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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6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28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60화

장천운이 용화성과 단리성우, 광양삼절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선등경이 찾아왔다.

그는 방 안에 용화성과 단리성우가 있는 걸 보고 미소를 지었다.

“모두 여기에 있었군.”

단리성우와 용화성, 광양삼절이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선등경도 가볍게 포권을 취하는 것으로 그들의 인사를 받고는 장천운을 향해 말했다.

“태상장주께서 자네를 만나고 싶어 하시네. 함께 가세.”

 

***

 

단리황에게는 일남삼녀의 자식이 있었다. 그 중 외아들인 단리승은 무보다 문을 더 좋아했다.

그런데 장주의 자리를 이어받아야 할 그가 장원의 일은 팽개치고 학문에만 매달려서 단리황의 고민이 컸다.

그러다 보니 무적장의 차대 주인은 단리승이 아니라, 단리성우가 될 거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단리승이 장원의 일에서 손을 놓는 바람에 무적장은 단리황이 죽으면 더 이상 크기가 힘들 거라고 했다.

거기까지가 왕규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장천운은 단리황과 마주한 순간, 그 동안 왕규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머릿속 한구석에 처박아버렸다.

 

장천운이 들어갔을 때 방 안에는 칠순쯤 되는 노인과 사오십대로 보이는 두 중년인이 있었다.

그는 처음 대면하는 것임에도 노인이 단리황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단리성우와 많이 닮은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삼장무적 단리황.

그는 옆집 할아버지 같은 후덕한 인상이었다.

입가에 떠 있는 잔잔한 미소는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장천운은 그를 보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

후덕한 인상과 잔잔한 미소 뒤에 거대한 힘과 정체 모를 뭔가가 웅크리고 있었다.

때를 기다리며 대해 깊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는 거룡이랄까?

아마 그만이 지닌 천부적인 감각이 아니었다면 그냥 스쳐지나갔으리라.

 

“운천이 노선배님께 인사드립니다.”

장천운이 포권을 취하며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자 단리황의 미소가 짙어졌다.

“요즘에는 정말 뛰어난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군. 오늘 아주 멋진 청년을 만났어.”

“과찬이십니다. 강호에는 저보다 뛰어난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과례(過禮)는 비례(非禮)라 했네. 자네는 칭찬을 들을만한 자격이 있어. 궁천도와 대등하게 싸운 것도 놀랄 만한 일이지만, 천하에 귀독마종의 심기를 꺾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저 약간의 고통을 줘서 말문을 텄을 뿐입니다.”

“허허허, 만금을 주고도 얻기 힘든 독왕의 해독단으로 선 노제의 독을 해독시킨 일조차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처럼 말할 생각은 아니겠지?”

“부끄럽습니다. 독왕 노선배와는 우연한 인연이 있어서 해독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공력증진까지 되는 해독단을 아무 관계없는 사람에게 선뜻 내밀 수 있는 사람이 천하에 몇이나 될 거라고 보나? 내 단언하건데 단 한 사람을 찾기도 힘들 거네. 아마 인의대협 소정방도 그렇게는 쉽게 못할걸?”

장천운도 그에 대해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 점은 자신의 실수 아닌 실수였다.

사정이 급해서 해독단을 내놓긴 했지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했다면 다른 방법으로도 해독이 가능했을지 몰랐다.

자신의 피만으로도 독이 퍼지는 속도 정도는 늦추는 게 가능하지 않았을까?

장천운은 솔직하게 말했다.

“솔직히 그건 저의 실수였습니다.”

“실수?”

“다른 방법으로 독기가 퍼지는 것부터 막고 당초당을 심문했다면 독왕의 해독단을 쓰지 않아도 됐을 겁니다. 그런데 마음이 급해서 그만 앞뒤 가리지 않았던 것이지요.”

단리성우가 이제 이가 보일 정도로 웃음을 지었다.

“허허허허, 결국 본성이 시키는 대로 했다는 뜻이군. 그만큼 본심이 선하다는 거겠지.”

응? 그게 또 그렇게 되나?

장천운은 자신을 낮추려한 말이 통하지 않자 난감해졌다.

노인네가 말재주가 좋아서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았다.

‘이 노인네가 나를 너무 높게 보면 골치 아파 지는데…….’

다른 사람이라면 자신을 높이고 싶어서 안달일 것이다.

