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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63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19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63화

69장: 암중혈류(暗中血流)

 

 

문인동은 남쪽에서 전서구를 통해 날아온 전서를 펼쳐보고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무적장과 광양산장의 고수들이 장강을 건넜음. 일행 중 철운신장 선등경과 광양삼절로 보이는 자들이 있음. 총 구인. 북으로 향함. 장천운으로 보이는 자가 그들과 동행하고 있음.]

 

무적장과 광양산장의 사람들이 장강을 건넌 거야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선등경과 광양삼절이 대단하긴 해도 구천성에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장천운이다.

그놈이 왜 무적장, 광양산장 고수들과 동행하고 있을까?

눈살을 찌푸린 그가 옆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삼십대 장한 둘이 서 있었다. 세모 난 얼굴에 인상이 날 선 칼날처럼 날카롭게 느껴지는 자와 각진 얼굴이 바위처럼 무표정한 자.

두 사람은 공손백이 문인동에게 붙여준 직속호위로, 손발처럼 자잘한 일을 처리해주는 자들이었다.

“사혼객 오대는 지금 어디에 있지?”

세모 난 얼굴의 장한이 대답했다.

“무창에 있다는 연락을 받은 이후로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문인동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장천운을 무창에서 발견했다고 했다. 그가 무창 흑도 출신이라는 걸 생각하면 크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장천운이 무슨 이유로, 어디로 갔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보고가 없어서 은근히 짜증이 나던 참이었다.

“하필이면 필요할 때 연락이 끊겼군.”

“사람을 보내볼까요?”

“그렇게 해. 그리고 무적장과 광양산장 사람들이 이곳으로 오는 이유를 확인해 봐라.”

“예, 장로.”

 

문인동은 방을 나서서 공손백을 찾아갔다.

상황을 전해들은 공손백의 얼굴에 서리가 내렸다.

“장천운이 왜 그들과 함께 오는 거라 생각하느냐?”

“그들과 함께 와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어쩌면 그 이유 중에 대령주께 해가 될 뭔가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무적장이나 광양산장은 나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사마중천이 장강을 건넜을 때 나는 검을 놓았으니까. 그럼에도 해가 될 수 있다면 다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소성주가 무적장과 광양산장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수작을 부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혹시라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시다면 이 기회에 정리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거라…….”

나직하게 깔린 목소리로 말하던 공손백이 고개를 쳐들었다.

두 눈에서 아지랑이 같은 살기가 피어났다.

‘그러고 보니 그 일을 잊고 있었군. 문인동 말대로 이 기회에 찌꺼기 남은 것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이 좋겠어.’

그의 시선이 옆을 향했다.

“동백.”

“예, 주군.”

“네가 노회현을 만나라.”

 

***

 

우문각도 문인동과 비슷한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문인동과 다르게 생각했다.

장천운이 왜 밖으로 나갔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놈이 돌아온다는 건 목적을 달성했다는 뜻일 거다.”

“제 생각 역시 총사와 같습니다.”

“이제부터 바빠지겠군.”

하지만 그도 장천운이 무창에서 벌인 일은 알지 못했다. 당연히 그 일이 어떤 변수가 될 것인지는 생각도 못했고.

“소성주의 호위를 배로 늘리라고 전해라. 냉원상이라면 알아서 잘할 거다.”

 

냉원상은 정유의 이야기를 듣고 곧장 구양명을 만났다.

구양명은 무화원에 있었다.

장천운 대신 흑월대를 맡을 때만 해도 장천운을 원망하며 이를 갈았다.

흑월대원들은 시도 때도 없이 비무를 청했다. 가장 강한 사공명신과 혁련기, 두양양은 물론이고, 은명객들도 틈만 보이면 한 수 가르쳐달라며 달려들었다.

투귀가 따로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서는 하후경과 모후까지 끼어들었다.

그들 중 자신보다 강한 자는 없었다. 솔직히 생사투를 벌인다면 누구든 십 초식 이내에 목을 딸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죽기 살기로 덤빈다는 것이다. 실전처럼 해야 도움이 된다나?

그렇다고 해서 실전처럼 죽일 수도 없었다. 병신만 만들어도 당장 손해니 결정적일 때 손을 멈춰야 했다.

피곤했다. 너무 피곤해서 닷새가 지날 즈음에는 흑월대원들의 얼굴만 봐도 흠칫했다.

