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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2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31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28화

앉아 있던 모두가 흠칫하며 서문주경을 바라보았다.

제갈승우가 물었다.

“부회주께서 직접 관여하실 생각이십니까?”

“구천성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기회가 되어서 내 손으로 사마경을 잡는다면 더 좋겠지.”

제갈승우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가라앉았다.

파천회는 암중에 두 세력으로 갈라져 있었다.

정도를 추구하는 사람들, 정사 중간에 있는 사람들.

목적이 같아서 손을 잡았지만 본질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힘이 둘로 갈라진 것이었다.

서문주경은 둘 중 정도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수장이라 할 수 있었다.

만약 이번 일에 큰 공을 세운다면 파천회의 주도권이 정도 쪽으로 넘어오리라.

‘어쩌면 제 이의 무림맹이 탄생할 수도 있어.’

자신은 바로 그 또 다른 무림맹의 이인자가 되는 것이다.

‘그 후 보란 듯이 세가로 돌아가면 어떤 놈도 더 이상은 나를 놀리지 못할 거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회주께서 부회주가 단독으로 움직인 걸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군.’

회주는 온화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의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처럼 냉정하다 못해 냉혹했다.

그런데 그 회주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번 일로 회의 무사들을 헛되이 잃는다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만 하겠지. 그 사람이 자신이 될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 역시 나중에 걱정할 일이다.

성공한다면 모든 것이 용서될 테니까.

그때 문득 회주와 얼굴 하나가 겹치며 떠올랐다.

‘그런데 회주와 함께 있던 노인은 누구지?’

언젠가 급한 일이 있어 회주를 찾아갔다가 회주와 군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다.

노인은 몸집도 작고 얼굴이 온통 주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데 회주와 군사는 그 노인을 향해 노야라고 부르며 극도로 공경하게 대했다.

도대체 그 노인이 누구기에.

‘그 노인과 눈이 마주쳤을 때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어.’

그때를 떠올리자 소름이 돋으며 가슴이 싸늘하게 식었다.

“군사, 뭐하는가? 준비하게.”

서문주경의 말에 제정신이 든 제갈승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부회주.”

 

***

 

그날 밤 자정 무렵.

장천운은 철무에게 호위임무를 넘기고 방을 나왔다.

그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 일조 조장 혁련기와 이조 조장 사공명신이 와 있었다.

“제때 왔군.”

“무슨 일인데 이 시간에 불렀나. 대주?”

혁련기가 의아한 듯 물었다.

장천운은 탁자 위에 종이 하나를 펼쳤다. 제법 상세하게 그려진 지도였다.

필양 일대를 그린 지도였는데, 두 군데에 점이 찍혀 있었다.

그가 지도를 가리키며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사밀령에서 필양에 숨어 있는 적의 정보원들 은신처를 조사했소. 점이 찍힌 곳이 놈들의 은신처요.”

그 말에 두 사람은 장천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점을 노려보았다.

점은 서쪽과 남쪽에 찍혀 있었다.

“이곳은 일조가, 이곳은 이조가 맡아주시오.”

“생포해야겠지?”

“좋을 대로 하시오. 생포하면 좋지만, 죽여도 상관없소.”

 

일각 후, 두세 명씩 짝을 지은 흑월대 일조와 이조 조원들이 북풍객잔을 몰래 빠져나갔다.

그로부터 일각이나 지났을까, 서쪽으로 간 혁련기는 골목 깊숙한 곳에서 길 건너편의 어둠으로 물든 집을 바라보았다.

‘저곳이군.’

평범한 양민의 가옥처럼 보였다. 그러나 문 한쪽에 깃발이 달려 있었다.

[점(占), 길흉화복(吉凶禍福)]

점쟁이 집이었다.

정말 점쟁이가 사는 곳일까? 만약 점쟁이가 산다면 오늘 자신의 운명도 알고 있을까?

혁련기는 잠시잠깐 엉뚱한 생각을 하고는 뒤를 향해 손짓을 보냈다.

선우상과 전교가 먼저 무기를 빼들고는 소리 없이 몸을 날려 지붕 위로 올라갔다.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는 듯 그들은 지붕을 타고 점쟁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조원들도 뒤따라서 지붕 위로 올라갔지만,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팔방만 점한 채 상황을 주시했다.

