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35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8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35화
“흑월대주는 내 명령을 받고 사절방을 공격하러 갔다 왔어요.”
“사절방?”
백리호가 흠칫하며 반문했다.
사마경의 입술 끝이 비틀렸다.
“흑월대 이개 조와 함께 사절방 삼백이 넘는 자들을 상대하고 왔죠.”
“……!”
백리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경악한 표정으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천운, 그들은 어떻게 되었지?”
“삼 할은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나머지 중에서도 반은 이곳까지 오기 힘들 겁니다.”
“그럼 남은 자들도 고민이겠네?”
“돌아가지 않으면 형주를 피바다로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사마경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백리호를 바라보았다.
“더 할 말 있어요?”
백리호는 이를 악물고 슬그머니 눈을 돌렸다.
그때 육선기가 침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소성주, 이제 어떻게 하실 거요?”
피에 젖은 왼팔을 축 늘어뜨리고 있는 그의 안색은 회칠을 한 것처럼 창백했다.
사마경은 고개를 돌려서 신천장을 바라보았다.
삼파연합의 살아남은 무사들이 꼬리를 물고 신천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장원 안에는 대기하고 있던 인원이 있을 것이다. 많지는 않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삼파연합에게 천군만마가 될 수도 있다.
구천성도 피해가 워낙 커서 자신들을 공격하지 못할 거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마경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시작했으니 끝도 맺어야죠.”
몇 사람이 흠칫하며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지만, 대부분은 눈에서 혈광이 번뜩였다.
“천운. 흑월대와 함께 앞장 서.”
***
호경담의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사마경의 성격을 잘못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제 스무 살밖에 안 된 여자가 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제법 강단이 있는 듯 보였지만, 이곳은 피가 난무하는 전쟁터다. 이미 죽은 사람이 수백, 아니 천 명이 넘는다.
잘린 팔 다리와 피가 흥건한 들판 위, 역겨운 비린내가 진동하는 곳에 맨 정신으로 서 있을 수 있을까?
무림맹과 파천회를 이긴다 해도 떠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신천장에서 전열을 정비한 후 반격하던지, 상황이 좋지 않으며 떠날 계획이었다. 흩어져서 도주하면 저들의 사냥감이 될지도 모르니까.
아마 그녀가 찰거머리보다 더 끈질긴 성격이고, 사마중천의 기질까지 이어받았다는 걸 알았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실수는, 장천운이라는 존재를 계산에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대가는 너무나 컸다.
“크억!”
혼천수라권에 얻어맞고 붕 떠서 날아간 호경담은 피바다로 변한 질퍽한 땅바닥에 떨어져서 나뒹굴었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서 피범벅이 된 흙을 움켜쥐며 상체를 일으켰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걸까? 무엇이 잘못된 걸까?
힘겹게 고개를 쳐드는 그의 눈에 두 면사인의 호위를 받으며 다가오는 사마경이 보였다.
“방주는 패를 잘못 선택했어요.”
사마경이 말했다.
“크, 크, 크, 크…….”
호경담은 푸들거리며 웃었다.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고민에 대한 모든 해답이 사마경의 한마디에 다 들어 있었다.
정말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걸까? 꿈이 허황되었던 걸까?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았다고 해서 상황이 뒤바뀌지는 않는다.
삼파연합 무사 대부분이 죽거나 투항한 상태다. 구천성 무사들이 장원 안으로 들어온 지 일각 만에 모든 게 끝나버린 것이다.
특히 저 흑월대라는 놈들. 저놈들은 마귀 같은 놈들이다. 마귀조차 귀찮아할 정도로 시끄러운 진짜 마귀들!
자신의 호위대 대부분이 그놈들에게 죽었다. 자신은 그 마귀들의 대장인 저 새파란 놈에게 당했고.
어찌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단 말인가!
으드득, 이를 간 호경담은 사마경을 쳐다보며 씹어뱉듯 악을 썼다.
“어서 죽여라, 사마경!”
“당신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요, 호 방주.”
“나는 말할 것이 없다! 어서 죽여!”
사마경은 악을 쓰는 호경담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아마 말할 것이 있을 거예요. 당신은 나에게 많은 걸 말해줘야 해요. 천은방을 위해서라도.”
호경담의 부릅뜬 눈이 흔들렸다. 그녀의 말뜻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네 마음대로 되진 않을 거다.”
“말해주지 않으면 곧장 천은방으로 달려갈 거예요. 아마 많은 사람이 죽겠죠. 개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모두 쓸어버릴 생각이니까.”
