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59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59화
무적장을 적으로 만들면 광양산장과도 적이 된다. 즉 강남의 절반을 적으로 만드는 거나 다름없었다.
안 그래도 장강팔련 때문에 골치 아픈데, 이들까지 적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랬다가는 턱 밑의 혹을 떼는 대신 등에 머리통만한 혹을 달고 가는 셈이 된다.
그럼 소성주가 손톱을 쇠갈퀴처럼 세우고 달려들겠지?
‘후우, 소성주에게 시달리는 것보다는 잠시 참는 게 낫지.’
속으로 한숨을 쉰 그가 말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해보시지요, 노선배.”
“필요한 것이 당초당의 입이라면 굳이 지금 데려갈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죽이지만 않으면 될 것 아닌가?”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그럼 일단 당초당을 장으로 끌고 가세. 무공을 폐하고 혈도를 점한 후 뇌옥에 가두어두면 도주할 수 없을 거네. 그 후 차분하게 논의해 보세. 채 단주, 자네 생각은 어떤가?”
채응도는 선등경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마음이야 당장 죽이고 싶었지만 선등경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가 대답을 망설이자 선등경이 한마디 덧붙였다.
“저 젊은이가 일을 처리하고 나면 그때 복수를 하게. 그러면 되지 않겠나?”
그는 채응도를 설득하는 한편으로 전음을 보냈다.
<저 젊은이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은가? 아마 장원으로 데려가면 알아낼 수 있을 거네.>
선등경의 속셈을 간파한 채응도는 마지못해서 받아들이는 것처럼 짐짓 인상을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사께서 정 그렇게 하길 원하신다면 따르겠습니다.”
선등경이 이번에는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장천운이 물었다.
“만약 제가 일을 처리하기 전에 당초당이 죽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 선등경이 증인으로 나서지. 대단한 이름은 아니지만, 그 동안 살면서 신의를 잃지 않았다고 자부하네. 강호의 친구들도 내 말을 거짓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을 거네.”
선등경의 이름은 그가 말한 것보다 더 대단한 것이었다. 그가 증인으로 나서준다며 귀독마종을 데려가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
찰나 간 눈빛을 반짝인 장천운이 조건을 살짝 틀었다.
“그럼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이렇게 하지요. 당초당은 무적장의 뇌옥에 가두어두고, 선 대협과 채 대협이 증인으로 나서주십시오. 그럼 뜻에 따르겠습니다.”
채응도는 증인에 자신까지 포함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거부하기도 애매했다. 선등경도 하겠다는데 자신만 못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좋아, 증언을 하는 것 정도야 못할 것도 없지. 그런데 뭘 증언해야하는지 모르겠군.”
“그에 대해선 당초당에게 들으시는 게 정확하겠지요. 단, 당초당에게 들은 말은 어느 누구에게도 해선 안 됩니다. 선 대협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등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묘한 눈빛으로 장천운을 보며 말했다.
“조금 전 진기로 음파를 차단한 이유가 그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좋네, 일단 무슨 말인지 들어보고 나서 무적장으로 가세.”
67장: 삼장무적(三掌無敵) 단리황을 만나다
무적장은 가족 외에 무사들의 숫자가 백여 명에 불과했다.
대신 단리황을 흠모하여 찾아왔다가 눌러앉은 빈객이 오십여 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모두 일류 이상의 고수들이었고, 절정고수도 십여 명이나 되었다.
채응도와 선등경도 빈객이었다가 무적장의 식구가 된 고수들이었는데, 특히 선등경은 원로원의 칠좌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좀처럼 강호활동을 안하던 그들이 산촌인 백석까지 간 이유는 모종의 임무를 맡고 황석으로 가던 중 식사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무사 열한 명 중 일곱이 독에 당해서 넷이 죽는 바람에 임무를 계속 수행할 수 없었다.
그나마 무림공적인 귀독마종을 잡았으니 그래도 돌아갈 명분은 있는 셈이었다.
한편, 장천운은 무적장의 전력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함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철운신장 선등경, 낙성검 채응도.
강남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무적장에 몸담고 있다니.
‘아마 저들 정도의 고수가 적어도 열 명 이상은 더 있을 거다.’
