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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2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25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24화

콰과과광!

비도 멈추고 구름마저 서서히 걷히는데, 들판에선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졌다.

이미 일 각째.

두 인간이 만들어낸 뇌성벽력은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십 장 이내를 뒤집어놓았다.

사람만 하던 돌덩이는 모래처럼 부서졌고, 주위에 있던 키 작은 나무 몇 그루도 가루가 되어서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휘이이이잉.

한 줄기 거친 새벽바람이 오 장 간격을 두고 마주 선 두 사람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두 사람 모두 행색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특히 구양명은 머리카락까지 풀어헤쳐져서 바람에 제멋대로 날렸다.

멋지게 차려입은 피풍의는 걸레쪽처럼 갈기갈기 찢어졌고, 흑포도 군데군데 검기에 갈라져서 너덜너덜했다.

장천운은 그나마 조금 나았는데, 옷을 새로 사 입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주위의 상황쯤이야 자신들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시미치를 뚝 뗀 채 서로를 노려보았다.

“솔직히 말해봐라.”

구양명이 인상을 몇 번 찡그리더니 힘들게 입을 열었다.

“뭘 말입니까?”

“더 일찍 끝낼 수 있었지?”

“별 걸 다 궁금해 하시는군요.”

“왜 더 끌었지? 나는 봐주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정말 듣고 싶습니까?”

구양명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막상 그 말을 들으니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뱉은 말이 있으니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일이다.

“말해봐라.”

“가진 무공을 아직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역시 듣지 않는 게 나았다. 뒤에 할 말이 뇌리에 저절로 떠오른다.

“으음, 그래서?”

“구양 대협 덕분에 오늘 몇 가지는 다듬을 수 있었죠.”

빌어먹을!

결국 자신을 상대하며 무공을 익혔다는 말 아닌가?

화가 나야 하는데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어이가 없군.”

“이해해주십시오. 강호는 넓은데 선배만한 사람이 흔치 않아서 말입니다.”

젠장! 자신이 시험대상이 될 줄이야.

강호의 친구들이 알면 배꼽을 잡고 뒹굴 일이다.

‘그럼 나 정도 사람이 흔한 줄 알았나?’

속으로 툴툴거린 구양명이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구름이 제법 걷혔다. 동쪽 하늘에서 여명이 터오기 시작하는데, 오늘따라 유난히도 구름이 붉게 느껴졌다.

이제 어제까지의 자신은 사라졌다. 저 여명을 따라서 오늘 이후만이 존재한다. 패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나에게 뭘 바라느냐?”

패했다. 그러니 세 가지 부탁을 들어줘야 한다.

그것도 귀찮으면 물어볼 것도 없이 목을 내놓으면 되지만, 그 전에 저 어린 친구와 몇 마디 더 나누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저와 해장술이나 한잔 하죠. 그게 첫 번째 부탁입니다.”

뭐라고?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자존심을 지키려면 자결을 해야 하는데……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술이 당겼다.

‘죽기 전에 해장술 한잔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군.’

“좋아, 가자!”

걸레쪽이 된 피풍의를 풀어서 내버린 구양명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

 

장천운은 구천성 무사들이 없는 구석진 곳의 작은 객잔으로 들어갔다.

‘지미, 어떤 놈들이 새벽부터 온 거야?’

눈을 비비고 나온 점소이는 한 소리 퍼부으려다가 입을 닫았다.

행색을 보니 어디서 대판 싸우고 온 듯했다.

잘못 건드리면 애꿎은 자신의 목만 달아날 뿐.

“뭘 드시겠습니까요?”

“술.”

“안주는……?”

“아무거나.”

평소였다면 ‘아무거나라는 안주는 없는뎁쇼?’ 라며 받아쳤겠지만, 오늘은 꾹 참았다.

어제 먹다 남은 고기 몇 점 갖다 주지 뭐.

 

장천운과 구양명은 별 다른 말도 없이 술만 마셨다. 점소이가 갖다 놓은 고기도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색이 거무튀튀한 고기는 희끗한 기름이 굳어 있었고, 섞어 놓은 야채는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점소이가 술을 세 병째 가져왔을 때서야 장천운이 고기안주를 젓가락으로 콕콕 찍으며 말했다.

