직접 찾아가는 것은 상관없을 거야.”
그녀가 그리 말할 줄 예상치 못한 듯 장천운의 눈이 커졌다.
“소성주, 독왕 노선배를 의심하는 겁니까?”
“가능성이 적긴 하지만 아주 없는 것도 아니잖아?”
“독왕은 손녀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다른 일을 할 정신이 없었을 겁니다.”
“나도 알아.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만들었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야. 미리 만들어둔 독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사마경의 말도 잘못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천운은 독왕 남사명이 만들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순전히 감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감을 믿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배반하지 않았으니까.
“제 생각도 독왕보다는 귀독마종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철무가 장천운의 손을 들어줬다.
“왜?”
“뇌혈산에 대해서 알려준 사람이 그랬습니다. 독왕은, 독이 독다워야지 남을 속이는 사독(邪毒)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더군요.”
“독다운 독과 사독의 차이가 뭐지?”
“독인데도 독이 아닌 것처럼 남을 속이는 독을 사독이라고 했습니다.”
“독다운 독은 바로 독기가 드러나야 하고 말이지?”
장천운이 복용했던 독이 모두 그랬다.
극독 중의 극독들. 특히 흑명지독과 백령혼은 소름끼칠 정도고 지독했다.
“그렇습니다.”
장천운이 두 사람의 대화 사이에 슬쩍 자신의 생각을 끼워 넣었다.
“소성주, 일단 귀독마종부터 찾아서 사실을 확인하는 게 먼저일 것 같습니다. 뇌혈산을 만든 사람이 그인지, 그가 만들었다면 누구에게 줬는지 알아내고 그 길을 따라간다면 범인이 밝혀지겠죠.”
“차라리 의심 되는 자를 잡아서 우문 숙부가 취조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
우문각의 섭심마혼공을 버틸 수 있는 자는 구천성에 다섯도 안 된다.
장천운도 한번 겪어보았기에 사마경의 말이 일리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위험한 일이다.
도박에 가까운 모험.
“우리가 성주님의 독살에 대해서 조사하고 있다는 걸 저쪽이 눈치 채면, 싸울 수 있는 힘을 갖추기도 전에 공격받을 겁니다.”
그 일을 아는 사람은 공손백과 나극의 최측근뿐일 것이다. 그들을 잡아서 심문한다면 공손백과 나극이 바로 눈치 챌 가능성이 크다.
그럼 피를 보더라도 화근을 제거하려고 하겠지.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꼴.
“설령 알아낸다 해도 우문 각주의 말만으로는 중도에 서 있는 자들을 모두 회유시키는 것도 쉽지 않고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벽한 증거부터 찾아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사마경은 급해지려는 마음을 억눌렀다.
복수는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법이다.
군자복수(君子復讐) 십년불만(十年不晩).
‘군자의 복수는 십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좋아, 그럼 귀독마종부터 찾아봐.”
***
자시 무렵, 장천운은 사마경에 대한 호위를 철무에게 맡기고 소천전을 나서서 왕규를 찾아갔다.
왕규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눈을 비비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나에게? 뭔데?”
“혹시 귀독마종을 아십니까?”
왕규의 얼굴이 서서히 창백해졌다. 잠이 천리 밖으로 달아난 듯 홉뜬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정보전문가인 그에게 귀독마종이라는 이름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귀, 귀독마종? 그자는 왜……?”
“찾아서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서, 설마 나보고 그 미친놈을 찾아보라는 건 아니겠지?”
“원래 사람 찾는 일에는 왕 대협이 전문 아닙니까?”
왕규가 반쯤 썩은 얼굴로 손을 세차게 저었다.
“싫네. 내가 미쳤나? 그 미친놈을 찾으러 다니게.”
“왕 선배는 그가 어디에 사는지만 알아내시면 됩니다.”
“장 조장, 자네 그자가 얼마나 악랄한 놈인지 알고 하는 소린가?”
“독에 미친 자라는 말은 들었습니다.”
“그냥 미친놈이 아니네. 그놈은 본래 당가에서 쫓겨난 놈인데, 십 년 전쯤인가? 자기 신경 거슬렸다고 마을사람 백 명을 독으로 죽인 놈이네. 그 이후 공적이 되어서 쫓기면서도 독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지. 아마 누가 자신의 뒤를 쫓고 있다는 걸 알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네.”
독왕 남사명과 독 대결이 벌어진 것은 공적으로 몰린 이후의 일이었다.
“제가 해독단을 하나 드리죠. 설령 잘못되어서 귀독마종의 독에 당한다 해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천하의 어떤 극독도 해독시킬 수 있는 약이거든요.”
장천운이 기가 막힌 단약을 갖고 있다는 것을 왕규도 알고 있었다.
무려 독왕이 만든 해독단이다.
그 해독단은 극독을 해독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공증진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들었다.
무공을 익힌 무사에게 그 정도 단약이라면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있었다.
꿀꺽, 침이 절로 넘어갔다.
“정말…… 인가?”
“그렇다니까요.”
