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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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33화
느린 몸집으로 쓰러지던 청인도장이 목을 쥐어짜며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모두……. 이곳을 떠나……라!”
제갈승민은 어이가 없다 못해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는 사공명신을 상대했다. 그야 상대가 누군지 알지도 못했지만.
어쨌든 새파란 놈인데 단 한순간도 우세를 점할 수 없었다.
아니 우세는커녕 상대의 공격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제 이십대로 보이는 놈의 공력이 자신에 비해 아래가 아니었다. 검초도 노련한 검수처럼 천변만화하고, 방심하면 언제 목이 달아나고 심장에 구멍이 날지 알 수 없을 만큼 날카로웠다.
특히 이글거리는 눈빛은 싸움에 미친놈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알고 보니 이놈뿐만이 아니라 다른 놈들도 비슷한 눈빛이다―
오죽하면 싸우던 중에 재수에 옴 붙었다는 생각이 들까.
이십여 초의 격렬한 공방을 치르는 사이 진기가 진탕되고 팔다리가 무거워졌다.
‘빌어먹을!’
하지만 투덜거릴 겨를도 없었다.
무림맹에서 작심을 하고 기른 정천무룡단이거늘, 두 배가 넘는 숫자임에도 밀리고 있었다.
헛소리를 지껄이던 미친놈들의 공격에 십여 명이 쓰러졌고, 또 그만큼의 무사들이 부상을 입은 채 온몸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놈들이……!’
이대로 싸움이 지속되면 전멸마저 각오해야할 상황.
당황한 그는 후퇴를 염두에 두고 재빨리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때 청인도장이 장천운에게 패해서 쓰러졌다.
맙소사! 칠성검이 이름도 없는 놈에게 패하다니!
그뿐이 아니다.
청인도장을 패배시킨 젊은 놈이 혼전 속으로 뛰어들었다.
흐릿해지는 신형, 번쩍이는 뇌전. 순식간에 정천무룡단원 둘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야!’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해서 사공명신의 공격을 막아낸 그는 뒤로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후퇴해!”
장천운은 후퇴하는 무림맹 무사들을 쫓지 않았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북쪽, 당하로 가지 않는 이상 쫓을 이유가 없었다.
현월을 거둔 그는 흑월대를 둘러보았다.
이미 부상을 입었던 진구와 탁도광, 유각, 추소철, 한명후는 부상이 더 심해졌다. 거기다 등평마저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나머지는 경미한 상처를 입었거나, 격전으로 진기가 진탕된 정도였다.
두양양도 머리카락이 흐트러지고 옷자락 두어 곳이 찢어졌는데, 그래서인지 오늘 따라 더 강인하게 느껴졌다.
모두가 그 상태에서도 눈빛만큼은 투지로 이글거린다.
‘특별교육을 받은 효과가 있군.’
장천운은 내심 만족하며 짧게 명을 내렸다.
“빨리 상처를 치료하쇼. 간단히 손보고 출발할 거요.”
죽은 사람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남들이 미쳤다고 고개를 젓던 무지막지한 비무수련 덕분이었다.
실전이나 다름없는 무지막지한 비무가 그들에게 최후의 순간 목숨을 구해준 것이었다.
잠시 후, 흑월대는 부상자들에게 금창약을 뿌리고 천으로 묶는 정도의 간단한 치료만 한 후 당하를 향해 달렸다.
부상이 심한 네 사람은 십 리를 달리자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대주! 먼저 가!”
진구가 창백한 얼굴로 소리쳤다.
탁도광과 유각도 함께 달리기 힘든 상태였다. 그나마 둔하게 보이는 등평이 겨우 보조를 맞출 뿐.
장천운은 미련을 두지 않았다.
무림맹 무사들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강했다. 무공만 강한 게 아니었다. 살기도 강했다.
정파를 자처하고 무사도를 입버릇처럼 떠벌리는 자들이 그토록 강한 살기라니.
게다가 장로급 고수들도 나왔다.
무림맹의 주력은 더욱 강할 것이었다. 그들이 당하를 공격하는 구천성의 뒤통수를 친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먼저 갈 테니 힘든 사람들은 천천히 뒤따라오쇼!”
두어 명이 더 속도를 늦추었다.
억지로 따라가긴 하지만 그 상태로는 전쟁터에 도착한다 해도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차라리 속도를 늦추고 몸 상태를 유지해서 도착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었다.
장천운은 사공명신, 두양양, 구산과 함께 앞으로 치고 나갔다.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의 상태에 맞춰서 달렸다.
기다란 뱀이 길게 늘어서서 빠르게 전진하는 듯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 함성과 병장기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음이 들려 왔다.
