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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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9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56화
이십여 호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인데도 길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곳이어서 지나가는 객을 위한 작은 주루가 하나 있었다.
당초당은 잘 됐다며 주루로 들어갔다.
하지만 주루 안으로 발을 내딛던 그는 멈칫하며 안쪽을 둘러보았다.
탁자가 다섯 개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중 세 곳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전부 무사였다.
‘시골구석 주루에 무슨 놈의 무사들이 이리도 많아?’
짙은 감청색 무복을 입은 자들의 숫자는 모두 열하나. 그저 그런 산도적들이 아니라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지닌 무사들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마곡이나 장강팔련 놈들은 아니었다.
돌아서 나가자니 수상한 행동으로 비칠 터. 그는 입구에서 가까운 탁자에 자리를 잡고 등에 진 보따리를 옆 의자에 내려놓았다.
곧 주방에서 숙수 겸 주인으로 보이는 자가 나왔다.
“우리 주루에서 할 수 있는 요리는 많지 않수. 뭘 드실 거요? 돼지고기하고 닭이나 오리로 만든 요리는 되오만.”
“돼지고기 빼고는 뭐든 좋네. 빨리 되는 요리를 내오게나.”
“알겠수.”
숙수는 엽차를 가득 따라주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 동안 다른 탁자에 앉아 있던 무사들이 당초당을 쳐다보았다.
당초당은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은근히 짜증이 났다.
‘확, 다 죽여 버려?’
이 좁은 주루 안에서 십여 명 죽이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손만 한번 저으면 되니까.
그가 손을 저으면 소매 속에 들어 있는 독분이 퍼져서 일각이 지나지 않아 모두 죽을 것이었다.
하지만 배를 채우기 전까지는 참기로 했다.
독에 오염된 요리를 먹고 싶진 않으니까.
당초당은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으로 요리를 기다렸다.
다행히 반각쯤 지나자 숙수가 요리를 내왔다. 배고픔 때문인지, 아니면 솜씨가 좋아선지 몰라도 향기에 침이 절로 고였다.
그는 젓가락으로 요리를 집어서 맛부터 보았다. 시골 주루치고는 그럭저럭 괜찮은 솜씨였다.
만족한 그는 젓가락으로 요리를 듬뿍 집었다.
그때 누군가가 주루로 들어왔다. 동시에 다른 탁자의 무사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멈칫한 당초당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일어선 무사들이 입구를 향해서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오셨습니까, 단주.”
당초당은 젓가락을 요리에 꽂은 채 고개만 입구 쪽으로 돌렸다.
세 사람이 주루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셋 중에 그가 아는 사람이 하나 끼어 있지 않은가.
상대도 그를 알아봤는지 우뚝 멈춰 서서 경악한 표정을 짓는다.
“헛! 네놈은……!”
당초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채응도가 어떻게 여기에……!”
당초당을 알아본 자는 오십 대 초반쯤 돼 보였다.
“지난 오 년 간 아우의 복수를 위해서 천하를 뒤져도 찾을 수 없어 포기하고 있었거늘, 하늘이 나를 도와주는구나!”
은은한 노기가 섞인 목소리로 당초당을 향해 소리 지른 그는 일단 무사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모두 독을 조심해라! 저 늙은이가 바로 귀독마종 당초당이다!”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 당초당이 요리를 집었던 젓가락을 홱 뿌렸다.
그의 소매 속에 들어 있던 독분통의 입구가 열리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독가루가 사방으로 퍼졌다.
“숨을 멈추고 물러서라!”
오십 대 초반의 무사, 채응도가 대경해서 소리치고는 자신 역시 뒤로 훌쩍 물러났다.
무사들도 귀독마종이라는 말에 안색이 해쓱하게 변해서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주루를 벗어났다.
당초당은 그 틈을 이용해서 주방 뒤쪽의 뒷문으로 몸을 날렸다.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그러나 채응도와 감청색 복장의 무사들은 그를 순순히 놓아줄 마음이 없었다.
서로간의 원한 관계를 떠나서, 귀독마종은 공적으로 지목된 흉악한 자였다.
숨을 멈춘 그들은 뒷문으로 도망치는 당초당을 쫓았다.