그 말을 할 때의 사마경은 평소와 달랐다.
온기 없는 눈빛, 귓속에 서리가 내릴 것 같은 나직한 목소리.
호경담은 빈말이아니라는 걸 알고 마음이 심하게 흔들렸다.
“나, 나는 아는 것이 없다. 어서…… 어서 죽여라!”
그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사마경이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있을 텐데요?”
그때였다.
백리호가 호경담의 등 뒤로 날아들더니 검을 뻗었다.
“내가 죽여주마, 호경담!”
누가 막을 새도 없었다.
심지어 장천운조차 호경담의 뒤쪽에서 느닷없이 날아든 그의 행동을 막지 못했다.
호경담이 손가락도 까딱하기 힘든 상태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 사마경의 안전에 대해서 걱정이 없다 보니 호경담보다는 주위에 더 신경을 썼다.
그 바람에 백리호를 막을 수 있는 찰나의 시간을 놓치고 만 것이다.
“안 돼!”
사마경이 소리침과 동시.
푹!
백리호의 검이 호경담의 등을 뚫고 심장을 관통했다.
“크억!”
단말마를 내지른 호경담이 두어 번 비틀거리더니 엎어지듯 쓰러졌다.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호경담이 그렇게 어이없이 죽을 죽이야.
음을 멈춘 사마경이 눈을 치켜뜨고 백리호를 노려보았다.
“무슨 짓이에요?”
“무슨 짓이라니? 아무리 호경담이 부상을 입었다 해도 가까이 가면 위험하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갔다면 큰일 날 뻔했어.”
적반하장으로 백리호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대항할 수 없는 상태였어요.”
“소성주는 강호의 흉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직 모르는군. 강호에서 방심은 금물이네.”
“강호의 흉계는 모를지 몰라도, 호 방주가 대항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 정도는 알아요. 그리고 그를 살려서 취조했다면…… 그의 배후도 알아낼 수 있었을지 모르죠.”
사마경은 싸늘한 눈빛으로 백리호를 노려보고는 홱 몸을 돌렸다.
이를 악다문 그녀의 눈에서 한광이 서리서리 흘러나왔다.
‘입을 막고 싶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들이 한 짓을 모두 감출 수는 없어.’
백리호는 이마를 꿈틀거리며 사마경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늘어뜨린 그의 검 끝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57장: 교왕(轎王)
전쟁이 끝난 신천장 안은 수백 구의 시신으로 가득했다. 시신과 부상자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청석을 붉게 물들여서 혈석으로 바꾸어 놓았다.
삼파연합 무사 중 살아서 도주한 자는 몇 십 명 정도.
전쟁은 구천성의 승리였다.
그러나 구천성 역시 피해가 엄청난 터라 전쟁에서 승리하고도 기쁜 표정으로 웃는 사람이 없었다.
사마경 역시 얼굴에서 웃음 대신 한기만 풀풀 날렸다.
“부상 정도가 심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합하면 활동 가능한 무사가 삼백오십여 명이고, 중상자까지 합하면 생존자가 오백 명 정도 됩니다, 소성주.”
정유가 침중한 표정으로 보고를 올렸다.
칠백이 넘는 무사가 죽었다는 말.
상처뿐인 승리, 이겼어도 이긴 게 아니다.
‘너무 피해가 커.’
무림맹과 파천회만 아니었어도 순조롭게 마무리 지었을 텐데…….
사마경은 아쉬움과 분노를 씹으며 간부들을 둘러보았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특히 혁련광과 손득환의 죽음은 너무나 큰 아픔이었다.
그녀가 착잡한 마음을 다스리고 있을 때, 풍운산장 무사들이 다가왔다.
“소성주께 모증이 인사드리오. 저희가 너무 늦게 도착한 건 아닌지 모르겠소이다.”
장주 모강의 아우인 모증이 사마경을 향해 포권의 예를 취했다.
사마경으로선 뒤늦게라도 와준 풍운산장이 고맙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도도함을 잃지 않고 적당하게 치하했다.
“아니에요, 적절한 때에 오셨어요. 풍운산장이 아니었다면 보다 어려운 싸움이 되었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소성주. 여기 이 청년은 형님의 셋째인 후아외다.”
사마경은 모증의 말을 들으며 시선을 돌렸다.
모증의 옆에는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서 있었다. 그가 바로 풍운산장 장주인 모강의 아들, 모후였다.
“반가워요, 모 공자.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했어요.”
