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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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55화
무적장은 강호에서의 활동이 뜸해서 자세히 아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름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무적장. 참으로 광오한 이름 아닌가.
그럼에도 누구 하나 그들을 광오하다고 하지 않는다.
무적장의 주인인 삼장무적(三掌無敵) 단리황. 바로 그 이름 때문이었다.
광양신검 용태경, 황산검성 백정천과 함께 강남의 태산처럼 우뚝 서 있는 이름.
그는 세상에 나와 단 세 사람과 무공을 겨누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를 십대고수 중 하나로 꼽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싸워서 이긴 세 사람이 모두 유력한 십대고수 후보기 때문이었다.
왕규는 광양삼절과 함께 무적장에 가보고 싶었다. 아마 귀독마종의 독에 중독된 사람이 자신이 아닌 장천운이었다면 두 말없이 장천운을 팽개치고 광양삼절을 따라갔을 것이었다.
그만큼 무적장은 정보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억지로 찾아가도 받아주지 않는 곳, 비구니들이 사는 곳보다 출입이 더 엄격하다는 곳.
‘제길, 방향이 조금만 비슷해도 고집을 피워보겠는데.’
아쉽게도 가는 길의 방향이 너무 달랐다.
“대가에 대해선 언제 요구할 건가?”
“나중에 필요하다 싶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자네가 말했다시피 들어줄 수 없는 일은 거부할 거네.”
“그거야 당연한 일이죠.”
그때 문득 관정은 자신이 뭔가를 빠트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자네 이름도 듣지 못했군.”
장천운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가명을 댔다.
“운천이라고 합니다.”
***
광양삼절과 헤어진 장천운과 왕규는 곧장 풍촌으로 향했다.
왕규는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슬슬 걱정이 되었다.
귀독마종이 아직도 그곳에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설마 어디 가진 않았겠지?
걱정은 그뿐이 아니다.
그 늙은이가 독을 해독해줄까?
해독은커녕 죽이려 할지도 모른다.
‘장 대주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저 인간이라면 귀독마종도 별 수 없을 걸?’
이틀 후, 두 사람은 언덕 위에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 뒤에서 풍촌을 내려다보았다.
“바로 저기 나무 뒤쪽에 있는 큰 토가가 그 늙은이 집이네.”
장천운은 왕규의 설명을 들이며 마을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표정이 왠지 모르게 굳어 있었다.
마을 안에서 오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연기도 피어나는 곳이 없었다.
지금 시각은 해가 지기 한 시진 전. 저녁식사를 준비할 시간이거늘.
장천운을 슬쩍 쳐다본 왕규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그러다 뭔가를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이상하군. 왜 오가는 사람들이 안 보이지?”
그렇게 작은 마을이 아니었다. 전에도 대여섯 명은 끊임없이 오가는 게 보였었다.
그런데 오늘은……. 썰렁하다.
“가보죠. 아무래도 살아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장천운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왕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뭐?”
외마디 반문을 던진 그가 눈을 치켜떴다.
농담으로 들을 수가 없었다. 귀독마종 당초당은 과거에도 한 마을 사람 백여 명을 몰살시킨 적이 있지 않던가.
“설마……!”
왕규는 급히 발을 놀려서 장천운을 따라 언덕을 내려갔다.
마을로 들어선 왕규는 이를 악다물었다.
집집마다 사람들이 죽은 시체들이 늘어져 있었다.
개중에는 노인도 있고, 여자도 있고, 아이도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피를 토하거나 외상을 입은 상태였지만, 반 이상은 누워서 잠을 자듯이 죽어 있었다.
시체를 살펴본 장천운이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독에 당했습니다.”
“이 개만도 못한 늙은이가!”
“죽은 지 하루 정도? 날씨가 차서 상하지는 않았습니다.”
“내 이 개 같은 늙은이를……!”
왕규는 이를 갈면서 귀독마종의 거처 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씩씩거리며 귀독마종의 거처로 가던 그는 토가 옆의 장작더미 뒤에서 삐죽 솟은 팔을 발견하고 급히 걸음을 멈췄다.
팔은 가늘고 작았다. 아이의 팔.
왕규는 그 팔을 본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자신도 모르게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곳은 아이를 만났던 곳이었다.
이를 악물고 장작더미 뒤로 가자, 장작더미 위에 엎어져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 씹어 먹을 늙은이!”
욕을 퍼부은 그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를 안아들었다.