‘젠장! 싸움이 벌어진지 꽤 된 것 같군.’
예상했던 일이다.
문제는 싸움이 벌어지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냐는 것이다.
무림맹 무사들이 이미 나타났을지 모르는 상황. 초조한 마음이 그의 발걸음을 더욱 더 재촉했다.
소성주에게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56장: 전쟁은 낭만도, 유희도 없는 법이다
무림맹의 공세는 거센 사막의 모래폭풍이 몰아치는 듯했다.
흑월대 일조와 수혼대는 사력을 다해서 패왕거 주위를 지켰다.
무림맹 무사들의 무력은 그들이 이제까지 알고 있던 것과 천양지차였다.
그들은 강하고, 끈질겼다. 게다가 살심이 충만했다.
소림사의 승려로 보이는 자들도, 무당파와 화산파의 도인들도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세간에 알려진 무림맹 무사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
혁련기를 비롯한 흑월대 일조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야만 했다.
육가종과 단중낙, 이전은 온몸이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들은 당장 쓰러지기 직전인 상태에서도 이를 악물고 도검을 휘둘렀다.
“으아악!”
“뭐해! 그쪽을 막으란 말이다!”
처절한 비명! 악다구니! 그리고 시뻘건 피분수와 처참한 죽음!
폭풍철기대가 외곽을 휘저어서 무림맹 무사들을 분산시키지 않았다면 수혼대의 방어막은 이미 뚫렸을 것이었다.
백리우진도, 독고민도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한때 그들은 전쟁에 나서서 공을 세울 꿈에 부푼 적이 있었다.
적을 물리치고 개선장군처럼 귀환해서 만인의 환호를 받고 싶었다.
“백리우진! 네가 최고로다!”
“독고민! 너야말로 구천성의 후계자로다!”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지만……. 제기랄!
실제 마주친 전쟁은 낭만도, 유희도 없었다.
공방 몇 번 만에 처음 보는 자와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싸워야 했다.
적의 배에서 쏟아진 내장이 철벅거리며 밟혔다. 역겨운 느낌, 코를 찌르는 악취, 뱃속 깊숙한 곳에 쌓인 오물이 목구멍으로 역류했다.
한눈을 팔면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들은 일 각 만에 깨달았다.
전쟁에는 죽느냐 사느냐, 둘 중 하나의 길만 있다는 걸!
낭만은 개나 주라지!
“으아아아! 죽어라, 이 개새끼들아!”
독고민이 악을 쓰며 전 공력을 끌어올리고 가문의 비전인 독고십이검을 펼쳤다.
백리우진도 상태는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면 독고민처럼 광기어린 눈빛이 아니라는 거였다.
지금처럼 모두가 광기에 휩싸인 상황에서는 그것만 해도 대단했다.
아마 장천운이 봤다면 한 소리 했을 것이다.
―역시 음흉한 새끼야!
사마경은 검을 빼들고 전쟁터를 주시했다.
삼파연합과의 싸움은 이제 뒷전이었다. 구천성 무사 중 절검당과 거경당을 제외한 대부분이 무림맹과의 싸움에 뛰어들었다.
심지어 정보를 전달하던 사밀령 무사들조차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도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만큼 무림맹 무사들은 강했다.
죽거나 부상을 입은 채 쓰러진 무사가 수백 명. 지상이 온통 시신의 잔재로 뒤덮이고,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온 세상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그녀의 주위도 마찬가지였다.
철무와 구양명에게 죽은 자 십여 명의 몸에서 지금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구천성 무사들은 철무와 구양명의 엄청난 무위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성주 곁에 저런 고수들이 있었을 줄이야!
사기가 충천한 구천성 무사들은 악을 쓰며 상대를 몰아붙였다.
“힘을 내라!”
“그쪽을 막아!”
아비규환의 혼돈 속에서도 사마경은 흔들림 없는 차가운 눈빛으로 상황을 주시했다.
오히려 그녀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더 긴장한 표정이었다.
심지어 구양명조차도.
“이대로는 안 되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좋겠어.”
“그게 낫겠습니다, 소성주.”
정유도 구양명의 의견에 찬성했다.
잔뜩 긴장해 있던 소연추와 류화, 연송하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연송하는 사마경의 차가운 눈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가지 않을 거야. 정말 많이 변했어.’
그녀의 판단을 증명해주듯 사마경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럴 순 없어요.”
“소성주?”
“수하들이 목숨을 내놓고서 적과 싸우고 있어요. 벌써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당신이라면 저들을 두고 떠날 수 있겠어요?”
구양명이 이마를 찌푸리고 사마경을 바라보았다.
