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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2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11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22화

결국 코 꿰인 소처럼 정유에게 끌려간 초광은 한쪽에 서있는 장천운을 슬쩍 일견하고 보고를 올렸다.

천은방 무리의 숫자, 조직 편성, 오늘 오후까지의 움직임 등등.

그러고는 마지막에 굳은 표정으로 몇 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사절방 무사들은 신천장에 없었습니다. 그 바람에 놈들의 움직임을 저희나 첩밀각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소성주.”

사령주의 말에 사마경이 이마를 찌푸렸다.

예상이 빗나갔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군사, 사절방이 정말 천은방과 아무 관계가 없는 걸까요?”

정유도 곤혹스런 표정이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우연일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럴 확률은 일할도 되지 않습니다.”

“우연이 아니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소리겠죠.”

“그렇습니다, 소성주.”

“천운은 어떻게 생각해?”

사마경이 장천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초광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던 장천운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어쩌면 저희를 노리는 제 삼자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삼자?”

“저희 구천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비밀단체가 결성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유가 무심코 말했다.

“파천회 말이군.”

사마경과 소연추, 장천운이 일제히 정유를 바라보았다.

정유의 표정이 어색하게 이지러졌다. 마치 곤란한 경우를 당한 사람처럼.

“저…… 모르셨습니까?”

“…….”

“말해준 사람이 없는데 어찌 알겠습니까?”

장천운이 비비 꼬아서 되물었다. 차가운 눈빛으로 직시한 채.

‘이런…….’

“아는 대로 말씀해 보시죠.”

정유는 사마경이 파천회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말했다.

그런데 비밀단체가 있다는 건 알아도 이름까지는 모르는 듯했다.

‘끄응, 곤란하게 됐군.’

사실 파천회에 대해서 알려주는 거야 어려울 것 없다. 자신이 아니어도 위곤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테니까.

문제는 원단 전에 사마경을 암살하려 했던 자가 파천회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사실이 밝혀지기라도 하면 곤란한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우문각과 자신이 침입자의 정체를 알고도 숨겼다는 말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모른다고 발뺌할 수도 없는 일. 할 수 없이 그는 일단 파천회부터 설명해주었다.

“에…… 파천회는 작년 봄에 결성이 되었는데…….”

말하는 내내 장천운의 시선이 정유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정유로서는 미칠 일이었다.

아마 우문각도 숨길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알게 될 일, 억지로 숨겼다가 들통 나기라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일찍 좀 말해주실 것이지…….’

그는 속이 바짝바짝 탔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태연하게, 최대한 자세히 말해주었다.

“……그런데 일 년도 안 된 짧은 시기에 상당한 힘을 끌어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까지 제가 아는 것은 그게 전부입니다. 워낙 비밀스런 단체여서…….”

마지막 변명이라도 하듯 말끝에다가 토도 하나 달았다.

그때까지도 장천운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았다.

“왜 저와 소성주께선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는지 모르겠군요.”

정보를 취급하는 첩밀각과 사밀령은 우문각 휘하에 있다. 결국 장천운의 말인 즉, 우문각이 왜 그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냐는 추궁이다.

정유는 사력을 다해서 장천운의 의심을 벗어나려 했다.

“하, 하.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나 역시 얼마 안 되네.”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작년 말에는 알았겠죠. 원단 전에 말입니다.”

정유는 숨도 쉬기 힘들었다. 오늘따라 장천운의 눈빛이 우문각의 사안보다 더 무섭게 느껴졌다.

암습자의 정체를 눈치 챈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니 콕 찍어서 묻는 거겠지.

아니면 넘겨짚어 본 것일 수도 있고.

그렇다 해도 우문각과 자신이 그자의 정체를 숨겼다는 건 모를 것이다. 그것마저 안다면 두 손 두 발 다 들고 용서를 비는 수밖에.

“그때는 그저 짐작이었을 뿐이어서 말하기도 애매했다네.”

“혹시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헉!

“무, 무슨 말인가? 다른 뜻이라니?”

