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4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40화
공손백이 먼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소성주 말한 대로 너무 많은 피해가 났네. 더구나 부상자들을 놔두고 너만 서둘러서 돌아온 것 때문에 아무래도 구천대평의회에서 많은 말이 나올 것 같군.”
사마경의 눈에 웃음이 떠올랐다.
차가운 미소.
“그리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전쟁은 승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하들의 목숨을 보호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법이라네.”
“제가 못나서 그런 것이니 질책한다면 달게 받겠어요.”
사마경이 순순히 수긍하자, 공손백도 그 이상 밀어붙이지 못했다.
그쯤에서 독고태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무림맹과 파천회의 공격을 이겨낸 것은 정말 대단했소이다, 소성주.”
“고마워요, 단주.”
나극도 이마를 찌푸리고 한마디 했다.
“무림맹과 파천회가 소성주를 공격하다니, 그 동안 너무 편하게 대해주었어.”
“평화로운 굴욕보다는 싸워서 자존심을 되찾는 게 낫다고 생각했나 보지요.”
그 말에 우문각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무언중에 형성된 불가침의 협약이 이제는 깨졌다고 봐야겠구려.”
“정 군사도 그리 말하더군요. 사실 그래서 우리 먼저 돌아온 거예요. 저들이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요.”
“흐으음, 역시 그랬었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우문각이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나극과 독고태도 전염이 된 듯 그를 따라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 우문각이 물었다.
“그런데 이상하구려. 무림맹의 움직임이 감지되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어떻게 알고 적시에 달려가서 공격했는지 모르겠소.”
“저도 총사의 말씀처럼 그 점이 의문이에요. 하지만 싸움이 시작된 마당에 의문만 품고 있으면 뭐하겠어요? 사실 무림맹과 각 세력의 첩자들이 본 성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잖아요?”
“지금까지는 그들을 그냥 놔두었소만, 이제는 반드시 색출해내야 할 것 같소, 소성주.”
“그 일은 총사가 알아서 하세요. 필요하면 벽호당과 율검당을 움직이시고요.”
사마경은 우문각의 말에 박자를 맞춰주고 공손백을 바라보았다.
그리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대령주께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시길 바라겠어요.”
“그리하겠네.”
공손백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속은 썩은 땡감을 통째로 삼킨 듯 쓰렸다.
독고태가 그런 공손백의 속을 마저 뒤집어놓았다.
“우리도 적극적으로 돕겠소이다, 소성주. 어떤 돼먹지 못한 놈들이 소성주를 죽이기 위해서 무림맹의 똥구멍을 들쑤셨는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소?”
“그도 그렇군요. 어쨌든 적극적으로 나서주시겠다니, 고마워요.”
“허허허, 별 말씀을.”
독고태는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슬쩍 공손백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흐흐흐흐, 어쩌면 공손백과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야.’
그때 사마경이 나극을 보며 물었다.
“대장로, 혹시 교왕 둔가부와 잘 아는 사이 아닌가요?”
“교왕 둔가부? 오래 전에 그 친구를 두어 번 본 적이 있긴 하나 특별한 사이는 아니네. 왜 그런가?”
“별 일 아니에요. 그가 은거지를 나왔다는 말을 들어서요.”
사마경이 별 일 아니라는 듯 태연히 답하고 공손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대령주께서는 그를 아시나요?”
“나를 그를 만난 적 없네. 하지만 장로나 호법 중에선 그를 아는 사람이 있을 거네.”
“그럼 그분들 중에 교왕을 초청한 분이 계시겠군요.”
“글쎄,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군.”
“오면서 들으니, 그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전대의 고수들도 강호로 많이 나온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래?”
“해서 기회가 되면 그들을 본 성으로 끌어들일까 해요.”
“그리만 된다면야 나쁠 것 없지.”
“혹시라도 찾아오면 연락해주세요. 물론 대장로께서도요.”
장천운은 사마경 뒤에 서서 나극과 공손백의 표정변화를 살펴보았다.
털끝 하나의 움직임마저 수상한 기미가 있으면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의외라는 표정 외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정말 이 두 사람은 모르는 걸까?’