“무창 홍구로에 제가 잘 아는 점소이가 있습니다. 저와 무척 친했는데, 새벽에 술손님이 오면 전날 다른 손님이 먹다 남긴 고기를 갖다 주곤 했죠.”

“낙양에도 그런 곳이 있지.”

“어? 그래요?”

“내 친구 하나가 그걸 알고 손모가지를 부러뜨리려고 했는데, 점소이가 눈치를 채고 재빨리 안주를 새로 만들어 내와서 겨우 참았지.”

“똑똑한 점소이군요.”

다정한 형제처럼 한가로이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다시 술잔을 비웠다.

술병이 반쯤 비었을 때 구양명이 불쑥 물었다.

“아까한 말,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구양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답이 왠지 건성으로 들렸다.

“내가 뭘 물어본 건지는 아나?”

“어차피 사실만 말했으니 뭘 물어봤는지 알 필요도 없죠.”

“훗, 그런가? 그럼 정말 흑도의 새끼건달이었단 말이지?”

“그랬죠. 열여섯 살 때까지는.”

“스승도 없이 무공을 익혔고?”

“강련곡에서 수련을 했으니 스승은 없어도 가르친 사람은 있었죠. 하지만 상승 무공은 저 혼자 익혔습니다.”

“비급을 보고 혼자 익혔단 말이지?”

“아닙니다.”

“비급을 보고 익힌 것도 아니고, 스승에게 배운 적도 없다면 어떻게 익혔단 말인가?”

장천운은 구양명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믿든 말든 사실대로 말했다.

“꿈속에서요.”

“꿈……?”

구양명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술에 취해서 일그러진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정말입니다.”

“제기랄…….”

“매일 죽는 꿈을 꾸는 기분이 어떤지 아십니까?”

“……?”

“그것도 정말 비참하게 죽죠. 팔이 잘리고, 가슴이 뻥 뚫리고, 어떤 때는 목도 잘립니다. 제일 기분 나쁠 때는, 팔이 잘린 상태에서 내장이 모두 쏟아진 것을 보면서 죽어갈 때죠. 팔이 잘려서 집어넣을 수도 없거든요.”

“그럼…… 정말로……?”

“나중에는 진짜 고수들과 싸웠는데…… 후우, 지금 실력으로도 그들을 이길 자신이 없습니다.”

“도대체 어떤 자들인데……?”

구양명이 구미호에게 홀린 표정으로 물었다.

꿈속에서 싸운 자들을 알면 뭐하겠는가마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장천운은 오래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금포를 입은 노인하고, 백염의 청의도사 하나, 그리고 빼빼마른 흑포노인이었죠. 당시에는 세상에 정말로 그런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꿈속에서 그 사람들하고 싸웠단 말이지?”

“매일 그들에게 엄청 당해서 죽었죠.”

구양염은 이마를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금포노인, 청의도사, 흑포노인.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 한둘일까?

그런데 꼭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 같았다.

그때 점소이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저…… 이것은 저희 집에서 드리는 특별 안주입니다요. 금방 만들어서 따끈따끈 합죠. 헤헤헤.”

점소이는 눈치를 보며 탁자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을 올려놓고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물러섰다.

“호오, 고맙네.”

장천운이 빙긋 웃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냄새가 기가 막혔다.

구양명도 상념을 접고 일단 배부터 호강시켰다.

 

장천운과 구양명은 술병 네 개를 비우고 술자리를 마쳤다.

점소이의 특별 안주도 싹싹 비웠다.

“이제 두 번째 부탁을 말해보게.”

구양명이 먼저 본론을 꺼냈다.

술도 많이 마셨고, 맛있는 식사까지 했으며, 이야기도 실컷 들었으니 이제는 죽어도 원이 없을 듯했다.

장천운이 두 번째 부탁을 말했다.

“새벽부터 술 냄새 풍기면서 들어가면 소성주가 잡아먹으려고 할 거요. 그러니 선배가 함께 가서 변명 좀 해주쇼.”

“…….”

“싫습니까?”

“새벽이 아니라…… 해가 중천에 떴네.”

고개를 쭉 빼고 창밖을 바라본 장천운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정말이었다.