“예를 들자면…… 그 일을 빌미로 뭔가를 얻으려 했다던가 말입니다. 그도 아니면…… 정말로 뭔 일이 일어나기를 바랐을 수도 있고요.”

“그, 그런 생각은 꿈에도 없었네. 내 장담하지!”

그제야 장천운이 시선을 떼었다.

“좋습니다. 그 일은 지나간 일이니 더 이상 추궁하지 않겠습니다. 뭐, 소성주께서도 피해를 입지 않으셨고요.”

“하, 하, 하. 이해해줘서 고맙네.”

정유의 등이 땀으로 흥건했다. 입으로는 웃지만 속은 새카맣게 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은명객들이 왜 장천운을 ‘악귀 같은 놈!’이라고 하는지 그날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대신 이제부터는 숨기는 것이 있어선 안 됩니다. 그리고 총사께도 말해선 안 됩니다. 소성주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장천운의 그 말에 정유의 얼굴이 애처롭게 일그러졌다.

말하지 않으면 우문각에게 평생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가까운 곳의 주먹이 먼 곳의 칼보다 더 무서운 법. 정유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우우우, 알겠네.”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총사가 다그치면 모든 일의 원흉으로 장천운을 지목하는 수밖에.

한편, 정유가 당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사령주 초광은 덩달아서 가슴이 싸늘하게 식었다.

저 순하게만 보이는 정유가 얼마나 능구렁이 같은지, 얼마나 독심을 품고 있는 사람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정유가 꼼짝도 못하고 빌빌거리지 않는가.

그때 문득 든 생각에 초광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당신도 입 열 생각 마!

굳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에서 그 말이 종소리처럼 울렸다.

그때 사마경이 물었다.

“위 령주는 지금 어디 있죠?”

“당하 근처의 안가에 계십니다.”

“위 령주에게 내 말을 전해주세요. 지금부터 천은방에 대한 감시는 첩밀각에게 맡기고, 사밀령은 사절방 무리와 천한마검 구양명을 찾는 일에 주력하라고 하세요.”

“복명!”

초광은 어서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장천운과 함께 있으면 위장병이 생길 것 같았다.

그러나 장천운이 순순히 보내주지 않았다.

“일령주께 소성주의 명을 전하는 것은 수하에게 시키고, 사령주께선 저를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지미…….’

 

***

 

“사절방?”

“예, 주군. 그 싸움으로 인해 피해가 백 명이나 났다고 합니다.”

공손백은 문인동의 보고를 받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들이 복수를 위해서 구천성 무사들을 공격하는 것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어떻게 정확한 때를 맞춰서 토벌대를 공격했느냐 하는 것이다.

토벌대가 출발한 것은 기껏해야 이틀 전. 반면 사절방이 있는 형주에서 소식을 듣고 사건이 일어난 곳까지 가려면 아무리 빨라도 칠팔 일 이상 걸리는 거리 아닌가.

우연일까?

우연이 아니라면 첩자가 있어서 미리 소식을 전해 듣고 가까운 곳에서 기다렸다는 뜻.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크다.

어떤 놈이 감히 자신의 계획에 초를 친단 말인가!

놈들이 공격하는 바람에 사마경은 최대한 주의하면서 잔머리를 굴릴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죽일 놈들!’

그때 문득 또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맞아, 나극이 몰래 움직였다면……?’

두 눈에서 한광을 벼락처럼 뿜어낸 그가 문인동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놈들이 자체적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아무래도 그러겠지. 멸문을 각오해야 할 테니까.”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들을 움직였다고 봐야겠지요.”

“의심 가는 자는?”

“현재로선 나극과 독고태가 가장 유력합니다.”

역시 문인동과는 대화하기가 편하다.

자만에 차 있는 백리호였다면 엉뚱한 주장이나 해댔을 텐데…….

“흐으음, 그래? 그럼 또 다른 자는?”

“강호에서 결성되었다는 비밀단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파천회인가 뭔가 하는 것들 말이냐?”

“예, 주군. 그런데 그들에 대한 조사를 우문각에게 맡겨놓았던 터라 저희가 아는 정보가 너무 적습니다.”