모후는 면사로 눈 밑이 가려진 사마경을 보고 눈을 깜박이지도 않았다. 매미날개처럼 얇은 면사 사이로 보이는 사마경의 미모가 그의 혼백을 달구어 놓은 것이다.
“별 말씀을! 소성주께서 청하셨는데 당연히 달려와야지요!”
모후가 벌게진 얼굴로 두 손을 맞잡고 흔들며 예를 취했다.
“그리 생각해주시니 고마워요.”
사마경은 담담히 답하고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좌측에는 간부들이 침중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몸이 온통 피로 물든 사람, 무복이 찢어진 사람, 안색이 창백한 사람 등등.
사마경은 그들의 눈을 하나하나 바라본 후 명령을 내렸다.
“내일 아침에 출발할 거예요. 일단 부상자들부터 치료하도록 하세요.”
어차피 중상자들은 이동할 수도 없다. 신천장에 남아서 치료를 하는 수밖에.
그런데 백리호가 토를 달았다.
“부상자가 너무 많네, 소성주. 나 역시 부상으로 걷기가 쉽지 않은 상태야. 굳이 서둘러서 돌아갈 필요가 있겠나?”
“무림맹과 파천회의 공격이 우연이라고 보시나요?”
“우연이야 아니겠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본 성을 건드리지 않았던 무림맹이 느닷없이 나타나서 작정했다는 듯 공격했어요. 거기다 파천회까지 나타났죠. 그게 무슨 뜻이겠어요?”
사마경의 목소리가 깨진 도자기의 단면처럼 날카롭게 튀었다.
그녀가 워낙 강하게 나가자, 백리호는 이마만 찌푸리고 바로 대답을 못했다.
사마경은 그의 대답을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군사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늘 저들의 공격은 선전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부로 무림맹과 본 성이 무언에 맺었던 평화협약은 깨진 것이지요.”
평화협약이 깨졌다는 말은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본인 역시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최대한 빨리 돌아가려는 거죠. 저들이 전열을 정비해서 또다시 공격해오면 이곳의 전력으로는 막을 수 없어요.”
“그럼 신천검문 사람들과 부상자들은 죽어도 괜찮단 말인가?”
백리호가 과장된 몸짓을 하며 반박했다.
그러나 사마경은 눈썹 한 올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떠나면 무림맹도 이곳을 공격할 이유가 없어져요. 그러니 오히려 우리가 떠나는 게 신천검문과 부상자들을 보호하는 길일지 몰라요. 전주께서도 부상이 심하니 이곳에 남고 싶으면 남으세요.”
그녀의 말에 대부분의 간부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림맹이 달리 무림맹인가? 정의와 협의를 신조처럼 받드는 자들 아닌가.
그런 무림맹이 부상자를 공격했다가는 강호의 지탄만 받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림맹이 부상자들을 공격한다면 구천성에게도 무림맹을 전면 공격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무림맹은 그걸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소성주의 말씀이 옳소. 힘들겠지만 성으로 돌아갑시다.”
엽가승이 먼저 사마경의 말에 찬성했다. 그 역시 무림맹의 장로인 황보궁을 상대하며 내상을 입었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진강은 직접적으로 사마경의 뜻에 따랐다.
“무혼단 무사들은 부상을 치료해라! 아침에 성으로 돌아갈 것이다!”
정말로 무림맹이 전격적인 선전포고를 했다면 이곳에서 부상자가 나을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더구나 무림맹 무사들의 무위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강하지 않던가.
‘빌어먹을!’
백리호는 입을 꾹 다물고 더 이상 반론을 펴지 않았다. 그의 두 눈에서 순간적으로 한광이 번뜩였다 사라졌다.
‘흥!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네년 마음대로 되진 않을 거다.’
그때 사마경이 다시 물었다.
“전주께선 남으실 건가요?”
백리호도 남을 생각은 없었다. 사마경이 간다면 힘들어도 따라가야 했다.
“아니네. 나도 가야지.”
***
흑월대는 전교와 육가종이 사망하고, 문등천은 중상을 입어서 기식이 엄엄했다.
남은 사람 중에서도 절반이 심한 부상을 당했는데, 그 동안 잘 버텼던 유고원과 오관도 상처가 제법 심해서 한동안 치료에 전념해야 할 듯했다.
그나마 사절방과 청인도장 일행을 상대하며 부상당한 사람들이 전쟁에 뛰어들지 않아서 희생자가 그 정도에 그친 것이다.
장천운은 남아 있는 독왕의 해독단 중 두 개를 물에 풀어서 부상자들에게 복용시켰다.
그날 밤, 사마경은 장천운에게 은밀한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