눈가가 축축하게 젖었다. 꼭 자신 때문에 죽은 것만 같았다.
‘똘똘한 놈이었는데…….’
그가 아이를 안아들고 일어나자, 아이의 벌어진 가슴옷자락 사이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동전이었다. 자신이 준 동전.
아직까지 쓰지 않고 깊숙이 간직하고 있었나 보다.
가슴이 먹먹해진 그는 평평한 곳에 아이를 내려놓고 귀독마종의 토가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나와라, 당가야! 이 때려죽일 놈아!”
귀독마종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벽에 걸려 있던 독초도 흐트러져 있었고, 정체를 알 수 없던 기괴한 물체들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이 죽일 놈의 늙은이가 이곳을 떠난 것 같네.”
왕규가 이를 갈면서 말했다.
장천운은 왕규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독마종 당초당은 독왕 남사명의 거처를 알고 싶어 했다. 왕규가 다시 돌아오길 기다렸을 텐데, 왜 마을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도망쳤단 말인가?
그에 대한 의문은 곧 풀렸다.
바닥을 자세히 살펴보던 그의 눈에서 싸늘한 눈빛이 번뜩였다.
“귀독마종을 찾아온 손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손님?”
“좋은 뜻으로 찾아온 손님이 아니었나 봅니다.”
흐트러지고 떨어진 물건들 사이로 싸움이 벌어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돌로 된 바닥에 제법 깊은 흔적이 남아 있는 걸 보니 상당한 실력을 지닌 자들의 솜씨였다.
하지만 그들은 귀독마종을 죽이지 못한 듯했다.
죽이기는커녕 거꾸로 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죽였다면 마을사람들이 독에 당해서 죽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장천운은 뒷마당에서 최근에 땅을 판 흔적을 찾아냈다.
왕규가 곡괭이를 찾아내서 땅을 파보았다.
급하게 묻은 듯 땅을 반 자도 파지 않았는데 시체가 나왔다.
귀독마종이 아니었다. 시체는 모두 세 구였는데, 뒤엉켜서 몸이 반쯤 녹아버린 상태였다.
장천운과 왕규는 시체에서 튄 거무죽죽한 액체가 몸에 닿지 않도록 조심했다.
하루 만에 시체를 녹일 수 있는 것은 독밖에 없다. 그것도 지독한 독기를 지닌 맹독.
결국 구덩이 속의 시체는 귀독마종을 죽이러 온 자들의 시신이라는 뜻이었다.
“마곡 놈들이네.”
왕규가 복장을 보고 시체의 정체를 밝혀냈다.
장천운은 마을과 귀독마종의 집 내부 상황으로 한 가지 가능성을 추론해냈다.
“마곡의 무사 셋이 찾아와서 귀독마종을 죽이려고 했다가 거꾸로 당한 것 같습니다.”
“사람이 더 왔을 수도 있잖은가? 그들이 도망친 귀독마종을 쫓고 있을지도 모르네.”
“그랬다면 마을사람들을 죽이고 도망칠 상황이 안 됐겠죠.”
“으음, 그건 그렇군.”
“아마 귀독마종은 자신을 죽이러 온 자들을 독살해서 이곳에 묻고 난 후, 추적자의 꼬리를 잘라내기 위해서 마을사람들 입을 막은 것 같습니다.”
왕규가 생각해도 일리가 있었다.
문제는, 그가 사라질 경우 장천운이 원하는 진실을 알아낼 수 없다는 점이다.
당연히 그도 완전한 해독이 어려워지고.
“이제 어떻게 할 건가? 그 늙은이를 놓치면 큰일인데.”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부지런히 쫓으면 잡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바로 그의 뒤를 쫓죠.”
“놈이 어디로 간 줄 알고?”
“북쪽으로 가진 않았을 겁니다. 사람들과 마주치는 걸 바라지 않을 테니까요.”
북쪽에는 마을이 산재해 있었다. 두 사람도 그 마을들을 지나서 풍촌으로 내려왔다. 그가 북쪽으로 갔다면 아무래도 사람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서쪽으로도 가지 않았을 거네. 함녕이 가까워서 마곡 놈들과 마주칠지 모르니까.”
마곡은 함녕에서 동쪽으로 이십여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남쪽은 몸을 숨기기에 좋은 첩첩산중이지만, 귀독마종 정도라면 굴욕감을 느끼면서까지 그쪽으로 도망치고 싶진 않았을 겁니다.”