공손백의 눈썹이 밟힌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우문각이 자신에게서 한발 물러서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답답하진 않았을 것이다.

‘괘씸한 놈! 사마경만 처리하면 그 다음은 네놈차례다! 네놈의 그 사악한 눈알을 내 손으로 직접 뽑아버리고 말 것이니라!’

속으로 우문각의 눈알을 뽑아서 짓이겨버린 그가 명령을 내렸다.

“벽호당과 율검당에 지시해서 놈들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주군.”

“그리고…… 여주에 지급으로 연락을 취해라.”

문인동이 흠칫하며 눈을 들었다.

여주(汝州)는 무림맹을 말함이다. 구천성의 득세 후 유명무실해졌다 하나 강호의 누구도 그들이 잠룡임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무려 오십 년 동안 잠만 자는 잠룡이긴 하지만.

구천성도 그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여주 인근에 비밀분타를 설치하고 무림맹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다.

“요명에게 알려주라고 해라. 임시성주인 사마경이 당하로 갔으며, 총단에서는 지원이 없을 거라고. 판단은 그들이 알아서 하겠지.”

문인동은 공손백의 냉혹한 결정에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무력손실을 감수하고 결정을 내겠다는 뜻.

한편으로는 공손백의 마음이 급해진 듯 보여서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토를 달진 않았다.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긴 해도 지금으로선 그 이상의 방법이 없었다.

‘양패구상의 상황이 되면 금상첨화인데…….’

 

***

 

비는 동트기 직전의 새벽이 되어서야 그쳤다.

장천운은 사마경의 방 바로 옆방에서 아직 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멈추자, 처마에서 낙숫물 떨어지는 간격이 점차 벌어졌다.

통! 통…! 통……!

수많은 상념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전날 구양명과의 싸움 장면은 이미 수십 번을 되새김질한 터라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선명했다.

절독곡에서의 실험도 지옥과 천당을 넘나드는 끔찍한 고통이 온몸에 새겨져 있어서 잊히지 않았다.

사마경의 본 모습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 강련곡에서의 수련…… 흑월회 사람들의 죽음…… 무 노인의 행방불명…….

그러고 보니 무 노인을 너무 오래 잊었다.

‘잘 지내고 계시겠지?’

자신이 꿈속에서 익혔던 무공이 무 노인과 연관 되었다는 것은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이제 그 의문점만 풀면 된다. 그러면 무 노인의 목적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신을 위해서 심어 놓았을 수도 있다. 새끼건달로 살아가다 다칠까 봐, 잘못하면 죽을까 봐 그랬을 수도 있다.

좋게 생각하면 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신을 위한 목적이 아닌 듯했다. 내기를 한다면 가진 것 전부를 걸 수 있다.

가슴 아프고 은근히 화가 나는 일이지만, 무 노인은 자신을 이용했다.

그것만큼은 분명하다.

왜? 왜!

덕분에 자신이 강해졌고 목숨도 부지했으니 이유야 어쨌든 고마운 일이긴 했다.

하지만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고, 이용한 것은 이용한 것이다.

이유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만나면 해명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서운해 하지 않죠.’

씁쓸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장천운은 천천히 우수를 들어서 검지를 뻗고는 앞을 가리켰다.

그때 처마에 매달려 있던 물방울이 떨어졌다.

떨어진 낙숫물이 그의 눈높이쯤 이르렀을 때였다.

검지 끝이 아지랑이 일렁이듯 이지러진 순간,

팟!

물방울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물방울 파편이 사방으로 튄 게 아니라, 미세한 가루처럼 부서져서 흩어진 것이다.

어제 펼쳐본 강기와 뇌정무극수의 구결을 응용해서 원거리를 타격할 수 있는 지법을 만들어 보았다. 즉흥적으로 만든 것이어서 크게 기대하진 않았는데 제법 쓸 만했다.

‘뇌정지라고 부르면 되겠군.’

그런데 흡족한 표정이던 그의 눈빛이 강렬하게 빛났다.

‘그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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