그때 사마경이 깜박 잊었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또 하나 있군요.”
“말씀해 보시게.”
“앞으로 신천검문을 대신해서 대봉문이 지부 역할을 하게 될 거예요.”
공손백이 흠칫하고는 사마경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필양과 당하에서 벌어진 일을 모두 전해들은 그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무슨 말인가? 본 성에 검을 겨눈 대봉문이 지부가 되다니?”
“본성의 무사를 해쳤으니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죠.”
“하지만 그들은 본 성을 무척 싫어하는 자들인데…….”
“장 대주가 가서 충성서약서까지 받아왔으니 그 일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요.”
미소 띤 얼굴로 또박또박 말대답을 마친 사마경은 공손백에게 반문할 시간도 주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럼 저도 이만 가서 쉬어야겠어요. 종일 마차를 타고 이동했더니 몸이 피곤하군요. 천운, 그만 가.”
“예, 소성주.”
나직이 대답한 장천운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비틀어졌다.
무겁던 기분이 조금이나마 덜어진 듯 사마경의 걸음걸이가 조금 전보다 가볍게 느껴졌다.
‘장족의 발전인데? 대령주에게 말장난을 걸다니.’
공손백은 사마경이 등을 보이며 걷자, 백리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찌된 거냐?>
<저도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사형.>
<처음 들었다고? 다른 간부들은?>
<아는 자가 있다면 어찌 제가 모르겠습니까?>
<빌어먹을.>
<어쩌면 거짓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마경의 표정을 보니 거짓말 같진 않았다.
‘금방 밝혀질 사실을 거짓말할 정도로 멍청한 계집이 아니야.’
사실이라면 정말 빌어먹을 일이었다.
천은방을 비롯한 삼파와 무림맹, 파천회까지 상대하고 승리했다.
거기다 대봉문을 구천성 휘하로 끌어들인 게 사실이라면 전쟁으로 발생한 모든 과오(過誤)를 덮고도 남는다.
와락, 짜증이 솟구친 공손백은 분노가 겉으로 표출되기 전에 자리를 떴다.
“그럼 가서 쉬어라. 우리도 가서 무림맹과 파천회의 준동을 조사해보도록 하마.”
***
구천무전으로 돌아온 사마경은 몸부터 씻었다.
그녀 역시 지난 싸움에서 약간의 내상과 세 군데에 상처를 입었다.
독왕의 해독단을 복용한 덕에 내상은 완치되었지만, 상처는 아직 덜 아문 상태였다.
상처에 물이 닿자 쓰라림에 머리끝이 쭈뼛 섰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아버지가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겪었는지 철무에게 들었다.
절대 경지에 오른 아버지가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부들부들 떨었다고 했다.
이 정도의 고통은 아버지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고통이 심할수록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원한을 되새길 수 있었다.
‘절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사마경보다는 오히려 그녀를 씻기는 시비들이 상처에 더 신경 쓰였다.
상처에 물이 닿을 때마다 소성주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그럼에도 신음 한 마디 흘리지 않고 목욕을 중단시키지도 않았다. 중단시키기는커녕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조심스럽게 손을 놀리는 시비들은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한쪽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연송하는 사마경이 안쓰럽기만 했다. 그녀가 고통을 참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불쌍한 분. 돌아가신 성주님께 미안해서 자신을 학대하고 계셔.’
차라리 호위무사인 자신이 더 행복한 듯했다. 자신과 사마경의 위치가 바뀌었다면 자신은 사마경처럼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오빠가 잘 보살펴드려야 하는데…….’
장천운의 옆자리를 빼앗아간 사마경이지만, 오늘만큼은 원망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몸을 씻고 상처를 치료한 사마경은 동경 앞에서 머리를 정리했다.
머리 손질이 끝나갈 때쯤, 사마경이 동경을 보며 불렀다.
“천운.”
장천운은 문 옆에 서 있었다.
“예, 소성주.”
“교왕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지?”
“그런 것 같습니다.”
