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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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61화
선등경과 채응도도 그를 알아보았다.
두 사람은 곽교진과 구면이었다. 비록 칠팔 년이 흘렀지만 그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시일이 많이 흘렀고, 행색이 전과 달라서 바로 못 알아봤을 뿐.
“곽 형이 왜 저렇게……?”
채응도가 아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동안 곽교진이 장천운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쌍위가 곽교진의 접근을 막기 위해 앞으로 나서려 하자, 용화성이 제지했다.
“물러서라. 그분은 너희들이 막 대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말은 침착하게 했지만 그 역시 가슴이 뛰었다.
운천이란 자가 궁천도와 비등하게 싸웠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도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술에 취해서 몸 상태가 엉망인 것이 문제다. 저런 상태의 궁천도를 이긴다 한들 사람들이 자신을 운천의 위로 쳐주겠는가 말이다.
그는 일단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광양산장의 용화성이 삼가 곽 선배를 뵙습니다.”
“비켜라. 나는 광양삼절에게 볼일이 있어서 왔다.”
“세 분 관숙은 소생이 숙부처럼 모시는 분입니다. 할 말이 있으시면 저에게 하시지요.”
“비키라니까!”
곽교진이 소리치며 대뜸 도를 뽑았다.
도집을 벗어난 도가 허공을 종잇장 찢듯이 갈랐다.
쉬아아아악!
용화성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서 내지른 일도였다.
그러나 용화성은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서기는커녕 한 걸음 내딛으며 검을 뽑아서 곽교진의 도를 막았다.
쩌엉!
일성 굉음이 귀청을 울렸다.
쏴아아아.
기음을 내며 좌우로 퍼진 기파에 두 사람 옆의 탁자가 가루로 변해서 흩날렸다.
그 직후, 눈을 치켜뜬 곽교진이 주춤거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용화성도 한 걸음 물러서서 이를 악다물었다.
‘빌어먹을.’
겉보기에는 두 사람이 한 걸음씩 물러섰으니 비등한 결과로 보였다.
그러나 곽교진은 취기 때문에 중심이 흐트러진 영향이 다분했고, 용화성은 충격 때문에 물러선 상태였다.
누구보다 검을 쓴 용화성이 그 차이를 잘 알았다.
자신이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곽교진도 마찬가지일 터. 결국 자신이 미세하나마 밀렸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술에 취한 곽교진에게.
자존심이 상한 그는 검을 다시 움켜쥐고 공력을 끌어올렸다.
“잠깐 멈추게.”
선등경이 일어나서 용화성을 제지했다.
선등경의 말을 무시하고 공격할 수도 없는 일. 용화성은 입을 꾹 다문 채 분기를 가라앉혔다.
“곽 아우, 이 선등경을 알아보시겠나?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곽교진도 그제야 선등경을 알아보고 이마를 잔뜩 찌푸렸다.
“선 형이 여긴 어떻게……?”
“어디를 가던 중이네. 이 선모도 곽 아우의 자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네. 그에 대한 일은 차분하게 처리하도록 하세.”
곽교진이 그 말을 듣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는 광양삼절을 노려보았다.
“그 일 때문에 왔소. 내 아들이…… 수종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이제 나도 알고 있소. 알고 보니 죽어 마땅한 짓을 저질렀더구려.”
막수종이 저지른 짓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장강을 건너서 내려오니 소문이 쫙 퍼져 있었다.
그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유가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원한에 사무친 유청엽에게 아들이 저지른 짓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유청엽은 이를 갈면서 이야기를 마치고, 힘이 없어 복수하지 못함을 한탄했다.
유가장을 나선 막교진은 술을 진탕 마셨다.
마시고, 또 마시고, 또 마셨다.
맨 정신으로는 하늘을 올려다볼 수가 없었다.
아들이 그런 흉악한 짓을 저지른 것은 모두 자신 때문이다. 유청엽의 딸이 처참하게 죽은 것도 결국은 자신이 자식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광양삼절에게 죽은 것 역시.
그 모든 일이 자신 때문에 벌어졌다. 자신이 가족을 등한시하고 세상을 너무 오래 돌아다녔기 때문에!
곽교진은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이 찢어지면서 피가 흘러나왔다.
“곽 형…….”