“제길, 돌아가면 욕을 바가지로 먹겠군.”

 

***

 

사마경이 장천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해가 뜬 후였다.

철무는 ‘장천운이 걱정할 것 없다고 했습니다.’라는 말까지 전했다.

그녀 역시 장천운의 실력을 믿었다.

하지만 아침식사 시간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자 슬슬 불안해졌다.

사마경이 안절부절못하고 방안을 오가자, 보다 못한 소연추가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한마디 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아가씨. 천운이 얼마나 강한지 아시잖아요.”

“나도 알아, 유모. 그래도 아무 일 없으면 연락이라도 해야 할 것 아냐?”

“뭔가 사정이 있겠지요.”

“그러겠지?”

“예, 그러니 마음 편히 기다려보세요.”

사마경은 소연추의 말에 마음이 조금 가라앉아서 의자에 앉아 차로 불안감을 달랬다.

‘그래, 천운은 강해. 그자에게 지지 않을 거야.’

하지만 일각이 더 지나도록 장천운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속 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연신 마셔댄 차로 배만 불렀다.

가라앉았던 불안감도 슬슬 고개를 내밀었다.

‘아냐, 그래도 혼자 갔는데…….’

‘왜 안 오지? 설마……?’

‘아냐, 그럴 리 없어. 천하의 누구도 천운의 신법을 따라잡지 못해. 괜찮을 거야.’

탕!

결국 그녀는 탁자를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대체 왜 안 오는 거야? 오기만 해봐라!”

입술을 씹으며 소리친 그녀는 다시 방 안을 오락가락 했다.

찻주전자를 바꿔들고 들어왔던 연송하는 사마경에게 이야기를 듣고 가슴을 조였다.

그녀도 불안한 마음은 사마경 못지않았다. 그러나 장천운을 믿고 묵묵히 기다렸다.

그 사이 해가 중천에 떴다.

간부회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자, 사마경은 흑월대를 동원해서 몰래 장천운을 찾기로 결정했다.

“송하, 흑월대 조장들 들어오라고 해. 천운을 찾아봐야겠어.”

“예, 소성주님.”

연송하는 다급히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런데 문밖 회랑에 구산과 진구 외에 두 사람이 더 서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은 아침 내내 두 여인의 애간장을 새카맣게 태운 장본인이었다.

“어? 송하야, 어딜 가려는데 그렇게 급히 서둘러?”

“……!”

“소성주님, 안에 계시지?”

연송하는 입을 반쯤 벌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장천운이 말을 할 때마다 지독한 술 냄새가 풍겼다.

도대체 어디서 저렇게 퍼마신 걸까?

그때였다.

“왔으면 들어오지 뭐해!”

사마경이 빽 소리쳤다.

연송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면서 장천운 뒤에 서 있는 사람을 슬쩍 곁눈질했다.

‘누구지?’

얼굴이 불콰한 걸 보니 함께 술을 퍼마신 듯했다.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흐트러져 있고, 옷도 여기저기 찢어진 상태여서 낭인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화 많이 났어?”

장천운이 스쳐가며 나직하게 물었다. 연송하도 이번만큼은 사마경 편을 들었다.

“혼날 줄 아세요.”

 

사마경은 어이가 없어서 화낼 정신도 없었다.

“크으, 술 냄새. 얼마나 퍼마신 거야?”

“네 병밖에 안 마셨습니다.”

대신 병이 컸다. 하지만 그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다.

“새벽에 나가서 여태 술을 퍼마신 거야?”

“시간이 이렇게 된 줄 몰랐죠.”

“지금 전쟁 중이란 거 몰라? 임무가 뭔지 잊었어?”

“제가 그걸 왜 모릅니까? 임무야 당연히 소성주를 지키는 거죠. 꺼어억.”

“그런데 술을 퍼마시고 들어와?”

장천운이 뒤를 돌아다보았다.

구양명이 한 걸음 뒤에 서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부탁은 까맣게 잊은 듯 사마경 쪽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뭐하세요? 말씀해주셔야죠?”

그제야 정신을 차린 구양명이 어물거리며 말했다.

“저기, 이 친구는 나와 술을 마셨는데…….”

“당신은 빠져 있어요!”

사마경이 눈을 치켜뜨며 다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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