그런데 열흘쯤 지나자, 지난 몇 년 동안 잠들어 있다가 당하의 전쟁에서 반쯤 깨어났던 투기가 완전히 눈을 떴다.

그 이후부터는 그도 은근히 비무를 즐겼다.

사공명신과 혁련기, 두양양, 하후경, 모후는 방심할 수 없는 고수들이다. 하나라면 이기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둘이 협공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재미가 있었다.

냉원상이 찾아왔을 때도 그는 한바탕 비무를 마친 후 방안에서 차를 마시며 목을 축이고 있었다.

“장 대주가 돌아온다고요?”

“그렇소. 해서 장 대주가 도착할 때까지 수혼대를 이교대로 해서 경비를 강화할 생각이오.”

이놈의 구천성은 진짜 복마전이다. 권력다툼이 황궁의 내밀한 싸움과 다르지 않았다.

그 점은 진짜 마음에 안 들었지만, 내부에서 피가 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자신이 아끼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그럼 흑월대도 다시 호위에 나서도록 하리다.”

그 동안 근접 호위는 구천호령이 맡고 흑월대는 부상을 치료하며 수련에 매진했다. 이제는 부상도 많이 나아졌으니 호위에 나서도 될 듯했다.

그때 밖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구양 대협, 안에 계신가요?”

“예, 선자.”

벌떡 일어난 구양명은 반사적으로 대답하고는 냉원상을 향해 손을 저었다. 마치 쫓아내듯이.

“알았으니 그만 가보십시오.”

냉원상은 그 이유를 알기에 실소가 나오는 것을 참고 방을 나섰다.

방 밖에 소연추가 서 있었다.

‘소문이 사실이었군.’

 

***

 

봄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던 날.

구천성 장로원 북쪽 담장과 가장 가까운 방에서 두 사람이 마주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하하하, 이게 얼마 만인가?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보기가 힘들군.”

털털한 인상의 초로인이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웃음을 지었다. 나이는 오십대 중반쯤이었는데 말을 하면서도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 눈을 자주 굴렸다.

왠지 얍삽하게 느껴지는 인상이랄까?

그가 바로 장로 중 한 사람인 잔살마도 노회현이었다.

그의 앞에 앉아 있던 차가운 표정의 장한도 마주 미소를 지었다. 차갑게 느껴지는 미소의 주인은 다름 아닌 동백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대령주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장로님께 전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동백이 무심한 어조로 말하며 주먹 쥔 오른손을 내밀었다.

노회현이 동백의 오른손을 내려다보며 허리를 숙였다.

“그래? 뭔데…….”

움켜쥐고 있던 동백의 오른손이 벌어졌다.

그의 손바닥은 유난히 하얘서 마치 회칠을 한 듯했다.

순간, 하얀 손바닥이 죽 늘어나는가 싶더니 노회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운데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거기다 방심까지 하고 있던 터였다.

대경한 노회현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젖히며 비어 있는 왼손을 올렸다. 절정고수답게 동물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가 빠르게 반응했다 해도 동백의 섬전 같은 손짓보다는 느렸다. 아마 그가 방심하지 않았다 해도 막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콰직!

“헉!”

노회현은 찻잔을 든 손을 파르르 떨었다.

부릅뜬 눈으로 앞을 노려보는 그의 눈초리가 찢어질 듯 갈라졌다.

가슴에 동백의 하얀 손가락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네놈이…….”

챙그랑!

노회현의 손에서 찻잔이 떨어지며 산산조각 났다. 조각난 찻잔 위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알아선 안 될 비밀을 알고 있는 게 죄라면 죄겠지.”

알아선 안 될 비밀.

노회현은 그런 비밀을 두어 가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충분히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 만큼 매우 위험한 비밀이었다.

“호, 혹시 그 일 때문에……?”

“눈치 챘나 보군. 알고 죽으면 그래도 덜 억울하겠지.”

“네, 네놈들이 이러고도…….”

노회현이 원한에 찬 눈빛으로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동백의 어조는 변함없었다.

“아무 이상 없을 거야. 당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될 테니까. 물론 시신도 발견되지 않을 것이고.”

하얀 손가락이 노회현의 가슴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

가슴이 뚫렸으니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처음에만 조금 나왔을 뿐, 상처 주위가 얼어붙은 듯 하얀 성에가 끼면서 더 이상 피는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신은 공식적인 임무를 띠고 잠시 성을 떠난 것으로 처리될 거거든.”