 

마당에 내려선 선우상은 좌우를 둘러본 후 불이 켜져 있는 방으로 다가갔다.

제일 크고 화려한 방이었다. 이곳이 정보원들의 은신처라면 수장이 기거할만한 곳.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방문을 열었다.

방 안에서 서찰처럼 보이는 종이를 접던 장한이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장한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자가 생면부지의 무사인데다 검을 들고 있는 걸 보고 벌떡 일어났다.

“웬 놈이냐?”

선우상은 장한을 향해 쇄도하며 다짜고짜 검을 내질렀다.

그의 검은 빠르고 강했다. 게다가 시간을 오래 끌고 싶은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던 터라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장한은 기겁하며 옆으로 피했다. 하지만 작정하고 찰거머리처럼 끈질기게 따라붙는 선우상의 검을 떨쳐내지는 못했다.

“천은방의 개, 맞나?”

선우상이 구석진 곳에 몰린 장한을 향해 검을 겨누고 물었다.

그 질문에 상대의 눈빛이 흔들렸다. 죽음의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비밀이 들통 났을 때의 당황스런 표정이었다.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니군.”

선우상은 대답을 듣지도 않고 검을 뻗었다. 들을 필요도 없었다.

상대가 천은방의 정보원이 확실한지, 그것을 알고 싶어서 물어본 것뿐이었으니까.

장한은 구석진 곳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틀며 바닥을 찼다. 하지만 절정 수준에 도달한 선우상의 검은 한 치의 틈도 주지 않았다.

쉬각!

선우상의 검이 장한의 어깨를 깊게 갈랐다.

뼈까지 갈라진 듯 팔이 덜렁거리면서 피분수가 솟구쳤다.

“끄윽!”

극렬한 고통에 눈을 치켜뜬 장한은 정신없이 물러서다가 벽에 등을 부딪치고서야 멈춰 섰다.

“이, 이 개자식들…….”

“내가 개면 너희들은 쥐새끼야.”

덜컹! 와장창!

밖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났다. 다른 방에 있던 자들이 튀어나온 듯했다.

“흥! 모두 제거해!”

혁련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우상은 밖의 일은 신경 쓰지 않고 검기점혈의 상승 수법을 펼쳐서 장한의 마혈과 아혈을 제압했다.

“우리에겐 쥐새끼도 사람 말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전문가가 있지. 기대해도 좋을 거야.”

그때 밖에서 혁련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해? 밖은 다 정리 되었네.”

“지금 나가.”

쓰러진 장한을 끌고 나가려던 선우상의 눈이 탁자 위로 향했다.

탁자 위에 접힌 종이가 있었다. 장한이 쓴 서찰인 듯했다.

선우상은 그 서찰을 펼쳐서 잠깐 살펴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고맙게도 선물까지 준비해 놓았군.”

그는 서찰뿐 아니라 한쪽에 놓인, 비둘기가 든 새장도 들고 나왔다.

 

비슷한 시각.

남쪽에서도 한바탕 피바람이 불었다.

사절방에서 파견한 자들은 남쪽의 작은 객잔에 숨어 있었다.

사공명신을 비롯한 이조는 밤잠을 설치고 있던 그들에게 날벼락을 선사했다.

특히 은명객들은 눈을 번들거리며 혹시나 숨어 있는 자가 있는지 샅샅이 뒤졌다.

그들을 상대한 사절방의 정보원 중 둘은 겨우겨우 목숨을 구했는데,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기절할 때까지 욕을 해댔다.

“차라리……. 죽여……. 이 미친놈들아…….”

막소광과 등평은 그들의 뒤통수를 때려서 기절시키고 어깨에 멨다.

“대주가 늦게 온다고 염병하기 전에 가지?”

 

***

 

장천운은 흑월대가 돌아오기 전에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굳이 직접 돌아다닐 것도 없었다. 점소이에게 조건에 맞는 장소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안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해도 밖에서는 소리가 안 들리는 곳이 있는지 모르겠군. 적당한 곳을 알려주면 이걸 주지.”

점소이는 장천운의 손 위에 놓인 은자 반 냥을 보고 황제에게 고하듯 말했다.

“저쪽 건물 지하에 음식재료저장고가 있습죠. 그곳에서는 아무리 떠들고 지랄을 해도 밖에선 알지 못합니다요.”

 

장천운은 흑월대가 세 사람을 생포해오자 지하저장고로 데려갔다.