차갑게 빛나는 사마경의 눈을 본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을 보니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안정되었다.
‘정말 놀라운 여자야.’
그때 정천무룡단 무사 둘이 방어진을 뚫고 안으로 날아들었다.
슈아악!
구양명의 가공할 검세가 정천무룡단 무사 중 하나의 심장어림을 갈라버렸다. 다른 하나는 철무의 낫처럼 생긴 작은 기형도에 목이 잘렸다.
구양명이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끝장을 봐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 이럴 줄 알았으면 세 번째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걸 그랬어.”
“그가 올 거예요.”
그?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사마경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당연하다는 듯.
“천운 말이에요. 그는 반드시 와요.”
그 말을 할 때만큼은 눈빛에 열기가 돌았다.
“나를 지켜야 하니까.”
살아서, 반드시 살아서 자신을 지킨다고 했으니까.
격렬한 혼전이 극에 달했다.
구천성 쪽에서 삼파연합을 공격하던 무사들마저 합세하자, 그 이전까지 무림맹의 우세였던 상황이 팽팽해졌다.
그제야 서문주경이 명령을 내렸다.
“시작해.”
그 직후 기다란 소성이 울렸다.
휘이이이익!
숨어있던 파천회 이백 무사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풀숲을 가르며 달렸다.
쏴아아아아!
해일이 한 곳을 향해 밀려갔다.
목표는 패왕거.
스릉, 쉬아악.
이백 무사가 달리면서 일제히 무기를 뽑았다.
“구천성 놈들을 쳐라! 소성주를 잡아!”
악조백이 일갈을 내질러서 자신들이 무림맹과 적이 아님을 알렸다.
팽팽한 접전에서 지원군의 등장은 무림맹에게 천군만마였다.
반면 구천성 쪽에는 악몽이었다.
백리호의 안색이 대변했다.
“뭐야, 적의 지원군인가?”
혁련광이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놈들을 막아라!”
갑작스런 파천회의 등장은 치명적이었다.
팽팽하던 상황이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폭풍철기대조차 이미 절반이 쓰러져서 힘을 쓰지 못했다.
마침내 방어망이 여기저기 뚫리며 사마경을 향해 공격하는 자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내 걱정 말고 집중해서 적을 막아요!”
사마경이 소리쳤다.
그러나 한번 뚫리기 시작한 방어망은 시간이 가면서 더욱 빠르게 무너졌다.
더구나 파천회의 가세로 이제는 빠져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히히힝!
파천회 무사 중 몇이 명령을 받은 듯 패왕거의 말부터 죽였다.
흑월대 일조는 사력을 다해서 적을 막았다.
구양명과 철무도 자신들의 실력을 모두 드러냈다.
이제는 숨길 것도, 숨길 수도 없는 상황. 적의 공격을 뚫고 사마경을 구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저와 구양 형이 구멍을 뚫을 테니 따라오십시오, 소성주!”
철무가 소리치고 유령마영을 펼치며 파천회 무사들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림자만 흐릿하게 움직이는 그의 유령 같은 신법에 파천회 무사들이 당황했다.
유령 같은 그림자가 당황한 자들 사이를 누볐다. 그림자가 스쳐갈 때마다 허공으로 피분수가 뿜어졌다,
구양명도 사문의 절기인 한천팔검을 펼치기 시작했다.
은밀함 속에 살기가 내포된 철무의 무공과 달리 구양명의 검은 걸리는 모든 것을 파괴할 것처럼 패도적이었다.
일대 일 비무 때와 달리 오직 살상을 위한 검세가 가공할 검기의 폭풍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 콰광!
검기의 폭풍에 휘말린 파천회 무사 두셋이 피를 뿌리며 뒤로 날아갔다.
“가세!”
구양명이 소리치고는 철무와 함께 앞장서서 전진했다.
“수혼대와 흑월대는 좌우를 호위하라!”
냉원상이 악을 쓰며 수혼대와 흑월대를 지휘했다.
사마경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를 따라 이동했다.
입술을 씹는 그녀의 눈에서 새파란 살기가 번뜩였다.
무림맹이 나타난 걸 보고 정유가 말했다. 누군가가 뒤에서 수작을 부리지 않았다면 무림맹이 나타났을 리 없다고.
그 말인 즉 무림맹을 움직인 자가 있다는 뜻이고, 그런 일을 저질렀을 만 한 자는 두어 명에 불과했다.
‘나는 절대 굽히지 않아! 누구든 무림맹을 사주한 자가 있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사마경이 구양명과 철무의 뒤를 따라 이동하자, 파천회와 무림맹 무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