그들만으로도 십이지부 중 어느 곳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어쩌면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고수가 있을지도.
무적장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단순한 절대고수의 은둔처일까, 아니면 때를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는 잠룡일까?
장천운은 무적장에 대한 궁금증을 가슴에 담고 선등경과 채응도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왕규야 신이 나서 걷는 내내 즐거운 표정이었고.
‘흐흐흐, 드디어 무적장에 들어가 보는군.’
햇빛이 유난히 좋은 날, 번쩍거리는 머리만큼이나 눈빛도 반짝거렸다.
그렇게 백석을 출발한 일행은 그날 석양이 붉어질 무렵이 되어서야 쌍호산 자락에 지어진 거대한 장원 앞에 도착했다.
장원은 검은 벽돌로 쌓은 일 장 높이 담장에 둘러싸여 있었다.
용사비등한 글씨체로 ‘무적장’이라고 쓰여 있는 현판에서는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하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누가 쓴 글씨인지 몰라도 대단한 힘이 실려 있군.’
장원 안의 건물들도 예사롭지 않았다.
고풍스런 건물의 형식부터 일반 장원과 다른 듯했다.
‘단리황이 대리 왕가의 후손이라더니, 그래서 건물 양식이 다른가?’
당초당은 무사들에 의해서 뇌옥에 투옥되었다.
무적장까지 올 때만 해도 삶을 체념한 듯 보이던 그였다. 그러나 뇌옥에 투옥되고 혼자만 남자 눈빛부터 달라졌다.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빛.
마혈을 제압당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신세인데도 눈에선 독기가 일렁거렸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오른손은 손가락이 다 뭉개져 있었지만 아직 왼손은 남아 있었다.
희망이 일 푼이라도 남아 있는 이상 포기하기에는 일렀다.
‘그 괴물 같은 놈의 눈만 벗어나면, 죽기 전에 한번 정도는 기회가 올 거다.’
왕규와 장천운에게 당하던 때가 생각나자 몸이 절로 후드득 떨렸다.
왕규야 그렇다 치고, 이제 이십대인 애송이가 그렇게 독할 줄이야.
자신의 오른손 손가락이 모두 짓뭉개지는 동안 눈빛 한 점 흔들리지 않다니.
세상에 그런 독한 놈은 처음이었다.
더구나 놈은 독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천적이라고나 할까?
나중에는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고 오줌이 찔끔거렸다.
그래서 나머지 손가락이 다 뭉개지기 전에 묻는 대로 순순히 대답해 준 것이었다.
어차피 자신은 숨길 이유가 없었다. 그로 인해서 피해를 보는 놈이 생긴다면 그것은 그놈의 운명일 뿐.
한편으로는 자신이 만들어준 뇌혈산이 어디에 쓰였는지 미치도록 궁금했다.
자신은 한 사람의 부탁을 받고 뇌혈산을 만들어주었을 뿐. 그런데 뇌혈산으로 누굴 죽였기에 저런 괴물 같은 놈이 자신을 찾아온단 말인가.
아니, 어쩌면 누굴 죽였기 때문이 아닐 수도 있었다.
뇌혈산에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한 가지 숨어있다.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단 둘뿐.
심지어 독왕도 그 비밀을 정확히 모를 것이었다. 그 비밀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자신과 자신의 사형뿐이니까.
‘일단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야 돼.’
어떻게든 살아 있어야 자신의 손가락을 짓뭉갠 놈과 그 괴물 같은 놈에게 복수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
선등경과 채응도가 보고를 올리기 위해서 단리황을 찾아간 동안 장천운과 왕규는 객당에 머물렀다.
두 사람이 배정받은 객당은 시비가 전담으로 딸려 있는 영빈전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편한 표정이 아니었다.
“사람은 얼마 안 되는데 용담호혈이 따로 없군.”
“들었던 것보다 더 강한 힘을 지닌 것 같습니다.”
“힘이 쌓이면 욕심이 생긴다고 했는데…….”
두 사람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 중일 때 밖에서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객당으로 오는 듯했다.
인기척이 자신들의 방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들을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발걸음 소리가 방문 밖에서 멈췄다.
