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4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41화
“장천운이 없을 때 사마경에게 접근하라 했더니, 놀기만 했느냐? 듣자 하니 장천운이 두 번에 걸쳐서 이틀이나 자리를 비웠다던데, 네놈은 허수아비였더냐?”
난생 처음 대해보는 공손백의 분노는 백리우진의 혼백을 짓눌렀다.
심장이 짓이겨지고 머리가 으깨지는 공포.
변명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용서해주십시오, 대령주.”
백리우진은 털썩 무릎을 꿇고 머리를 처박았다.
공손백은 그 모습을 보고는, 폭발하려던 분노를 겨우 억눌렀다.
“쯔쯔쯔, 재주가 있어 요긴히 쓸까 했더니…… 독하질 못해. 작정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하거늘. 멍청한 놈.”
서릿발처럼 차가운 눈빛, 실망감 가득한 말투.
백리우진은 고개만 푹 숙이고 토를 달지 않았다. 지금은 토를 달아봐야 역효과만 날 뿐이다.
“좌우간 이번 일로 사제와 우진에게 실망이 너무 크다. 앞으로 분발하도록 해라.”
“예, 사형.”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령주!”
백리호와 백리우진은 황제의 사면장이라도 받은 듯 감격한 표정으로 답했다.
하지만 고개를 푹 숙인 그들의 얼굴에는 감격과 거리가 먼 표정만 떠올라 있었다.
‘그러게 처음부터 강하게 쳤어야지! 그랬으면 욕은 조금 먹었을지 몰라도 구천성은 우리 손에 들어왔을 것 아닌가?’
문제는 지금과 같은 경우가 계속 이어지면 언제 상황이 역전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사마경을 제거하는 게 최선이거늘!
공포에서 겨우 벗어난 백리우진도 이를 지그시 악다물었다.
‘대령주는 너무 완벽만 추구하고 있어. 힘이 있으면서도 주위의 눈 때문에 사용하는 걸 두려워하다니. 어쩌면 그 때문에 전대 성주에게 밀려서 성주가 되지 못한 것일지도…….’
그는 공손백의 그 완벽함이 마음에 걸렸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은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한번 그의 눈 밖에 난 이상 만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질 순 없어. 뭔가 수를 쓰지 않으면 토사구팽 당할지도 몰라.’
최근 들어서 문인동을 주로 곁에 두고 있다. 반면 자신과 숙부는 밖으로만 돌았다.
여차하면 버리겠다는 건가? 위험해지면 적 앞에 던져주겠다?
최근 상황만 보면 가능한 추측이다.
대권을 잡았을 때 가장 거추장스러운 사람이 숙부일 테니까.
‘아무래도 내 나름대로 대책을 세워놓는 게 좋겠어.’
***
사마경이 전쟁에서 돌아온 후 공손백도, 나극도, 독고태도, 우문각도 서로서로 눈치만 보면서 오해 살 행동을 자제했다.
덕분에 살을 에는 분위기 속에서도 별 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전쟁에서 사망한 혁련광과 손득환, 그리고 마동곽과 이만양 등 간부들의 장례가 치러졌다.
전처럼 여유 있게 장례를 치를 수는 없었다.
이전에도 그랬고, 현재도 구천성의 위엄에 도전하는 자들이 있었다. 검왕문이 그러하고, 장강팔련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그들과 무림맹은 차원이 달랐다.
오십여 년 동안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웅크리고 있는 거인, 그게 바로 무림맹이었다.
아마 그들에게 일사불란한 조직력만 있었다면, 오십 년 전에도 구천성은 그들을 누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그 거인이 기지개를 켜고 웅크린 몸을 일으키려 하지 않는가 말이다.
무림맹의 강함을 잘 아는 구천성 간부들로선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기에 닷새로 정해진 장례기간이 짧긴 했지만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토를 달기는커녕 장례기간 중에도 각 조직의 간부들은 무림맹과의 전쟁에 대비해서 전열을 정비했다.
공손백이야 울화통이 터질 일이었지만, 그가 사마경을 제거하기 위해서 끌어들인 무림맹이 엉뚱하게도 구천성 간부들의 마음을 결속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닷새가 흐르고 장례가 끝나자, 사마경의 일갈이 구천성에 울려 퍼졌다.
“그 동안 우리 구천성은 무림맹의 명예를 지켜주고, 그들의 권역을 인정해주는 등 신의를 어기지 않았다! 그런데 무림맹은 하류잡배처럼 등 뒤를 급습하여 본 성의 형제들을 해쳤다! 그로 인해 본 성의 형제 수백 명이 죽거나 불구가 되었노라!