채응도가 착잡한 표정으로 부르자, 곽교진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러고는 광양삼절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수종이를 죽인 것은 더 이상 탓하지 않겠다. 하지만 내가 못나서, 못나도 아비이다 보니 아들의 죽음을 그냥 넘길 수가 없구나. 나와라. 나는 너희들을 상대로 삼초 공격을 펼칠 것이다. 내 공격을 벗어나든 못 벗어나든, 그것으로 모든 걸 정리하고자 한다.”
채응도는 곽교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결코 쉽게 내린 결정은 아닐 것이다. 죽을죄를 저질렀다 해도 아들 아닌가 말이다.
결국 그에 대한 답은 광양삼절이 내려야 할 듯했다.
“어떻게 하겠나?”
광양삼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로서도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궁천도에게는 위명을 날리는 친구가 몇 명 있다. 그들이 분노해서 칼을 들이대면 광양산장이라 해도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삼 초의 대결로 원한관계가 해결된다면 그나마 괜찮은 결과라고 봐야 했다.
<관 대숙, 너무 걱정 마십시오. 곽교진이 술에 취했으니 삼 초 공격을 버티는 것쯤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용화성이 전음으로 말했다.
그는 광양삼절이 합공하면 충분히 곽교진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전날 광양삼절이 그리 생각했듯이.
하지만 관정은 곽교진이 술에 취했다고 해서 안심하지 않았다.
‘대공자, 우리 셋은 궁천도의 상대가 아니외다.’
그나마 그가 술에 취했기에 목숨은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곽교진은 광양삼절이 일어나자 장천운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칼을 뻗어서 장천운을 가리켰다.
“기다려라. 다음엔 네 차례다!”
***
어스름이 밀려드는 강가에서 갈대가 바람결 따라 춤을 추는 광경은 무척이나 을씨년스러웠다.
광양삼절은 그곳에서 곽교진이 자랑하는 궁천도법 중 가장 강력하다는 삼 초식을 상대했다.
단천(斷天), 낙천(落天), 붕천(崩天).
술에 취한 곽교진의 칼은 예상했던 것처럼 이전과 같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찰나의 방심이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강력했다.
궁천도라는 별호답게 그의 칼은 하늘이 내려앉듯 무거웠고, 무너진 하늘이 천지를 뒤덮은 듯 피할 곳조차 없었다.
술에 취했으니 어렵지 않을 거라고?
진짜 개소리였다.
광양삼절은 무너지는 하늘을 뚫고 빠져나가기 위해서 전력을 다했다.
그날, 세 사람은 젖 먹던 힘까지 쏟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덕분에 열두 군데의 상처를 입고도 사지 멀쩡하게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아마 곽교진이 술에 취하지만 않았다면 그날 사지 중 한두 개는 달아났을 것이다.
곽교진은 약속대로 삼 초식을 펼친 후 손을 멈췄다.
그는 자신이 펼친 초식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취기 때문에 칼끝이 일 푼씩은 흔들린 듯했다. 그 바람에 십성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그놈의 술기운 덕분에 붕천도를 펼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그렇게 펼치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거늘.
“자네들과의 관계는 이걸로 끝내지.”
무뚝뚝하게 말을 내뱉은 그는 십여 장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장천운이 먼저 말했다.
“전 술에 취한 사람하고는 싸울 생각 없습니다. 내일 하죠.”
대답도 듣지 않고 홱 몸을 돌린 그는 객잔으로 향했다.
“아직 너 하나 상대할 힘은 남아 있다!”
곽교진이 장천운의 등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장천운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놈! 네 눈에는 내가 우습게 보이느냐?”
“내일 아침에 봅시다.”
“나 안 취했다, 이놈!”
곽교진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뿐 객잔까지 쫓아가지는 않았다.
왠지 괴이하게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가 펼친 도법을 본 사람들은 누구도 그를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곽교진을 비등하게 상대했다는 장천운의 실력이 궁금해서 입안에 침이 고였다.
‘지금 붙어보지.’
‘곽 형이 왜 공격을 하지 않는 거지?’
오직 한 사람, 용화성만은 모호한 표정이었다.
곽교진의 강력한 도법을 직접 본 그는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저 도법을 상대할 수 있을까? 비등하게 싸울 수 있을까? 운천이란 자가 정말 저 곽교진을 상대로 비등하게 싸웠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운천이란 자가 싸웠을 때는 곽교진도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 거다.’
흑도 출신의 별 볼일 없는 자가 자신보다 강할 리 없어!