“천 공자, 안에 있소?”
광양삼절 중 관정의 목소리.
“들어오십시오.”
문이 열리자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광양삼절 외에 두 사람이 더 있었다.
둘 모두 청년이었다. 무적장의 일반무사와 달리 고급스러운 복장, 예사롭지 않은 기세를 지난 자들.
방 안으로 들어온 관정이 밝은 표정으로 포권을 취했다.
“두 분이 왔다는 말을 듣고 반가워서 즉시 달려왔소. 잘 오셨소이다.”
“저희도 이곳까지 오게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장천운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자연스럽게 두 청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좌측에는 백의를 입은 청년이 서 있었고, 반보 정도 뒤로 처진 우측에는 청색 비단장삼을 입은 청년이 서 있었다.
둘 모두 나이가 이십대 중반쯤으로 보였는데, 장천운을 바라보는 눈빛에 호기심과 호승심이 가득했다.
관정이 먼저 좌측에 서 있는 백의청년을 소개했다.
“본 산장의 대공자이신 용 공자시오.”
백의청년이 포권을 취했다.
“용화성이라 하오. 위험에 처한 관 숙을 도와주셨다고 들었소. 광양산장을 대신해서 감사를 표하고자 하오.”
“별 말씀을. 운천이라 합니다. 이곳에서 호남제일기재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요.”
담담한 장천운의 인사를 받고 용화성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키가 조금 크고 얼굴이 잘생긴 것 외에는 특별나 보이지 않았다.
절정고수의 기도도 느껴지지 않아서 그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광양삼절은 허언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곤혹스런 마음이긴 하지만…….
‘이런 자가 궁천도 곽교진과 비등한 대결을 벌였다니, 혹시 곽교진이 늙어서 과거보다 무위가 떨어진 것 아닐까?’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 사이 관정이 우측 청년을 소개했다.
“이분은 이곳 무적장의 소장주이시오.”
“단리성우라 하오. 오늘 뜻밖의 귀한 분을 모신 것 같아서 무척 기쁘군요.”
“과찬이십니다.”
단리성우는 키가 크지 않았다. 몸매도 후덕했다.
용화성이 호랑이라면, 단리성우는 마음씨 고운 작은 곰이라고나할까?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취하는 그의 모습만 보면 강호인보다 학자가 더 어울릴 듯했다.
그러나 장천운이 본 단리성우는 결코 용화성보다 못한 자가 아니었다. 직접 대해보지는 못했지만 무공 역시 아래가 아닐 듯했다.
게다가 반 보 정도 뒤로 처져서 남 앞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걸 보니 심기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또 알려지지 않은 젊은 용 한 마리가 이곳에 웅크리고 있었군.’
사람들은 강호의 청년고수를 평가할 때 무림십룡을 최고로 쳤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들 외에도 뛰어난 자들이 많았다.
두양양과 호양청 역시도 그러한 자들 중에 속했다. 몇 명 더 있다고 해서 놀랄 것도 없었다.
“이 단리 모는 친구 사귀는 것을 좋아하오. 시간이 되시면 며칠 머물다 가시는 게 어떻겠소?”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내일 바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아쉽군요.”
“다음에 지나는 길이 있으면 들러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언제든 찾아오신다면 대환영하겠소. 하하하하.”
그때 용화성이 넌지시 물었다.
“운 형은 사문이 어떻게 되시오? 궁천도 곽 대협과 비등하게 싸울 정도로 고강한 무공을 익히셨다면 평범한 사문 출신은 아닐 것 같습니다만.”
“사실 사문이라고 딱히 말할 곳은 없습니다. 그저 운이 좋아서 이런저런 무공을 익혔을 뿐이지요.”
운이 좋아 익힌 무공으로 곽교진과 대등하게 싸웠다고?
용화성은 물론이고 광양삼절마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구양명이 그 모습을 봤다면 한 마디 해주었을 것이었다.
—나도 물어봤는데, 사실이야!
그렇게 말이다.
그러나 오늘 이곳에는 구양명이 없었다.
대신 왕규가 착실하게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이 친구는 원래 무창 흑도의 새끼건달 출신이었지.”
“…….”
‘뭔 개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