“귀독마종의 거처만 알아내면 된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죠. 설마 찾을 자신이 없어서 망설이는 건 아니죠?”
“흥! 거처 알아내는 것 정도야 어려울 것 없지.”
“그럼 하는 것으로 알죠.”
“해독단을 두 개 준다면…….”
“하기 싫으면 말씀하십시오. 다른 사람 시킬 테니까요.”
“아니 뭐, 안 한다는 건 아니고…….”
장천운은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품속에서 독왕의 해독단이 든 통을 꺼냈다.
아깝지만 왕규를 부려먹기 위해서 한 알쯤 내놓지 못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함께 하기로 한 사람 아닌가.
“이게 말입니다, 독왕이 천하에서 제일 효과가 좋다고 자부한 해독단입니다. 돈으로 따지면 만금을 줘도 살 수 없는 거죠.”
천하제일의 효과가 있는 해독단.
거기다 공력증진 효능까지 있으니 영단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왕규는 상기된 표정으로 단약을 받았다.
독왕이 자부할 정도라면, 최소한 독 앞에서 여벌로 목숨이 하나 더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그를 막부산 근처에서 봤다는 말을 작년 여름에 들었네. 일단 그곳부터 가봐야겠군.”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글쎄? 보름이면 대충은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군.”
“알아내는 대로 연락을 주십시오. 연락방법은 알아서 하시고, 대신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걱정 말게.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으니까.”
“새벽에 출발하십시오. 경비는 따로 지급할 테니 짐은 놔두고 가셔도 될 겁니다. 잘 보관해 놓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전 재산이 들어 있는 짐이 이곳에 있는 이상 돌아오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 그러지 뭐.”
45장: 왜 혼자 사는가
여철숭과 공선도의 살해범에 대한 조사는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었다.
율검당에선 수십 명을 불러서 조사했는데, 여철숭의 방에 들어간 사람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장천운과 우문각은 묵묵히 기다렸다. 어차피 율검당의 조사에서 범인이 밝혀질 거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그 사이 여철숭과 공선도의 장례가 치러졌다.
장례기간은 열흘로 결정되었다.
성주취임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은 축하 대신 애도를 표했다.
임시 성주가 된 사마경은 상주로 나서서 각파의 손님들을 직접 만나며 인사를 나누었다.
멀리서만 그녀를 봤던 각파의 주인과 간부들은 코앞에서 인사를 건네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얇은 면사를 통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청초함과 도도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져서 신비감마저 들 정도였다.
처음에만 해도 공손백과 나극의 눈치를 봤던 자들이 이틀째가 되자 시간만 나면 그녀를 찾아왔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말 한 마디 나누어보기 위해서 줄을 서다시피 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담담히 웃으며 인사를 할 때마다 눈이 몽롱하게 풀리고 입이 벌어져서 입 안에 고인 침이 흘러넘칠 듯했다.
항상 그녀 곁에 서 있던 장천운은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아름다운 사마경의 모습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무시무시한 무기였다.
“앞으로 많이 도와주세요.”
그녀가 웃으면서 그렇게 한마디만 하면 온갖 감언(甘言)이 쏟아졌다.
“허허허, 언제든 말씀만 하시구려. 그런데 혹시 혼인에 대해서 생각해 둔 분은 있으신지…….”
“명령만 내리시면 우리 태일보는 언제든 달려오겠소이다.”
“본 문의 문주께서는 항상 전대 성주님을 그리워하셨지요. 이번에 소문주께서도 소성주님처럼 스무 살이 되었는데…….”
“선녀 같은 분이 말씀하시는데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명령만 내리십시오. 하하하하.”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 하던가?
여인의 아름다움이 나라의 흥망을 좌우할 수 있다더니, 허튼 소리가 아니었다.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공손백을 지지하던 외부 인사 중 절반이 단 며칠 만에 사마경에게로 돌아선 듯했다.
‘어이가 없군.’
그럴수록 장천운은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공손백이 지금 상황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사마경에게 더 큰 힘이 몰리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할 것이다.
***
장례 닷새째 되던 날.
뒤늦게 공손백은 ‘아차!’하며 다급히 상황을 파악해보았다.
그때는 이미 구천성의 간부 중에서도 마음을 돌리는 자가 나오고 있는 판이었다.
“상황이 엉뚱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주군. 충성을 맹세했던 자들마저 사마경의 미모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종리성학의 보고를 받은 공손백은 입을 꾹 다문 채 허공을 노려보았다.
열을 셀 시간이 지날 즈음, 시선을 내린 그가 말했다.
“시기를 앞당겨야겠다.”
종리성학이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천은방에 연락해서 시작하라고 해.”
종리성학은 물론이고 문인동과 사계 역시 공손백이 말한 뜻을 알고 있었다.
그 말속에 얼마나 무서운 뜻이 숨겨져 있는 지도.
“너무 이르지 않겠습니까?”
본래는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시작할 예정이었다.
“할 수 없지. 단, 계획이 바뀌었다. 대충 건드리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쓸어버리라고 해. 피는 얼마든지 봐도 상관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