그는 속으로 그렇게 소리치며 위안을 삼으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가슴 한 구석이 찝찝했다.
‘빌어먹을, 설마 궁천도를 이긴 것은 아니겠지?’
객잔으로 들어간 장천운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온 왕규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괜찮을까?”
“아무 일 없을 겁니다. 곽 대협은 술기운 때문에 초식을 제대로 펼칠 수 없거든요.”
“뭐? 그럼 광양삼절을 상대로 마지막에 펼친 것은 뭐지? 굉장하던데.”
“그거야 술기운 때문에 펼칠 수 있었던 초식이죠.”
“그게 무슨 말이야? 술기운 때문에 초식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며?”
“한번은 펼쳤는데, 두 번째는 몸이 말을 듣지 않을 겁니다. 원래 술에 지나치게 취하면 무심결에 자신이 지닌 능력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고는 힘이 빠져서 녹초 상태가 되곤 하죠.”
왕규도 술에 취한 사람들이 생각지 못했던 강력한 힘을 쓰는 경우를 몇 번 봤었다.
그놈들은 싸우다 말고 제풀에 지치곤 했다.
지금 곽교진이 그런 경우라는 뜻.
“그럼 차라리 지금 싸우는 게 낫잖아?”
“술에 취해서 무공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사람과 싸우느니 잠이나 자겠습니다.”
“…….”
왕규는 문득 궁금해졌다.
곽교진이 장천운의 말을 들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미쳐서 날뛰겠지?’
안 취했다고 하면서.
원래 술 취한 것들은 다 그러잖아?
***
아침이 되자 사람들의 신경이 객잔 밖을 향해서 집중되었다.
곽교진이 객잔 밖에서 가부좌를 튼 채 장천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저녁부터 같은 자세였다.
선등경과 채응도가 안으로 들어오라며 몇 번이나 청해봤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는 술기운을 몰아냈는지 머리가 흐트러진 것만 아니면 정상처럼 보였다.
지나다니던 사람들은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범접키 힘든 기운 때문에 빙 돌아서 다녔다.
모두가 그에게 신경을 쓰고 있을 때 장천운이 방에서 나왔다.
이번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장천운은 객잔 안에 혼자만 있는 것처럼 눈길 한번 돌리지 않고 객잔을 나섰다.
“가시죠.”
딱 한마디만 남긴 그는 강가를 향해 걸어갔다.
그제야 곽교진이 일어나서 그를 따라갔다.
사람들이 객잔에서 나오자 장천운이 한마디 더 했다.
“아무도 따라오지 마십시오.”
마치 그 말이 명령이라도 되는 듯 선등경과 채응도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용화성도 머뭇거리며 이마를 찌푸렸다.
선등경과 채응도가 가지 않으니 그도 따라가기가 어정쩡했다.
당연히 쌍위는 그를 따라서 행동했고, 광양삼절은 장천운의 말이 떨어진 순간 따라가는 걸 포기했다.
‘젠장! 저놈이 뭐라고, 말 한마디에 멈추는 거지?’
용화성은 속으로 짜증을 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릴 적부터 명령 한 마디로 만인을 부리는 꿈을 꾸었다.
절대의 위엄, 절대자의 명령.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런데 자신이 원했던 상황이 하찮은 놈의 말 한마디에 이루어지고 있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두고 보마. 만약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내 손으로 직접 확인해 보겠어.’
대결은 갈대밭 속 공터에서 벌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천둥벼락이 치고, 잘게 부서진 갈대가 바람결에 흩날렸다.
쩌저적! 쿠구구궁!
장천운과 곽교진은 정확히 구초를 겨루었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반경 오 장 이내가 초토화되었다. 마치 땅을 통째로 떠서 뒤집어엎은 듯했다.
그 중앙에 선 곽교진은 후들거리는 손으로 칼을 들어 올렸다.
이제는 머리뿐만이 아니라 옷도 엉망이 되었다.
자신이 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했다,
새파란 놈이 뭘 처먹고 자랐기에 저리도 강하단 말인가.
만년산삼을 끼니마다 처먹고, 차 대신 공청석유를 끓여서 마시기라도 한 걸까?
그렇다 해도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아직 안 끝났다, 이놈.”
입술을 씹듯이 두어 마디 뱉어낸 그는 열 번째 공격을 위해서 남은 공력을 모조리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