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05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1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05화
“소성주, 이 공손백도 힘을 기울여 범인을 찾겠네.”
사마경도 포권으로 인사를 받았다.
“고마워요, 대령주. 두 분 호법을 살해한 범인을 반드시 찾아내고 말겠어요. 그래서 구천성을 모욕한 그들에게 철저히 죄값을 받아낼 거예요.”
“당연히 그러셔야지.”
***
칼끝에 올라선 듯 팽팽한 신경전이 한 시진 내내 이어지더니, 오시가 다 되어서야 아침식사가 끝났다.
그 사이 장천운은 적과 아군, 그리고 중간에 선 무리를 대충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구천대전을 나선 사마경은 무화원이 아닌 구천무원으로 향했다.
“천운, 어떻게 생각해?”
사마경이 걸으며 물었다.
“중간에 선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 정도면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부와 대장로가 조용히 지켜보기만 할까?”
“그럴 사람들이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겠죠.”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사이 고풍스런 내원의 앞에 다다랐다.
구천무원이었다.
끼이이이이이.
구천무원의 정문이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안으로 발을 내딛는 사마경의 심장이 천둥소리를 내며 뛰었다.
먹먹한 가슴, 얼얼한 눈, 주먹을 힘껏 움켜쥐어서 힘이 들어간 어깨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드디어 성주의 거처, 구천무원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만 리 넘게 떨어져있던 아버지와의 거리가 그만큼 좁혀든 듯했다.
저벅, 저벅, 저벅…….
청석이 놓인 길을 따라 구천무원의 주 전각을 향해 걷는 그녀의 모습을 구천호령들이 지켜보았다.
청석길 양 옆에 도열해 있던 그들은 사마경이 그들 사이로 들어서자 일제히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숙였다.
영호관과 원세명은 활짝 열린 전각의 문 양쪽에서 그녀를 맞이했다.
격정에 찬 표정, 특히 영호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소성주.”
“그 동안 수고 많았어요.”
“소성주께서 한시적이나마 성주의 임무를 맡게 되었으니, 이제부터 구천호령은 소성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부탁해요.”
“안으로 드시지요.”
원세명이 오른손을 뻗어서 전각 안을 가리켰다.
어쩌면 일 년짜리, 말 그대로 단기간 성주자리를 맡게 된 임시성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일 년 동안만큼은 사마경이 대 구천성의 주인이라는 걸 그 누가 부인할 수 있을 것인가.
사마경은 오연한 자세로 걸음을 옮겼다.
성주로서 위엄을 보이고 못 보이고는 나중 일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를 죽인 자를 찾아내는 것이다.
‘일 년이 아주 긴 시간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도 아니야.’
사마중천의 방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사마경은 천천히 걸으면서 눈에 새기기라도 하려는 듯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이 년 전, 비고에 들어가기 위해서 잠깐 찾아왔을 때와 달리 가슴이 먹먹했다.
탁자와 의자, 침상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끝이 잘게 떨렸다.
속이 울컥거렸다.
이를 악물고 참아보지만 한번 끓어오른 격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제 왔어요. 죄송해요.’
이제 자신이 아버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죽음의 의혹을 밝히는 것. 그리고 복수!
“천운, 내가 여기에서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마주 앉은 게 언제인지 알아?”
장천운은 기억을 더듬어볼 것도 없었다.
사마중천이 생존해 있을 때 사마경을 호위하고 이곳에 온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칠 년 전이야. 아버지가 계신 곳인데도…… 칠 년 동안 오지 않았어. 나…… 참 나쁜 딸이지?”
말끝이 가늘게 떨렸다.
떨리는 입술 가에는 씁쓸한 웃음이 걸려 있고, 눈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장천운은 그 모습을 보고 최대한 무뚝뚝한 어조로 대답했다.
“기다리셨을 겁니다.”
“그래, 기다리셨을 거야. 아마…… 매일…….”
“소성주께서 잘못하셨습니다.”
끄덕끄덕.
“맞아, 내가 잘못한 거야.”
자책하는 사마경이 안쓰러웠는지 소연추가 달래듯 말했다.
“아가씨, 아마 저 세상의 성주님께서도 지금 환하게 웃고 계실 거예요.”
“정말…… 그럴까?”
“성주님께선 항상 아가씨를 걱정하셨어요. 이렇게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뻐하실 거예요.”
“천운도 아버지가 저 세상에서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해?”
“아버지는 항상 그렇죠.”
사마경이 고개를 돌려서 장천운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뚝뚝한 목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마음이 풀렸을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몰라도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고마워.”
“눈물을 닦으십시오. 그러다 콧물까지 나오겠습니다.”
소매로 눈물을 찍어내던 사마경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고 장천운을 째려보았다.
장천운이 그녀의 입을 미리 막았다. 여전히 무뚝뚝한 말투로.
“앞으로 더욱 힘든 길을 가게 될 겁니다. 이제 다른 사람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시면 안 됩니다.”
단순히 그 이유 때문에 ‘콧물’ 운운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제 놀린 것 때문인가?
어쩌면 연송하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으니까.
무뚝뚝한 말투만 봐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옳은 말이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흥, 걱정 마. 이제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자들을 모조리 때려잡을 때까지는 안 울 거니까.”
소연추는 대화가 이상한 쪽으로 흐르기 전에 먼저 질문을 던졌다.
“아가씨, 앞으로 여기서 지내실 건가요?”
사마경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두 분 호법의 장례가 끝나면 옮길 거야.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아버지 곁에 있어야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복수심까지 희미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눈빛은 굳은 각오로 전보다 더 차갑게 번뜩였다.
