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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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62화
장천운은 무심한 눈으로 곽교진의 공격을 바라보며 현월을 눈높이로 들어올렸다.
“패하면 어떡할 겁니까?”
“뭐든지 말해봐라. 다 들어주마.”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들어주지 못할 일이라면 죽으면 된다.
장천운이야 그런 부탁을 할 마음도 없었지만.
“저를 좀 도와주시죠.”
“도와달라고?”
“말 그대로요.”
“좋다. 도의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도와주든, 시키는 일을 하든 다 할 테니, 일단 나를 이겨봐라!”
곽교진이 냉랭히 말하고는 칼을 사선으로 올리며 신형을 날렸다.
장천운도 이번 대결에서 처음으로 천뢰구검을 펼쳤다.
제 삼초, 천뢰일사.
지금까지 펼쳤던 검과는 전혀 다른 위력이 현월에서 뿜어져 나왔다.
한 줄기 벼락이 마주친 모든 것을 파괴할 것처럼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제기랄!”
곽교진이 쌍소리를 내지르며 붕천도를 펼쳤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다시 붕천도를 펼칠 수 있을 것인지 자신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너무도 확실하게 길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칼은 그 길을 훌륭하게 따라갔다.
쿠구궁!
둔중한 굉음이 울리고, 일대의 갈대숲이 기의 폭풍에 휩쓸렸다.
부서진 갈대가 눈처럼 허공에 흩날리며 일대를 뒤덮었다.
주르륵, 세 걸음을 물러선 곽교진은 이를 악물고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칼을 들고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반면 장천운은 단 한 걸음만 물러선 후 우뚝 서서 검으로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말 멋진 도법이군요.”
‘당연하지, 붕천도인데!’
곽교진은 자신이 장천운의 말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이없었다.
“더 하실 겁니까?”
곽교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이가 없다 보니 호승심조차 거품처럼 가라앉았다.
“정말 빌어먹을 일이군. 이 곽교진이 이름도 없는 놈에게 패하다니…….”
“조금 전의 약속, 잊지 마십시오.”
맞아, 약속을 했지?
‘젠장!’
***
선등경 등은 곽교진이 장천운과 함께 들어오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평소의 곽교진과 달리 어깨가 처진 모습이다.
패자의 모습.
설마 궁천도 곽교진이 패했단 말인가?
광양삼절은 어느 정도 예측했던 결과였기에 담담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들처럼 담담할 수가 없었다.
천하에서 백대고수 안에 든다는 곽교진이다.
백대고수.
언뜻 생각하면 별 것 아닌 듯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강호에 대문파만 해도 수십 개나 있지 않은가.
거기다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강호의 절정고수 수십 명까지 더하면 백위 안에 든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수 있다.
능히 일파를 세울 수 있는 고수.
그런 고수가 무명의 청년에게 패한 것이다.
“곽 형, 괜찮소?”
채응도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다.
“걱정 마시게. 죽지는 않았으니까.”
툭 쏘아붙인 곽교진이 한쪽 의자에 앉았다.
아침식사는 묘한 분위기 속에서 끝이 났다.
왕규는 무창으로 떠나기 위해서 건량을 준비했다.
준비를 마친 그에게 장천운이 말했다.
“곽 대협과 함께 가십시오.”
“궁천도와?”
“혼자보다는 나을 겁니다.”
당연한 말이다. 다만 곽교진이 있으면 왕 노릇을 못할 테니 그게 아쉬울 뿐.
그래도 정승 노릇은 할 수 있겠지?
“알았네. 그러지 뭐.”
곽교진도 순순히 그의 말을 따라주었다.
착잡하고 껄끄러운 마음으로 여러 사람과 동행하느니 나이도 큰 차이가 없는 왕규와 함께 가는 게 나을 듯했다.
게다가 무창이라면 그도 자주 왕래해서 낯선 곳이 아니었다.
왕규와 곽교진을 무창으로 보낸 장천운은 배를 타고 장강을 건넜다.
이제 구천성까지 늦어도 사흘이면 갈 수 있다. 한 곳만 들렀다가 곧장 구천성으로 갈 생각이다.
그가 도착하면 천하를 집어삼킬 피의 용권풍이 불어댈 것이다.
문제는 증거를 찾아냈다고 해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진짜 전쟁은 그때부터 벌어지겠군.’
***
천주산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대벽보는 구천성 십이지부 중 하나인 귀룡문의 사대지파에 속해 있다.