하지만 장천운은 낮추기 위해서 사력을 다했다.

단리황의 저 뒤편에 웅크리고 있는 정체모를 ‘무엇’ 때문이었다.

그 ‘무엇’의 정체를 알기 전까지는 자신을 최대한 감추는 게 좋을 듯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하지 않던가.

“일개 흑도출신에게 너무 과찬을 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호오, 그거야말로 정말 신선한 이야기군. 흑도출신이 자네처럼 대단하게 자라다니. 역시 사람은 환경보다 본성이 중요한 법이야.”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정말 능구렁이 같은 노인네다.

장천운은 그쯤에서 말싸움을 포기하고 화제를 돌렸다.

“저는 내일 아침에 출발할 생각입니다. 선 노선배께서 귀독마종을 무적장의 뇌옥에 가두어 놓으신다고 했는데, 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에 대해선 선등경이 대답했다.

“걱정 말게. 장주께서도 자네와 내가 맺은 약속을 허락해주셨네.”

단리황이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선 노제를 구해주었는데 그 정도야 당연히 해줘야지. 혹시라도 이 늙은이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하게. 허허허허.”

흥에 겨워서 무심코 뱉은 말이었다. 그 말이 훗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장천운은 내심 쾌재를 부르면서도 겉으로는 담담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대답했다.

“노선배님의 그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단리황은 상상도 못했다. 그 증언을 해야 할 장소가 구천성이라는 걸. 그 증언에 구천성의 대권이 걸려 있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장천운은 이각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방을 나갔다.

그가 나간 후에도 단리황은 천천히 차를 음미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입이 열린 것은 찻잔이 다 비워진 후였다.

“어떻게 보았느냐?”

처음부터 그때까지 벙어리처럼 말없이 서 있던 두 중년인 중 하나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뛰어나 보이는 청년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 특별한 것은 없는 듯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중년인이 말했다.

“잔머리를 잘 굴리는 친구입니다. 궁천도와 비등한 실력을 보였다니 위험한 면이 없진 않지만, 주군께서 걱정할 정도는 아닌 자 같습니다.”

단리황은 두 사람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이 각이 넘는 시간 동안 너희들의 눈을 가릴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운 아이야.”

두 중년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는 반박이 허용되지 않았다.

“노부는 천하에 저런 아이가 있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다.”

좌측의 중년인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그 정도입니까?”

평소 같으면 눈살이라도 찌푸렸을지 몰랐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런 질책도 하지 않았다.

“나도 그 아이를 정확하게 뭐라고 판단할 수가 없다. 이제라도 지켜보는 수밖에.”

두 중년인이 눈을 부릅떴다.

주군이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면 자신들의 뜻은 무의미했다.

단리황의 시선이 좌측으로 향했다.

“여운(麗雲), 네가 책임지고 그를 조사해봐라.”

“그가 정말로 위험한 자라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단리황이 인심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히 말했다.

“성우의 앞날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이라면 치워야겠지.”

 

***

 

아침식사를 마친 장천운은 출발준비를 서둘렀다.

준비라고 해봐야 가면서 먹을 건량과 물을 챙기는 게 전부였지만.

그런데 출발하기 전 용화성이 그의 직속호위인 쌍위와 함께 찾아왔다.

“지금 가는 거요?”

“그렇습니다. 선 노선배와 채 대협께서 오시면 바로 출발할 겁니다.”

용화성이 잠깐 머뭇거리더니, 결심을 굳힌 듯 말했다.

“나도 함께 갑시다.”

“예?”

“사실 이곳에 온지도 벌써 보름이 넘었소. 이제 떠날 때가 되었지요. 어차피 떠날 거라면 운 형과 함께 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말이오.”

옆에 서 있던 쌍위는 그의 말이 의외였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공자, 산장에 알리지 않고 가시면…….”

한 사람이 그리 말하자, 용화성이 이마를 찌푸리며 손을 들어서 막았다.

“결정은 내가 한다.”

싸늘한 목소리.

좌위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대공자.”

장천운은 그 모습만으로도 평소 용화성이 수하에게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저희는 장강을 건너갈 겁니다, 용 공자.”

“그럼 나도 건너가지요.”

“산장으로 돌아가시지 않을 겁니까? 함께 가시면 시일이 많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한두 달 늦게 돌아간다고 해서 큰일이야 있겠소?”