감청색 무복을 입은 자들은 모두 일류 수준의 정예무사들이었다.
그들은 당초당을 독안에 든 쥐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당초당이 공포의 대상으로 불리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열을 셀 즈음, 감청색 복장의 무사 중 셋이 피를 토하며 꼬꾸라졌다.
“끄으윽.”
“커억!”
채응도가 대경해서 소리쳤다.
“각자 중독 상태를 점검해 봐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감청색 복장의 무사 둘이 이를 악물고 비틀거렸다.
얼굴이 새파랗게 변한 그들은 오한이라도 든 것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으으음, 아무래도 당한 것 같습니다.”
“크읍…….”
생각지도 못한 상황. 당초당을 포위하려던 무사들이 주춤거렸다.
그 사이 당초당은 주루를 벗어나서 전력을 다해 도주했다.
발이 천근만근 무겁고 고통스러웠지만 살기 위해선 발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흥! 어림없다, 귀독마종! 오늘은 반드시 네놈의 목을 따버릴 것이니라!”
채응도가 노성을 내지르며 당초당을 쫓았다. 무사들 중 성한 자들 역시 그의 뒤를 따라갔다.
부상을 당한 당초당의 속도로는 그들을 따돌릴 수 없었다.
결국 백 장도 채 가지 못한 상태에서 막히고 말았다.
하지만 손짓 한 번에 동료무사 다섯이 당한 것을 본 감청색 복장의 무사들은 당초당을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다.
“놈이 독을 쓸지 모르니 바람을 등져라!”
채응도가 소리쳐서 주의를 주었다.
무사들은 당황하지 않고 바람을 등졌다.
‘젠장!’
당초당은 머뭇거리지 않고 전력을 다해서 몸을 날렸다.
“흥! 어딜 도망가느냐!”
무사 둘이 그의 등을 향해 달려들며 검을 뻗었다.
당초당은 품속에 손을 넣어서 기다란 대롱을 하나 꺼냈다.
위급할 때가 아니면 쓰지 않는 암기발사통이었다.
통 안에는 사천당가가 자랑하는 오보추혼침이 들어 있는데, 이 장 이내에서는 절정고수조차 피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십이 년 전 사천 당가에서 얻은 다섯 개 중 현재 남은 것은 세 개.
아까워도 어쩔 수 없었다.
등 뒤로 다가오는 검기를 느낀 그는 몸을 틀면서 손을 뻗었다.
팅!
암기발사통 안에서 맑은 쇳소리가 나더니 수십 개의 가느다란 독침이 발사되었다.
시퍼런 빛으로 물든 침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날아갔다.
막 당초당에게 접근하던 두 사람은 수상함을 느끼고 다급히 몸을 비틀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검으로 모두 쳐내기에는 침이 너무 작은 데다 속도마저 빨랐고, 피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한 사람의 몸에 세 개의 침이 꽂혔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두 개의 침이 꽂혔다.
처음에만 해도 따끔한 통증이 전부였다.
그러나 두어 걸음 내딛는 순간, 침을 맞은 곳에서 불길이 일었고, 다섯 걸음 째에서는 커다란 화살이 몸을 관통한 듯 극렬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크윽!”
“으윽. 독침입니다, 단주!”
신음을 내지른 두 무사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이노오오옴!”
채응도가 허공을 날아서 당초당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의 손에 들린 검에서 시퍼런 검기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강서에서 적수를 찾기 힘들다는 낙성검 채응도의 성명절기인 낙성유(落星流)였다.
품속에서 다급히 암기발사통을 하나 더 꺼낸 당초당은 허공을 향해 발사하고는 몸을 날렸다.
채응도는 일단 검막을 펼쳐서 암기부터 막았다.
따다다당!
검기의 막에 막힌 침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열두 개의 침 중 단 하나도 막강한 위력의 검막을 뚫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채응도도 침에 묻은 독의 악독함을 눈으로 본 터라 바로 당초당을 공격하지 못했다.
그 사이 당초당은 거리를 십 장 정도 더 벌린 후 마지막 암기통을 꺼냈다.