보주는 녹산일호(綠山一狐) 엄효익. 그는 무공보다 모사를 잘 꾸민다고 알려진 자다.
평소 그는 모사를 좋아하는 자답게 사람들 앞에서 항상 웃는 모습이었는데, 오늘만큼은 우거지상이 되어 있었다.
오후가 되자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들 때문이었다.
그 손님들 중에는 철운신장 선등경과 벽혈검 채응도도 있었고, 동정일수와 광양삼절도 있었다.
몇 년에 한번 볼까말까 한 고수들이 떼로 몰려온 것이다.
그들의 이름을 듣고 화들짝 놀란 엄효익은 방을 뛰쳐나가서 정중하게 손님들을 맞이했다.
손님들은 그때만 해도 표정이 조금 굳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방으로 안내해서 차를 한잔 마시고 난 후 한 사람이 청천벽력 같은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던진 사람은 손님 중 가장 젊은 청년, 장천운이었다.
“보주, 귀독마종을 아시지요?”
“귀, 귀독마종이라 하셨소?”
“모르시진 않을 거요. 이 년 전쯤 그에게 뇌혈산을 구입했을 테니까.”
“나, 나는 무슨 말인지…….”
엄효익은 눈알을 열심히 굴리며 사실을 부정했다.
“부정할수록 보주만 어려워질 거요.”
“난 정말로 모르는 일이네.”
“이미 선 대협과 채 대협이 귀독마종에게 확인한 사실이오. 사실 보주에게 재차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혹시나 아무 것도 모르고 뇌혈산을 구입했을지 몰라서 물어본 것뿐이오.”
장천운은 넌지시 선심을 베푸는 척 말했다.
당황한 엄효익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원을 바라는 눈빛으로 선등경과 채응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눈빛은 한겨울 얼음장만큼이나 차가웠다. 젊은 놈 말대로 귀도마종에게 모두 들은 듯했다.
“난…… 그게…….”
“사실대로 말하면 구제의 길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계속 말하길 거부한다면, 나로서도 다른 방법이 없소. 내 방식대로 처리하는 수밖에.”
“뭐, 뭘……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건가?”
“그야 고문을 해서라도 당신의 입을 열겠다는 거요.”
“뭐?”
엄효익이 움찔하며 눈을 홉떴다.
순간, 장천운의 신형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엄효익의 코앞에 나타났다.
대경한 엄효익이 급히 물러서려 했지만, 단 한 걸음도 물러설 수가 없었다.
장천운이 손을 뻗어서 그의 목을 잡고 마혈을 제압해버린 것이다.
한쪽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흠칫했을 때는 엄효익의 목이 이미 장천운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다.
“컥!”
외마디 신음을 터트린 엄효익이 물러서려던 자세 그대로 굳었다.
“보주!”
“무슨 짓이오!”
우두커니 서 있던 호위무사 넷이 대경해서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은 엄효익을 구하기 위해서 나설 수가 없었다.
채응도가 짜증내는 투로 차갑게 말했다.
“그대로 있어! 함부로 움직이다가는 내 손을 원망하게 될 것이다.”
손님의 정체를 아는 호위무사들은 그 말이 허언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엄효익을 구하려 했다가는 자신들 목숨만 위험해진다는 것도.
그 와중에도 장천운은 손가락을 엄효익의 목에 깊숙이 박고, 무심하니 아무런 감정이 없는 눈으로 직시했다.
“귀독마종은 앞으로 오른손을 사용할 수 없을 거요. 왜냐하면 손가락 다섯 개가 뼈까지 모조리 으스러졌거든. 말하지 않으면 나머지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모두 뭉개버리려고 했는데, 생각보다는 참을성이 없었소.”
엄효익이 그 말에 숨겨진 뜻을 어찌 모를까.
아마 귀독마종은 손가락 다섯 개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당한 후에야 입을 열었을 것이다.
그는 무심코 들어준 부탁 때문에 귀독마종과 같은 신세가 되는 걸 원치 않았다.
“크으으, 나, 난 그냥…… 구해달라고 해서…….”
그는 사력을 다해서 어떻게든 자신의 뜻을 전달하려고 했다.
“누가 구해달라고 했소? 순순히 말하면 당신은 내일도 오늘처럼 지낼 수 있을 거요.”
솔직히 며칠 후는 자신도 장담하지 못한다. 사마경이 용서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며칠 동안은 전과 다름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화, 황…사…중이…….”
“심부름은 왕달이 했고 말이지요?”
“그, 그렇…….”