“그래도 광양산장의 대공자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시려고…….”

“하하하, 강호를 돌아다니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는 법, 그것 또한 나의 운명 아니겠소? 그리고 본 산장에는 나 외에 형제가 둘이나 더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용화성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장천운도 그 이상은 토를 달지 않았다. 광양산장이라면 상황에 따라서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대세력 아닌가.

“좋습니다. 저야 동정일수께서 함께 가주신다면 고맙지요. 단, 약속해주실 것이 있습니다.”

“말해보시오.”

“장강을 건넌 후 보고 들은 것은 최소한 일이 마무리 될 때까진 절대 남에게 이야기해선 안 됩니다.”

용화성이 이마를 찌푸렸다.

“비밀을 지켜라, 이 말이구려.”

“그렇습니다. 선 대협과 채 대협도 같은 약속을 했습니다. 약속하지 않으면 동행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약속했다면 자신이 따른다고 해서 자존심 상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으니 무슨 일인지 더욱 궁금했다.

“그분들이 약속했다면 나 역시 지키겠소.”

“고맙습니다.”

“그럼 준비를 해서 곧 다시 오겠소.”

용화성이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자, 왕규가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대단한 친구군. 광양산장이 왜 호남의 맹주 역할을 하는지 알 것 같네.”

그러나 용화성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는 장천운의 눈빛은 감탄과 다른 뜻으로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나친 자신감 속에 욕망이 꿈틀대고 있다. 나와 함께 가겠다는 건 단순히 강호를 여행하겠다는 것이 아니야.’

어젯밤 대화중에 간간이 질시의 감정이 간간이 튀어나오곤 했다.

본인은 의식을 못하고 한 말일지 몰라도 장천운은 확연히 느끼고 있었다.

하긴 무명인 장천운이 궁천도와의 싸움 한번으로 대접을 받고, 삼장무적 단리황이 개별적으로 초청까지 했으니 동정일수의 자존심에 금이 갈 만했다.

아마 동행하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좀 더 알고 싶어서. 본인이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서 확실하게 약속을 받아내긴 했는데, 사람 일이란 가끔 제멋대로 흐를 때가 있다.

‘공연한 말썽이나 피우지 않으면 좋겠는데…….’

 

***

 

장천운 일행은 단리성우의 환송을 받으며 출발했다.

인원은 모두 열 명.

장천운과 왕규, 선등경과 채응도, 용화성과 쌍위. 그리고 광양삼절까지.

무적장을 출발한 그들은 곧장 북쪽으로 길을 잡았다.

일단 황석까지 간 다음 장강을 건너갈 생각이었다.

행여나 장강팔련이 길을 막을까 우려했는데, 예상 외로 그들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가까이 가지 말라고 명령이라도 내린 것처럼.

어쨌든 그 덕분에 황석까지 가는 길은 평탄하고 한가로웠다.

 

석양이 서산머리로 곤두박질칠 무렵, 황석에 도착한 장천운 일행은 일단 객잔에 들어가서 방부터 잡았다.

방에 들어가자 장천운이 지시를 내렸다.

“내일 장강을 건너서 귀독마종에게 뇌혈산을 구한 자를 찾아갈 겁니다. 왕 선배는 아침식사를 마친 후 무창으로 가십시오.”

“알았네.”

왕규는 그 말이 반갑기만 했다.

자신도 나름대로 절정 수준에 도달한 고수였다. 그런데 일행 중에서는 이름도 내밀기 힘들었다.

기껏해야 용화성의 호위인 쌍위 정도만이 그보다 아래일 뿐.

반면 무창에 가면 자신의 적수가 거의 없다시피 할 터. 왕 노릇까지는 아니어도 목에 힘을 줄 수는 있으리라.

기분이 좋아진 그는 당장 표정부터 밝아졌다.

“나가서 식사나 하세.”

 

저녁식사는 장강에서 잡은 잉어와 오리로 만든 요리였다.

숙수의 솜씨가 좋아서 모두가 만족한 표정으로 식사에 열중했다.

그런데 식사가 절반쯤 진행되었을 때였다.

콰당!

객잔의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한 사람이 들어왔다.

봉두난발의 흐트러진 머리, 비틀거리는 몸짓, 술에 취한 듯 거친 숨소리.

보기만 해도 그에게서 술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했다.

그자를 바로 알아본 광양삼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궁천도요, 대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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