이제부터 우리 구천성은 무림맹이 행하는 불의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칼에는 칼로, 피에는 피로써 대할 것이다! 앞으로 일어나는 일의 모든 책임은 무림맹이 져야 할 것이다!”
무림맹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구천성의 젊은 무사들은 천년 강호의 어른처럼 행동해온 무림맹을 향해서 송곳 같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사마경에게 열광했다.
전쟁에서 동료무사들을 잃은 사람들은 가슴에 쌓인 분노를 그 열기에 녹여냈다.
그 덕분에 구천성 조직의 재편성과 보강작업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흑월대원들도 부상을 치료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다.
중상자 다섯을 신천장에 남겨놓고 돌아왔다. 그나마도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십여 명에 불과했다.
장천운은 그들의 치료를 위해서 며칠 동안 부지런히 의약당을 들락거렸다.
그를 다시 만난 것도 약을 구하기 위해서 의약당에 갔을 때였다.
“어? 이게 누구신가?”
의약당 쪽에서 나오던 사람 하나가 눈을 크게 뜨고 아는 척했다.
장천운도 그를 바로 알아보고 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이오, 강 형.”
눈이 부리부리하고 수염이 텁수룩한 청년, 그는 강련곡의 뇌옥에서 만났던 강마우였다.
“이거, 흑월대의 대단한 대주님과 뇌옥 생활을 함께 인연이라니. 흐흐흐, 생각할수록 재미있다니까.”
“임 형은 어떻게 지내고 있소?”
“그 자식은 지금도 나만 보면 썩은 독사눈깔을 치켜뜨고 잡아먹으려고 하네.”
훗, 아직도 변하지 않았나 보다.
“그런데 어디 다쳤소?”
“장강 쪽으로 갔다가 칼침을 맞았네.”
강마우가 웃옷을 젖혔다. 옆구리가 반 뼘쯤 길게 찢어졌는데 이제 막 아물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나은 편이야. 상처만 아물면 멀쩡해지니까. 하지만 독사 자식은 한쪽 귀가 반쯤 잘렸지.”
“저런.”
“그래도 우린 살아서 돌아왔지만, 우리 조원들은 모두 죽었네.”
강마우는 가슴에 ‘귀도(鬼刀)’라는 글자가 새겨진 청의무복을 입고 있었다.
귀도당에 속해서 금선장에 파견되었다가 장강팔련과의 싸움에서 부상을 당한 듯했다.
“금선장은 상황이 어떻소?”
“큰 피해를 입긴 했어도 망할 정도는 아니네.”
“장강팔련 쪽은?”
“우리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지. 배 일곱 척에 실린 놈들을 모조리 물귀신으로 만들었거든.”
“그래요?”
“흐흐흐, 나와 독사가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어.”
의외였다. 강마우의 무공은 겨우 일류고수에 턱걸이할까 말까한 수준이다. 임사유도 큰 차이는 없다고 봐야 했다.
그 정도만 해도 남에게 뒤떨어지는 자질은 아니지만, 장강팔련의 배 일곱 척을 수장시킬 실력은 아니었다.
“정말입니까?”
장천운이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강마우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린 어릴 때 물에서 놀고 물에서 자랐거든. 물고기도 물속에서 우리를 보면 형님! 이라고 입을 뻐끔거린다네.”
호오! 그런 재주가 있었나?
장천운은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강마우를 바라보며 농담조로 한마디 던졌다.
“독사와 너구리가 물속에서 노는 줄은 미처 몰랐군요.”
“…….”
강마우의 얼굴이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장천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몸이 나으면 우리 흑월대에 들어오지 않겠소?”
일그러졌던 강마우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정말인가?”
“물론이오. 원한다면 내가 귀도당주께 말씀드리겠소.”
무공은 조금 뒤지더라도 물질에 뛰어난 재주를 지녔다면 쓸모가 많을 듯했다.
게다가 성격도 마음에 들었다. 흑월대원들과 잘 어울릴(?) 듯했다.
“우흐흐흐, 오라면 당장 가야지!”
강마우는 그때까지만 해도 흑월대가 어떤 동네인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
강마우와 헤어져서 구천무전으로 돌아가던 장천운은 저 앞쪽 건물 사이로 사라지는 사람들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거한들이 가마를 메고서 건물 뒤로 돌아가고 있었다.
‘교왕이 들어왔군.’