“그 일을 황사중과 왕달 외에 또 누가 알고 있소?”
“그건…… 나도…… 잘…….”
장천운은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엄효익을 보며 왼손으로 엄효익의 우수 중지를 잡았다.
“당신은 그 두 사람 외에 또 다른 이름을 알고 있을 거요. 당신은 의약당주에 불과한 황사중이 시켰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따를 사람이 아니거든.”
“나, 난…….”
파르르 떨리던 그의 눈이 급격하게 커졌다.
우드득.
장천운이 눈빛 한 점 흔들리지 않고 그의 손가락을 꺾어버렸다.
“끄어어억!”
비명을 내지르는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잘 생각해 보시오. 처절한 고통을 겪고 비참하게 죽으면 당신만 손해니까.”
공포에 질린 엄효익은 더 이상 버텨내지 못했다.
“그, 그게…… 노…… 장로가…….”
***
장천운은 엄효익의 입을 철저히 단속하고 대벽보를 나왔다.
아마 엄효익도 자신이 입을 열어봐야 죽음만 앞당길 뿐이라는 걸 모르진 않을 것이다. 황사중과 왕달의 죽음을 아는 이상은.
설령 연락을 취한다 해도 상관없다. 아니 더 잘된 일일 수도 있다.
부족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 테니까.
‘귀독마종과 엄효익의 증언만으로는 공손백을 옭아맬 수 없다.’
곤란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 정도만 해도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사마경이야 만족스럽지 않겠지만.
‘그렇다면 더 직접적인 증거가 필요해.’
용화성이 굳은 표정으로 질문을 던진 것은 대벽보를 출발한 지 반각쯤 지났을 때였다.
“이제 가려는 곳이 어딘지 알려줘도 되지 않겠소?”
장천운은 걸음을 멈춘 후 뒤로 돌아섰다.
선등경과 채응도, 용화성과 쌍위, 광양삼절의 눈이 일제히 그를 향해 집중되었다.
그들을 천천히 둘러본 장천운이 담담한 목소리로 사실을 말해주었다.
“우린 지금 구천성으로 가는 중입니다.”
듣는 사람은 결코 담담할 수가 없었다.
광양산장이 호남의 맹주이고, 무적장이 잠자는 거룡이라 해도 구천성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구천성의 십이지부 중 두어 곳만 합해도 그들에게 뒤지지 않거늘, 무슨 말이 더 필요 하겠는가.
용화성도 눈을 부릅뜨고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그럼 그대가 구천성 사람이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때 선등경이 뭔가를 떠올리고 얼굴이 돌덩이처럼 딱딱해졌다.
이 년 전, 절정고수를 자연사처럼 죽일 수 있는 독, 의약당주 황사중, 그리고 구천성.
하나의 가정이 눈앞에서 보듯 확실하게 그려졌다. 참으로 경악할 사실이, 저 암흑 깊은 곳에 가려져 있는 진실 하나가.
“혹시…… 뇌혈산이라는 독이 천궁마신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는가?”
묻는 선등경의 목소리가 바짝 마른 듯 느껴졌다.
장천운이 그를 바라보며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맙소사…… 그랬군.”
“저는 그에 관한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일단은 그 정도만 아십시오.”
당장은 많은 사람이 알아서 좋을 것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많은 사람이 알아야 공손백을 무너뜨리는데 도움이 된다.
게다가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광양산장과 무적장의 주요 인물들이라면 그 효과 역시 좋을 것이다.
단, 결정적인 상황이 될 때까지 비밀은 필수다.
“저와 한 약속, 잊지 마십시오. 밖으로 새어나가면…… 범인은 그 사실을 아는 모두를 죽이려 할 겁니다. 그게 누구든.”
용화성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전에 사실을 알리면 될 것 아니오?”
“사실을 알리는 것으로 끝날 일이었다면 귀독마종을 찾으러 가지도 않았을 거요.”
“왜 알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요?”
“증거도 없는데 그 사실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소? 더구나 그 일을 저지른 자들의 힘은 용 형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해서 자칫하면 거꾸로 당할 수 있소.”
이번에는 채응도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차라리 구천성의 소성주에게 알리는 건 어떤가? 그녀가 멍청한 여자가 아니라면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할 텐데.”
장천운이 그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사마경이 채응도가 한 말을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매달렸다.
“제가 소성주의 친위대인 흑월대의 대주입니다. 소성주의 명을 받고 나왔지요. 그리고 소성주도 그렇게 멍청한 여자는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