“일리 있는 말이군. 내가 만난 그 늙은이는 오만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네.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철저하게 다스릴 줄 알았어.”
“마곡이 비록 마도에서 제법 큰 문파인 것은 분명하지만, 귀독마종의 자신감을 무너뜨릴 정도로 대단한 문파는 아니지요.”
“맞네. 그 정도는 아니지. 그럼 동쪽으로 갔을 가능성이 크군.”
***
풍촌에서 동쪽으로 산을 두어 개 넘어 삼십여 리 정도 가면 제법 큰 호수가 나온다.
능호(陵湖)라는 이름의 호수로, 길이가 이십 리쯤 되고 폭이 넓은 곳은 십 리나 되었다.
장천운과 왕규는 능호의 가장자리를 지나가던 중 갈대로 우거진 호숫가에서 격렬한 싸움 흔적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시체가 세 구나 있었는데, 안색이 시퍼렇게 변색되어 있고 내빼문 혀가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극독에 중독되었다는 뜻.
“귀독마종에게 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마곡 놈들이 아닌데? 복장을 보아하니 장강팔련 놈들 같네.”
“쫓기는 심정일 테니, 상대가 누구든 위협이 될 만하다 싶으면 미리 손을 썼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왕규가 주위를 살펴보더니 어느 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뒈진 놈들도 손 놓고 당하지만은 않았나 보네.”
장천운도 왕규가 바라보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비틀린 물체가 떨어져 있었다. 길쭉한 내장을 말린 것처럼 생겼는데, 왕규는 그것을 귀독마종의 토가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 늙은이가 다급한 상황에서도 챙겨올 정도로 귀한 물건을 그냥 놓고 갔어.”
그뿐이 아니었다. 내장 말린 것처럼 보이는 물체가 떨어진 앞쪽에는 피가 고여 있었는데, 점점이 떨어진 핏방울이 우거진 갈대숲 쪽으로 향했다.
“제법 심한 부상을 당한 것 같군요.”
“이런 부상이라면 멀리가진 못했을 거야. 가세.”
어느덧 유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곧 밤이 될 터, 흔적이 남았을 때 최대한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면 추적이 길어질지도 몰랐다.
왕규가 조금은 밝아진 표정으로 앞장섰다.
‘죽일 놈, 만나기만 해봐라.’
***
동이 틀 무렵.
당초당은 투덜거리며 동굴에서 나왔다.
“어처구니가 없군. 장강의 수적 놈들 때문에 피를 보다니…….”
발을 내딛자 다리가 욱신거려서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다리의 상처는 마곡 놈들에게 당한 것이 아니었다.
능호 호숫가에서 쉬고 있을 때 몇 놈이 다가왔다. 장강팔련 놈들이었다.
놈들은 다짜고짜 행색이 수상하다며 그를 다그쳤다. 그러잖아도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있던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놈들에게 독을 썼다.
독에 당한 놈들은 쥐약 먹은 쥐새끼처럼 날뛰다가 널브러졌다.
그 와중에 쥐새끼 한 마리가 마지막 발악처럼 휘두른 칼이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스친 상처치고는 제법 깊었다. 나으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듯했다.
하지만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새 동이 터오며 동쪽 하늘이 뿌옇게 밝아지고 있었다.
‘치료 때문에 이곳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어.’
게다가 흔적까지 남겼다. 추적해오는 자들이 있다면 꼬리를 놓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 비천한 놈들에게 당할 순 없지.”
잇새로 웅얼거린 그는 동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굴에서 떠난 지 세 시진, 갈수록 다리가 무거워졌다.
당초당이 독에 관한 한 천하제일이라 해도 의술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가 남사명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것은 그 부분이었다.
독술은 자신이 남사명보다 앞섰다. 그 차이가 크진 않더라도 앞서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반면 의술은 남사명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다. 비교한다는 게 우스울 정도였다.
결국 남사명은 독왕이라는 칭호를 얻어서 흠모의 대상이 되었고, 자신은 귀독마종이라고 불리며 죽일 놈이 되었다.
‘그깟 의술이 뭔데! 독을 다루는 놈이 독만 뛰어나면 되지!’
남사명을 잘근잘근 씹으며 걷던 당초당은 저 앞쪽에 작은 마을이 보이자 콧등을 씰룩였다.
아직까지는 추적해오는 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잠깐 쉬어갈까?’
그는 지옥으로 가는 문이 코앞에 열려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채 마을로 향했다.