***
장로원의 청묵전으로 돌아간 공손백은 한 동안 허공만 노려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따라온 간부들에게 ‘뭣들 하는가? 가서 쉬게. 소성주께서 임시성주가 된 좋은 날 아닌가?’ 하고는 밖으로 내보냈지만 속이 좋을 리 없었다.
와신상담도 나름이지, 딱딱하게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쓸개를 씹다가 이를 상한 기분이었다.
‘네가 나를 독하게 만드는구나. 그래도 너만은 살려두려 했거늘…….’
차갑게 가라앉아 있던 두 눈에서 순간적으로 한광이 번뜩였다.
대전 안의 공기가 한겨울 북쪽 하늘보다 더 차갑게 식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다고 보는가?”
방 안에는 사계 외에도 두 사람이 있었다. 문인동과 종리성학. 그 중 문인동이 먼저 말했다.
“대장로를 확실하게 제어하지 않은 것이 실수인 것으로 보입니다.”
생각지 못한 말에 공손백이 느릿하니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대장로를 제어하지 않은 게 실수다?”
“엉뚱한 욕심을 품으면 안 된다는 경고를 확실하게 보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독고태가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을 품었습니다. 그러고는 중간에 서서 어느 쪽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토사구팽(兎事狗烹)이라 했지.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았어야 하는데, 잠시 잊었어.”
“최소한 목줄이라도 묶어 놓았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어제와 오늘처럼 소성주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았을 겁니다.”
“그 말이 맞아. 그 다음 원인은?”
공손백은 순순히 인정했다. 남들은 그가 절대 굽히지 않을 사람이라고 하나, 그도 굽힐 때는 굽혔다.
어쩌면 그래서 더 무서운 인간일지 몰랐다.
그걸 알기에 문인동은 다음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말해봐라. 뭐든.”
“장천운이란 어린놈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공손백의 이마에 그어진 주름이 실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그 어린놈 하나 때문이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
“지금으로선 다른 답이 안 나옵니다.”
“나극과 독고태가 원인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들이 등을 돌린 것은 일시적인 반감과 욕심 때문입니다. 먹이만 던져주면 언제든 다시 돌아설 수 있지요. 하지만 장천운이란 놈은 다릅니다. 주군에게 손을 내밀 놈이 아니지요.”
왼쪽에 묵묵히 서 있던 종리성학이 버럭 소리치며 문인동의 의견에 반대했다.
“말도 안 됩니다! 놈이 비록 예상치 못하게 강하긴 했습니다만, 그런 놈 하나 때문에 일이 틀어졌다는 것은 지나친 생각입니다!”
“과연 그럴까?”
담담히 반문을 던진 문인동이 공손백을 보며 말했다.
“주군, 운명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한순간에 다가오는 법입니다. 놈이 사마경의 호위가 된 이후부터 생각해보십시오.”
공손백의 눈썹이 화난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장천운이 사마경의 호위무사로 들어온 것은 불과 이 년 전이다.
그 후 사마경이 습격 받았을 때 놈이 구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사마경의 최측근 호위무사가 되었고, 대운사에서 도망칠 때도 놈이 꾸민 짓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었다.
‘죽일 놈!’
그 다음은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났다.
놈은 끈질긴 추격을 뿌리치고서 사마경과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졌던 놈이 돌아온 것은 겨우 이틀 전. 어이없게도 그 이틀 만에 구 할 구 푼의 확률이 무너졌다.
아무리 운명의 장난이라 해도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어쩌면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그놈만 아니었으면 진즉 끝났을 일이었어.”
“지금 사마경의 놈에 대한 의지는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놈만 없어지면 사마경을 처리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그 놈에 대한 일은 전적으로 그대가 맡아라.”
문인동이 공수의 예를 취하며 허리를 숙였다.
“예, 주군.”
순한 유생처럼 느껴지던 그의 눈에서 차갑게 정제된 살기가 번뜩였다.
***
장천운은 그날 밤도 사마경의 방 안에서 호위를 섰다.
기분이 이상할 정도로 찝찝했다.
‘기분이 왜 이렇게 더럽지? 누가 내 목을 갖고 장난하나?’
해시 무렵, 정신 사납게 방안을 오가던 그가 이마를 좁히고 움직임을 멈췄다.
다탁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보던 사마경이 반사적으로 멈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왜 그래?”
장천운은 대답 대신 천장 한쪽 구석을 올려다보았다.
“오셨으면 내려오시지, 왜 그곳에 계십니까?”
그가 말한 직후 실바람과 함께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철무였다. 뇌혈산에 대해서 확인해볼 것이 있다며 떠났던 그가 돌아온 것이다.
그는 사실 반각 전에 도착했는데, 바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장천운 때문이었다. 호승심 때문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들켰으니…… 그는 머쓱했지만 겉으로는 일절 드러내지 않았다.
“다녀왔습니다, 소성주.”
사마경으로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때맞춰서 잘 왔어, 철 숙부. 그러잖아도 한 사람이 아쉬운 상황이었는데.”
“원단 전에 도착하려 했는데 조금 늦었습니다.”
“가셨던 일은 잘되셨습니까?”
장천운이 물었다.
고개를 돌린 철무의 표정이 본래의 냉막함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헛수고는 하지 않았네. 뇌혈산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셋뿐이라더군. 그 중 한 사람은 사천 당가의 노가주인 천독수(千毒手) 당산중이고, 또 다른 사람은 독왕이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독왕?
장천운과 사마경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천하에서 독왕이라 불릴 수 있는 이는 한 사람밖에 없다.
독왕 남사명.
‘그렇다면 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