암기통의 위력을 목도한 감청색 무복의 무사들은 거리를 두고서 도주로만 차단했다.
당초당은 바람을 가슴으로 안은 채 뒷걸음질로 물러섰다.
정말 빌어먹을 일이었다. 바람만 거꾸로 불어도 단숨에 녹여서 죽여 버릴 수 있을 텐데!
“오늘 네놈은 절대 도망가지 못한다!”
“흐흐흐흐, 그렇게 자신 있으면 덤벼봐라, 채응도.”
채응도는 귀독마종의 독이 얼마나 지독한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당초당의 능글거리는 말투에 분노가 치밀었지만 감정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그때 당초당의 등 뒤에서 냉랭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딜 도망가려고 하느냐!”
오싹 소름이 끼친 당초당은 홱, 고개를 돌렸다.
언제 나타났는지 백염을 휘날리는 노인이 쌍장을 내밀고 있는 게 보였다.
순간, 숨 막히는 가공할 위력의 장력이 그를 뒤덮었다.
당초당은 급히 피하려 했지만, 강력한 압력에 짓눌린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마지막 암기통을 발사하면 더 이상 대항할 힘이 사라질 터. 그는 반사적으로 좌수를 들어서 상대의 장력에 맞섰다.
하지만 그건 최악의 선택이었다.
상대의 정체를 알았다면 절대 맞상대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쾅!
일성 폭음과 함께 당초당의 몸이 훌훌 날아갔다.
어깨에 메고 있던 보따리도 떼굴떼굴 굴러서 한쪽에 처박혔다.
백염노인은 일 장 가량 날아가서 나뒹구는 당초당을 향해 다가갔다.
채응도가 다급히 그를 향해 소리쳤다.
“선 노사, 놈의 독을 조심하십시오! 놈은 귀독마종 당초당입니다!”
백염노인이 멈칫하더니 당초당을 쳐다보았다.
“귀독마종이라고?”
그는 뒤늦게 나타나서 당초당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그저 암기통을 이용해서 무사들을 해친 자 정도로 생각했을 뿐.
그는 우수를 뻗어서 당초당을 향해 지풍을 튕겼다.
곡지혈과 어깨의 마혈을 제압당한 당초당의 손에서 암기통이 떨어졌다.
“쿨룩, 쿨룩…….”
당초당이 기침을 하며 몸을 들썩였다.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는 걸 보니 심한 내상을 입은 듯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서린 독기는 아직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이제 보니 철운신장 선등경이었구나. 흐흐흐흐, 철운신장과 함께 죽는다면 억울할 것도 없지.”
그 말을 들은 채응도가 눈을 홉뜨고 백염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사, 운기를 해보십시오. 저놈이 장법을 펼치면서 독을 썼을 지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염노인, 선등경이 이마를 찌푸렸다.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이, 이런……!”
선등경의 얼굴을 바라본 채응도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백염 사이로 보이는 선등경의 입술에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선등경도 자신이 중독되었다는 것을 알고 급히 진기를 일으켜서 독기를 다스렸다.
그러나 귀독마종이라 불리는 천하삼독 중 하나인 당초당이 위기에서 펼친 독이었다.
진기로 쉽게 다스려질 성질의 독이 아니었다.
“으으음.”
끝내 선등경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정말 지독한 독이군.”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당초당이 하얗게 웃었다.
“흐흐흐, 늙은이의 독은 내가 아니면 천하의 누구도 해독하지 못한다. 마혈을 풀어주고 나를 쫓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해독해주마.”
선등경은 당초당을 노려보았다.
한순간의 실수로 독이나 다루는 자에게 그딴 말을 들어야 하다니.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은 견딜 만하니, 네놈을 풀어주는 것보다 네놈의 사지를 하나하나 자르면서 해독약을 얻어내는 게 나을 것 같구나. 일찍 대답한다면 그나마 사지를 하나라도 더 보전할 수 있겠지.”
당초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선등경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채응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네가 이자를 심문하게. 내 눈치 볼 것 없네. 여기서 죽는다면 그것도 내 운명 아니겠나?”
“하지만 선 노사…….”
“이 선등경이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딴 자에게 목숨을 구걸하면서까지 살고 싶은 생각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