동백의 입가에서 소름끼치도록 차가운 미소가 가느다랗게 피어났다.

그때 문이 열리고 짙은 갈색 무복을 입은 무사 둘이 들어왔다.

“깨끗하게 치워라. 그 어떤 흔적도 남기면 안 된다.”

동백은 냉랭한 목소리로 나직이 말하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그 바람에 꺼져가는 노회현의 눈빛을 보지 못했다.

‘나를 죽인 걸…… 후회하게 될 거다, 공손백…….’

 

***

 

삼월이 코앞에 이르렀을 때, 장천운이 일행과 함께 구천성에 도착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거센 소용돌이가 돌고 있었다.

장천운은 고요 속의 폭풍을 온몸으로 느끼며 일행을 데리고 곧장 구천무원으로 향했다.

그를 따라가는 선등경과 채응도, 용화성을 비롯한 광양산장 사람들은 긴장을 풀지 못했다.

구천성은 그들이 지금껏 봤던 어느 곳보다 거대했다. 성곽만 없다 뿐이지 대성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오가는 무사들 대부분이 일류고수였고, 그들의 눈에서는 투기가 흘렀다.

새삼 구천성이 왜 천하제일세인지 온몸으로 느껴졌다.

 

사마경은 장천운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벌떡 일어서려다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졌지만 안간힘을 다해서 진정시켰다.

‘내가 왜 이러지? 천운이 돌아온 게 뭐 어떻다고?’

뇌혈산에 대한 진실을 알아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에? 아버지의 복수가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흥분해서?

아니다, 그런 것과는 또 다른 감정이다.

사무친 그리움?

그래, 어쩌면 그런 감정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남들이 알면 비웃을지 모른다. 유모도 실소를 짓겠지?

‘헤어진 지 며칠이나 됐다고!’ 하면서.

하지만 떠나간 그날 밤부터 옆구리가 시렸던 자신의 마음을 누가 알까?

입은 또 오죽 답답했어?

‘쳇, 나도 바보지. 무뚝뚝한 천운이 뭐가 좋다고…….’

그녀가 방 안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 밖에서 장천운이 왔다는 말이 들렸다.

“소성주, 장 대주께서 손님을 모시고 오셨습니다.”

순간, 돌아서서 문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들어와.”

차갑고 도도한 표정.

그녀가 턱을 쳐들 때쯤 문이 열리고 장천운이 손님들과 함께 들어섰다.

 

용화성은 넋이 반쯤 빠졌다. 일찍 혼인한 것이 오늘처럼 후회되기는 처음이었다.

부인이 알면 큰일 날 일이지만.

이제 겨우 세 살과 다섯 살 된 두 아들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릴지도…….

그가 멍하니 사마경을 바라보는 동안 장천운이 선등경과 채응도를 소개했다.

사마경은 그 두 사람이 강남 무적장의 고수라는 걸 알고 눈이 커졌다. 하지만 그 이상 흔들리지 않고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구천성의 임시 성주를 맡고 있는 사마경이에요.”

선등경과 채응도도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디론가 사라졌던 사마경이 일 년 만에 절세미녀가 되어서 돌아왔다는 소문을 듣긴 했다. 아마 강호에서 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진 않았다.

못난 여인은 조금만 예뻐져도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사마경도 그런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소문은 실제를 절반도 표현하지 못했다. 그녀는 단순한 미녀가 아니라, 나라의 흥망마저 좌우할 경국지색이었다.

“대 구천성의 소성주를 뵙게 되어 영광이오.”

“처음으로 이곳까지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채응도라 하오.”

“고맙습니다.”

사마경은 그들의 인사에 미소를 지었다.

선등경과 채응도는 자신들의 가슴에 아직도 뜨거운 열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단순히 미소만 봤을 뿐인데도 심장이 배는 더 빠르게 뛰고 있지 않은가.

“이분은 광양산장의 용화성 공자입니다, 소성주.”

장천운이 세 번째로 용화성을 소개했다.

“광양산장의 대공자시면, 동정일수라 불리는 그분?”

용화성은 사마경이 쳐다보며 말하고 있는데도 반쯤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 바람에 한마디 더 들어야 했다.

“확실해?”

마치 ‘저 덜 떨어진 분이 동정호 제일의 기재라고? 정말이야?’ 그런 투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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