그는 가마가 사라진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그가 건물을 돌아갔을 때는 가마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마침 벽호당의 경비무사가 건물을 돌아 나오자 마주 걸어갔다.
경비무사들은 장천운을 보고 멈칫거렸다.
이제 구천성의 무사 중 장천운을 모르는 자는 거의 없었다. 경비를 책임진 벽호당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요즘은 조용하지만, 출정 이전에만 해도 무화원 연무장에서 매일 개잡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에는 가끔 귀곡성도 들렸는데, 그래서인지 그 근처에서 야간경비를 섰던 무사들은 잠을 자다 말고 비명을 지르며 벌떡벌떡 일어났다고 한다.
바로 그곳의 대장이 앞에 있는 장천운인 것이다.
“뭐 좀 물어봅시다.”
장천운이 묻자, 눈길이 마주친 경비무사가 창백해진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옙, 대주. 뭐, 뭘 알고 싶으십니까?”
“조금 전에 가마가 지나가던데…….”
“저희도 봤습니다.”
“어디로 가는 가마였습니까?”
“정확히는 모르고, 장로원의 무사가 안내하는 것 같았습니다.”
장로원으로 갔다면 공손백이나 나극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어느 쪽 문으로 들어왔습니까?”
“북문 쪽에서 왔습니다.”
장천운은 곧장 북문으로 가서 출입자명부를 확인해보았다.
교왕의 이름과 목적지가 적혀 있었다.
목적지는 장로원. 그런데 초청자가 적혀 있지 않았다.
‘흥! 그런다고 모를 줄 아나?’
장천운은 냉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사마경이 미리 말해놓았으니 공손백이든, 나극이든, 독고태든, 누구든 무작정 숨기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드러날 것이고, 겉으로 드러난 칼날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한 동안은 조용히 지내겠지.’
문제는 그 이후다.
교왕 외에 또 다른 고수가 들어올 것이다.
그들이 과연 구천성의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장천운은 얼음알처럼 차가운 눈을 가늘게 뜨고 지그시 주먹을 쥐었다.
‘어쩌면 성 자체가 천하의 축소판이 될지도 모르겠군.’
나쁜 일인 것만은 아니다. 그들이 반드시 공손백이나 나극 쪽 사람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
장천운은 두어 가지 사실을 더 알아본 후 구천무원으로 돌아갔다.
“교왕이 들어왔다고?”
“예, 소성주. 알아보니 언동교 장로의 거처에 있다고 합니다.”
“천하의 오왕 중 한 사람이 성에 찾아왔는데, 모른 척하는 것도 좀 그렇지?”
장천운은 사마경의 말을 듣고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었다. 꽉 막혔던 굴뚝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소성주, 그를 구천무전으로 초청하십시오.”
“그가 올까?”
“안 올 수 없을 겁니다. 구천성에 들어온 이상 구천성의 법을 따라야할 테니까요.”
“하긴…….”
“자신에게 패배감을 심어준 사람이 소성주의 호위무사라는 것만 알아도 당분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알았어. 사람을 보내서 초청하지 뭐.”
수혼대원을 장로원으로 보낸 지 반 시진쯤 지났을 때, 교왕 둔가부가 가마를 타고 구천무전 앞에 나타났다.
구천성 무사들은 커다란 가마에서 나오는 거대한 교왕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굉장하군.”
“도대체 몇 근이나 나갈까?”
“힘없는 놈은 가마꾼도 되지 못하겠군.”
무사들이 소리를 죽여서 속삭이듯 말했음에도 절대고수인 교왕의 청력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교왕은 그 말들을 모두 들었음에도 얼굴 근육 하나 꿈틀거리지 않았다.
아마 그가 그런 말에 화를 냈다면 세상은 이미 혈해로 변했을 것이다. 아니면 공적이 되어서 진즉 죽었든지.
살이 찐 것은 무공을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살이 많이 찔수록 무공도 높아졌다.
저 어리석은 놈들은 그것도 모르면서 수군대는 것이다.
교왕은 구르는지 미끄러지는 모를 기이한 신법으로 발을 놀리며 구천무전으로 들어갔다.
구천무전에는 십여 명이 있었는데, 장천운을 제외한 모두가 교왕의 엄청난 덩치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교왕 둔가부 역시 그들만큼이나 놀랐는데, 첫 번째는 사마경의 미모 때문에 놀랐고, 두 번째는 그 뒤쪽에 서 있는 장천운 때문이었다.
‘저 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