“천운과 싸우면서 다친 것 때문에 늦는 걸까?”
“그보다는 가마를 멘 거한들의 부상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하긴 말이 다치면 마차도 속도를 낼 수 없는 법이지.”
“교왕 외에도 초청한 자들이 있을 겁니다.”
“몇 명이나 들어오는지가 관건이겠군.”
“아무래도 그렇겠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연송하가 머리 손질을 끝냈다.
“천운은 대령주가 어떻게 나올 거라고 봐?”
“전과는 다를 겁니다. 아마 직접적으로 소성주를 조이려 할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또 전쟁에 나가라고 할까?”
“당장은 아닐 겁니다. 아무리 성주가 되기 위해서 전쟁에 나가 공을 세워야 한다지만, 이제 막 돌아온 소성주를 또 내보내면 반발이 클 테니까요.”
“그때까지 왕규가 돌아오면 좋은데.”
“닷새 정도 기다려봐서 그때까지 안 돌아오면 사람을 보내보겠습니다.”
“그렇게 해.”
***
공손백의 방안.
천장이 무너질 것처럼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공손백은 입을 다문 채 가슴에 쌓인 분노를 삭였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백리호와 문인동은 공손백의 분노가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
한쪽에 서 있는 백리우진과 사계, 그리고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장한은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삼십대 초반의 장한은 평범한 얼굴이었는데, 다름 아닌 종리성학이었다. 자유롭게 활동하기 위해서 인피면구로 얼굴을 가린 것이다.
이각.
시비가 따라놓은 차가 다 식었을 때 공손백의 달라붙은 입술이 떨어졌다.
“무림맹 놈들까지 보냈는데도 실패하다니. 도대체 뭘 한 것이냐?”
분노의 화살은 백리호를 향해 쏘아졌다.
부상으로 인해 안색이 창백한 백리호가 이마를 찌푸리며 대답했다.
“저흰 무림맹 무사들이 올 줄 몰랐습니다. 필양에 있던 정보원들의 정보가 갑자기 끊긴 바람에…….”
탕!
탁자를 내리친 공손백이 눈을 치켜뜨고 으르렁거리듯 다그쳤다.
“몰랐던 알았던, 무림맹에 파천회까지 등장해서 휘저어 놓았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마경의 팔다리를 부러뜨려서 재기불능으로 만들었어야지!”
“사마경의 곁에 처음 보는 자들 둘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겨우 둘 때문에 그냥 놔두었다고? 내가 사제를 너무 과대평가했나 보구나!”
백리호는 자존심이 상해서 속이 울컥했다.
심한 부상을 입고 돌아온 자신에게 어찌 이런 대접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상대는 공손백이다. 자신이 아는 한 천하에서 가장 무섭고 냉혹한 심기를 지닌 자.
자신의 형제조차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제거할 수 있는 자.
그의 앞에서 ‘사제’라는 위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주먹을 움켜쥔 백리호는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마저 말을 이었다.
“하나는 말로만 들었던 구천무령인 것 같습니다.”
“뭐라? 구천무령? 정말 구천무령이 나타났단 말이냐?”
구천무령의 존재는 공손백조차 놀라게 만들었다.
구천성의 성주를 지키는 수호자.
구천무령의 정체는 그도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아주 오래 전 한번 봤을 뿐이다. 그것도 얼굴은 보지 못했다.
“그가 분명합니다. 성주가 죽기 전에 사라졌었는데, 아무래도 소성주가 밖에 있을 때 만난 것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누구였느냐?”
“처음 보는 자였습니다. 문제는 무림맹의 장로 둘이 힘을 합쳐도 그자를 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자가 누군데 그리 강하단 말이냐?”
“면사로 얼굴을 가려서 아직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무공의 특징으로도 알아낼 수 없었단 말이냐?”
“패도적인 검법을 사용했는데, 혼전 중이라 자세히 보지 못해서 정체를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마를 잔뜩 찌푸린 공손백의 시선이 백리우진에게로 향했다.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또다시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손을 뻗으면 불길이 쏟아져서 온몸을 태워버릴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