지하저장고는 생각보다 더 깊었다. 창문도 없었다. 입구는 두꺼운 원목으로 만들어진 이중문이었는데, 틈이란 틈은 모두 가죽이 덧대어져 있어서 공기조차 제대로 통과하지 못할 듯했다.

장천운은 생포한 자들에 대한 심문을 전격적으로 사령주 초광에게 맡겼다.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정보를 쥐어짜는 일은 사밀령의 장기 중 하나였다.

그러잖아도 장천운에게 쌓인 것이 많던 초광은 세 사람을 장천운이라 생각하고 잘근잘근 다졌다.

마침 생포한 자 중 하나가 ‘장씨’였다. 초광은 유난히 그자를 더 괴롭혔다.

“말해! 이 장씨 개쉐끼야! 너도 어떤 독종새끼처럼 끝까지 개기겠다는 거냐?”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더니 그 동안 응어리져 있던 속이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진즉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한바탕 소리를 지를 걸. 그런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가 미처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지하저장고에는 ‘숨통’이라는 게 있었다. 팔뚝 굵기의 대나무로 만든 기다란 대롱인데, 부패된 공기를 빼내기 위해서 설치한 것이었다.

바로 그 숨통을 통해서 그의 말이 흘러나왔다. 비록 가느다란 목소리에 약간의 울림이 있어서 바람소리처럼 들리긴 했지만, 귀를 기울이면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숨통 옆에 장천운이 서 있었다.

‘아주 신이 났군.’

초광이 저러는 이유를 왜 모를까.

피식, 웃은 장천운이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계속 듣고 있는데 선우상이 다가왔다.

“놈이 작성한 서찰이오, 대주.”

장천운은 서찰을 받아서 펼쳐보았다.

깨알 같은 글씨가 서찰의 반을 메우고 있었다. 다행히 달빛이 밝아서 서찰을 읽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그 서찰의 내용 중 두어 가지가 눈에 밟혔다.

 

[……연락이 안 됨. 아무래도 저쪽에서 연결을 끊은 것 같음.]

[……사절방과는 각자 움직이고 있음.]

[……소성주가 내일은 움직이지 않을 것 같다고 함.]

 

연락이 안 된다? 저쪽에서 연결을 끊었다? 누구와?

장천운이 이마를 찌푸리자, 선우상이 말했다.

“대주, 아무래도 우리 쪽에 천은방과 내통하는 자가 있는 것 같소.”

예상하고 있던 바다. 소성주의 뜻까지 전달되었다는 것은 오전 회의에 참석했던 자들 중 하나거나, 아니면 참석한 자와 가까운 사람이라는 뜻.

더구나 사절방과 연수했을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그랬나? 역시 그걸 노린 거냐, 공손백?’

조호이산. 사마경을 자연스럽게 처리하려고 구천성에서 나오게 한 듯했다.

무심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을 정리한 장천운이 선우상을 바라보았다.

“아까 가져온 비둘기가 천은방의 전서구요?”

“그렇소.”

정확히는 신천검문의 전서구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전서구를 받아볼 사람이었다.

“새벽쯤 이걸 넣어서 날려보내쇼.”

장천운이 서찰을 내밀자, 선우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괜찮겠소?”

“그래야 우리가 정보망을 지웠다는 걸 내일까지는 모를 거요.”

“흐음, 알겠소. 그렇게 하리다.”

 

선우상에게 지시를 내린 장천운은 다시 지하저장소로 들어갔다.

천은방과 사절방의 정보원들이 물 먹은 포대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초광이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몇 가지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대주.”

“잘했소. 말해보시오.”

“천은방 놈들이 사절방과 손을 잡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우리 쪽 간부 중에 적과 내통한 자가…….”

장천운은 무심한 표정으로 듣기만 했다.

초광이 알아낸 사실로 인해 추측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천은방과 사절방이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하긴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동일한 적을, 그것도 강적 중에 강적을 상대해야 하는 자들 아닌가. 오히려 연수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초광의 말을 다 들은 장천운은 묶여 있는 자들을 바라보다가 불쑥 물었다.

“그런데 저 자가 장씨요?”

“예?”

“어떤 독종새끼처럼 개겼으면 발에 밟혀서 심장이 터졌을 텐데, 일찍 불어서 그나마 목숨은 건졌군.”

“…….”

초광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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